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교회
14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부자의 집 앞에서 거지 나사로가 양식을 구하며 굶어 죽어갈 때 부자는 왕들이 입는 자색 옷을 입고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척하면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지만 자기만을 위한 인생을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았지만 은혜에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처럼 호사를 누렸습니다. 부자는 베풀고 나누는데 아주 인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거지 나사로가 먹을 것을 구걸하고 있을 때에도 먹고 마시는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으려고 했지만, 부자가 키우는 개들이 방해했기 때문에 나사로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강퍅하면 상에서 떨어지는 작은 부스러기조차 나누지 않는 것처럼 영적으로 먼저 된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면 강퍅해지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말씀이나 세상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것인데도 인색한 마음을 보인다면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사로는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색했던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육신을 벗는 순간, 영원히 살아갈 사후 세계가 결정되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믿음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사는 동안에는 빈부의 격차가 있을 수도 있지만, 구원은 소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천국에 소망을 둔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를 보자 어쩌면 억울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많은 재물을 주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신을 벗고 보니 자기는 음부에 떨어져 있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 있는 것이었습니다. 심한 갈증을 느낀 부자는 자기가 그토록 무시했던 나사로에게 물 한 방울만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비참한 자리로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자가 지금 아브라함을 알아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증거일 것입니다. 간절히 물 한 방울을 원하는 부자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부유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베풀 수 있는 자리에 있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처지가 뒤바뀐 것입니다.
목이 마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살았을 때 한 번도 당해보지 못한 고통이었습니다. 부자는 나사로에게 물 한 방울만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말하길, 부자야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많이 받아서 누렸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너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아 누렸지만 가난한 형제들에게 나누지 않은 강퍅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가난한 삶으로 고난을 당했지만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부자가 음식을 나누어주지 않았을 때도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졌으므로 나사로가 너에게 물을 주고 싶어도 갈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육을 벗고 영원한 세계에 들어간 후에는 서로 왕래할 수 없으며 아브라함이 있는 빛의 세계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기회조차 없습니다.
세상에서 호사를 누릴 때 자기가 음부에서 한 방울의 물을 간절히 원하게 될 줄 몰랐을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거지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구원받을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사로는 구걸을 할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그는 믿음을 놓지 않았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풍족하게 주신 것은 받은 은혜를 연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그들을 구원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성도에게는 사명입니다. 하지만 부자는 자신만 위해서 살았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비웃었기 때문에 자신이 기르는 개에게 고통을 당하는데도 도와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부자가 나사로에게 했던 악한 행동이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들이 많이 다녔으므로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구원을 위한 사역보다는 교회 건물을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치장하고는 그것을 자신들의 믿음과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교만과 사치로 치장했고, 가난한 성도들에게 대접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재물로 하나님의 이름보다 자신의 이름을 높였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신앙이 뜨거워야 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라면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뜨겁고 충만한 신앙으로 충성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신앙이 차가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 세상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므로 욕심과 정욕 그리고 유혹을 만났을 때 차갑고 냉정하게 자르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충만한 믿음으로 자신의 의와 욕심을 차갑고 냉정하게 자르지 않고는 절대로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을 가지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하지만, 세상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세상 중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심령은 믿음의 결단이 쉽게 흔들리며 늘 후회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천국에도 가고 싶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에게 중간은 없습니다. 세상을 좋아하는 검은색이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흰색이든지 두 가지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회색을 가지고서는, 나는 검기도 하고 희기도 하기 때문에 어디든 어울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중간에 서서 나는 하나님도 세상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역겨워서 토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뜨겁고 차가운 쪽입니까? 아니면 미지근한 쪽입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믿음으로 세상과 천국 사이에서 주춤한다면 하나님께 크게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중간에 서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세상에서도 성공했고 하나님께도 헌신했으므로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라며 스스로 만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절대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듭나고 충만한 성도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미지근한 사람들이 회색 옷을 입고 흰 옷을 입은 성도들 사이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가라지를 골라내듯 골라내실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살려고 노력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성도로서 살 수 있습니다.
