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으로 가는 발걸음 — 룻기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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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약속의 땅을 떠난 엘리멜렉

룻기 1장 6~17절

6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기』를 기록한 저자는 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한 가족의 삶을 통해서 믿음에 따라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사사 시대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고,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과 결정에 따라서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 삶을 사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기』의 배경이 되던 때는 드보라와 바락의 활약에 힘입어 이스라엘이 누린 40년 간의 평화기가 끝나고, 미디안 족속의 압제를 받던 12세기 후반 경의 사사, 기드온의 시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대 추정은 B.C.1010년에 헤브론에서 통치를 시작한 다윗이 바로 룻의 증손이라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룻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베들레헴에 기거하던 한 가정이 기근을 이기지 못하고, 모압 땅으로 이주하여 살던 중 그곳에서 가장인 엘리멜렉과 큰 아들인 말론과 롯의 남편인 기룐이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가장들이 죽자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며느리 룻이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왔고, 룻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보아스와 결혼하여 다윗의 할머니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메시야의 족보에 올라와 있다는 것은 『룻기』가 역사적 사실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구속사적인 기록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룻의 행보를 따라가며 그 여인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자신을 희생하며 가정을 지켜낸 연약한 여인의 헌신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 성숙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룻기』를 한 가정의 가정사로만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면 성경이 하고자 하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목적이 영혼구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징검다리처럼 이어주며, 그 관계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룻기』를 통해서 만나고자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준비된 룻을 기근이라는 환경을 통해 나오미의 가정과 관계를 맺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시는 과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여러 번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에 사탄과 원수가 되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창세기 9장 8~9절

8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창세기』 3장에서 여자의 후손이 있다고 넌지시 말씀을 하시고, 9장에서는 이 약속으로 오시는 여자의 후손은 홍수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이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21장 12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리고 21장에서 다시금 말씀하시길, ‘약속의 씨’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씨라고 말씀하시며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사야 11장 10절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이사야』 11장 10절에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울 것이라고 하시며 이새의 뿌리인 다윗을 지목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에서 모든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로마서 1장 2~3절

2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그러니까 『룻기』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예언이 이루어지는 과정 중 하나인 것입니다. 룻의 인생을 통해 하나의 징검다리가 놓이는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 역시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룻기 4장 21~22절

21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여기에 등장하는 보아스의 아내가 바로 룻입니다. 그녀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를 낳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족보를 통해 초림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역사가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룻이 어려운 환경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결단했기 때문에 다윗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성도들이 순간순간 선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삶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룻이 살던 사사 시대는 부패하고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역사로 가나안에 입성했지만, 이방인들이 풍요롭게 사는 것을 보자 세상에서 잘 살겠다는 욕심으로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백성이 타락하자 하나님께서 직접 연단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난에 빠진 이스라엘이 부르짖으면 그들을 위해서 사사를 세워 구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서 구원의 빛을 비추는 거룩한 나라로 세우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으며 그들의 풍족한 삶을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타락한 그들은 믿음에 충실하지 못했고 점점 악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홍수 심판 전에 죄를 짓던 악한 자리로 다시 돌아가 버렸습니다.

『사사기』 마지막 장을 보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왕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이 믿음에서 멀어졌다는 뜻일 것입니다. 342년 동안 이스라엘이 타락할 때마다 사사를 세워주시며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셨지만, 인간은 세상을 동경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주셨던 그 사랑의 크기만큼 진노하셨고,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도록 징계하셨습니다.

책망을 받는다는 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끊어 버리신다면 사생자처럼 고난도 책망도 하시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갈 길을 잃은 사탄의 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조금의 어려움만 있어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탕자가 될 것입니다.

