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교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열왕기하 3강열왕기하 3:13-20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이 본문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연합군이 모압을 치기 위해 전쟁에 나갔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이 공급되고 적을 물리칠 것처럼 보였던 승리가 결국 실패로 끝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선지자 엘리사를 통해 승리를 보장받았으나, 전쟁의 마지막 순간 모압 왕이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자 이스라엘 군대는 격노함을 입고 전쟁터를 떠나고 맙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난제로 여기는 이 사건은 단순한 군사적 실패가 아니라, 은혜를 입은 자들이 자신의 죄를 직시하지 못해 겪는 영적인 위기를 보여줍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악한 왕들과 연합한 여호사밧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도우셨으나, 그들이 그 은혜를 당연시하며 자신의 죄를 덮어버린 점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승패를 주관하시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미화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응답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죄 가운데서 자유롭지 못한 채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을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실패의 순간을 마주할 때, 그것이 단순한 운명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징벌인지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요?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한 것처럼 보였던 그 자리에서, 우리는 과연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앉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8.24
[요한계시록]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요한계시록 22:18-21

[요한계시록]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설교는 중동의 정세와 급변하는 기술 환경을 성경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마지막 때의 징조가 이미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과거 어린 시절의 두려웠던 기억을 넘어, 현재는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전체주의적 통제와 초지능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인공지능과 데이터 수집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며, 이를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통치 구조가 완성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경고합니다.

설교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대에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마지막 날이 도둑 같이 올지라도 밤에 속한 자가 아니라 낮에 속한 자로서 깨어 있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믿음과 사랑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소망을 붙들며,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을 정결하게 가꾸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세상이 반기독교적으로 흐르고 도덕이 붕괴하는 가운데서도, 심판이 곧 닥쳐올 것이라는 두려움보다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마음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설교는 성도들이 게으르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마무리합니다. 악한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신부로서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전합니다. 설교는 성도가 두려움보다 기쁨과 설렘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외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8.10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가 받은 능력
열왕기하 2강열왕기하 2:8-14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가 받은 능력

이 본문은 선지자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제자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겪었던 과정을 다룹니다. 엘리야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 세 번이나 엘리사에게 머물러 있으라고 명하지만, 엘리사는 스승을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굳은 결단으로 이를 거절합니다. 이러한 엘리사의 끈질긴 동행과 믿음을 통해 엘리야는 그가 원하는 대로 성령의 갑절 은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엘리사는 스승의 승천을 직접 목격하며 막연한 믿음이 아닌 확신을 얻고, 이후 수많은 기적을 베풀며 사명을 감당합니다. 특히 여리고의 악수를 고치고, 엘리사를 조롱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내리는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어떻게 보호하시고 역사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본문은 형식적인 종교 행위가 아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뜻을 헤아리는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걸림돌과 유혹 앞에서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그리고 세상의 조롱과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7.20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열왕기하 1강열왕기하 1:13-17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이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가 병들자 에그론의 신에게 물으러 사람을 보내는 장면과, 이에 분노하신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심판을 내리시는 과정을 다룹니다. 아하시야는 자신의 죄악된 삶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기보다 우상을 찾고, 하나님의 사자를 대적하는 오만함을 드러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왕의 군사를 심판하며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설교는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나 세상의 권력을 먼저 찾는 죄의 본질을 짚습니다. 아하시야와 앞선 두 오십부장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다 파멸되었지만, 세 번째 오십부장은 겸손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생명을 구원받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의지나 권세가 생명을 지킬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 순종할 때만이 구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삶의 위기나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을 신뢰할지, 아니면 눈에 보이는 세상의 해결책을 찾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생명의 주권을 오직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과연 어떤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5.7.6
선한 왕 여호사밧의 실수와 회복
열왕기상 28강열왕기상 22:41-50

선한 왕 여호사밧의 실수와 회복

이 본문은 남유다의 선한 왕으로 알려진 여호사밧의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악한 아합 왕과 동맹을 맺고 전쟁에 참여하는 등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특히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합 왕으로 변장하여 전쟁터에 나선 그의 행동은 당시의 상황과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큰 의문을 자아냅니다.

설교는 이러한 여호사밧의 행동을 통해 믿음이 좋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영적인 교만과 자만을 짚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실 때,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이 결국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과의 동맹으로 이어졌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고난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인간의 힘으로 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며 찬양으로 임한 그의 회복의 과정도 함께 전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반복한 실수와 그로 인해 끊어지지 못한 악의 고리가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 있는 것이 맞는지, 지금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지점에서 이 설교는 마무리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6.22
아합의 죽음으로 성취된 미가야의 예언
열왕기상 27강열왕기상 22:14-25

아합의 죽음으로 성취된 미가야의 예언

이 본문은 북이스라엘 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 전투를 앞두고 선지자 미가야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예언받는 사건을 다룹니다. 아합은 거짓 선지자들의 칭찬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다 결국 심판의 길을 걷게 되며, 미가야는 왕의 분노와 고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합니다.

설교는 아합이 심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못한 완악함과, 미가야가 목숨을 걸고 진리를 선포한 담대한 순종을 대비시킵니다. 또한 듣기 좋은 말만 원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책망과 권면을 성장의 기회로 삼는 지혜로운 성도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경고를 주시는 것은 돌이킬 기회를 주시기 위한 사랑임을 상기하며, 세상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참된 뜻을 따르는 삶을 권면합니다.

