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무를 자
17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사람은 내향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으로 나누어집니다. 매사에 낙관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관적인 사람도 있고, 어떤 일이든 자신이 결정을 해야만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결정을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소극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 뜻대로 고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며 모든 사람의 의견을 포괄적으로 절충해 가며 반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성격 형성은 선천적인 것도 있겠지만 후천적인 영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깔끔한 성격으로 어떤 물건이든 제자리에 놓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어질러진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반대로 부모가 정리 정돈을 하지 않으면 아이는 웬만큼 지저분한 것은 신경도 쓰지 않으며 아이도 정리하는 방법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세밀한 부분까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기 때문에 부모가 따뜻하고 친절한 성격을 가지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고 위로하는 다정한 성격을 갖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날카롭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들은 그 상황을 모면해야 하기 때문에 모난 성격을 가지게 되어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격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신기할 정도로 부모를 닮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이 스스로 잘 판단하면서 성장하지 않는 이상, 어떤 인격을 가진 부모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느냐가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이 세상을 올바로 판단할 수 있도록 선한 기준을 세워주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룻은 지금까지 모압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이 믿는 모압신을 믿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를 만나서 자신이 믿고 있던 모압 신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상들처럼 인간의 축복을 위해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를 떠나 시어머니 나오미를 만남으로써, 룻은 새로운 영적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하늘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룻을 친딸처럼 사랑하면서 영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자, 룻은 시어머니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모압에서 자란 룻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것을 볼 때,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얼마나 하나님을 전하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룻은 점점 시어머니의 성품과 신앙을 닮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앞선 어머니의 신앙을 존경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대로 믿었고, 그 믿음이 룻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복입니다. 여러분의 곁에 있는 사람들과 환경은, 부모처럼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늘 자기 곁에 믿음의 사람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으로 살겠다는 결단을 해도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과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생각이나 행동이 세상적으로 치우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평하는 사람들은 불평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남을 속이는 사람들은 남을 더 잘 속이는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밝고 현명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긍정적이고 밝고 현명한 사람들을 알아보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올바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선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흥분하고 분을 내기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몇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여러분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 신기할 정도로 여러분의 인생을 말씀이 인도하시며, 믿음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룻기 2장 17절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하루 종일 주운 곡식은 한 에바쯤 되었는데, 여자가 남의 밭에서 주운 것 치고는 아주 많은 양이었습니다. 한 에바는 약 열두 되 정도 되는 분량입니다.
보아스가 곡식 단을 묶는 사람에게 다 묶지 말고 룻을 위해 조금씩 흘리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나오미와 먹고 남을 만큼 풍족한 양이 된 것입니다. 이해를 돕는다면, 보리 한 되의 중량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서울에서는 보리 한 되의 무게가 0.7kg입니다. 그러니까 룻이 그날 주운 보리는 8.4kg인 것입니다. 여인이 하루에 얻은 양식으로는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 때문에 룻이 고통 받지 않도록 도와주신 것처럼, 영혼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들에게 늘 돕는 사람과 환경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준비하셨지만, 룻이 게을러서 양식을 구하러 나가지 않았다거나 세상이 두려워서 나가지 못했다면, 준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룻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룻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믿음과 결단을 아시기 때문에 보호자가 되어주셨고 악한 자들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가 남의 나라에서 양식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인간적인 걱정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양식을 구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룻기 2장 19~20절
19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나오미는 룻이 가지고 온 보리이삭을 보고 기뻐하기보다는, 이 많은 양식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먼저 물어보았습니다. 나오미가 생각할 때, 룻이 절대로 이렇게 많은 양식을 얻을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룻이 자기를 도와준 사람이 바로 보아스라고 답하자 나오미는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 귀한 사람이라는 뜻 모를 말을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룻을 위해서 어떤 역사를 이루고 계시는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고향으로 돌아와 의지할 곳 없는 두 여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가진 자에게 더 관대한 곳입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얻을 이익이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힘 있는 자에게 더 후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는 사망에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생명의 값도 치룰 수 없는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사탄의 세상에서 철저하게 보호를 받고 평안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보아스가 세상적인 사람이었다면, 룻이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인에게 이삭을 남겨두라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며 살았기 때문에 룻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베들레헴으로 왔다는 것만으로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었던 것입니다.
룻기 2장 20절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말을 듣고서 무척 기뻐하며,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는 우리의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친척으로서,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에서 살 때에도 이 가족에게 호의를 베풀며 가까이 지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한 나오미와 룻에게 여전히 호의를 베푸는 것은 생존한 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고, 이런 호의가 바로 사망한 자,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에게도 은혜를 베푸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고엘’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할당 받은 기업을 다른 족속에게 빼앗기지 않고 영구히 보존하여 혈족을 유지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가난한 혈족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되면, 그 사람의 땅을 자기 돈으로 사줘야 하고, 부당한 피해를 입은 친족을 위해 복수할 책임이 있으며, 친족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그 대를 이어주는 의무를 갖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결심을 해야만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엘의 자격은 혈연관계가 있어야 하고 자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당할 능력을 구비해야만 기업을 무를 자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기업을 무를 자 중에 보아스보다 적합한 사람은 없습니다. 보아스는 그들의 친족이고 땅을 찾아줄 재산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결단한다면, 나오미가 팔고 떠난 땅을 다시 구매해서 이들에게 돌려줘야 하고, 룻과 결혼하여 혈육의 대도 이어줘야 할 것입니다.
