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믿음 — 사도행전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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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두 팔을 벌린 주님께 안긴 스데반

사도행전 7장 46~60절

46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5. 스데반의 설교

오늘은 스데반 마지막 설교입니다. 여러분은 스데반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했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가 믿음을 삶으로 보여준 것처럼 성도들은 스데반처럼 살아야 합니다.

믿음은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확실하게 알고, 대속의 역사를 확신하며, 자기의 모든 것을 의뢰하고 맡기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아는 것과 확신하고 맡기는 것 중 한 가지라도 빠져서는 안 되며, 이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야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이 대상은 불확실한 우상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완전하고 확실하고 신뢰할 만한 대상이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최종적으로 자신을 의뢰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세상 것을 많이 받기 원하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마음의 정욕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다. 사람의 마음이 의와 불의에 대해 판단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셔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하신 말씀에서, 전자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로 영접하는 믿음이며, 후자의 믿음은 완전한 신뢰에서 나오는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 의는 행함을 통해서 드러났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위를 온전한 믿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학교에 다니면 학생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학생이 되기 위해서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한다면, 그 자녀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목적을 알기 때문에 부모님께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냥 열심히 공부했을 뿐인데, 부모님께 고맙다는 인사도 받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이 학생처럼 교회를 다니는 이유를 알고 열심히 신앙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보시고, 네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 아브라함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야고보가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말씀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온전히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행함을 통해 믿음이 완성되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2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아나돗의 밭‘을 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직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칠십 년 동안 포로로 끌려갈 사람에게 왜 ‘아나돗의 밭’을 사라고 하셨을까요? 예레미야가 칠십 년 후,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판단이나 상황을 보지 않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명령대로 행했습니다. 칠십 년의 포로 생활이 끝나면 백성들이 돌아와,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게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밭을 사서 매매증서를 질그릇에 보관한 것입니다. 이 증서를 질그릇에 보존했던 이유는 칠십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철기는 녹이 슬 것이고, 목기는 썩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질그릇을 선택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에 자신의 인생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39~41절

39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스데반은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을 구원으로 인도한 모세를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에도 불구하고, 복종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그 백성들은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자인 모세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계획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모세를 대변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함께 해 온 아론이 그 세력의 주동자가 된 것을 볼 때, 어느 누구라도 방심한다면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기에 보면, 사탄은 하나님의 보좌까지 나아가 욥을 험담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곁에서 사탄의 조종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속지 않으시겠지만 사탄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은 어디든지 갈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곁에서 여러분을 험담할 수 있다는 증거이므로, 여러분이 사탄보다 하나님의 곁에 더 가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 가지 재앙을 보았고, 홍해를 건넜으며, 메추라기와 만나와 샘물을 먹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온전히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의 악한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자신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고 하면서 광분하였고, 자신들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금송아지라고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계획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섬겨야 한다고 흥분하는 그들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 성장할 수 있도록 여기까지 도우셨고, 세상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도록 도와주셨는데, 혹시 그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조금의 시련과 고통도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있는 그 마음이 바로,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것입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은 스데반이, 금송아지를 만든 그 세력이 바로 너희들이며,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율법이 증거한 메시야를 너희들이 죽였다고 선포했기 때문에 이제 스데반을 살려둘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 중에는 분명히 스데반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지만, 분위기가 스데반을 죽이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의 말씀을 모르고 분노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 본인의 의견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휩쓸리게 됩니다. 그들이 불평하면 함께 불평하고, 그들이 죄를 범하면 함께 죄를 범하게 되므로, 진리의 말씀을 잣대로 잘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41절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인간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해지지 않는 의복과 닳지 않는 신발을 주시는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반석에서 나오는 샘물과 갈라지는 홍해와 열 가지 재앙을 보았고, 노예에서 해방되는 기적을 보았지만 받은 은혜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조금 불편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신하며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모세가 자신들을 위해서 사십 일 금식을 하며 말씀을 받는 동안 그들은 모세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불평하면서, 모세가 없는 틈을 타서 그 짧은 시간에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온전한 자녀로 만드시는 시간은 길고 섬세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사람들이 사탄의 유혹에 속는 순간이 찰나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순간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동시에 사탄의 공격과 유혹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사탄을 물리치는 믿음의 행함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받은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지 않고, 작은 어려움을 당할 때 쉽게 좌절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탕자도, 비루한 자도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42절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사는 사십 년 동안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희생하지 않았고 제물을 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늘의 군대를 섬기는 죄를 짓고 있는데도 돌이키는 은혜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군대’란 천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숭배하고 있는 모든 우상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즉, 일월성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일월성신 숭배는 이스라엘 역사에 계속 존속되어 왔기 때문에 스데반은 ‘하늘의 군대’라는 표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모세의 규정에 따라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진심이 없는 형식적인 제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며, 그 제사가 하나님의 진노를 더 사게 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했고 보호했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서운하셨을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진실한 사랑이 없는 행동은 도리어 분노를 일으킵니다.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것이 형식적인 말이라는 것을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다면, 그 말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서운함과 분노가 쌓일 것입니다.

