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교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찢은 요시야
열왕기하 23강열왕기하 22:16-20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찢은 요시야

이 본문은 남 유다의 왕 요시야가 성전 수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율법책을 읽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찢으며 통곡했던 사건을 다룹니다. 요시야는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영적으로 타락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말씀 앞에 겸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말씀을 다시 발견하는 것에서 진정한 회복이 시작됨을 보여주며, 외형적인 종교생활이 아닌 삶의 중심에 말씀이 서야 함을 강조합니다.

설교는 요시야가 말씀을 들었을 때 변명이나 합리화 없이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통곡했던 태도를 짚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와 위선을 드러내어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이는 살아 있는 심령이 반응하는 증거입니다. 요시야는 심판의 말씀에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으며, 평범한 여선지자 훌다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전체의 심판 가운데에서도 요시야의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죄인임을 인정하고, 십자가의 은혜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고 마음을 찢는 그 한 사람이 되어 가정과 교회를 살리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6.6.14
야외예배
베드로후서

야외예배

오늘 말씀은 자연의 생명이 자라듯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 안에서 점점 성숙해져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믿음 위에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우애, 사랑을 차례로 더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여정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더라도 실패를 통해 다시 세우시고 성장시키십니다.

믿음의 성장은 특별한 능력이나 기적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특히 믿음 위에 가장 먼저 세우야 할 것은 단순한 예의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선한 삶의 태도인 '덕'입니다. 이는 믿음을 담는 그릇으로서 작은 일상 속에서 정직함과 배려로 드러나야 하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붙들어주며 함께 자라가는 과정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의 열매를 사랑으로 마무리하며, 많은 지식이나 능력보다 사람을 품는 예수님의 마음이 더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빚어가십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섬김과 교제 속에서 사랑의 열매가 맺히도록 자신을 맡길 수 있을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6.5.31
므낫세의 시대와 마지막 때
열왕기하 22강열왕기하 21:10-17

므낫세의 시대와 마지막 때

이 본문은 남유다의 왕 므낫세가 55년 동안 긴 통치 기간 동안 나라를 안정시키고 번영시켰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매우 악한 왕’으로 평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는 강대국 앗수르에 충성하여 정치적 안정과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고, 백성들은 그를 훌륭한 왕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 아래 우상 숭배와 죄악이 만연하면서, 백성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은 성공, 영향력, 안정성을 높이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순종하느냐를 보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의 발전과 가짜 뉴스, 사이비 교주들로 인해 미혹이 극심한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사람들을 세뇌시키며, 각자가 자신의 기준대로 살아가도록 유도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도는 세상의 번영에 현혹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므낫세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겸손히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고 회복시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관심이 심판이 아닌 구원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때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성공이나 많은 일이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입니다. 우리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며 하나님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5.17
은혜의 자리에서 드러난 히스기야의 교만
열왕기하 21강열왕기하 20:16-21

은혜의 자리에서 드러난 히스기야의 교만

이 본문은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서 고침받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후, 바벨론 사신들을 맞이하는 장면을 다룹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큰 축복과 평안을 누리는 가운데, 사신들이 요청하자 자신의 궁궐에 있는 모든 보물과 재물을 아낌없이 보여줍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호의적인接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보다 인간의 계산을 앞세운 행동이었습니다.

설교는 이러한 히스기야의 모습이 교만의 시작임을 지적합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징표와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태도를 보였고, 막상 큰 은혜를 입은 뒤에는 그 감사함보다 자신의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시험하시기 위해 이 상황을 허용하셨고, 히스기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보다 보이는 것을 더 붙잡는 유혹에 빠졌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심판의 예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는 동안에는 평안할 것이라 안일하게 여기며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생명을 연장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악한 열매를 남긴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설교는 오래 사는 것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며 믿음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축복임을 강조합니다. 히스기야의 실패를 통해 우리는 축복의 자리에서 교만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설교는 지금 이 순간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마지막 기회로 여기며, 어떤 열매를 남기고 있는지 성찰해 볼 것을 던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5.3
하나님의 열심
열왕기하 20강열왕기하 19:29-37

하나님의 열심

이 본문은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의 거대한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된 절체절명의 위기를 다룹니다. 히스기야는 처음에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항복하여 막대한 조공을 바쳤으나, 이는 오히려 더 큰 위협과 혼란만 초래했습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거짓 논리와 두려움에 잠겼던 그의 신앙은, 인간적인 노력이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설교는 성도들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세상의 방법을 붙들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안위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먼저 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통해 적군을 단 하룻밤 사이에 전멸시키셨습니다. 이는 기도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 흐를 수 있도록 연결하는 통로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수고가 아닌 은혜로 자녀를 지키시며, 그분의 말씀을 끝까지 신실하게 이루십니다.

설교는 성도가 현재 어떤 것을 붙들고 있는지 묻습니다. 끊어진 전선과도 같은 인간적인 방법을 여전히 손에 쥐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과 연결되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4.19
신앙의 본질을 회복한 히스기야의 개혁
열왕기하 19강

신앙의 본질을 회복한 히스기야의 개혁

이 본문은 히스기야 왕이 혼탁한 종교적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먼저 찾으며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그는 성전을 깨끗이 치우는 일부터 시작하여, 백성들이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던 혼합 신앙을 단호히 끊어냈습니다. 특히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던 도구조차 우상으로 전락하면 과감히 부수었던 결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기적이나 은혜의 도구 자체에 매달리며, 정작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위험에 처합니다. 성전이나 성경, 십자가와 같은 거룩한 것들이 우리의 삶에서 우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진정한 개혁은 형식적인 종교 활동을 넘어,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지금 의지하고 있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인지, 아니면 과거의 은혜로운 경험이나 눈에 보이는 도구인지 되돌아볼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6.4.12
죽어야만 사는 나라[2026년 종려주일]
요한복음요한복음 12:23-33

