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걸어가는 길 — 요한계시록 · 조춘숙
나가기
4장

두아디라 교회

요한계시록 2장 18~29절

18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예수님께서는 각 교회마다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각 교회에게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아마도 교회들이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시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예수님 자신을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신다고 하셨고, 서머나 교회에는 처음과 나중이고 죽었다가 살아나셨다고 하셨습니다. 버가모 교회에게는 날선 검을 가진 이라고 하셨고, 사데 교회에게는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졌다고 하셨으며,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고 하셨고, 책망을 많이 받은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창조의 근본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예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자신의 눈은 불꽃같고 발은 빛난 주석과 같다고 하셨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눈이 불꽃같고 발은 빛난 주석과 같다고 하신 것은 성도들을 철저하게 보호하시고, 대적하는 자들은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경고를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굳이 소개하신 것을 보면, 두아디라 교회가 사탄의 공격을 얼마나 심하게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좌를 유보하시고 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셨으므로, 너희들도 죄의 굴레를 담대하게 벗어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또한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성도를 괴롭히는 사탄을 상대로 싸우시겠다는 의지를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절대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며, 보좌를 버리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각 교회마다 환경과 상황에 맞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내가 도울 수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지켜내라고 말씀하시는 그 사랑은 천지를 덮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덮고 있으므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사탄이 간교한 계략을 꾸미지 못하도록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고 계시며, 성도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강한 주석과 같은 발로 지켜주고 계시므로 성도들은 염려할 것 없습니다. 사탄이 어찌 불꽃같은 사랑을 막을 수 있으며,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아내기만 한다면, 사탄은 절대로 하나님의 보호의 울타리를 넘지 못할 것입니다.

두아디라는 버가모와 서머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금속 세공술과 양모 방직과 피혁 가공, 염색 산업이 발달했습니다. 공업이 발달하자 각종 산업 발전으로 교통의 요지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부요함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부유한 두아디라는 로마 황제를 숭배했고, 태양신 아폴로와 미의 여신 아데미를 위한 온갖 신전들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신전이 많다는 것은 곧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뜻이고 복음을 전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지금 세상을 보면 한번 사는 인생 즐기며 살자는 듯이 무분별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고 취미생활과 여행,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유로운 삶은 필요하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으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 더욱 힘든 때입니다. 더구나 이단 사상이 팽배하고 있으므로 마지막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며,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더 영접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9~20절

