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으로 가는 발걸음 — 룻기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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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자신의 의를 버린 룻

룻기 3장 1~6절

1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는 이익은 상당히 많습니다. 어떤 이유이든 사회생활을 하지 않게 되면 세상에서 소외될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많은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불경기로 많은 사람들이 명예퇴직을 권고 받고 있으며, 실직으로 많은 가정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이 전해질 때마다 나라는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 부심하지만, 구제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뿐더러 하나님의 일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익을 창출하는 곳이기 때문에 실력을 갖춘 사람을 절대로 함부로 대하지 않지만,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버리기 때문에 늘 긴장하며 살아가는 전쟁터와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뱀과 같은 지혜를 가지고 세상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어둠의 세상을 믿기 보다는 세상을 이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많은 것을 제공해 줄 것처럼 유혹하는 세상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도구로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세상은 처음부터 평안이 없기 때문에 영원한 안식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세계를 확실하게 알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아무리 세상이 박수를 치며 모래성을 쌓아주어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룻기 3장 1절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1절에 보면, 나오미는 세상이 이런 곳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룻에게 안식할 곳을 찾아주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구걸하면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룻이 세상의 공격을 받지 않고 평안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의 아내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 기다렸다가, 그가 누웠을 때 그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우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면 보아스가 너에게 다음에 할 일을 알려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말이 황당했지만 말씀대로 순종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나오미의 행동이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의 며느리를 다른 남자에게 재혼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치고는 방법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부인 며느리에게 밤에 그것도 잘 알지 못하는 남자의 이불을 들치고 들어가서 누우라고 시키는 것은 시어머니로서 옳은 행동이 아닙니다. 또 현숙하다고 인정을 받는 룻이 너무나도 쉽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한 것은 더더욱 이상한 일입니다.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행동하는 나오미와 룻을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세상 사람들의 상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과거에는 과부가 된 며느리가 외간 남자와 마주치는 것조차 꺼려했기 때문에 별당에 머무르도록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오미나 룻의 행동은 일반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달랐던 그때는 여인들이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했을 때는 존재 가치도 없는 큰 불행이 닥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자신의 지파에게 할당된 기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후사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자가 되도록 그의 발치에 눕겠다고 대답하고는 어머니의 명령대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룻이 창녀와 같은 행동을 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을 성경은 굳이 설득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는 의는 결국 인간의 의이며,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인간의 의는 참된 의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결정을 하고 방향을 정해도 그것이 영혼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지혜로운 방법이라 해도 모두 인간의 의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이 사건을 보게 되면, 룻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얼마나 자신을 버리는 고통을 감수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룻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한 가정의 후사를 잇는 것이 의라고 생각했고, 나오미 역시 죽은 엘리멜렉과 아들의 대를 이어 기업을 잇는 것이 옳은 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시아버지인 유다의 자녀를 생산하는 사건입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와 아들만 세 명인 가정에서 큰 아들 엘과 결혼하여 큰며느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남편이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남편인 엘이 일찍 죽자 수혼법에 의해 시동생인 오난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자녀를 형에게 주기 싫었던 오난이 임신을 방해한 죄로 오난 역시 죽고 말았습니다. 구약의 족장 시대에 후사를 잇는 것은 이렇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한 민족을 이루셨고, 그들이 후사를 이어감으로써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하신 사탄을 제압할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후사를 잇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중요한 문제였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다말이나 룻이 지금 여러분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말의 남편인 엘과 오난까지 죽자, 유다는 막내아들 셀라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말에게 친정에 가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친정에 있던 다말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49장 10절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러한 유다를 위한 야곱의 축복은 지금의 유다와 다말의 사건보다는 훨씬 더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나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로서 자신의 의무인 자녀를 낳아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헌데 마침 시아버지인 유다가 양털을 깎기 위해서 아둘람에서 딤나로 올라간다는 말을 다말이 들었습니다. 후사를 이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창녀로 변장을 해서 유다를 만났습니다. 유다는 길에 있던 다말을 창녀로 판단하고 만남을 가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사건이기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자녀를 잉태하여 기업을 잇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었기에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모습으로 지금의 다말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이렇게 수치스러운 사건까지 기록하며 다말을 다윗의 후손인 그리스도의 족보에 삽입시켜 놓은 것은, 성경이 모두 사실이며 구원사의 측면에서 볼 때 장차 오실 메시야는 윤리를 초월하여 모든 죄를 덮어 주실 권리가 있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 만남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석 달 후에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시동생 셀라가 성장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야 하는 며느리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은 유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다말이 자신의 가문을 배신하고 그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생각에 다말을 끌어내어 화형에 처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다말은 끌려가면서 유다가 자기에게 준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보이며 아기의 아버지가 유다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유다는 물건의 임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유다는 그녀의 의가 나보다 옳다는 말을 하면서 내가 셀라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다말이 유다가 옳지 않은 판단과 결정을 했다고 해서, 창녀로 변장하여 가문의 대를 잇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녀가 하나님을 조금 더 가까이 섬겼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인내하며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가 본이 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을 몰랐던 다말이 큰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지 중에 범죄한 다말이 깊이 회개하고 거듭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고, 베레스와 세라 두 아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동일한 사건으로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이 얼마나 타락하고 범죄한 자리에 있었는지 깨닫고는, 다시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로 돌아가는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말이 낳은 베레스를 통해 구세주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 땅의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놀라운 사랑이 드러나는 사건으로 승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다말의 희생과 룻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문이 이어져 내려왔고, 또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영적인 맥락으로 나오미와 룻을 따라가야만, 과부인 룻이 목욕을 하고 기름으로 단장하고 보아스의 이불로 들어가 눕는 그녀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죄인인 우리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의 보혈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때, 세상에서 버림받고 십자가에서 죽은 그 사람의 피로 씻김을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들이 죽인 그것도 가장 악한 죄인이라는 증거로, 십자가를 지게 한 죄수의 피로 씻김을 받아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그 어떤 설명으로도 그들을 이해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길만이 참된 길이고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여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든 믿지 않든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영적인 능력을 가진 여인입니다. 보아스만이 자신이 잃어버린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룻은 그런 어머니의 믿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순종한 것입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주고 싶은 안식은 세상의 편안함이 아니라 끊어진 대를 잇는 의무를 행한 후 진심으로 누리는 평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고 싶은 안식은 세상적인 편안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는 의무를 행한 후 받아 누리는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인 편안함과 풍요로움이 아니라 잃어버린 생명을 그리스도를 통해 새 생명을 얻음으로 영원한 평안을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가 준비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나오미의 간곡한 권유도 있었지만 자신의 헌신 없이는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그녀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보아스의 타작마당으로 가서 연회가 끝날 때까지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어 있었습니다. 보아스의 이불로 들어가기까지 룻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요? 그러나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에 보아스가 자리에 눕자 그의 발치에 누웠습니다. 이 상황을 놓고 보면 룻도 어려운 결단을 했겠지만, 낯선 여인이 자기의 이불 속으로 불쑥 들어왔을 때 보아스 역시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누구냐고 묻는 보아스에게 룻은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어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룻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 보았습니다. 아무리 어머니의 뜻을 이해했다고 해도 그녀가 현숙한 여인이라면 이런 행동을 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현숙한 여인이 남편의 기업을 잇기 위해서 모르는 남자의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또한 자신을 모두 버리지 않는 한 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행동일 것입니다. 만약 보아스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돌을 맞을 수 있는 이 상황이 두려워 갈등하며 많이 울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길이며, 가문의 기업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죽는 심정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저는 성도들과 상담을 할 때 지금 룻의 마음을 보고는 합니다. 세상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과 세상 가운데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하나님을 붙들었다고 말은 하는데 아직도 발은 세상에 있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룻이 이제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보면, 그녀도 어렵고 힘든 많은 고비를 믿음으로 넘기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성도들도 믿음으로 한 고비씩 잘 넘기다 보면 룻처럼 쉽게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룻은 자기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준 어머니의 말씀에 맹목적으로 순종했고, 그 순종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드리는 것이 축복의 길이라면, 저는 여러분도 하나님의 뜻에 어리석을 만큼 맹목적인 순종을 보여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뜻을 당장은 이해할 수 없고 숲처럼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수풀을 헤쳐 나가야 길이 보이듯 곧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앞선 자들이 가르쳐주는 길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룻기 3장 10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보아스는 자신이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룻이 자기를 선택한 것은 세상 사람처럼 남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룻을 여인으로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고,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하나님 백성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제 현숙함을 인정받은 룻은 보아스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이 일이 다 이루어지기까지 끝까지 기도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위해서 성령께서는 쉬지 않고 역사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예수님의 신부로서 아름답게 설 수 있도록 기도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날개 아래서 성도들이 안식을 누리는 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8절

