스데반의 믿음
8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사명을 맡기려 부르실 때 사람의 능력은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훌륭한 인격을 잘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순종하는 마음이 잘 준비되어 있는지 살피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표와 계획도 중요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일에 동참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사람보다 더 중요한 전략은 없습니다. 모세처럼 끝까지 순종할 것인지 아니면 데마처럼 중간에 세상으로 나갈 것인지 그 사람의 인격과 판단에 따라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격과 좋은 성품을 갖춘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맡기기 위해서 대통령을 5년마다 뽑습니다. 대통령이 가진 일에 대한 능력이나 국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리더가 바른 판단과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그 조직은 좋은 쪽으로 변할 수 있지만, 리더가 모든 것에 부정적이고 미련하고 판단력이 없다면 그 조직은 자연적으로 퇴보할 것입니다.
제자들이 세운 일곱 집사 가운데 스데반 집사는 잘 준비된 사람이었고, 뛰어난 지혜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말씀을 깊이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을 제자로 부르셨고, 그들에게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시면서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들 가운데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를 세우는 사건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성령의 강한 충만함이 임하셨고, 제자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신앙을 갖게 됨으로써 예루살렘과 전 세계가 복음화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확신과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면, 스스로 거듭났다는 확신과 믿음으로 살아내야만 교회가 말씀으로 변화되고 더 나아가서 많은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가 모두 순교한 것을 보면,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히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강한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이 변하자 그들을 따르는 성도들이 변했고, 제자들이 충만해지자 성도들도 충만함이 넘쳤으며, 지금 우리에게까지 충만한 은혜가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 바빠서 교회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평신도 중에서 일곱 명의 일꾼을 집사로 세웠습니다. 집사들에게 교회의 조직과 재정, 사역을 맡겼으므로 제자들은 이제 말씀만 전하는데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스데반을 비롯한 일곱 명의 신실한 성도를 집사로 세움으로써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고, 나아가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의 무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게 된 것을 볼 때 집사들이 얼마나 헌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은 결국 성도들이 어떤 믿음으로 헌신하느냐에 따라서 영적인 성장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조직은 거대하지만 말씀이 변질되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일하고 있으므로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신만을 위해서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연단하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구원에만 만족하고 헌신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알고 있는 말씀을 사용하셔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각지로 흩어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핍박을 받게 하셨고, 핍박이 두려운 성도들은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온 천하에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영혼 구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성도들을 부르신 것도, 성도들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도, 구원받은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사도 바울이 세계적인 해외 선교를 시작하였고, 그들의 헌신으로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한 것은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을 택하시고 사용하신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택한 나의 그릇이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선택하실 때, 어느 곳에 사용하실지 미리 계획하시고 부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택함 받은 성도들이 헌신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조금 미루시고 또 다른 사람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영적 구원, 구제, 행정, 재정으로 나뉘어 있는 초대교회에서 어떤 일을 맡든 목숨을 다해 충성했습니다. 그렇다면 스데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예수님의 삶, 생각, 뜻을 닮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신도였지만 진리를 온전히 깨달은 신앙과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좋은 인격을 갖추었으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숙한 믿음과 능력을 갖춘 성도로서 하나님의 도구로 합한 자였습니다.
사도행전 6장 8절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적과 이적을 믿음으로 행했습니다. 병든 자를 치료하였고, 말씀과 권세로 사탄을 물리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영적 사망에서 건져내었습니다. 그에게는 영적 권세가 있었으므로 성령이 충만했고, 복음을 진리의 말씀대로 잘 전함으로 성도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성도의 면모를 완벽하게 갖추었지만 그는 겸손하게 봉사했고, 신실하고 거듭난 일꾼으로 목숨을 바친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9~10절
9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당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가 각 도시에서 일어나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말씀을 깨닫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성도가 전하는 말씀은, 이론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분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방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 그리고 율법의 신앙으로 세워진 사람들이 스데반을 공격하기 위해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과 하나님의 역사는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고 있는 스데반을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 1절에 대제사장이 도리어 스데반에게 그것이 사실이냐고 되묻기까지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전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처럼, 스데반 역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말하는 사람과 배운 지식을 말하는 사람 간에 논쟁에서는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에 대해 깊고 넓은 통찰력으로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말씀과 역사적 사실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복음의 지식을 가져야 하며, 성령 충만함을 받아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여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으로 충만했던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사회 지도자였고, 백성들에게 감동을 주고 민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교회들은 양적으로는 성장하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퇴보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수준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격이 높아져야 하지만, 지도자들의 욕심과 성도들의 정욕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는 거듭나지 못해 세상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영적으로 수준이 낮아서 사탄의 작은 공격에도 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그 영광을 세상으로 끌어내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죽는 데까지 복종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진리를 전하지 못하도록 거짓 증인을 세워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것을 알면서도, 그는 말씀 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돌에 맞아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대제사장은 거짓 증인을 세우지 않고서는 도저히 스데반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거짓 증인을 세워 예수님을 죽인 것처럼 스데반도 진리를 전하지 못하도록 죽이고 만 것입니다.