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서 행하는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모두 알고 계시며, 처음 시작할 때보다 나중에 더 많은 행위의 열매를 남겼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했고, 그가 성도들을 꾀어 행음하는 것을 그대로 두었으며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는 말씀을 보면 앞서 칭찬하신 말씀은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고 하셨고, 처음 헌신보다 나중에 드린 열심과 헌신이 더 컸다고 칭찬을 받은 두아디라 교회가 어떻게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에는 분명히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말씀을 중심에 두고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헌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선한 목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의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을 해야 하며, 반드시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으로 교회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은 교회들이 형식적이고 보편적으로 하고 있는 일들을 했으며,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생각대로 일을 진행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서 한 열심이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한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열심을 내었지만, 구원이 목적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모든 교회들이 보편적으로 행하는 일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위해 성도들을 부르셨는지 깨달아야만 선한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적응해 있기 때문에 다른 교회들이 하는 행사를 똑같이 하지 않으면 교회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믿음생활을 올바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적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를 하더라도 진심을 다해 하나님 뜻대로 정직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아디라 교회가 베푼 사랑을 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베푼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이세벨을 용납한 그들의 신앙을 바탕으로, 이 ‘베푼 사랑’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교회는 어떤 사람이든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 진리를 전하는 사람과 죄를 짓는 사람들도 책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믿음을 가진 사람을 구원하시는지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굳이 싫은 말을 해서 관계를 헤치는 것보다는 친절을 베풀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교회에 남게 하는 것이 부흥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간적인 사랑은 불신앙을 용납하고 비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을 묵인하는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싸고 베푸는 곳이 맞지만, 인간적인 사랑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곳입니다. 비 진리로 교회를 어지럽히고 흔드는 것은 반드시 치리해야 하며, 다른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단호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해야만 올바른 사랑을 베풀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이 두려워서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고, 좋은 말을 듣기 위해서 잘못된 신앙을 용납한다면 교회는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결국 사탄의 계략을 분별하지 못해서 선한 싸움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올바른 믿음을 갖지 못하자, 자칭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이세벨이 성도에게 우상을 숭배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실 정도로 그녀의 가르침은 심각했지만, 두아디라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진리와 상관없이 인간적으로 더 착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으므로, 자신들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이해와 상식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인 것은 신앙이 아니며 착한 행동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사랑을 베풀며 열심히 일하자, 처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며 마음을 살펴주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조차도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사람이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말씀은 모두 이세벨이 가르쳐준 교훈뿐이므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현대 교회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세상과 행음하고, 세상이 주는 욕심과 쾌락을 탐하고 있는데도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과 교회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교회가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많은 교회들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죄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목회자들이 비 진리를 전하고 있는데도 용납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말씀을 듣고 있는 성도들조차 비 진리가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잘못된 신앙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교회에 헌신한 세월과 드린 헌금을 자신의 공로로 생각하기 때문에 진리를 전하는 교회로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기 때문이며 말씀을 듣는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신앙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곧 구원인데, 교회가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썩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가족에게 먹으라고 합니까? 지금은 썩었지만 처음에는 싱싱했기 때문에 괜찮고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아까워서 요리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상한 음식을 모두 버리면서 왜 영적인 양식은 썩은 것을 주는데도 괜찮다고 합니까? 시장에서는 싱싱한 채소를 사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면서 왜 구원을 위해서는 성경이 있는데도 읽지 않습니까? 좋은 음식과 좋지 않은 음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몸에서 드러나며 건강 상태가 달라집니다. 그것처럼 진리와 비 진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혜와 어리석음으로 드러날 것이며,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형식적인 신앙이라 해도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버리시겠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6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았던 노아 시대에 단 여덟 명만 구원하셨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다 버릴 수도 있는 분이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진리는 영원한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몸을 위해서 먹는 세상의 양식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최선을 다해 헌신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들의 행위는 내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은 물론, 그를 따르는 너희들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질 것이고, 그들의 자녀들을 죽일 것이며, 그들이 행한 대로 갚아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부모가 잘못했다고 해서 자녀들을 죽이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전해준 부모를 공경하면 자녀들이 복을 받는 것처럼 타락한 부모의 신앙을 자녀들이 그대로 보고 따라 하기 때문에 부모와 동일한 죄를 지을 것이고 자녀들은 자기의 죄로 죽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이 바로 자녀의 신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말씀을 바르게 전해줘야 합니다. 말씀을 대충 알고서 자녀들에게 전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열심히 헌신하고도 칭찬을 받지 못하는 두아디라 교회를 보면서, 우리는 진리를 확실하게 알고 전해야 하며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을 숭배하도록 하였고,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타락시킨 아주 악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사상이 지금 두아디라 교회에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한 사상이 자신들을 타락시키고 있는데도 그들은 영적으로 어둡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그 여인을 막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에게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셨는데도,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를 보시면서 나를 팔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라고 말씀하셔도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같이 영적으로 어두우면 우리들도 분별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교회를 위해서 말씀을 벗어난 행위를 하는 자를 단호하게 막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 한 사람의 문제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막는 아주 위험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성도들은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인내해야만 올바른 교회가 되는 것이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믿음으로 결단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면 거짓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비 진리를 행할 수 없지만, 악함을 책망하지도 분별하지도 못한다면 결국 교회는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사과가 나무에 달려 있다고 썩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새가 와서 조금만 쪼아도 그 사과는 바로 썩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는 성도를 굳이 떼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상처를 내서 그 곳부터 썩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과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나무에서 썩어간다면 나무도 볼품이 없어지고 열매는 상품의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썩으면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비웃음을 당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이 바로 서 있다고 자신하지 않기 바랍니다. 잠깐의 방심으로 사탄이 여러분의 신앙에 살짝 흠집을 내면, 그곳부터 썩기 시작해서 돌이키기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자기 믿음을 돌아보고 영적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바른 진리를 전하고 있는지 또 자신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1절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그리스도께서는 두아디라 교회가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세벨이 전하는 유혹에 빠지자,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비 진리는 별미와 같이 깊은 곳에 자리를 잡기 때문에 이렇게 영원한 생명까지도 잃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많은 기회를 주셨을 것입니다. 진리를 듣게 하시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보여드릴 수 있는 삶을 주셨는데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기회를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세벨과 동일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함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이 어떤 핑계를 댄다고 해도 회개의 기회를 놓친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목회자가 바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교회를 가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둘째 사망에 떨어지는 모든 책임은 바로 본인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핑계를 남에게 돌리면서 죄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베데스다 못에 있던 병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모두에게 주셨고 바른 진리를 선포하는 종들을 보내셨기 때문에 절대로 핑계 댈 수 없습니다. 나는 다른 신을 섬기기 때문에 성경을 믿지 않았고, 나는 세상일이 바빠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고 해도 마지막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의 법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성경을 주셨는데도 읽지 않으며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영적으로 어두운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탐심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향해 귀를 닫아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세상의 말로 성도들을 유혹한 거짓목회자들의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지만, 또 그들과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영적으로 간음한 교인들 역시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다른 종교를 믿고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만 우상숭배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알곡과 가라지가 갈라진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말씀과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알곡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사고와 행위와 습관대로 행동한다면 두아디라 교회처럼 크게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 사탄과 함께 이세벨이 낳은 모든 악의 열매들을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것은 더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변명처럼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돌이킬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심과 의를 붙든다면 마지막 기회조차 놓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신실한 성도로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잘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어처구니없게도 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죄를 경험해 봐야 한다는 사상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해진다는 이세벨의 가르침에 따라 이들은 우상숭배나 음행에 참가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더 어리석은 것은 이런 제사에 참여한다고 해도 자기들은 믿음이 있으므로 절대로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사탄이 얼마나 간교하고 지혜로운지 몰라서 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마치 술을 마셔도 자기는 절대로 취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둥도 세우지 않고 무거운 지붕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시간을 정해서 오락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나중에는 밤을 새우는 습관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락이 악한 죄라기보다는 습관에 붙들려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시간을 허비하는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말씀을 상고하고 묵상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늘 복잡하고 들떠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면 자신을 돌아볼 시간과 여유도 없고 반성하고 계획을 세우고 기도할 시간도 없습니다. 성도들에게 이런 삶은 죄를 짓기 쉬운 아주 위험한 환경입니다.