7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어린 양의 신부가 되는 성도들이 입는 깨끗한 세마포는, 그들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보여준 옳은 행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옳은 행실은 인간의 도덕이 아니라 룻처럼 진리를 위해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갈 때, 상급의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리기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 삶을 산다면,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은 곧, 죄를 회개하고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리석은 사람처럼 죄를 짓고 회개하지 말고, 먼저 주 안에서 생각하고 선한 판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훈련을 스스로 하여 항상 거룩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룻기 3장 18절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18절에 보면, 나오미는 룻에게 이제 네가 할 일은 다 했으니 기다리자고 하면서 분명히 보아스가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재미있게도, 보아스는 자기가 얻는 이익이 없는데도 룻이 기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룻을 축복하고 계시기 때문에 보아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도울 방법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룻이 인간의 의를 버리자 이제 가문의 문제나 기업을 찾는 문제가 그녀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을 갖춘 보아스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어머니는 죽도록 기도할 것이고, 보아스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며 세상이 모르는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날개 아래 머물면, 여러분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는 여러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날개 아래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는 여러분이 안식을 더 누릴 수 있도록 성령께서는 쉬지 않고 직접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룻은 보아스가 자신의 기업을 찾아주고 대를 이어주는 그 은혜를 누리면 될 것입니다.

‘보아스’라는 이름은 솔로몬이 성전에 세웠던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의 이름과 동일합니다. 즉,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룻이 온전한 믿음을 보이는 선한 행위를 했지만, 그 믿음을 믿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은 보아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가진 믿음은 오직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실 때 성도들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지금 가진 능력과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희생과 성령님의 역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한 신앙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룻이 말씀에 순종했을 때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처럼 성도들이 최선을 다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준비하신 축복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룻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믿음으로 살아가며, 아름다운 간증을 하기 바랍니다.

본향으로 가는 발걸음 · 자신의 의를 버린 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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