단단한 쇠는 한 번에 부러지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을 향한 욕심을 단번에 부러뜨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단단한 쇠와 같은 심령을 용광로에 녹여서라도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성숙한 믿음으로 은혜를 나누고 말씀을 나누는 귀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음부에 떨어진 부자처럼 자기들은 세상에서 부족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축복은 자기가 사는 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드린 헌금으로 거대한 성전 건물을 지었고, 재물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으므로 자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왜 교회를 다니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많은 재물을 맡겨 주셨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세상의 복을 많이 받은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것이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재물이 많고 적음은 믿음과 상관없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축복을 보시는 관점이 사람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보이는 것에만 만족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대속하심을 잊었기 때문에 세상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면 더 많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세상의 재물과 능력을 주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충만함보다 육적인 자랑을 믿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리를 떠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처럼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죄이고,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자신들의 심령, 즉 성전을 더럽힌 것이 죄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까지 죄인들은 암흑에 갇혀 있었습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인간들에게 빛을 주시며 그들의 영의 눈을 뜨게 하셨지만, 사람들은 세상 정욕을 버릴 수 없어서 다시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부자는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생명수이신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으므로 물이 한 방울도 없는 음부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처럼 라오디게아 교회 역시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인간의 만족만 추구했기 때문에 부자가 했던 악행과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지금 현대교회도 이런 현상이 있는데 소유가 많을수록 자신들이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외지에 가서 선교하다가 순교하는 성도들은 복을 받지 못한 것입니까?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인내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까? 개척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성도들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
저는 이런 현상은, 부자가 잘못된 신앙을 가졌던 것처럼 타락한 목회자들이 그동안 성도들에게 기복신앙을 열심히 세뇌시켰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기복신앙을 갖게 되자 자기의 소유로 헌신하는 충성심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말씀을 가르치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교회건물을 건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단 한 사람을 구원하더라도 말씀을 전한다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이 팽배하자 가장 귀한 성도들이 실족하고 있음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건물을 세우는 것이 믿음인 것처럼 포장하면, 성도들은 또 죽도록 헌금하면서 충성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외적인 부분이 전도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전도도 해야 하고, 성도들이 많이 모이면 예배당을 짓기도 해야 합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 그 뜻대로 행하면서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신 것은 창조하신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끝까지 일하시는 주님처럼 변함없는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교회가 알아야만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에바브라가 설립하였고, 골로새 교회와 함께 바울이 지도한 교회였습니다. 이런 교회가 미지근한 신앙을 가졌다고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뛰어난 가문과 학벌과 지식과 재산을 배설물처럼 다 버리고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 사도 바울이 말씀을 가르쳤는데도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의 생각과 지식과 자신의 의를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가르친다고 해도 본인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변하지 않으면, 그 말씀조차 버려진다는 것을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죽도록 충성한 사도 바울이 말씀을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적인 충만보다 세상의 부유함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결국 성도로서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부자처럼 많이 받고 누린 라오디게아 교회가 진리를 깨닫고 헌신하면서 형제들을 돌보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 많은 은혜를 주셨을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세움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받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만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충성하지 못했고, 하나님 사역에 동참하지 않았으므로 성도로 살지 못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께서 부자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받으신 열매는 영적으로 가난하고, 부족하고,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썩은 열매뿐이었습니다. 썩은 열매는 심어도 싹을 틔우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없으므로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개의 열매도 받으실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성도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말씀에 죽도록 순종하며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잘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복을 받아야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으며, 벗은 수치가 가려지고, 영적으로 부요한 자리로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복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잘살기 위해서 세상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여 드리기 위해서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여러분을 높여 주시고 영화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주셨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고 자신을 보호해주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비어있는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이름 모를 우상을 숭배하며,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채워지기를 갈망하지만, 이미 화인 맞은 심령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며, 마음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문을 두드리며 열어 달라고 하셔도 욕심과 의로 가득 차있으면, 모셔 들일 곳이 없기 때문에 영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 놓은 자신의 의와 공로가 무너질까 봐 열지 못하는 것이며, 귀를 막고 듣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가장 귀한 자리에 그리스도께서 계셔야만 사탄이 공격할 수 없으며,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만 구원하시고 부자는 모두 버리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물이 많고 적음에 전혀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판단하시는 기준은 누가 하나님께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역시 처음부터 강퍅한 교회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재산이 많아지고 교회가 커지자 사람들에게 대접받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 자신을 더 높이기 위해서 예수님보다는 세상의 권세를 탐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직분을 받은 성도들은 늘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순수하게 드렸던 믿음도, 감사로 드렸던 기도도, 모두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하게 되자 뜨거웠던 신앙이 식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주님께 책망을 받은 것을 보면서 우리 교회도 잘못 가고 있는지 살펴보고, 잘못 가고 있다면 가던 길을 돌이켜야 합니다. 네가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너와 더불어 먹겠다는 말씀은 성도가 지금 처한 환경이 어떻든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연 성도들은 영적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세상의 고난이 결코 부끄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일곱 교회를 살펴보았습니다. 고난을 당하면서도 사탄의 계략과 맞서 싸우는 성도들이 있었고, 헌신하라고 많은 소유를 맡겨주셨지만 하나님을 배신한 교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동에 따라 칭찬과 책망을 하셨습니다.
거룩한 성도들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믿음으로 충만하였고, 사탄에게 승리하여 흰 옷을 입었으며, 사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밝은 영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믿음이 성장한 것이며, 믿음의 성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칭찬과 넘치는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선택을 하는 성도들의 마지막 축복은 구원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징계는 단순히 벌을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훈련 혹은 연단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라오디게아 교회가 회개하고 충성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을 하는데 그냥 두고 보는 부모가 없는 것처럼 사탄이 지옥으로 이끄는 대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인생의 채찍과 사람의 막대기로 강권적으로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신 것입니다. 연단과 징계를 기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하시기 때문에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훈련하시는 연단은 의롭고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하므로 유익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만드신 길을 믿고 간다면 성도들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물리치고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이기는 성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하늘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고 세상으로 도망간다면, 아마도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람이 사탄의 종이 되는 것을 막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심령이 얼마나 교만한지 그런 심령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책망하시는지 아셨을 것입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모두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므로, 교만한 심령을 갖게 되면 결국 모든 소유와 생명까지도 잃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먼지보다 못한 재물과 권세를 맡겨주신 것인데 그것을 감사하지 않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세상의 재물과 권세는 물론 영혼까지 암흑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헛되고 헛된 이 세상을 붙드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생 중에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해야 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를 향해 주신 책망과 권면을 통해 그것이 지금 우리들에게 주시는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곱 교회를 향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에게 어떤 믿음을 가져야 천국에 올 수 있는지 자세하게 가르쳐주신 사랑이 가득 담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만일 일곱 교회의 악함을 지적하시며 버릴 생각이셨다면 그들의 죄도 드러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기를 원하셨고,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되찾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기만 하면 많은 은혜를 주시겠다고 교회마다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그 약속을 받았으므로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충만한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 큰 은혜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감사할 줄 알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성도로 살아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