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강해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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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아모스 5장 4~15절

4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7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8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9그가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10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11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13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14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세상 사람들의 판단 기준은 세상입니다. 만약 저택과 초가집이 불에 타고 있으면 사람들은 저택에만 관심을 둘 뿐 초가집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크기와 소유에 따라서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것은 사람의 행복 조차도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집의 크기만 다를 뿐 온 가족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인 것도 같고 함께 먹고 마시며 정을 나누는 안전한 보금자리라는 것도 같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게 다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보이는 것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소홀히 하고 세상을 위해서 복음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처녀 이스라엘이라고 불릴 만큼 이스라엘은 사랑을 받은 민족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는 악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악행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보다 못해 심판의 손을 드셨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기 때문에 그 아픔을 애가로 지어 불렀습니다. 예레미야가 애가를 지어서 부른 것처럼 예언자들은 성읍과 백성과 나라가 죽음에 직면했을 때 애가를 지어서 불렀다고 합니다.

아모스 5장 1~3절

1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2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가 없으리로다 3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고 오직 자신들의 부귀 영화를 위해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애가를 지어 부른다는 것은 어쩌면 선지자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쉬울 것 없이 풍족한 자신들에게 너희들이 가진 모든 것은 빼앗기게 될 것이며 먹을 것이 없어서 구걸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너무 풍족해서 교만해진 세상을 향해 종말을 예언하며 심판과 재림을 전하는 것은 도리어 그들에게 조롱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아도 심판은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높이 쌓은 바벨탑을 한 순간에 부숴버렸고 그들이 한 개의 언어로 하나님을 대항하자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만국어로 그들을 사방으로 흩어 버리셨습니다. 지금 각 나라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하나님께 지었다는 뜻이며 바벨탑이 실제로 존재 했다는 증거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합친다고 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항할 수 없습니다. 죽도록 재물을 쌓아도 한 순간에 헛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인데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을 위해서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이사야 47장 1절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임이라

이사야 선지자는 한번도 외적에게 정복을 당해본 적이 없는 강한 바벨론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는데 지금 아모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애가를 지어 부르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바벨론은 멸망했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이토록 엄청난 심판을 내리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다를 회개 시키기 위해서 바벨론을 채찍으로 사용하셨지만 그들은 자신의 힘을 믿고 예루살렘성과 도시를 참혹하게 부수었을 뿐 아니라 인권을 말살하는 잔혹성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백성을 학대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은 유다를 회개시키는 도구로 자신들을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몰랐지만 워낙 인성이 잔인했기 때문에 그 죄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바벨론은 이라크 바그다드 남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구 바벨론과 신 바벨론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구 바벨론은 바벨탑이 세워졌던 창세기에 나오며 니므롯이 건설하였습니다. 신 바벨론은 느부갓네살 왕이 통치했으며 구 바벨론에 바벨탑이 세워진 것처럼 신 바벨론에 금 신상이 세워진 것을 보면 악한 영이든 선한 영이든 영적줄기는 그대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지구라는 작은 땅덩이에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면서 같은 자리에 건물을 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할 뿐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잠시 왔다가 가는 인생을 살면서 바벨론처럼 잔인하게 약한 사람을 짓밟아도 안되며 힘이 없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자를 믿는 성도들은 연약한 사람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영접하도록 하기 위해서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5장 4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고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돌이키지 못할 정도로 타락한 이스라엘이지만 그들이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피할 길이 있다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너무 썩었기 때문에 심판을 경고하셨지만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믿고 견뎌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려고 하셨습니다. 지금 종말이 가까워 왔을 때 성도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채찍과 가시 면류관과 옆구리를 창에 찔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인내하신 것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하시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면 피할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보다 세상에 더 가까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걸음을 멈추고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면 유한한 이 세상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살 수 있습니다.

