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스와 아무개
1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7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지혜가 영적인 지혜이든 육적인 지혜이든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영적인 지혜는 영혼을 살리는데 사용하라고 주셨을 것이고, 육의 지혜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허락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지혜를 자신과 세상만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현명하게 나누지 못하는 지혜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지혜뿐 아니라 재물을 맡겨주시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 역시 나누지 못하는 재물이므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돕는데 물질을 사용하거나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지혜를 사용한다면, 올바른 용도로 사용하였으므로 흩어 구제한 물질과 지혜는 더욱 빛이 날 것이며 큰 복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가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지혜롭게 글을 쓰기도 하고 헛된 일을 위해서 목숨을 다해 헌신하는 것을 보면, 그 노력과 지혜를 영원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지혜롭게 글을 쓰고 세상을 위해서 목숨을 다해 충성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영원한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그 지혜는 세상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면, 깊은 우물에서 맑고 시원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처럼 영혼을 살리는 글을 남길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말씀의 지혜로 능히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성도가 헌신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가 가진 지혜와 재능이 아무 쓸모없기 때문에 교만하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은사를 주신 것은 연약한 형제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등불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이 필요하므로, 더 쉽고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물질로 채워주신 것입니다.
물론 성도가 자기의 것을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지혜와 명철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헌신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생을 책임지실 것이며, 필요에 따라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해야 하며, 선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빠르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주신 사명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거나 결정해서 행동하지 않고 묵묵히 삶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도 기억하지 않으시며, 흩어지고 사라져 버리는 안개처럼 존재 자체가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룻기 4장 1절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보아스는 룻이 자기의 이불 속으로 허락도 없이 들어왔지만, 그녀가 현숙한 여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일 너희 기업 무를 자를 만나서 대신 부탁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하면,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책임을 대신 이행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보아스가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룻을 통해 나오미의 가정을 축복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룻이 자기의 이불을 들추고 들어오는 황당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그녀를 현숙한 여인이라고 말하면서 기업 무를 자가 만일 책임을 회피한다면 내가 그 책임을 감당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남자에게 있어서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기 때문에 룻을 아내로 택하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잠언 14장 1절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잠언 12장 4절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잠언에서 보듯, 여인이 지혜롭고 너그러운 남편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남편이 지혜로운 아내를 만나는 것은 자신의 집을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룻처럼 어진 여인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아스에게 주신 면류관과 같은 상급입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룻을 자기의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늙은 자신보다는 더 젊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먼저 부탁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아침이 되자 보아스는 부지런히 성문으로 올라가 장로 열 명과 함께 기업 무를 자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아무개를 선택한 것은 분명 그가 룻을 도와줄 구속자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때 마침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자 보아스는 그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나오미와 룻의 사정을 말하면서 그 가문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되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보아스의 부탁을 들은 그 아무개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에게 큰 이익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고 보아스에게 승낙하였습니다. 나오미의 기업을 무른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에게 돌아올 이득이 많다는 생각을 먼저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땅을 사서 50년이 되면 땅 주인에게 다시 돌려줘야 하는 법이 있습니다. 상속자가 없는 땅을 사게 되면 50년이 되는 희년에 돌려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 사람은 큰 이득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기업 무를 자가 되겠다는 그의 말을 들은 보아스는 다시 한 번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땅을 사서 기업 무를 자가 되면 산 땅을 나오미의 가문에 돌려줘야 하고, 땅 뿐만 아니라 룻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을 엘리멜렉의 가문이 끊어지지 않도록 장자로 주어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무개는 그 땅이 자기의 재산이 되지 못할 것을 알았고, 또 룻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면 엘리멜렉 가문을 이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개는 자기 재물을 써 가면서 굳이 과부를 구해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보아스가 만난 아무개는 하나님을 깊이 섬길 기회와 룻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복을 받을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인 이득이 없다는 인간적인 판단 때문에 너무나 쉽게 기회를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친족 간의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법으로 정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손익만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늘 기회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손익을 따지다가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지혜가 없어서 주신 기회를 축복으로 만들지 못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왜 나에게 복을 주시지 않느냐고 불평하고는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세우고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을 축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보아스의 부탁을 거절한 이 사람의 이름을 기록도 하지 않았습니다. 1절에 그저 보아스가 아무개라고 불렀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가 되지 않겠다고 거절한 이 사람은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한 것입니다. 보아스에게서 나오미의 사정을 들었을 때, 그것을 자기의 손익으로 계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 말을 듣게 하셨는지 한번만 더 생각했다면 지금 우리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기업 무를 자가 되지 않겠다고 쉽게 대답했다는 것은 그가 평상시에 어떤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 알게 합니다.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 중에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우리는 그의 행동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이런 신앙을 드러내고는 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을 믿으면 잘 살고 자녀들도 잘 되고 천국에 들어가 영원토록 잘 먹고 잘 산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작은 어려움만 생겨도 쉽게 믿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잘 살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맞지만, 잘 살고 잘 된다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영과 육, 둘 중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그의 삶과 사후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아무개처럼 복을 받을 수 없지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 아무개는 보아스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재물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가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의 기준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천국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 무를 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따르는 것처럼 올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희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보는 사람은 많은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며 어리석게 살기보다는 조금 더 깊게 생각하고 앞을 내다보는 지혜를 갖는다면, 훨씬 쉽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소욕과 성령님의 역사는 언제나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소욕은 세상의 이익을 원하지만,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성령님의 역사와 인간의 정욕은 동일할 수 없으며 같은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행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개처럼 그리스도 앞에 펼쳐져 있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보아스의 간절한 청을 거절한 아무개처럼 이름도 없이 어둠으로 사라지는 쭉정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세상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아무개는 하나님의 축복과 세상에서 받을 복을 모두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보아스는 아무개가 거절하자 처음 생각한 대로 내가 기업 무를 자가 되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룻기 4장 8절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아무개는 큰 짐을 보아스에게 떠넘겼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얼른 자기의 신을 벗어서 열 명의 장로가 보는 앞에서 보아스에게 주었습니다. 아무개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나는 그 땅의 소유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혈육의 구속자가 되어주라고 정하신 법을 거역한 자로,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고 신발을 벗은 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아무개가 성급하게 결정하지만 않았다면, 기업 무를 자가 되는 것이 세상적인 손해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보아스에게 신을 벗어 주었기 때문에 돌이키고 싶어도 번복할 수 없는 결정을 하고 말았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버리는 것은 아주 쉽지만 그 죄를 회개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든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아무개처럼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신중하게 결정하기를 바랍니다.
