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걸어가는 길 — 요한계시록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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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사데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6절

1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어머니는 외출을 하면서 두 아들에게 집안을 어지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습니다. 특히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다칠 수 있으니까 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들들은 슈퍼맨 흉내 내는 것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부탁을 받았지만 참지 못하고 보자기를 목에 둘렀습니다. 아이들은 번갈아 가며 화장대로 올라갔고 소리를 지르고 뛰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머니께서 정리해 놓은 화장품은 모두 방바닥에 뒹굴었고 쓰레기통은 발에 채여서 온 집안은 지저분해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깨끗하게 치워 놓으면 어머니가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은 서둘러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오자 아이들은 말씀을 잘 듣고 있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보이는 집안을 둘러보면서 이만하면 속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들이 높은 곳에 올라갔다는 것과 화장대를 다시 정리했다는 것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과 뛰다가 멍든 무릎과 제 자리를 찾지 못한 화장품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집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얼마나 어머니의 말씀을 존중하는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머니를 속이고 싶어도 아이들은 어머니를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속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솔직하게 말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성도들 역시 이 아이들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전혀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과 늘 동행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성도들은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경책에 갇혀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다가도 교회에 오면 거룩한 척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늘 성도들과 동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능하심을 믿는 성도라면 항상 언행을 조심해야 하며,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주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말씀대로 정직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인데 우리는 그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작은 것에 행복해 하는 것도 모두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노력하는 것도, 최선을 다하고도 더 잘하지 못해서 죄송스러워 하는 것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한 것보다 더 큰 복을 받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어떤 큰 결과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은 헌신을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성도들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깨달아야 하며,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노력으로 믿음을 보여드려야 할 것입니다.

사데는 소아시아의 서부 루디아 왕국의 수도이며 상업과 군사도시로서 서머나 동쪽 85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특히 사데를 수비하는 성곽은 바사의 고레스와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3세 때를 제외하고는 역사상 한 번도 정복되지 않을 정도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활은 안정적이었으며, 염색과 보석 공예가 유명했고, 최초로 금과 은으로 주화를 주조하여 사용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사데는 키벨레 여신을 섬기는 종교가 성행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우상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가 살았으나 죽은 교회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키벨레 여신은 산신들의 어머니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여신은 소아시아 전역에서 숭배했으며, 로마의 황제들은 키벨레를 풍요의 신으로 숭배하였습니다. 훗날 기독교가 세력을 확장했을 때 그녀의 신전은 파괴되어 그 자리에 베드로 성당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키벨레에 대한 비판이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였던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여신을 숭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키벨레를 숭배하고 또 황제를 숭배하는 것을 보면 놀랍기만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키벨레 여신에게 제사도 지내는 것을 보면 이들의 신앙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을 알고 사데 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한다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데 교회에게 자신을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라고 하셨습니다. ‘일곱 영’은 ‘성령’, ‘일곱 별’, 즉 일곱 교회를 돕고 있는 천사들과 함께 역사하신다는 상징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보좌에 앉으셨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도록 일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사데 교회에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결국 사데 교회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며 예수님을 의지하고 회개해야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들이 살 수 있다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사데 교회는 지금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성령께 온전히 의지하기만 한다면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 교회 하나를 세운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사데 교회를 세운 성도들의 헌신이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데 교회를 쉽게 포기할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사데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들고 회개한다면, 그들을 굳건히 세워주고 싶으셨기 때문에 너는 일깨워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처음 그들이 가졌던 기쁨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감사하던 믿음을 회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분별력이 없었던 사데 교회는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을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작은 불씨처럼 남은 것이 있기에 내가 도적같이 이르기 전에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잠언 8장 22~32절