사람은 습관을 고친다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조용히 대화할 시간을 갖지 않는 사람은 늘 산만하고, 깊이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진심을 전하고 받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면 교만해도 깨닫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충고와 권면을 들을 때 혈기가 나기 때문에 죄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와 권면은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고,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곳을 들여다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지금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경고하시는 말씀을 이들이 듣지 않는다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처럼 믿음의 형제들의 권면은 바로 자신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만이 권면을 받아들이며 기회를 기회로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5~28절

25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굳게 잡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힘과 권세와 물질과 쾌락을 붙들고 있다면 그것을 배설물처럼 버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내가 올 때까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굳게 붙들고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참 된 진리와 천국에 대한 소망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을 알고 있는 그 믿음을 굳게 붙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구원의 상급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과 사탄의 핍박을 끝까지 이겨내고 성도가 복음을 전한다면 큰 상급으로 주실 것입니다.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성도들에게는 상급과 구원을 주시고 성도들을 핍박한 사탄은 영원한 불못에 던지는 심판을 하시겠다고 하시며 성도들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기는 성도에게 새벽 별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죄인들을 사망에서 건져주신 것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인데,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주시겠다는 은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절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성도들의 믿음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 것은 성령께서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로 구원이며, 사람들이 성령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축복이기에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알려주시며 진리로 인도하실 때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이 감히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탕감받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지금 우리 교회와 여러분을 향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어떤 명령을 내리셨는지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신앙을 지키다 보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가 될 것이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정직한 교회라고 칭찬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울지라도 말씀의 기준이 없다면 진리의 길을 올바로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라고 말씀하시며, 말씀대로 살아내야만 생명의 주인을 만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신앙을 지켜낸다면, 새벽 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성도들에게 희망이며 축복입니다. 일곱 교회가 받는 책망을 들으면서 우리는 회개할 기회를 얻었고, 그들이 받는 칭찬을 들으며 우리는 그들과 동일한 신앙을 갖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책망과 칭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달았고 끝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일곱 교회에게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온전한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기업을 세워나가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가 걸어가는 길 · 두아디라 교회
57% · 4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