훗날 아무개는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여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았을 때, 사람들이 그들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드리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던 그 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깨달았을 것이고, 잘못된 판단으로 그 기회를 영원히 놓친 것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갖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나 축복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들이 원하는 성공으로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지 보시기 위해서라도 고난과 연단으로 그리고 외로움과 실패로 혹은 세상의 성공으로 드러내시기 때문에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면,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거나 많은 물질을 벌어야만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사람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 싶은 축복은 영혼구원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인생이 구원을 향해 가고 있다면, 하나님께 이미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고난과 연단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내를 시험하고 계신 것이며, 재물을 받았다면 여러분이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으로 헌신하는지 시험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살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도 나에게 큰 유익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고 죄의 자리로 옮겨 앉은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인지 고민하면서 말씀으로 모든 결정을 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실수하지 않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보아스는 현숙한 여인 룻과 함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선한 결정을 했을 뿐인데, 이 땅에서 올리는 결혼식이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키는 축복의 결혼식이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나오미와 룻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던 여인으로 살았지만, 앞으로는 보아스의 사랑과 보호로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룻기」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했던 여인들의 인생 역전입니다. 이제 남의 밭에서 굽실거리며 이삭을 줍지 않아도 됩니다. 보아스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므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은, 오벳을 품에 안고 키우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오벳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방패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들이 누리는 이 모든 행복은 보아스가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혼인잔치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구속의 은혜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없다면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으며, 자신의 뜻대로 평생을 살아온 죄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께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도와주시고, 사탄의 공격을 막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어린양과 올리는 아름다운 혼인잔치는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산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나오미와 룻이 모든 고난을 믿음으로 인내하자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두 여인은 평안을 누리며 행복한 인생을 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런 인생을 꿈꾸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서도 큰 기회를 잡아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축복은 세상에 국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면 사라져버리는 그런 세상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아야 하는 것은 성도는 시간이 없는 영원한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복을 사후에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룻기 4장 15절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남편과 아들을 잃고 죽은 자 같았던 나오미가 룻이 낳은 아기로 인해 새 삶을 찾게 되었습니다. 오벳의 뜻은 ‘섬기는 자’입니다. 오벳이 이런 이름을 가진 것은 여인들이 지었다고 하지만, 저는 아마도 자신처럼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인생을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오미의 마음이 담긴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임에도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던 그녀는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기 때문에 자손들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나오미를 기꺼이 받아주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열매인 룻을 통해 세상의 복을 허락하셨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축복 또한 허락하셨습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돌이키면 재림하시는 주님의 어여쁜 신부가 되기 때문에 나오미와 룻처럼 이런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룻기 4장 22절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다윗은 다말과 룻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줄기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뿌리로 오실 예수님을 위해서 다말과 룻의 믿음을 사용하시며 구원의 약속을 이어가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있기에 예수님께서 다윗의 뿌리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우리는 「룻기」를 통해, 모압에서 태어난 죄인이 하나님의 회중에 드는 것을 보았고, 믿음으로 죄의 자리를 떠났을 때 하늘의 기업을 받는 것도 보았습니다. 나오미는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이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할 때 하나님의 역사와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모두 보아스의 아내가 된 룻처럼 비록 죄인으로 태어났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불러주셔서 그리스도의 아내가 될 현숙한 여인으로 거듭난 성도가 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열매를 낳아야 합니다. 룻이 오벳을 낳았을 때 보아스의 사랑이 더 깊어진 것처럼,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차고 넘치는 사랑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담대하게 돌이켰던 나오미와 말씀에 순종했던 룻과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던 보아스처럼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축복의 열매인 오벳을 여러분의 인생에 부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