룻의 시아버지인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에 심하게 흉년이 들자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가나안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엘리멜렉도 고향을 떠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친구와 친지를 만나서 상의도 했을 것이고, 고민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이든 결단과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알고 늘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당하면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인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던 때이므로,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을 떠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고 가족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떠났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순종하면 풍성한 소출을 주셨고 타락하면 기근과 흉년을 주시며, 이스라엘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엘리멜렉이 이런 하나님을 진심으로 만났다면 기근이 들었을 때 베들레헴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가 5장 2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미가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구세주가 태어나실 베들레헴을 버리면 세상 어느 곳에도 성도들이 거할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중심에 서 있는 이스라엘이 타락하자, 그들조차도 살아갈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은 베들레헴처럼 하나님의 눈과 귀가 머물고 있는 곳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머물고 계신 성전을 죄로 황폐하게 만든다면, 성도들은 보호를 받을 수 없으므로 영육 간의 고난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나 환난과 기근을 만날 수 있지만, 지금 성도들은 모든 문제를 기도와 회개로 풀어나가려는 생각보다는 힘든 그 자리를 당장 떠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바로 서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을 만날 때마다 피하기보다는 병아리를 품어주는 암탉처럼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암탉이 병아리를 부르는 간절한 음성이 고난인 것입니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한다면, 보호의 울타리가 없는 병아리는 위험에 처하거나 곧 죽고 말 것입니다. 병아리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마음대로 행동한 엘리멜렉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모압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엘리멜렉의 이름은 ‘하나님은 왕’이라는 뜻이고, 나오미는 ‘은혜스러운 자, 사랑스러운 자’라는 뜻입니다. 아들인 말론은 ‘병약한 자’, 기룐은 ‘사모하는 자, 열망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의 이름만으로 본다면, 하나님을 왕이라고 찬양하던 엘리멜렉과 은혜를 받아 사랑스러웠던 나오미의 신앙이 타락하자, 그들의 아들인 말론과 기룐처럼 병약한 믿음의 열매를 맺었고, 세상의 편안함만을 사모하고 열망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고난을 인내로 이겨내어 영적인 성장을 이루겠다는 믿음을 버린 엘리멜렉의 잘못된 선택이 온 가족을 불행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성도들이 직면한 문제를 어떤 신앙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엘리멜렉처럼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기도 하고, 룻처럼 축복의 조상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은 유다 지파입니다. 이 가문은 이스라엘의 소망인 메시야, 즉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로 약속된 가문입니다. 구세주가 태어나기로 약속을 받은 유다 사람이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행동이며,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을 파기하는 위험한 행동입니다.

성도들도 충만할 때는 하나님을 왕이라고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충만한 성도는 나오미처럼 은혜스럽고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욕심을 믿음으로 넘지 못하면 병약한 신앙을 갖게 되고,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울타리를 벗어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고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주 안에서 고난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살 길을 찾아 세상으로 나가도 결국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더라도 자신과 가족들이 세상에서 편히 살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모압으로 떠났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모압은 사해 동쪽에 위치하여 롯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그모스를 숭배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살기에는 너무도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모압 족속은 소돔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할 때 구출된 롯과 그의 큰 딸 사이에서 태어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이스라엘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하셨던 민족입니다. 엘리멜렉은 먹고 살기 위해서 모압으로 갔지만, 우상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그들과 함께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은혜를 버리고 세상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서로 뜻이 맞지 않는 불협화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살려고 모압 땅으로 간 엘리멜렉과 두 아들은 영원히 죽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죽자 나오미는 모압 땅에 있을 이유가 더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여자는 남편이 있으면 남편의 결정을 따라야 하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편도 아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하자 이번에는 며느리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남편도 없는 젊은 여인들을 그것도 이방 여인들을 베들레헴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룻기 1장 12~13절

12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가령 남편을 만나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그 아이가 자라기를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겠느냐고 하면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큰 아들이 후사를 두지 못하고 죽으면 큰 며느리와 작은 아들이 결혼해서 대를 잇게 해 주는 수혼법이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있지만 남편이 없는 나오미가 아들을 낳아 줄 수 없기 때문에 며느리들에게 돌아가기를 권유한 것입니다. 두 며느리는 어떻게 보면 나오미에게는 세상의 열매입니다. 그녀들을 돌려보낸다는 것은 사랑했던 아들들이 비록 죽었지만, 영원히 버리는 것과 같은 아픔일 것입니다.

돌아가라는 시어머니의 말을 들은 큰며느리 오르바와 작은 며느리 룻은 시모를 붙잡고 통곡하였습니다. 비록 남편은 없지만 시어머니와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말에 많이 갈등했을 것입니다. 남편도 죽고 시어머니가 아들을 낳아 줄 수도 없는 지금 어머니와 함께 한다고 해도 아무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인과 결혼했던 여인이 다시 모압 족속에게 돌아간다는 것도 어려움이 있고, 모압에서 태어나 자란 모압 사람이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간다는 것 역시 모험이므로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결국, 오르바는 자기 동족에게 돌아가는 것을 택했고, 룻은 어머니를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나섰습니다.

