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믿음 — 사도행전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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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스데반

사도행전 7장 5~8절

5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6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7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8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스데반은 이 설교가 끝나고 나면, 이를 갈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죽을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설교를 멈추지 않았고, 자신이 전하는 말씀을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들어주기를 간절히 원하며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그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구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특별히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4~5절

4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이 말씀 속에 역설과 신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과연 어떤 것인지 알게 하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으로 가라고 명령하셨고,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왔지만, 발붙일 땅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앞으로 그의 인생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씀해주신 것이고, 합당한 때에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면, 살아가면서 만나는 환경과 문제들을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브리서 11장 11절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면, 그가 정말 열국의 아비가 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열국의 아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약속 때문입니다. 한번 약속을 하시면 언제나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18장 14~15절

14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사라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이삭을 잉태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사라는 믿지 않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삭이 태어난 것이지, 사라의 믿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어드릴 믿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음이 없었는데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신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스데반은 믿음의 조상이든 순교하든 모두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발붙일 만큼의 땅도 주시지 않고, 가나안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후손들이 반드시 가나안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 것이라는 약속을 아브라함이 믿는다면, 그 땅은 반드시 정복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소를 예비하고 너희들을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천국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직 믿음밖에는 그 말씀을 붙들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당장 가나안 땅을 받지 못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 처소에 지금의 우리도 발붙일 만큼의 유업을 받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믿음으로 천국을 받았기에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기에 반드시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실 것이라고 아브라함은 믿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9절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 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요셉은 아버지인 야곱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네 명의 아내 중에 라헬이 낳은 요셉만 유독 사랑했습니다. 요셉 혼자만 왕자나 공주들이 입는 채색 옷을 입고 있었기에 나머지 아들들은 요셉을 시기했습니다. 아들들은 혼자만 채색 옷을 입고 있는 요셉을 보면서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했으며,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요셉을 애굽으로 팔아버렸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는 생각대로 행동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형들의 미움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데 사용하셨습니다. 물론 요셉은 억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람이 거세면 배가 훨씬 빨리 가는 것 같이 형들의 시기라는 바람이 불어야만 하나님의 계획이 빨리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형들의 시기와 다툼으로 인해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했기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그 미움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애굽으로 간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었던 것도, 그의 아내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된 것도, 또한 그곳에서 관원장들을 만난 것도,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고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 가득 찬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너희들이 아무리 제사를 지내고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관에 의해서 움직여진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여러분, 야곱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라헬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을 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야곱)은 예수 그리스도(라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열매(요셉)인 택함 받은 성도들을 사탄(형제)이 질투할 정도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본다면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이 과연 성도를 가만히 두겠습니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며, 천국에 들어가도록 가만두겠느냐는 것입니다. 끝없이 사람들을 충동하여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지 않아 실족시키기 위해서 괴롭힐 것입니다.

여러분이 연단을 받을수록 단단하게 주님을 붙든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 놀라운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뿌리가 깊은 참포도나무에 접붙이지 않고는 절대로 참포도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고난 끝에 총리가 되었지만, 형들에게 보복을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들과 다툴 필요가 없었고, 그들의 죄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에 복수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지금까지 아브라함과 열두 지파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하나님이 신실하고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라고 전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주겠다는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하셨고 온 인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17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워지자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도록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하였습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초조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가 되면 모든 상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20~21절

20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21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스데반이 모세를 바로 연결해 전하는 것은 모세 역시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태어났고, 우리 역시도 아무런 이유 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모세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있는 이 시점에 태어났고, 남자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왜 모세만 유독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되고 키워졌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낳은 남자아이라면 당연히 공주가 죽여야 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생명을 보호하셨고, 그로 인해 바로의 공주가 도리어 모세의 생명을 보호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스데반은 모세의 인생을 셋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십 세까지 자아를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왕자로 살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죽어야 했음에도 모세는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가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 아래에서 태어났고, 또 아담의 원죄로 인해 우리는 이미 죽은 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되어, 죽은 우리를 보혈로 다시 살리시고 의롭다고 칭하셨습니다. 죽음의 여행을 하던 중 공주의 아들의 신분을 갖게 된 모세처럼, 죄인의 몸으로 태어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 생명을 갖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성장했지만,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많은 갈등과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모세는 민족을 향해 눈을 뜨는 시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나이 사십 세가 되어서야 백성들을 돌아볼 생각을 했고, 민족을 생각하는 시기를 맞이하였습니다. 모세의 인생 첫 단계를 어느 날 자아가 눈떴다고 말을 한다면, 제 2의 인생은 민족에 대해 눈을 뜬 시기였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애굽 군사를 죽였지만, 그 사건이 모세를 광야로 내쫓는 힘든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모세 입장에서 보면 애국이고 사랑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에 한 나라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고,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며, 교회조차 교단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회당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너희들의 지식과 생각으로 판단하고 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자신의 백성을 돕고자 한 행동이지만, 상대가 모세를 신뢰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충만함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시고, 살인자의 오명을 쓰고 광야로 나가는 것을 막아 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인정하는 좋은 조건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춰서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조건보다는 올바른 판단과 믿음과 순종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머리가 좋고 정열이 있고 힘이 있다고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그를 사용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도 모든 것을 빨리 내려놓는 것이 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30~32절