이런 책망은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도 받을 수 있습니다. 진실한 마음과 정직한 사랑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진리와 성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의무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결국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생각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우상은 도와줄 수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께 회개하며 도움을 청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밖에 없는데도, 풍요와 다산의 신을 만들어 놓고 우상을 숭배하는 그 심리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가면 언제든지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육적인 쾌락과 만족을 먼저 채우려는 인간의 악한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늘 사랑만 주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감격과 기쁨과 만족과 보람과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나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 살았고, 하나님의 영광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만 이용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진정으로 희생의 제물을 드려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하지 못하면 자신이 우상이 되고, 자녀가 우상이 되며, 최고의 가치와 결정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지만, 그 기도는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에게 받을 만한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43절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스데반은 43절에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기라 함과 같다’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버린 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심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이 반복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온전한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은혜를 모르고 감사하지 않는 악한 심령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해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징계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호막이 사라지면 누구나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죄에 빠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할 것이며, 그러면 하나님은 그 영혼을 포기하실 것이고, 심판은 자연스럽게 내려지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귀한 자인지 알 수 있기에 인생이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배를 만드는 사람은 먼 바다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미세한 구멍이라도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배를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배를 사용하는 사람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자기 마음대로 드릴로 구멍을 뚫는다면, 그 배는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리 소리를 쳐도 구해줄 사람이 없으며, 발버둥을 쳐도 바다 한가운데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뭍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배를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는 사람은, 돌아와서 배를 잘 만들어준 사람에게 감사를 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서 안전한 그리스도라는 배를 주셨고, 성도들이 그리스도라는 배를 버리지 않는 한 안전할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안전한 삶을 살게 되자, 한번 바다로 뛰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다로 뛰어내린다면 많은 위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제야 배가 얼마나 안전했는지 깨닫겠지만, 다시 배로 오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때, 배 안에 있던 사람이 손을 내밀어 붙들어 준다면 그는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에서 한 형제가 된 믿음의 성도들이 하는 일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늘 지켜주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이는 세상에 마음을 두지 말고, 성령께서 늘 함께 동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거룩한 믿음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7장 48~49절

48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 항상 법궤가 앞서 나갔습니다. 법궤가 가는 곳은 기적이 일어났으므로, 백성들은 안전하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자 법궤가 장막에 있는 것이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법궤가 있을 거대한 성전을 짓고 싶은 마음에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간절한 소원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충성했던 다윗이 성전을 짓는 것이 당연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 때문에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훗날 솔로몬은 최고의 성전을 지었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지은 건물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교회 건물을 거대하고 화려하게 지어 놓고는 성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만든 건물에 계시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경험과 취향 그리고 능력으로 하나님을 소유하려고 하고 자기 편한 대로 사용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며 만유의 구주가 되시기 때문에 절대로 사람의 뜻대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우주 전체가 하나님의 집이며, 이 우주가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소유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성전이라는 건물에 가두려고 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자신 스스로 성전이 되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자신들의 소유로 정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백성들을 향해 스데반은 의인으로 오신 전능하신 메시야를 너희들이 죽였기 때문에 너희들은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은 죄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듣자, 자신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신들이 결국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했으며,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목이 곧고 할례 받지 못한 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쌓아 놓은 자신의 공을 무너뜨릴 수 없어서 스데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죄를 깨달았을 때 아무 조건 없이 돌이키고 그대로 믿는 것이 복입니다. 성령께서 돌이킬 기회를 주셨을 때, 아멘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성도가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혼입니다.

당장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 싫어서 스데반을 죽였지만, 정말 천국이 실존하고, 예수님께서 성자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으며, 스데반이 전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말씀이 선포되고 있을 때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해 주실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을 믿고,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스데반은 비록 돌에 맞아 죽었지만, 그가 전한 진리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그의 믿음의 행위는 지금도 살아서 몇 천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를 살리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믿음으로 한 행위가 어떤 사람의 영혼을 살릴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과 상황과 환경에 타협하지 말고, 오직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언제나 스데반처럼 믿음으로 살아내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스데반의 믿음 · 두 팔을 벌린 주님께 안긴 스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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