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으로 가는 발걸음 — 룻기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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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와 보아스

룻기 4장 13~22절

13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18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우리는 지금까지 룻의 인생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총회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모압 여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보아스를 만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축복하는 결혼식도 올렸습니다. 오벳을 낳아 가문을 이은 것은 그녀의 믿음의 결단이 있기도 했지만, 그녀의 곁에서 변함없이 도와주셨던 하나님께서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방 여인으로서 많은 갈등이 있었겠지만 룻은 담대하게 이스라엘로 왔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순종하였고, 결국 그녀의 인생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일곱 아들보다 더 귀한 자부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빠진 시어머니에게 살 소망을 불어 넣어준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의 품에 오벳을 안겨 줌으로써 생명의 회복자로, 봉양자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한 것입니다. 룻의 희생을 통해 여러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며 복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여러분의 희생을 통해 그 누군가 새 생명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는 하늘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방법은 바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것이며, 무덤을 열고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래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와 상관없는 분입니다. 그렇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사망 가운데 던지신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이라면 어떤 사람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 어둠이고 사망이기 때문에 빛 되시고 생명 되시는 성자 하나님께서 구속을 완성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속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구속자가 없습니다. 요즘 다른 종교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지 못한 목회자들은 구원의 길이 어디에나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마다 나름대로 진리의 길이 있고, 구원의 길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화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절대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진리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며, 주님을 영접해야만 천국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국에서 오신 분도 예수님이고, 또 죄인들을 사망 가운데서 건지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분도 예수님뿐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믿음을 지키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참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그 자체가 이미 영생을 받은 것이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깊은 사랑을 깨닫는 것이라고 전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한다면 구원은 너무나 쉽고 간단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를 버리고,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예수님을 바로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사람에게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을 때, 어둠의 세상에 한 줄기의 빛이 임했습니다. 사망 가운데서 건짐을 받은 성도들이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구속하셨다’는 것은 회복이나 구원 혹은 어떤 것을 되돌려 놓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망 가운데 있던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죄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사탄의 종으로 살던 우리가 자유를 얻은 것이며, 하늘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나오미처럼 하나님을 떠나 죽은 자였지만, 그리스도를 만나 새 생명을 얻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구원의 열매가 되었습니다.

룻기 4장 14절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나오미가 오벳을 품에 안자 베들레헴의 여인들은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를 준비해 주셨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저 가난하고 연약한 한 여인이 기업 무를 자, 즉 구속자인 보아스를 만나서 가문의 대를 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오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을 길이 없던 우리가 기업 무를 자, 즉 구속자이신 그리스도를 만나서 구원으로 회복되었을 때, 하늘의 천사를 비롯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다. 자녀가 잘하면 부모가 영광을 받는 것처럼 성도들의 옳은 삶이 하나님을 높여드리며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룻의 족보를 보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보아스는 분명 나오미의 가문을 이어주는 기업 무를 자로 룻과 결혼했고 아들을 낳아 엘리멜렉의 가문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레스는 다말이 낳은 유다의 아들입니다. 모든 족보가 아담이나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반해, 「룻기」는 다말의 아들인 베레스의 세계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업 무를 자’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것은, 룻이 낳은 오벳은 무조건 장자인 말론의 아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엘리멜렉의 족보가 아니라 베레스의 족보에 보아스가 있고, 그의 아들 오벳이 유다 가문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룻의 믿음을 사용하셔서 나오미의 가문도 회복시켜주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보아스의 가문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보아스는 유다 가문입니다.

창세기 49장 10절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야곱의 예언 중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다 가문에서 인류의 구속자가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보아스가 룻의 혈육의 구속자로 선 것은, 바로 모든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입니다. 남자가 모두 죽었기 때문에 가계를 이어갈 수 없어서 보아스가 자신을 희생하여 그의 대를 이어준 것처럼, 사망 가운데 있는 인류는 스스로 새 생명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구속자가 되어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결국 보아스가 자신을 희생해서 룻을 도와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열매를 보아스의 가문을 이어가는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죄인들을 살리셨지만, 그 생명은 결국 그리스도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포도나무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도나무 비유를 보면, 나오미의 계보를 이어준 보아스의 족보가 왜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나오미의 품에 안긴 오벳이 어떻게 다윗의 할아버지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이고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셨습니다.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많은 과실을 맺도록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은혜를 받아도 그것이 소중한지 모르고 땅에 쏟아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성도가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믿음으로 사는 성도에게 많은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것이 바로, 구속자와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의 관계입니다. 가지는 분명 포도나무에 붙어 있고, 가지마다 맺는 열매는 가지 하나하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나무의 것입니다. 그리고 나무의 것이면서, 동시에 밭에 있는 모든 열매는 농부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는 포도나무에게 묻지 않고, 실한 가지는 남겨두고 마른 가지는 직접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나무는 가지가 농부에게 잘리지 않도록, 가지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최대한 도와주지만 양분을 흡수하는 것은 가지의 몫입니다. 만약 양분을 잘 흡수한 건강한 가지가 많은 열매를 맺으면, 농부는 그 가지를 아끼고 보호해 줄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라는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입니다. 하지만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잘라버리실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농부의 판단입니다.

