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교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열왕기하 1강열왕기하 1:13-17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이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가 병들자 에그론의 신에게 물으러 사람을 보내는 장면과, 이에 분노하신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심판을 내리시는 과정을 다룹니다. 아하시야는 자신의 죄악된 삶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기보다 우상을 찾고, 하나님의 사자를 대적하는 오만함을 드러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왕의 군사를 심판하며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설교는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나 세상의 권력을 먼저 찾는 죄의 본질을 짚습니다. 아하시야와 앞선 두 오십부장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다 파멸되었지만, 세 번째 오십부장은 겸손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생명을 구원받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의지나 권세가 생명을 지킬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 순종할 때만이 구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삶의 위기나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을 신뢰할지, 아니면 눈에 보이는 세상의 해결책을 찾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생명의 주권을 오직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과연 어떤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5.7.6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말라기 4강말라기 1:10-14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이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더럽히고, 은혜를 무시하며 하나님을 조롱했던 상황을 다룹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건강한 제물이 아닌 병들고 결함이 있는 제물을 가져오며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단순한 의식 문제를 넘어, 창조주에 대한 불평과 감사의 부재가 드러나는 영적인 타락입니다.

설교는 이러한 태도가 결국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임을 짚습니다. 제사장들의 타락이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듯, 오늘날 기복신앙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신앙 역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속임수로 드리는 제물을 받지 않으시며, 진심으로 회개하고 거룩한 삶을 살 때만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다윗 왕의 간절한 기도처럼, 상황의好坏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진정한 믿음이 요구됩니다.

설교는 성도가 세상의 유혹과 욕심에 빠지지 않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묻습니다. 또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믿음을 지키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무엇인지 던집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29
선한 왕 여호사밧의 실수와 회복
열왕기상 28강열왕기상 22:41-50

선한 왕 여호사밧의 실수와 회복

이 본문은 남유다의 선한 왕으로 알려진 여호사밧의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악한 아합 왕과 동맹을 맺고 전쟁에 참여하는 등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특히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합 왕으로 변장하여 전쟁터에 나선 그의 행동은 당시의 상황과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큰 의문을 자아냅니다.

설교는 이러한 여호사밧의 행동을 통해 믿음이 좋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영적인 교만과 자만을 짚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실 때,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이 결국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과의 동맹으로 이어졌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고난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인간의 힘으로 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며 찬양으로 임한 그의 회복의 과정도 함께 전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반복한 실수와 그로 인해 끊어지지 못한 악의 고리가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 있는 것이 맞는지, 지금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지점에서 이 설교는 마무리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6.22
더러운 떡을 드리는 타락한 제사장들
말라기 3강말라기 1:6-9

더러운 떡을 드리는 타락한 제사장들

이 설교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타락한 제사장들의 모습을 다룹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흠 없고 건강한 제물을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병들고 상한 제물을 제단에 올렸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좋은 제물은 챙기고 남은 것으로 하나님을 대우하며, 심지어 자신의 죄를 모른 채 하나님께 반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그분의 식탁을 경멸하는 심각한 죄악으로, 제사장의 타락이 백성의 영적 파멸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함을 보여줍니다.

설교는 구약의 제사장이 오늘날 목회자와 성도의 영적 자세에 비유됩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환경에서도 변함없는 신앙을 가졌던 것처럼, 성도는 재물과 고난을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 다루어야 합니다. 반면, 세상 권세자에게는 좋은 것을 바치면서 하나님께는 계산하고 아까워하는 태도는 불의한 청지기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제물이 아니라 드리는 사람의 진심과 정직함을 원하시며, 가식적인 예배나 이기적인 헌금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설교는 성도가 자신의 처지에 상관하여 불평이나 의심 없이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또한, 세상의 기준에 맞춰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소홀히 하거나, 헌금을 축복을 얻는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설교는 독자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정으로 그분을 섬기는 삶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15
아합의 죽음으로 성취된 미가야의 예언
열왕기상 27강열왕기상 22:14-25

아합의 죽음으로 성취된 미가야의 예언

이 본문은 북이스라엘 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 전투를 앞두고 선지자 미가야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예언받는 사건을 다룹니다. 아합은 거짓 선지자들의 칭찬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다 결국 심판의 길을 걷게 되며, 미가야는 왕의 분노와 고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합니다.

설교는 아합이 심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못한 완악함과, 미가야가 목숨을 걸고 진리를 선포한 담대한 순종을 대비시킵니다. 또한 듣기 좋은 말만 원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책망과 권면을 성장의 기회로 삼는 지혜로운 성도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경고를 주시는 것은 돌이킬 기회를 주시기 위한 사랑임을 상기하며, 세상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참된 뜻을 따르는 삶을 권면합니다.

우리는 아합처럼 자신의 생각에 매여 진리를 거부하는가, 아니면 미가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지금 내 안에 있는 쓴 뿌리와 의를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길을 걷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이지현 목사님 · 2025.6.8
너희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말라기 2강말라기 1:3-5

