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
51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2. 주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
아름다운 노래
스데반이 목숨을 바쳐 헌신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과 믿음을 올바로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잘못된 우리의 믿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을 지키고 헌금을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성도들이 그런 신앙생활을 하기 바라시면서 생명을 주셨을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받은 성도들은 이제 옛 계명을 버리고 열두 제자들과 같이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하며, 형제가 원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왜 세상에 오셨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성경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온전한 마음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를 받고 읽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를 읽어야 할 것입니다.
스데반도 구약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이 전한 메시지는 메시야가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진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을 오직 경건과 두려움으로 섬기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잘 설명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논리 정연하게 그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4절
2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일방적으로 부르시고, 그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인도하셨다는 평범한 주제를 말하고 있지만, 율법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기 전에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까지는 보통사람으로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는 것이 설교의 핵심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고 찾아서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이 있어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열국의 아비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열국의 아비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로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도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다녀주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택하시고, 구원받게 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쉬고 있지만, 그들의 심령에 구원이라는 축복을 안고 사는 사람도 있고 육의 본질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태어났으며 왜 살고 있는지, 지금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지금 여러분에게도 묻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여러분이 노력해서 이루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어 이 시간까지 인도하신 것인지, 여러분의 양심에 묻고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양심에 물어보기 바랍니다. 내 능력으로 이루어 놓은 재산이고, 건강이며, 믿음인지 말입니다.
믿음은 인간을 위해서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며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구원은 내가 하나님께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직분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쓰시기 위해 주신 것이며, 교회 역시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구제, 봉사, 헌금도 모두 성령께서 충만케 하시고 긍휼과 자비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대신 인간이 주체가 된다면, 타락할 것이고 사탄의 권세 아래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스데반은 너희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존경하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조상이 된 것처럼, 너희가 죽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역사하심으로 오신 분이라고 전하기 위해서 아주 긴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한1서 4장 10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제사장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모르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생각할 때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솟아납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순교함으로써 십자가의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불러주셨고 말씀을 깨닫게 하셨으며, 가나안인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인 아브라함을 불러 열국의 아비로 만드신 하나님이 어둠을 분별하지 못하는 우리를 부르셔서 자녀라고 부르시고, 거룩한 생각과 영생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스데반이 설교에서 강조한 것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영광과 영생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관념이나 개념이 아니며,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고, 추상적으로 믿는 신이 아니라고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빛을 영원토록 비추시는 실존하시는 분이며,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위대하고 존귀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스데반은 직접 본 것입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주목하여 보니, 하나님의 영광과 보좌가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본 스데반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세상과 벗하며 살아갈 수 없었고,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1~2절
1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사도 요한 역시 하나님의 보좌를 직접 보았으며, 그 아름다운 광경을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이 땅에서 일어날 모든 일, 그러니까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핍박할 것과 성도를 괴롭힌 악인들의 최후의 심판 그리고 주님의 재림까지도 모두 계획하시고 역사하시는 총사령부인 것입니다. 어떤 권력층과 특정인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예언의 말씀, 즉 계시가 조금도 가감 없이 성취된다는 것을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세 가지의 보석으로 묘사되었는데, 벽옥과 홍보석과 무지개와 같은 녹보석이었습니다. 벽옥은 하나님의 성결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고, 홍보석은 공의와 심판의 영광을 나타내며, 녹보석으로 보이는 무지개는 그의 약속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아름다우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보좌에 둘려 있는 이십사 보좌들을 보았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입은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성결해진 사람들만 입을 수 있는 옷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성결해졌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모두가 금 면류관을 쓰고 있는데, 그 금 면류관은 교회가 천상에서 누릴 존귀와 영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과 영광은 이 땅에 있지 않고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실존하는 곳입니다. 성도들이 훗날 육신을 벗고 가야 할 곳이므로 성도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의 불로 불태워질 것이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의와 영광이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사 중에 타락한 천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기 위해서 하나님께 반역을 했고, 천상에서 쫓겨나 사탄이 되었습니다. 