룻은 보아스의 도움으로 오벳을 낳았고, 나오미는 열매를 얻었습니다. 물론 기업 무를 자로서 오벳을 낳았기 때문에 그 열매는 나오미의 가문을 이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벳이라는 한 개의 열매를 가지고 두 가지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가지에 포도 열매가 달렸을 때 농부는 그 열매를 가지의 열매로도 보았고, 나무에 달린 열매로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오벳’이라는 열매는 나오미의 열매이면서 동시에 보아스의 열매이기도 하다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나오미와 보아스의 가문을 이어줄 뿐 아니라 구세주가 오실 수 있도록 이 모든 사건을 통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을 통로로 삼아 열심히 일 하시는 것은, 모두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다말이 낳은 베레스와 라합이 낳은 보아스와 룻이 낳은 오벳 등 이렇게 족보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바로 구속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다말과 라합과 룻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육을 가졌기에 이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인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그 모든 시간과 사건과 사람으로 엮어지는 역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세대는 가고 새로운 세대가 오지만, 천 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께서는 세대를 초월하여 구원을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한 민족을 만드시고, 구세주께서 오실 수 있도록 믿음의 줄기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수십 세대의 삶을 인도하시며, 오직 구속자이신 예수님께서 탄생할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노력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영혼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그 아들의 보혈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묵묵히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충성했다고 칭찬하시며 여러분의 이름을 욥처럼 자랑하실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한 보아스가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처럼, 성도들의 이름과 충성은 생명책과 기념책에 기록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룻기 4장 21절 말씀입니다.

룻기 4장 21절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마태복음 1장 5절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살몬은 기생 라합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정탐했을 때, 두 정탐꾼을 숨겨주었던 기생 라합이 보아스의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에 두 사람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두 정탐꾼은 성문 옆에 있는 라합의 집에 유숙했는데, 여리고 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정탐꾼을 잡으러 여리고 군사들이 왔지만, 라합의 지혜로 정탐꾼들은 무사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라합은 많은 기적과 이적을 베푸신 하나님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에게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자신의 집을 선대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부모와 형제 모두를 살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이 누구에게 달렸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아 놓으면 그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제 라합이 자기의 가족들과 살아남기 위해서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붉은 줄을 반드시 매달아야 하고 그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붉은 줄은 라합에게 생명의 줄입니다. 만약 라합이 약속을 하고도 세상일이 바빠서 깜빡 잊고 붉은 줄을 매달지 않는다면 여리고 사람들처럼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정탐꾼의 말을 듣고 행하는 것은 이제 라합의 선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붉은 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보혈이 흐르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구원을 받을 것이고,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리스도의 밖으로 나간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그 죽음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말씀을 들은 그 사람들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두 다른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들의 인생을 통해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속자의 족보를 들여다보면 선민인 이스라엘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이방인들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구속의 역사가 인간들의 공로나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먼저 언약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결국 성도들이 구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은 나오미와 룻처럼 환난 중에도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것을 안다면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에 절대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룻이 현숙했기 때문에 보아스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옳은 행실로 삶을 살아온 성도들은 마지막 날 그리스도와 혼인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고, 사랑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에 열매가 달리면 그 가지가 영광을 받을 것 같지만, 그 가지에 영양을 공급하는 나무가 더 귀히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가지에 많은 열매가 달리도록 돕는 나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이 더 많은 열매를 맺어 농부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도록 최선을 다해 험한 세상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계십니다.

룻이 보아스를 통해 오벳을 낳았지만, 오벳은 보아스의 가문을 이어 이새를 낳았고 손자 다윗으로 대를 이었습니다. 다윗의 뿌리로 오실 예수님의 탄생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곳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했던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는 이제 끝을 맺고자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난 성도들은 이제 나오미와 룻처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보면, 순종했을 때 감당할 수 없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었고 무너져 가는 가문이 회복되었습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만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빈 그릇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오미와 룻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늘 기억되는 믿음의 자녀가 되어 축복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룻이 걸어간 믿음의 길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녀의 발자국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와 충성이 넘치는 것을 보면서, 여러분도 그녀와 함께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길 끝에서 기다리고 계신 그리스도께서 두 팔을 벌려 안아주실 것이며, 성령께서 그 길에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늘 도와주실 것입니다.

본향으로 가는 발걸음 ·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와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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