너희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이 본문은 돌로 만든 작품이 세월을 견디는 견고함과 모래로 쌓은 성이 파도에 쉽게 무너지는 약함을 대비하며 설명합니다. 성도들의 신앙도 이와 같아, 말씀을 중심에 둔 신실한 믿음은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돌과 같지만, 외식적인 신앙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특히 에돔의 역사와 탕자의 비유를 통해, 인간의 노력과 교만으로 쌓은 것들이 하나님께서 보호의 울타리를 거두시면 결국 헐리게 됨을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책망과 경고를 보내실 때, 이를 불평하거나 대적하는 것은 스스로 심판의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인간관계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꾀임에서 지키기 위한 은혜의 신호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지식과 이성을 동원하여 자신의 길을 정당화하려 해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견고하게 세울 수 없으며, 결국 모든 것은 허사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무너짐이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음을 두드리며 더 깊이 교제하라고 부르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에돔처럼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만함을 버리지 않고 불평하는 자가 될지, 아니면 탕자처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결단을 할지,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1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말라기 1강말라기 1:1-3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이 본문은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영적 타락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를 다룹니다. 백성들은 70년 동안의 고통을 겪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어려움과 풍요로움의 부재로 인해 하나님을 불평하고 조롱했습니다. 제사장들의 타락과 함께 백성들은 형식적인 예배와 헌물, 그리고 이방인과의 혼인과 같은 죄악 속에서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설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태도를 에돔의 에서와 비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신앙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선민으로 택하시고 수많은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연연하며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이는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응답이 늦어지면 악한 속내를 드러내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의 문제 해결과 풍요를 강요하며 응답을 재촉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으며 불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회개를 통해 깨끗한 심령을 회복하지 못한 채 복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5.18
나봇의 죽음과 아합의 회개
열왕기상 26강열왕기상 21:25-29

나봇의 죽음과 아합의 회개

오늘 말씀은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아내 이세벨의 계략에 따라 나봇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건을 다룹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나봇의 거절에 답답해하며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이를 본 이세벨은 왕의 권력을 이용해 나봇을 거짓으로 모함하여 처형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봇의 신앙적 신실함은 무시되고, 권력과 욕심이 결합하여 의로운 자의 억울한 죽음을 초래합니다.

이세벨의 충동에 쉽게 흔들린 아합의 모습은 죄가 혼자 역사하지 않고, 주변의 유혹과 환경이 결합하여 결실을 맺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심판의 메시지를 받은 아합은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는 등 극심한 겸비함으로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아합의 모습을 보시고 즉시 내리실 재앙을 그의 아들 시대로 미루어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풍성한 긍휼을 베푸심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아합이 진정한 회개의 열매, 즉 나봇의 명예 회복과 재산 반환을 행하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아합의 잠깐의 겸비함이 죄의 결과를 완전히 없애지 못한 이유는 그가 반복되는 죄에서 완전히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을 때, 죄는 세대까지 이어져 결국 파멸을 초래합니다. 우리는 죄에 무뎌지지 않고,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5.5.11
형제를 미워한 에돔이 받은 심판
오바댜

형제를 미워한 에돔이 받은 심판

이 본문은 형제인 이스라엘을 배신하고 유다의 멸망을 방관하며 기뻐한 에돔의 죄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을 다룹니다. 에돔은 지리적 이점으로 교만해졌고, 형제의 환란을 돕는 대신 약탈과 학살로 응답하며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은 형제 사랑을 무시한 그들의 행위가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갈 것임을 경고하셨고, 그 예언은 역사적으로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설교는 에돔의 몰락이 단순한 국가적 패배가 아니라, 은혜를 저버리고 형제를 미워한 자에게 내려진 공의로운 심판임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힘이나 지위를 자랑하며 교만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주시고 빼앗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임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형제의 고통을 방관하거나 오히려 해를 끼치는 태도가 하나님께 얼마나 큰 진노를 자아내는지 보여줍니다.

성도는 세상의 권력이나 상황 변화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향해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돕는 것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임을 깨닫게 하는 이 설교는, 우리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지 묻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5.4
스스로 결정한 결과
열왕기상 25강열왕기상 20:35-42

스스로 결정한 결과

오늘 말씀은 불순종한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아합은 아람 왕 벤하닷의 도발에 처음에는 비굴하게 굴다가, 결국 하나님의 역사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이 승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정치적 이익을 우선시하며 하나님의 뜻을 외면했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아합의 죄를 지적하시고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선지자는 변장한 채 아합 앞에 나타나 포로를 잃은 자의 상황을 설명했고, 아합은 스스로 결정한 일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이 판단은 곧 자신에게 돌아올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자신의 죄에는 무감각하면서도 타인의 죄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우리는 아합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적인 유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경고의 말씀 앞에 근심하고 답답해하기만 할 뿐, 진정한 회개와 돌이킴으로 나아가지는 않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4.27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성도 [부활절]
마태복음마태복음 11:26-30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성도 [부활절]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만찬의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기 위해 자리를 뜨는 과정과, 그 후에도 제자들이 자신의 연약함과 배신으로 인해 예수님을 떠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두 실족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시는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설교는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을 발견하며,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주저앉고 싶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불평과 다툼을 일으키거나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태도가 결국 영적인 심판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반면, 진심을 다해 헌신하고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장수와 부귀뿐만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서의 복을 약속하신다고 전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진정한 평안을 누리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4.20
무엇을 위한 호산나인가 (종려주일)
마가복음마가복음 11:1-10

무엇을 위한 호산나인가 (종려주일)

오늘 말씀은 종려주일을 맞아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장면을 다룹니다. 당시 군중들은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찬양이 아니라 ‘제발 구원해 주세요’라는 간절한 호소였으나, 그들이 바랐던 구원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 세상의 힘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가져오신 구원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과의 단절을 해결하여 영혼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설교는 군중의 기대와 예수님의 사명 사이의 간극을 짚으며, 오늘날 우리 역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영혼의 구원보다 이 땅에서의 성공과 번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갑니다. 감사와 삶이 분리되어 있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하며, 자신의 사고와 관점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거울로 비추어 보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걸어가신 겸손과 순종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높은 자리를 원하고 육의 만족을 좇아 살아가려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손바닥을 뒤집듯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5.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