룻이 남편을 잃고 하나님의 기업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그녀는 보아스를 통해 하나님의 기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법을 이해하고 순종하고 겸손하게 살아온 보아스와 같은 사람만이 룻을 알아보는 것이고,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기업이 없는 자로 전락할 운명에 처한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의 기업을 받게 하신 것처럼, 사탄에게 매여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 우리들을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기업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기업을 무를 자로 오신 것입니다. 사망 가운데 빠져 스스로 나올 수 없는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께서는, 보아스처럼 절대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죄인을 건져주신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은 앞으로 보아스의 사랑과 희생에 감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죽은 자와 다름없는 가난한 과부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고, 또한 기업을 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준 보아스에게 그 무엇으로도 감사를 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평생 수고하여 모은 재물로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 준 보아스에게 순종하며, 그가 베푼 사랑이 희석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룻기 2장 22절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에게 보아스의 밭을 떠나 다른 밭으로 절대로 가지 말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혹시 다른 밭에 더 많은 이삭이 떨어져 있다고 해도 자신의 기업을 무를 사람을 떠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유혹에 보아스를 떠난다면 영원한 기업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 있어야만 보아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보아스가 그녀들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줄 것입니다.
성도들도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교회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영혼을 구원해주시며, 세상에서 넘어지고 쓰러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세우신 교회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성도들과 함께 있을 때 제일 안전한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밭보다 세상의 밭이 훨씬 더 풍성하게 보이고, 세상으로 가야만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세상의 주인인 사탄은 그리스도와 보아스가 되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밭으로 오게 하기 위해서 많은 양식을 줄 것처럼 유혹하지만, 그리스도를 버리고 가는 순간 종으로 삼아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밭에 있으면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자기의 것처럼 누리며 살아가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환한 빛 가운데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2~3절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사십 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은, 바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보시려고 그들을 낮추시며 시험하신 것이므로 사십 년 동안 고난 당했던 그 시간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고난 가운데 먹었던 만나는 사람이 알 수 없는 하늘의 축복이며 은혜였습니다. 그런 은혜를 허락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세상의 양식인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하늘의 양식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오미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물론 본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베들레헴을 떠나는 죄를 지은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오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택하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이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성령의 울타리로 보호하셨고, 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늘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사람의 계획으로 도저히 만날 수 없는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고, 기업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셨으며, 대를 잇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축복은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의도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그 나라를 진심으로 소망하는 자들이 받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일용할 양식조차 없이 고난을 당할 때 하늘에서 내린 만나가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깨닫고 하나님께 깊이 감사했다면,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광야의 연단을 끝내고 더 빨리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불평했고, 교만했으며,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만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나오미가 살아갈 길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베들레헴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와 룻의 작은 믿음을 보시고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나오미는 조금 더 세월이 흘렀을 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은혜이고, 사랑이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모압을 선택했고 또 다시 베들레헴을 선택한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에 축복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고백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는 기업을 무를 자이신 그리스도를 만나서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라는 선물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이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성도들은 그들의 믿음에 따라 그 축복을 누리거나 빼앗기게 될 테지만 이 모든 것은 성도들의 선택입니다. 나오미는 처음에 어리석은 선택을 했지만, 어려운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본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축복을 세상에 모두 빼앗기고 빈손으로 돌아온 나오미였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나오미의 믿음을 보시고 빼앗긴 모든 것을 룻을 통해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과 같았습니다. 남편을 잃었지만 하나님께서 남편이 되어 주셨고, 아들들을 잃었지만 보아스라는 아들을 얻게 하셨으며, 남편과 아들들을 잃고 대가 끊어졌지만, 보아스와 룻을 통해 자손을 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복만이 아니라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자가 되어 재산을 모두 찾아주었기 때문에 나오미는 평안한 노후를 보내게 되었고,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편안한 삶을 살면서 어머니를 섬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이 생각하는 복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는 가지들을 다 자르시고, ‘그리스도’라는 뿌리에서 난 가지를 통해 열매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복을 원하고 있습니까?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들, 내 딸과 많은 소유물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물론 가족들이 믿음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세운 계획보다 더 원대하신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면, 여러분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실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고난일 수도 있고, 성공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처럼 본향을 떠나 헛된 인생을 살면 안 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말씀을 잘 배워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고, 잘 결단하면서 살아가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 자리를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도저히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와 말씀대로 살아가는 충만함을 갖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결정하는 작은 사건이 여러분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며, 인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작은 신앙이 놀라운 하늘의 복을 받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숙한 믿음이 세워져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놓치지 않고 모두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호시탐탐 여러분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사탄의 계략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인내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밭이 풍성하게 보일지라도 세상의 밭으로 가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밭에서 믿음을 지키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