22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32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읽으면서 멋지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알려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던 예수님께서 지금 피조물인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이런 전능자보다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우리들을 용서하시며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자세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분이 우리의 곁에 계신다는 것이 믿어집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역사를 하나씩 말씀하시며 사람들이 이 사실들을 믿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잠언 8장 30절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잠언 8장 30절에, 내가 창조자가 되어 함께 천지와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놀라운 축복이며 기적입니다. 그러시면서 내 도를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만 한다면 구원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면 인생을 통해 많은 기적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경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세 전부터 계셔서 하늘을 지으시고 땅의 기초를 정하시며 온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사망에 빠진 죄인들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주셨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감당하지 못할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이 믿어진다면 의심하거나 불평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먼지만도 못한 인생을 위해서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데 교회를 향해 두려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살아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너는 믿음이 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때는 그것은 믿음이 아니며, 온전한 말씀을 가진 교회가 아니라는 책망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데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구원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지만,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을 가져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실컷 놀고 나서 집안만 치우면 어머니가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어떻게 놀았든 집안이 깨끗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왜 말을 듣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시자, 집안이 깨끗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대답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가진 생각이기도 합니다. 평상시 어떤 삶을 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모르실 것이고, 만약 아신다고 해도 교회만 다니면 된다는 생각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평상시 어머니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뛰어내리다가 다칠 것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을 안 듣는다고 책망하시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집안은 치우면 되지만, 어머니의 말씀을 근본적으로 듣지 않은 자녀들의 행동과 끝까지 잘못을 시인하지 않은 자녀의 태도는 어머니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감히 내가 회개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었고, 헌신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사데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인간의 의가 강한지 알 수 있으며,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은 말씀도 알고 교회도 부흥시켰고 구제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평상시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두 알고 계시기 때문에 신앙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위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한 행동인지 아니면 자신의 의를 자랑하기 위해서 한 행동인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의 행위가 만족스러울 때 그것이 믿음이라는 착각을 합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께서도 내 신앙을 분명히 인정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드린 헌금과 헌신이 곧 충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복을 주실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사람의 생각이고 자기만족이며 기복신앙에서 나온 것이므로 진리가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해서 드리는 믿음은 죽도록 충성하고도 충성했다는 것을 모르며, 다 드리고도 드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혹 나가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벌을 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을 갖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신앙은 전적인 믿음보다는 세상의 복과 연결된 신앙이기 때문에 헛된 것입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예배의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고, 전능하신 분께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성도라는 이름이 창조주께 찬송을 올려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자리라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소중하게 여길 것이며 언행을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재산을 빼앗을까 봐 두려워서 드리는 헌금은 헛되게 버리는 물질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없으신 분입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라는 청지기의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구별해 드리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며 정직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저희 교회 건물이 작고 성도의 수가 적다는 이유로 돈이 없을 텐데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는 성도의 수가 수천 명이고, 건물은 길을 잃을 정도로 크다는 자랑도 들었습니다. 지금 성도들은 건물이 커야만 교회답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형교회로 몰리며 자신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성도의 수를 자신의 믿음으로 착각하고, 거대한 건물을 자신의 헌신의 결과물로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성도들이 많이 모인다면 더 큰 건물이 필요할 수도 있고, 교회 일을 하기 위해서 헌금과 봉사를 힘에 지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건물과 성도의 수가 자신의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 교회라고 하셨고,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외형적인 성장도 필요하지만,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바로 서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사탄이 세게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주님의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대형교회들이 수많은 성도들을 향해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서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한국 교회는 든든히 서 갈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시작할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삼 년 동안 데리고 다니신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삼 년 동안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는 것과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야 한다는 것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니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르치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3년 동안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치셨지만, 결국 그들 모두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본성을 버리고 말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3년도 짧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도들은 구원을 받아야 하므로 말씀을 올바로 깨달아야 하고, 전도를 위해서 말씀을 반복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매번 똑같은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 같지만 말씀이 마음 판에 완전히 새겨질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장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교회들은 부흥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말씀보다는 행위를 먼저 가르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가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전하는 자는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듣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영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가 자신들의 믿음을 자랑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우리 교회 역시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해 죽었다고 하신 것은 그들의 육신이 죽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의 이익에 절대가치를 두고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데 교회는 사람들이 인정할 만큼 부흥한 교회였습니다. 활동도 많이 했기 때문에 사데 교회가 활발하게 일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그들의 죄를 올바로 판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절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남은 것을 굳건히 하라는 말씀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력하고 형식적인 신앙을 버리고, 처음 받은 진리의 말씀, 즉 사데 교회를 세웠을 때 충만했던 신앙을 되찾으라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를 설립했을 때 그들은 상급과 세상의 복에 치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진리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삶이 풍요로워지자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희석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인간의 의와 풍요로운 삶을 통해 무너져가는 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날마다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물이 늘어날수록 간절함이 사라지는 것은 하늘에 소망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세상에 마음을 두기보다는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면 세상의 소유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4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어두워져 가는 사데 교회에 영적으로 충만한 믿음의 성도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 성도들은 썩어져 가는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안타까워하며 진리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자신을 높이며 교만해져 가고 있을 때, 이들은 믿음의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더욱 겸손한 믿음으로 무장하였고 하나님만 섬기고 경배하였습니다.

충만한 믿음으로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함께 신앙을 지키자고 권면했을 것입니다. 간곡하게 말씀을 전했지만 그들은 이미 우상에 마음을 빼앗겨 마음과 귀를 닫았으므로,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뿐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육의 어려움은 물질로 도울 수 있지만, 영적인 타락은 사탄의 권세가 누르고 있기 때문에 힘껏 도와도 한 번 악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쉽게 돌아서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언제나 영적으로 가인 쪽에 서 있는 사람들과 영적으로 셋 쪽에 서 있는 사람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두 흐름은 한 번도 섞인 적이 없지만, 끊긴 적도 없습니다. 가인의 자손들은 죄를 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을 다스리는 강한 힘과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셋의 자손들을 공격하며 괴롭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담의 7대손인 라멕과 그의 자녀들 역시 세상에서 뛰어난 재능과 많은 재물을 가진 자들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지금, 사데 교회 역시 세상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더 큰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믿음을 지키고 섬기는 영적인 자녀들을 보호하셨고 그들의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사데 교회에 단 몇 명만이 흰 옷을 입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그들은 외로웠을 것입니다. 교회가 변질되지 않도록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의 힘을 가진 사람들의 방해로 힘이 없는 그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이 없기에 한없이 초라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합당한 믿음을 가진 성도라고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믿음은 이렇게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믿음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을 사데 교회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일부러 가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맡기셨다면 그것이 물질이든 지식이든 권력이든 믿음의 도구로 사용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핍박을 당하면서도 흰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성도들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이며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믿음을 지킨 성도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만 바라본다면 어떤 고난과 핍박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예수님께 인생을 맡기고 믿음을 지킨다면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믿음을 인정받은 성도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될 것이며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믿으시고 지금 신실한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그 믿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천군천사를 보내어 지켜주실 것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기 위해서는 지금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생명책에 기록된 여러분의 이름이 더욱 빛날 것입니다. 세상에서 빨리 가려고 욕심 부리지 말고,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흰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믿음으로 충성한다면 하나님께서 빼앗기지 않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경배하므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축복을 받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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