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가모 교회
12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버가모는 서머나 북쪽 약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수도였는데, 주전 130년경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와 서머나가 상업적으로 아시아의 중심 역할을 했다면, 버가모 지역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아시아의 중심부 역할을 했습니다. 버가모의 위치는 오늘날 터키의 베르가마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버가모는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 후계자들 시대에 융성기를 맞았습니다. 특히 B.C 3세기경 아탈로스 1세가 아탈로스 왕조의 수도로 삼았고, 자신의 영토를 로마에 헌납했기 때문에 이곳이 아시아의 수도가 된 것입니다. 로마 제국 시대의 버가모는 우상과 황제 숭배가 성행하는 곳이었습니다. 모든 황제의 신전이 차례로 세워졌기 때문에 로마 황제 숭배의 중심지가 된 것입니다.
버가모는 양피지의 발달로 20만 권의 장서를 가진 세계 2대 도서관과 대학이 있는 학문의 도시였으며, 최고의 종합병원 아스클레피온과 의사들이 많아서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습니다. 세상의 학문과 의학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버가모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건축과 문화 예술교육과 의술이 모두 우상과 신전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분명 세상의 지식은 필요하지만, 복음은 세상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으므로 성도들이 받는 핍박이 더욱 심했던 것입니다.
버가모는 제우스가 태어난 출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우스가 태어난 곳이라면 버가모가 얼마나 우상으로 가득 차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뱀 신의 전각과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과 제우스 신전과 각종 신들의 전각이 있는 우상 숭배의 총본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이곳을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고개만 돌리면 우상의 전각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속에 살면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환경이 모두 우상들과 연관되어 있었으므로 성도들이 순결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고통과 핍박을 당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섞여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영접한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숭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선택을 세상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만 핍박이 두렵지 않으며, 고난과 연단까지도 기쁨으로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갖지 않으면 하늘을 향한 소망을 버리게 되고 세상과 타협할 수밖에 없으며 사탄의 권세에 굴복하고 말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위험한 환경에 처한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 말씀의 검을 가져야만 악한 자를 분별할 수 있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2절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그리스도의 검은 하나님의 권위와 절대자가 가진 심판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절대로 타협이 없고 거둬들이지도 않는 말씀이기 때문에 날카롭습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검에 맞은 자는 살 수 없고 사탄일지라도 맞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좌우에 날선 검을 버가모 교회를 향해 보여주신 것은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타협하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 어둠의 세력을 이겨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말씀뿐입니다. 말씀으로 충만하지 못한 성도는 사탄을 대적할 힘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좌가 있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버가모는 타락했고 음란과 쾌락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사는 성도들이 진리를 버리는 순간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의 신전’ 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놀랍게도 사탄의 권좌가 있는 버가모에 교회를 세우시고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을 불러서 성도로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사탄의 권좌가 있는 버가모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며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날선 검처럼 날카로운 진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교회가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점점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도 핍박하는 사람들과 맞서 싸우며 믿음으로 순교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버가모 교회 목회자인 안디바였습니다. 안디바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서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충성된 증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그들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진리의 말씀만 선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황제숭배를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놋쇠로 만든 황소를 불에 달군 뒤 안디바를 처참하게 태워 죽였고 안디바는 순교했습니다.