아모스 5장 5절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기쁘시게 했던 장소입니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께 약속을 새롭게 받은 장소이고 길갈은 이스라엘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할례를 행했던 장소입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모두 머물렀던 믿음의 장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곳으로 가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벧엘에 가야하고 길갈에서 자신의 믿음을 보여야 하며 브엘세바에서 이삭을 바치러 길을 떠난 아브라함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그곳에 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형식적인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믿음 없이 제사를 드리는 그들에게 의식적인 예배만 드릴 것이 아니라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경고였습니다.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에 가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진심은 우상으로 더럽혀진 그곳을 깨끗하게 청소하여 믿음으로 제사를 드리고 정직한 십일조를 드리라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벧엘에서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는 가치 없는 예배이고 목숨을 걸고 할례를 행했을지라도 온전한 믿음이 없는 할례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자기 만족입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신앙은 이미 기복신앙이기 때문에 그런 신앙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여러분의 이름을 아무리 다정하게 불러도 소름 끼치도록 싫은 것과 같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한 교인들은 성경말씀을 몰라도 교회만 다니면 신앙이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니까 잘못을 하고도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께 온전히 회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처럼 나는 열심히 제사를 드렸고 삼 일에 한번씩 십일조를 드렸으며 죽도록 충성을 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으면서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만해야 합니다. 백성들의 당연한 본분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인간은 절대로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만 거두실 수 있으므로 백성들은 하나님께 회개를 드리고 그 진노를 거두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모스 5장 14절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심판이 임박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살릴 수는 없지만 선을 구하고 악을 버리는 사람에게는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생명을 빼앗는 전쟁이 일어나면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광장에서 울 것이며 모든 거리에서 슬프다고 소리칠 것이며 농부를 불러서 울음꾼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이 휩쓸고 간 이스라엘에 울음이 그치지 않는 것은 사자를 피하려고 하다가 곰을 만나는 것과 같고 휴식을 취하려고 손을 벽에 대다가 도사리고 있던 뱀에게 물리는 것처럼 두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전쟁을 보면 하나님은 항상 자기들 편이었기 때문에 감히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한 열방은 하나님에 의해 몰살 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자신들이 지금 얼마나 큰 죄악 가운데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나라는 큰 재앙을 받았고 자신들은 기적과 같은 역사로 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의 경고를 무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썩은 이스라엘을 용서하실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묵인하고 사탄을 숭배하는 사상으로 가득 찬 문화를 즐기며 썩을 대로 썩어 있습니다. 이렇게 썩었으면서도 우리는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까 세상사람보다는 선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경중의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므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심판 앞에 선 백성중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살 수 있다고 하신 것처럼 신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면 사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라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과 구원받아야 할 생명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일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무엇이 우상숭배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으면서 세상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산다는 말과 행동을 보인다면 그들이 받는 심판을 같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타락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힘없는 사람을 밟고 부당한 세를 거둔 이스라엘을 더 이상 보호하시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선의 기준은 도덕과 양심이므로 자기의 기준에 따라 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중심에 세우면 나 자신이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고 선한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촛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기 위해서 흔들리는 것이 고난인 것처럼 어두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도의 삶이 바로 고난입니다. 공의로운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으며 악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성령의 울타리로 보호를 받습니다.

아모스 5장 18절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 날은 구원의 날이며 어린양과 혼인잔치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나팔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때 예수님께서 영광 중에 오실 것이며 천사들을 세계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은 성도들을 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맞이할 여호와의 날은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고 가난한 형제의 것을 빼앗아 십일조를 드리며 하나님의 전에서 포도주를 마신 악한 자들이 심판 받는 날입니다. 이렇게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이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며 받을 축복을 기대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네가 어떻게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며 기다릴 수 있느냐고 진노하셨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신실한 신앙으로 연약한 사람을 돕고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으로 살아야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교회 안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기 때문에 성도들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지 알기 때문에 빨리 돌이키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세상을 마음에서 버리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심판이 그만큼 무섭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에 가야 하는 성도이기 때문에 세상의 쾌락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바닷물을 지면에 쏟아 붓는 분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한 순간에 휩쓸고 가는 홍수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산을 잠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어두운 것은 빛이 없어서 어두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영적 맹인이기 때문에 앞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 맹인은 여호와의 날에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좌를 향해 찬양을 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 돌이키지 않는다면 아모스가 전하는 무서운 심판을 그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권세자가 한 순간에 망하는 것처럼 그들과 함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 믿음을 회복하여 하나님을 섬기기 바랍니다.

아모스 5장 10절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멀리하면 진리와 권면이 듣기 싫습니다. 복음을 듣고도 인간의 의를 버리지 않는다면 믿음의 형제가 자신을 위해서 권면해 준 말이 부담스러워서 그를 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화인 맞은 심령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심령이 되면 다른 사람들의 죄만 지적할 뿐 자신의 죄는 돌아보지 않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죄를 돌아보는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며 성숙한 성도입니다. 마음이 상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꿀송이처럼 달았던 말씀이 모두 자신의 죄를 책망하는 말로 들리기 때문에 듣기 싫습니다. 믿음의 형제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대적하고 정죄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무엇이든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아모스 5장 13절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권면을 했는데 그가 듣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습니다. 아모스는 감당하지 못할 심판이 임박하자 회개를 외쳤지만 백성들은 도리어 아모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핍박했습니다. 아모스는 회개하면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말씀을 멈출 수 없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가 아예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잠잠하다면 그것은 백성들을 버렸다는 뜻이므로 만약 늘 권면하던 사람이 잠잠하다면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는지 자기 신앙을 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채찍을 들기로 마음을 정하셨고 백성들은 회개할 생각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아모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악한 사람들이 번제와 소제를 드리고 절기와 성회에 참석해도 그것은 참 된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모스 5장 23~24절

23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이스라엘은 제사를 성대하게 드리기 위하여 찬양대와 각종 악기를 동원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전에 다윗이 각종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의 시를 드리며 백성들과 함께 춤을 추며 기쁘게 드렸던 예배 역시 무척 성대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스라엘과 다윗의 제사가 똑같아 보이지만 자기의 즐거움을 위해서 제사를 드린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다윗의 제사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왔지만 다른 생각을 하면서 예배 시간만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드린 번제나 소제를 받지 아니할 것이고 화목제도 돌아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면 그 예배는 그저 사람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마르지 않고 선을 베풀어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높여 드리기 위해 믿음으로 사는 삶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이스라엘과 다윗의 삶은 전혀 달랐는데 생명을 대하는 마음도 달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달랐습니다. 아모스가 전한 심판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리와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며 선한 삶을 사는 성도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선하게 사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날에 독수리가 날개 아래 새끼를 품는 것처럼 보호하실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 찬양하는 성도와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는 보호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찾고 찾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께 사랑 받는 귀한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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