우리는 아합처럼 자신의 생각에 매여 진리를 거부하는가, 아니면 미가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지금 내 안에 있는 쓴 뿌리와 의를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길을 걷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이지현 목사님 · 2025.6.8
나봇의 죽음과 아합의 회개
열왕기상 26강열왕기상 21:25-29

나봇의 죽음과 아합의 회개

오늘 말씀은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아내 이세벨의 계략에 따라 나봇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건을 다룹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나봇의 거절에 답답해하며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이를 본 이세벨은 왕의 권력을 이용해 나봇을 거짓으로 모함하여 처형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봇의 신앙적 신실함은 무시되고, 권력과 욕심이 결합하여 의로운 자의 억울한 죽음을 초래합니다.

이세벨의 충동에 쉽게 흔들린 아합의 모습은 죄가 혼자 역사하지 않고, 주변의 유혹과 환경이 결합하여 결실을 맺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심판의 메시지를 받은 아합은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는 등 극심한 겸비함으로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아합의 모습을 보시고 즉시 내리실 재앙을 그의 아들 시대로 미루어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풍성한 긍휼을 베푸심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아합이 진정한 회개의 열매, 즉 나봇의 명예 회복과 재산 반환을 행하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아합의 잠깐의 겸비함이 죄의 결과를 완전히 없애지 못한 이유는 그가 반복되는 죄에서 완전히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을 때, 죄는 세대까지 이어져 결국 파멸을 초래합니다. 우리는 죄에 무뎌지지 않고,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5.5.11
스스로 결정한 결과
열왕기상 25강열왕기상 20:35-42

스스로 결정한 결과

오늘 말씀은 불순종한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아합은 아람 왕 벤하닷의 도발에 처음에는 비굴하게 굴다가, 결국 하나님의 역사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이 승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정치적 이익을 우선시하며 하나님의 뜻을 외면했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아합의 죄를 지적하시고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선지자는 변장한 채 아합 앞에 나타나 포로를 잃은 자의 상황을 설명했고, 아합은 스스로 결정한 일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이 판단은 곧 자신에게 돌아올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자신의 죄에는 무감각하면서도 타인의 죄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우리는 아합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적인 유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경고의 말씀 앞에 근심하고 답답해하기만 할 뿐, 진정한 회개와 돌이킴으로 나아가지는 않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4.27
무엇을 위한 호산나인가 (종려주일)
마가복음마가복음 11:1-10

무엇을 위한 호산나인가 (종려주일)

오늘 말씀은 종려주일을 맞아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장면을 다룹니다. 당시 군중들은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찬양이 아니라 ‘제발 구원해 주세요’라는 간절한 호소였으나, 그들이 바랐던 구원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 세상의 힘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가져오신 구원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과의 단절을 해결하여 영혼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설교는 군중의 기대와 예수님의 사명 사이의 간극을 짚으며, 오늘날 우리 역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영혼의 구원보다 이 땅에서의 성공과 번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갑니다. 감사와 삶이 분리되어 있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하며, 자신의 사고와 관점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거울로 비추어 보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걸어가신 겸손과 순종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높은 자리를 원하고 육의 만족을 좇아 살아가려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손바닥을 뒤집듯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5.4.13
하나님의 위로
열왕기상 24강열왕기상 19:11-18

하나님의 위로

이 본문은 갈멜산에서 큰 승리를 거둔 후 이세벨의 협박에 두려워 도망친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다룹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죽기를 원하며 낙심한 엘리야를 하나님은 책망하지 않으시고, 떡과 물을 주시며 어루만지듯 위로하십니다. 이는 아무리 큰 믿음을 가졌어도 인간은 연약하여 실족할 수 있음을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설교는 우리가 흔히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외형적인 역사만을 하나님께 기대하는 모습을 지적합니다. 엘리야가 바람과 지진, 불을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 능력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함께하시며 깊은 사랑과 은혜를 전하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혼자 사명을 감당한다고 느끼는 고립감 속에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보이지 않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느끼고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곁에 허락하신 믿음의 동역자들을 보고,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며 천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떼고자 할 때, 우리는 어떤 사명을 맡겨 주셔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을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5.3.23
최후의 승리자
열왕기상 23강열왕기상 18:36-40

최후의 승리자

이 본문은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는 장면을 다룹니다. 아합 왕은 가뭄의 원인을 엘리야에게 돌리며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엘리야는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백성을 향해 참된 하나님을 따르라고 촉구합니다. 백성은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기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설교는 바알 숭배가 단순한 우상 의식이 아니라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추구하는 세상의 가치관임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으나, 그 경계를 지키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진정한 축복이 임함을 강조합니다. 사탄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드나, 하나님은 자녀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돕고 계십니다.

설교는 하나님과 우상, 즉 하나님과 세상의 이익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단호히 하나님을 선택할 것을 묻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3.9
사르밧 과부의 순종과 믿음
열왕기상 22강열왕기상 17:15-24

사르밧 과부의 순종과 믿음

이 본문은 가뭄과 흉년이라는 극한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는 선지자 엘리야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특히 하나님은 척박한 곳으로 피신한 엘리야를 우상 숭배의 중심지인 시돈 땅의 가난한 과부에게로 인도하시며, 그녀가 가진 마지막 양식을 나누도록 명하십니다. 보이는 조건이 전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과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선지자를 대접했고, 그 결과 그녀의 식량은 다하지 않으며 아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소망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축복의 한창일 때 과부의 유일한 아들마저 죽는 비극이 닥치자, 그녀는 깊은 절망과 원망 가운데 빠집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 그녀가 세상의 물질적 축복에만 안주하는 신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생명의 주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십니다. 아들의 부활을 경험한 과부는 비로소 엘리야가 전한 말씀이 진실됨을 고백하며,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혼을 건지시고 세우시는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기준과 내 감정에 매몰되어 고난을 원망하며 살아가는지, 아니면 그 고난을 통해 더 깊은 믿음으로 성장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순종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