룻기 1장 16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과연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그것은 오르바와 룻이 나오미를 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오르바는 나오미를 그저 마음이 좋은 시어머니로 육적인 것만 보았고, 룻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인 영적인 것을 보았습니다. 오르바는 슬프지만 시어머니가 육적인 소망이 없으니까 돌아가야겠다는 결정을 했고, 룻은 자기에게 돌아가라는 시어머니의 의중은 알지만 돌아가면 하나님을 더 이상 섬기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에 관한 분별을 잘하게 되면, 하나님의 의중도 파악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룻은 어머님이 출발하기 전에 너희 민족에게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고, 유다 땅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돌아가라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 것입니다. 돌아가라는 시어머니의 말이 도리어 나와 함께 고향으로 가자는 간절한 부탁으로 들렸고, 남편이 없는데 나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갈 정도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오르바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나오미는 룻에게 네 동서가 자기 백성과 신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너도 돌아가라고 하자 룻은 어머니가 있는 곳에 자신도 함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어쩌면 룻의 이 말이 나오미가 기다린 대답일지도 모릅니다. 시어머니가 억지로 데려가는 것 보다는 자신이 결정해야만 모압 여인이 이스라엘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르바를 보며, 나오미는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네가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너는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죄인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오미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여 양식을 주셨다는 기쁨의 소식을 듣고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기근이 끝이 났다는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을 여신 것과 같은 복음의 소식이었습니다.

나오미는 세상의 열매인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지만 룻이라는 믿음의 열매를 얻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정도 있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가 들려주는 하나님이 그 어떤 신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고 연약한 여인들만 남았지만, 어두운 현실을 보기 보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이스라엘로 온 것입니다.

만약 룻이 나오미를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어떻게 남편과 아들을 잃을 정도로 비참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면, 오르바처럼 미련 없이 떠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보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룻은 약속의 땅을 선택한 것입니다.

성도들 역시 세상만 보면 오르바가 될 수밖에 없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믿으면 룻과 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모든 시간과 환경을 징검다리 삼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나오미에게 약속의 땅을 주신 것처럼 영원한 땅을 갖게 될 것입니다. 혈통을 중요시하는 이스라엘에 모압 여인 룻이 들어와 하나님의 총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혈통에 근거하지 않고, 믿음이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며느리인 룻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온 성읍이 그녀로 인하여 소란스러웠습니다. 남편과 아들들과 함께 모압으로 떠날 때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던 나오미가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과부가 되어 홀로 된 며느리와 나타났기 때문에 좋은 화제거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온 나오미를 진심으로 반겨주었습니다.

룻기 1장 20절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나오미는 지금, 내가 풍족하게 나갔는데 이런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기 때문이라며 속내를 보인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올 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할지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망해서 돌아온 자신을 보며 얼마나 비웃을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하더니 결국 망해서 돌아왔다고 하는 말들은 듣지 않아도 알기 때문에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괴로움이라는 뜻을 가진 ‘마라’라고 부르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고비가 있습니다. 그 고비를 하나님과 함께 넘길 것인지 아니면 고난을 피해 모압 땅으로 도망갈 것인지, 그 결정에 따라 인생의 끝이 달라지기 때문에 결정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고향으로 돌아왔고, 보리 추수를 시작한 고향은 풍성함으로 그녀를 맞아주었습니다.

여러분도 멀리 갔거든 나오미처럼 용기를 내어 돌아오는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결단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탕자를 받아주시던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로 품에 안아주실 것입니다. 남편을 따라 억지로 나갔든 아니면 자신의 결단으로 나갔든 돌아오기만 하면 이렇게 고난이 끝날 것이고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쉽고 돌아오는 것은 어렵지만, 나오미가 믿음으로 결단했기 때문에 룻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룻이 예루살렘을 선택할 때 분명 두려움과 고통이 따랐겠지만, 믿음으로 결단하자 하나님께서는 룻을 예수님의 조상으로 축복하시고 총회에 들어오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누구나 선의의 결단을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둠이지만, 믿음으로 결단할 때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서 보호받는 평안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본향으로 가는 발걸음 · 약속의 땅을 떠난 엘리멜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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