죽어야만 사는 나라[2026년 종려주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종려주일의 장면을 다룹니다. 당시 군중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왕을 원하며 열렬히 환영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열방이 구원받는 영광의 길을 선언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로 나아가시는 시작점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죽어야만 사는 원리로运作함을 밝힙니다. 이는 우리가 원하는 평안과 위로의 길을 거부하고, 예수님께서 걸으신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문제를 마주했을 때 나오는 첫 반응이 불평이 아닌 하나님께의 간구로 바뀌는 작은 훈련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서 입술로만 응답할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응답하며 그 길을 걷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죽어야만 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겠다는 우리의 마음이 진정한 제자의 길로 인도될 수 있을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6.3.29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섭리
열왕기하 18강열왕기하 17:1-6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섭리

이 본문은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손에 의해 멸망하게 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영적인 타락과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힘에 의존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왕 호세아의 정치적 실책과 금송아지 숭배는 단순한 외교적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을 배신하고 세상을 사랑한 불신앙의 결과로 해석됩니다.

설교는 이러한 멸망의 이면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잘못된 판단과 죄로 인해 초래된 심판이 곧 하나님의 포기함은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은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며 회복의 길을 열어두셨음을 보여줍니다.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유대인의 배척이 극심했던 시대에도 예수님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음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고난과 심판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심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중심에 세우지 않고, 형식적인 종교 행위나 세상의 논리에 치우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3.22
악한 왕으로 기억된 아하스
열왕기하 17강열왕기하 16:10-16

악한 왕으로 기억된 아하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와 세상의 힘을 의지하며 악한 왕으로 기록된 아하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는 자녀를 희생시키며 자기 번영을 꾀하는 몰렉 숭배를 행했고,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앗수르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미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보호를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핑계로 부르짖음을 회피하며 세상의 권력에 굴복했습니다.

설교는 이러한 아하스의 행위가 겉으로는 헌신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철저한 자기 중심성과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는 논리에 빠지기 쉽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아하스가 징조를 구하지 않은 것은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불순종이었으며, 오늘날 성도들이기도를 회피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알기 싫어하는 태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은 일시적일 뿐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바로 서 있을 때 그 어떤 압제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설교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한 자로 서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이지현 목사님 · 2026.3.8
어두운 시대를 견뎌낸 요담의 믿음
열왕기하 16강열왕기하 15:32-38

어두운 시대를 견뎌낸 요담의 믿음

이 본문은 남 유다의 요담 왕과 사도 바울의 제자 디모데의 삶을 통해, 눈에 띄는 영웅이 아닌 묵묵히 시대를 견뎌낸 신실함의 가치를 조명합니다. 요담은 백성이 여전히 부패하고 북 이스라엘이 극도로 혼란했던 어두운 시기에, 드라마틱한 개혁이나 기적 없이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며 신앙의 선을 지켰습니다. 그의 삶은 시대를 개척한 위대한 인물들만큼이나 귀하게 여겨지며, 무너지는 시대를 막고 다음 세대로 신앙의 맥을 이어준 완충 장치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설교는 이러한 요담의 신앙을 디모데의 삶과 비교하며, 화려하지 않고 평범해 보일지라도 그리스도를 향한 방향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합니다. 세상은 1등이나 영웅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만, 하나님은 시대를 바꾸는 사람뿐만 아니라 시대를 지탱하는 사람도 사용하십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눈에 보이는 성취가 없거나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삶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은 조용히 견뎌낸 믿음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통로로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마지막 때의 어두운 흐름 속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대를 탓하며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설교는 성도가 화려한 영웅이 되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며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2.22
받은 은혜를 누리지 못한 웃시야
열왕기하 15강열왕기하 15:1-7

받은 은혜를 누리지 못한 웃시야

이 본문은 남 유다의 왕 웃시야가 초기에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이끌었던 성공적인 통치 기간과, 이후 강성해짐에 따라 마음이 교만해져 하나님께 범죄하며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다룹니다. 그는 어머니와 영적 스승 스가랴의 영향으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며 기이한 도우심을 받았으나, 자신의 능력과 지위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높이는 태도로 변질되었습니다.

설교는 웃시야가 제사장만 집행할 수 있는 분향의 일을 왕으로서 직접 행하려다 나병의 저주를 받게 된 사건을 통해,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된 근본 원인이 교만함임을 짚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은혜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거나, 세상의 성공과 안위에 매몰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태도가 결국 영적인 파멸을 초래함을 경고합니다. 또한, 눈에 보이는 세상의 소유가 많다고 해서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없으며, 은혜에 감사하는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을 때만 그 은혜를 끝까지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설교는 성도가 지금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함으로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복이라 생각하고 소비하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2.8
아마샤의 교만과 여로보암의 번영
열왕기하 14강열왕기하 14:3-4, 23-27

아마샤의 교만과 여로보암의 번영

오늘 말씀은 남 유다의 아마샤 왕과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의 상반된 운명을 통해 인간의 신앙적 상식과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했던 아마샤는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교만해지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나, 악한 왕으로 평가받던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나라를 번영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선한 사람이 반드시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이 벌을 받는 인과응보적인 논리가 항상 적용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선행이나 환경이 하나님께로부터의 인정이나 축복의 증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성공이 반드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결과는 아니며, 고난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함이나 선함보다 더 크고 광대한 주권 안에서 역사를 이끌어 가시며, 우리의 의로움이나 노력보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뜻이 더 중요함을 이 본문은 강조합니다.

우리가 처한 형편이나 환경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 무엇인지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번영이나 고난이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서는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할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6.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