30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32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광야 생활 사십 년이 지나고 팔십 세가 되어서야 모세가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뜨는 세 번째 인생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난 것은 좌절과 절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왕자로 살던 모세가 감옥과 같은 시내 산에서 사십 년을 갇혀서 아까운 청춘을 다 보냈습니다. 갈 곳도 할 일도 없이 억지로 장인의 양을 쳐야만 했지만,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밑바닥에서 가장 진실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불꽃 속에 임재하셨고, 자신을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고, 불꽃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보았지만, 그분을 하나님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떨기나무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가 알고 있던 하나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자기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이름을 부르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성도들도 교회에 다니고 봉사를 하고 있지만, 자신만의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자기를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야 하는데, 원하는 것을 빨리 주시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고 실족하여 세상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33~34절

33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4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진리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 성도들의 인생에 개입하시면 두렵지 않고 담대할 수 있다는 것을 모세는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만난 사람들은 두 가지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신을 벗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너의 옛사람의 모습과 너의 과거를 단절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오려면 과거를 버려야 하고, 말씀의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는 묶여 있는 밧줄을 푸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지 않고 과거를 단절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찬양을 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심령의 그릇에 더러운 물이 가득 차 있음에도 버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결국 위대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 모세와 같이 신을 벗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회개의 시간과 신을 벗을 수 있는 시간을 주셨음에도, 순종하지 않아서 마지막 날 주님께 징계를 받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신을 벗어 버리기 바랍니다. 내 인생과 내 계획과 내 목적과 내 가치관을 벗어 버려야, 비워져 있는 심령에 하나님께서 들어오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알고 부르짖음을 듣고 훈련받은 모세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양을 치던 모세가 부르심을 받는 것이고 그동안 왕궁에서 사십 년,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받은 훈련을 통해 지도자로 성장한 모세가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내가 너에게 물질과 지혜와 명예를 맡기고 말씀을 듣게 한 것은, 바로 구원받을 내 백성들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살인자인 모세를 훈련시키고 거듭나게 하셔서, 진짜 살인자인 바로 왕에게 보내시는 것은, 모세의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려는 계획을 실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계획은 곧,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며, 그 약속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45절

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마귀는 그 속에 진리가 없고, 거짓을 말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사망으로 이끌어 가려는 살인자입니다. 그들 속에는 진리가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무리 전해도 듣지 않고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영혼을 지옥으로 이끌고 가려는 사탄에게서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직접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신 것과 같이,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것과 같이, 여러분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입니다.

스데반이 전한 설교의 요점은, 바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요셉과 모세를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성도를 택하시고 훈련시키며, 선택된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가 지금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구제하고 있으며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고 있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오신 것을 인정하지 않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전한 것입니다. 지금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와 헌금을 드리고, 마음을 드려 기도하고 있는 것도 결국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보다 조금 더 헌신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교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말씀과 진리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아버지로 섬기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자신의 열심과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상처를 받거나 환경이 조금 힘이 들면, 바로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자녀는 진리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여러분이 지금 말씀이 충만한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보잘것없는 우리를 부르시고 자녀라고 인치시며, 영화로운 자리에 앉게 하시기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리기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유혹과 어두운 세력으로부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영적으로 성장해야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의지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의 반석 위에서 스데반과 같이 확실하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 믿음만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이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로 살아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스데반의 믿음 ·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스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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