요즘에도 가끔 거짓 증인으로 말미암아 살인자로 몰려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죄로 풀려나는 억울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일그러졌으며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 스데반도 거짓 증인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진리를 버리지 않고는 살아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대제사장이 세운 거짓 증인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스데반이 어떤 말로 변명을 할지 모두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스데반은 얼굴이 일그러지지도 않았고, 분노하지도 않았습니다. 법정에 선 스데반은 거짓 증인 앞에서도,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천사의 얼굴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왜 용서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죄인의 몸으로 오셨는지 알고 있었기에 분노하지 않았고,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 고백을 드린 것처럼 그들이 몰라서 저지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스데반이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눈과 귀가 가려진 그들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스데반은 조용히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강하게 그리고 진실되게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사의 얼굴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천국에 소망을 둔 자만이 가능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죽어가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육신은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있고 사람들의 모함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하나님을 보고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스데반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에 보좌에 서 계신 주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이 보인다고 사실대로 말했지만, 사람들은 눈과 귀를 막고 스데반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사람이 죽음 앞에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욕심과 정욕을 벗지 않고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이해하고,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향해 죽는 믿음을 갖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진리를 전하고 있는 자신에게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것은, 세상에 소망을 둔 사람은 절대로 베풀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영적인 사람이었고,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했으며, 구원의 역사를 온전히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큰 믿음을 가진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구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원합니다. 힘과 권세를 많이 가진 사람들을 높이고 존경하며,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다스리도록 허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가진 자들은 험악한 얼굴로 자신을 높이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며,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착취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을수록 다른 사람들을 높이고, 그들이 더 많은 은혜를 갖도록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영혼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충만함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를 보는 경험을 하게 되면, 모세의 얼굴이 빛이 나서 사람들이 감히 볼 수 없었던 것처럼 성도들의 얼굴도 천사의 얼굴처럼 빛이 날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높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높여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의 빛이 성도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믿음으로 영광의 빛을 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스데반처럼 마지막 순간을 지혜롭게 맞이할 것이며,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반갑게 맞이하실 것입니다. 스데반처럼 예수님께서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시는 그 마지막 순간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복된 인생입니다.
사도행전 6장 10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의 강한 역사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기쁨을 주시고 감사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스데반은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돌로 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두려워하기보다는,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도 그 영혼들을 용서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을 때 그 기도를 도왔던 성령께서 지금 스데반의 믿음을 도와 주셨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영혼을 사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스데반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돌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그들의 악한 마음을 보았지만, 이 순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이기에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스데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사랑을 품을 수 있도록 하셨고, 십자가의 사랑이 스데반의 충성된 마음을 위로했으며, 돌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무지한 죄를 용서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보고 듣는다고 말을 하지만, 진리에 관한 한 눈을 뜬 소경이었고, 세상의 말만 듣는 귀머거리였습니다. 스데반이 아무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설명을 해도 그들은 듣지 않았고,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해서 전해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스데반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수 있었고, 모함과 핍박과 돌을 던지는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진리를 몰라서 핍박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과 스데반 같이 그들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진리의 그릇으로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아무리 다투어도, 그들과의 간격은 절대로 좁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주님께 맡기고 용서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스데반과 같은 자리에 있다면 자신 있게 진리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소신 있게 말하고서, 다음날 바로 사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원하지 않는 말을 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할지라도 내가 선 곳이 진리의 자리가 아니라면 스데반처럼 담대하게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서워 스데반을 죽이는 자리에 서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변명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심판의 돌을 맞게 될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6~7절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당신들은 사도들과 같은 신앙을 받았으므로 예수 안에서만 행하고, 반석에 뿌리를 내리며, 예수님께 배운 진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서서 모든 미혹들을 물리치고, 그리스도의 뜻에 부합된 삶을 살아가라고 격려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이렇게 긍휼히 여기고 품어주는 그릇이 된 것은, 스데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스데반의 믿음이 사도 바울을 만들었고, 그 사도 바울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복음을 전하게 된 것처럼, 성도들은 진리를 전해야 하고 더 많은 영혼을 마음에 품고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비록 세상의 방해와 핍박이 있다 할지라도 스데반처럼 진리를 전하므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훗날 천국에 갔을 때 스데반을 기쁨으로 맞이하신 것처럼, 보좌 우편에 서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맞이하실 그날을 기대하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스데반처럼 진리의 말씀을 알고 있으므로,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진리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담대하게 전할 때, 스데반의 얼굴처럼 천사처럼 빛나는 얼굴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충만한 얼굴은 사람이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성도의 얼굴을 선한 얼굴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일꾼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맡겨주신 말씀을 가지고 있으며,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을 수는 없어도, 늘 죽는 심정으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스데반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