안디바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 육체를 벗으면 모든 고통이 끝이 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영원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안디바는 끝까지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과 현실에 만족하며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 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후세계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육체를 벗는 순간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만물에 그리고 우리의 양심과 믿음 안에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지혜를 숨겨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창조물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이 우리들의 종말일지 십 년 후가 마지막 날일지 알 수 없지만, 사후에 영원히 살아갈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안디바는 그것을 알았기에 육체는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 기꺼이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디바처럼 죽이겠다고 사탄이 협박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어쩌면 지금 같은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그렇게 심한 비유를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을 유혹했던 사탄이 오늘도 지옥으로 데리고 갈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는 지금도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고 있으며 목숨으로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탄은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밀어 넣기 위해 오늘도 목회자들을 변질시켜서 성도들에게 쑥물을 먹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의 문화를 이용하고 사람들의 연약한 마음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지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좌우에 날선 검처럼 날카로운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말씀대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3장 19절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유다의 왕족과 귀족의 자제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목숨을 걸고 끝까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은 것은 불의한 일과 타협하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왕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지겠다고 아무리 협박해도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할 수 없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유다식 이름은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힘을 가진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들을 풀무불에 던진다고 위협해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건지실 전능하신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풀무불에서 건져주지 않으셔도 금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자신들을 구해주셔도, 그리하지 아니하셔도 언제나 변함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들이 육체를 벗고 가야 하는 곳은 하나님의 품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입니다. 안디바도 이 세 친구처럼 하나님을 배반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욥도 자기가 세상에서 누리던 많은 재산과 자녀들과 권세와 명예들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누렸던 안락한 삶이 사라지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힘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얼마나 큰 은혜를 받고 살았는지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지금의 고난보다는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 수 있도록 축복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디바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순교를 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들과 같은 신앙을 갖는다면 이 사람들이 받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기억하시고 후손들에게 자랑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안디바처럼 순교하는 목회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했으며 니골라 당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니골라 당이 교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논쟁을 통해서 쫓아낸 것을 보면 이들의 수준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말씀으로 무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 책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버가모 교회는 황제의 신전에서 가이사를 주님이라고 고백할 것을 강요당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가이사는 모든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칭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가이사를 신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채찍과 고문을 받아야 했으므로 성도들은 한 명씩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 때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강요당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더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믿음으로 순교하였지만, 그들의 고문은 사람의 힘으로는 견뎌낼 수 없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물론 믿음으로 이겨내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신사참배를 한 목회자나 성도들을 비방하기보다는, 내가 그 자리에 있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도록 믿음을 견고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 악한 자들이 와서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고 협박한다면 우리 교회는 몇 명이나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일곱 교회를 설교할 때마다 여러분에게 묻는 질문이지만 한 번 자신을 돌아보시고 곁에 있는 믿음의 형제가 굳센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바랍니다.
만약 성도들 중에 한 명이라도 순교한다면 남아있는 성도들이 갖는 공포는 클 것입니다. 혼자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는 온 성도가 하나가 되어 함께 사탄의 권세를 대적할 때는 그래도 믿음으로 잘 견뎌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혼자 있을 때 악한 자들이 자녀의 머리에 총부리를 대고 부인하라고 한다면, 그 때도 자녀들에게 죽더라도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채찍을 맞으며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 상황을 본 베드로는 결국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는 좀 황당한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배신할 수 있는 성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는 이렇게 예수님까지 배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어떻게 주님을 배신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겠지만 누구도 그 상황에 처하지 않고는 자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해야 하는 일은 지금 이 순간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서 겸손한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신 그 말씀을 믿고, 사탄이 아무리 집요하게 공격하더라도 넘어지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회개할 기회와 순교할 기회가 있습니다. 이렇게 순교한 성도들은 육체는 비록 죽더라도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이므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유혹과 핍박이 있겠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면, 그 자체로 이미 부활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므로 영원히 죽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4절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버가모 교회는 안디바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하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가르치고 따르는 자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발람의 교훈은 성도들에게 올무를 놓아 우상 앞에서 제사를 지내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합니다.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우상과 간음하는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유일신인 하나님을 버리고 발람의 교훈을 따른다는 것은 이미 마음을 사탄에게 빼앗겼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 말씀을 배운 지도자들이 절대로 우상과 간음하지 말고,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며, 오직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하지만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핍박을 견뎌내기보다는 고난 없이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가이사를 경배한 것입니다. 그들은 가이사를 경배하며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기를 원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교회를 다니면서 구원도 받고 싶었습니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이중적인 신앙을 가지고 교회를 다닌 것입니다.