가장 아름답게 창조해 주신 천사가 타락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고 사랑이 많으신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기 위해 찬양하는 사명을 주셨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영광이 너무 컸기 때문에 감당하지 못하고 모두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기보다는 더 많은 천사들을 죄로 끌어들여 반역했고,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만 것입니다. 성도들이 받는 사랑도 이렇게 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그 영광을 함께 덧입게 하시기 위해서 부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고 배신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녀를 부르시고 인도하실 때, 자녀들이 죄를 이기고 믿음으로 설 수 있도록 고난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그 고난은 에덴동산 가운데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처럼, 자신의 의지로 그리고 믿음으로 그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죄를 판단하고 죄를 이겨낼 수 있도록 지혜와 명철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영광을 덧입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도록 믿음의 그릇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성장하도록 도와주실 때 성도들이 스스로 지혜를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많은 경험을 하게 하시며, 말씀으로 답을 찾도록 성숙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찾는 것이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힘겨운 고난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먹고 마시며 성장하는 것과 같이 믿음도 시간을 두고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음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갈대아우르, 즉 고향을 떠나게 하시는 것으로 훈련을 시작하셨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와 부모와 자신이 가꾸어 놓은 기업이 있는 곳을 떠나는 것으로, 일반 사람들은 할 수 없는 훈련을 강하게 받게 하신 것입니다. 고향은 적당히 실수를 해도 용서를 받을 수도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을 떠나라고 명하시는 것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명령입니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면, 열국의 아비가 되기 위해서 어떤 열심을 보여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머물라고 하면 머물고, 가라고 하시면 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떠나라고 하셨기 때문에 틀림없이 특별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브라함은 그의 삶을 성실히 살았을 뿐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말씀 안에서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별한 열심보다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가는 과정이므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스데반과 아브라함의 믿음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평 없이 순종하다 보면, 그들처럼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떠나면 백성들은 따라갔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멈추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 년이라도 그 자리에서 살았습니다. 관계가 불편한 사람과 힘겨워도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고, 힘든 환경에 처했더라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떠나기 전까지는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성도의 훈련입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이렇게 하면 빠르게 이루어질 것 같고 저 방법을 쓰면 잘될 것 같아서 조급하게 서두르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그 자리에 맴돌 뿐입니다. 성도들보다 멀리 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성도들이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갈 수 있고, 더 귀한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유한한 이 세상은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원한 목표를 가질 수 없고, 영원한 소유가 없으며, 영원한 인간관계가 지속되는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신 하란과 같은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잠깐 머무는 세상은 온전한 자녀로 거듭나기 위해서 훈련을 받는 장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대로 자신을 맡기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훈련을 하시는 도중, 성도들이 불쌍하다고 훈련을 중단하시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성숙한 성도가 될 때까지 인내하실 것이며, 성숙한 성도로 하여금 연약한 성도들을 돕는 형제로 세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실패하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사람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연약함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도 없고, 좌절할 수 있으며, 하나님조차 부인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만 믿고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늘의 복을 받는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세상과 하란은 천국으로 가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장소이며, 본향을 찾아 떠나는 과정일 뿐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약속의 땅으로 성도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네 영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기를 원한다는 말씀처럼,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영화롭게도 해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비록 말씀을 전했다는 이유로 분노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겠지만 자신이 만난 하나님, 영혼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스데반이 전한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들 중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다면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을 것입니다. 돌을 들고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하면서 스데반은 죽음 앞에서 더 평온해졌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말씀 안에서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성결하게 하며 감사하는 찬양을 올려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저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더 큰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기도의 물줄기를 놓지 말고, 말씀의 물줄기 또한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질의 복을 받은 성도는 물질로, 건강의 복을 받은 성도는 몸으로, 그리고 믿음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는 교회 곳곳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낮추고 희생할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성장하는 어린 아기부터 장년까지 모두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복을 받아 누리기 바랍니다. 세상은 살기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그 모든 어려운 환경을 뛰어넘게 하시므로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은 축복과 사랑과 은혜를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