민수기 22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승리를 보면서 모압의 왕 발락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불의의 삯을 좋아하는 발람에게 큰 재물을 주면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발람은 재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서 제단 앞에 섰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발람은 발락 왕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끝없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기도만 계속하게 된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었고 천사가 앞에서 막고 있다는 나귀의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욕심에 눈이 가렸기 때문에 그는 발락 왕의 청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 하나님께서 발람의 저주를 막으셨으므로 발람은 한 번도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했습니다.
민수기를 읽어보면, 발람의 모든 기도는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발람이 이스라엘을 돕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발람을 보면, 지금 입으로만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척하는 발람의 축복기도는 신앙도 믿음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고, 전하라고 하신 말씀은 죽는다고 해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발람은 발락 왕이 주는 재물에 욕심이 생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고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변질된 니골라 집사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교회마다 침투했고 진리의 말씀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런 자들을 분별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이들과 너무 논쟁만 하느라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지만, 지금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에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을 갖고 교회에서 세상의 문제만을 간구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발람과 같은 거짓 성도입니다. 많은 역경을 겪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승리를 거듭하게 되자 감사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발람이 유혹하는 대로 이방인들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행음하며 타락한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이런 사상을 분별도 하지도 않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리를 올바로 알고 있어야만 거짓된 비 진리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알아야만 논쟁을 통해 이단을 교회에서 쫓아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성도들은 갈팡질팡하며 헤매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갖지 않으면 비 진리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영을 분별해야 하며 말씀으로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6절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니골라 당의 교훈에 빠져 있는 성도들에게 만약 회개하지 않으면 직접 역사하시겠다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모르면 둘째 사망으로 이끄는 사탄의 정체를 분별할 수 없어서 영원한 불못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믿음의 형제가 죽임을 당했는데도 우상을 숭배하고 제물을 먹고 행음하며 쾌락을 즐기는 것을 보면 그들은 신앙을 회복하기 힘들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경고하신 대로 경각심을 가지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헛된 세상을 쫓으며 얻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안디바의 순교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버가모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겠다는 말씀은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탄의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길 수 없으므로 언제든지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탄을 심판하시고 나서 그 진노는 순종하지 않은 사람에게 향할 것이기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안디바의 충성으로 교회가 기회를 얻었습니다. 성도들은 안디바 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믿음으로 회개하고 신앙을 지켜내야 합니다. 안디바는 순교할 때 분명 버가모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며 성도들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간청했을 것입니다. 안디바의 기도가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그들과 싸워 교회를 바로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누군가의 중보 기도가 이렇게 귀한 것이며, 그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까지 듣고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정말 자신은 하늘에만 소망을 두고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말씀은 배워서 알고 있는데 마음과 행동은 말씀과 상관없이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이 아니라 십자가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성도들도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혼 구원과 하늘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직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성도들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은, 진리대로 행하는 교회와 성도 그리고 진리를 전하지 않는 교회와 성도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알곡과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쭉정이가 있지만, 세상은 모두 교회와 성도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분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믿음의 본을 보이지 못하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하며 구원밖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성도들이 자신을 쳐서 복종하며 경건하고 정직하게 살아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발람의 교훈을 따른다면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늘 두려운 마음으로 신앙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이기는 자들에게는 흰 돌과 감추었던 만나를 주실 것인데, 흰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은 받는 자밖에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흰 돌 위에 기록 된 이름’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지만,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일 것입니다. 성도가 구원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에 이른 것이기 때문에 흰 돌 위에 기록된 새 이름을 보았을 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어도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을 먹는 자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산돌, 머릿돌, 흰 돌은 죄를 대속해 주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성령과 믿음을 통해서 아는 자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이런 축복을 지금 여러분이 받고 있는 것입니다.
버가모가 우상숭배로 가득한 것처럼 지금 세상도 버가모 못지않게 우상숭배로 가득하며 점점 타락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도로 살기 바랍니다. 죄악 된 세상과 지식과 문화와 고치기 힘든 습관과 싸우고 있는 여러분이 늘 승리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 험한 세상 가운데 말씀의 검으로 사탄을 대적하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크신 능력과 충만함으로 보호하고 계십니다.
언제나 험한 세상에서 진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