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으로 가는 발걸음 — 룻기 · 조춘숙
나가기
2장

돌아온 탕자 나오미

룻기 1장 19~22절

19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깊은 바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땅속에 무엇이 있는지, 공기 속에 무엇이 있는지 샅샅이 파헤치며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지구가 좁다고 온 우주를 뒤지고 다니며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고 있으므로, 일반인들의 우주여행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늘 궁금증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궁금증이 발전하여 과학을 만들었고, 영적인 세계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돕는 신을 만들어 곁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마저 자신들의 지혜와 과학으로 풀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궁금해 하는 모든 것은 이미 성경을 통해 알려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발명이나 발견을 했다고 놀라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만물 속에 감추어 놓으신 것을 찾은 것뿐입니다. 지금 인간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숨겨 놓으신 숨은 그림을 찾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숨기신 것을 찾은 사람들은 그것이 처음부터 자기의 능력이었던 것처럼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평생 존경을 받으며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위해서 창조하셨지만, 죄를 지은 인간들은 그 모든 것을 값없이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감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숨을 쉬고 있는 모든 인간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도 값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과 불 그리고 땅과 공기, 생명 등 많은 것들을 거저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만약 신앙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숨겨 놓으신 것을 발명,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찾아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만드신 창조물을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찾음으로써 부를 누리게 된 것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누리면서도 그것이 자녀들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탄의 유혹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자신의 능력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더 강퍅한 삶을 살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지배하는 많은 권력자들을 볼 때 그들에게 없는 단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에 대한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감사해야 할 때 감사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에게는 하늘의 복도 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머물러 있는 성도들이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은 아주 특별한 축복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나누시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녀들에게는 영혼구원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별한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생자라고 말씀하시며, 일반적인 은혜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이는 것처럼 감사하는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하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너무 쉽게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인 나오미 역시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남편과 아들이 더 소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귀한 언약의 땅을 쉽게 떠나고 말았습니다. 만약 나오미가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남편의 잘못된 선택을 막았을 것이며, 지혜롭게 가정을 믿음으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남편의 선택을 판단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약속의 땅을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은, 내가 너희를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산이 아무리 높고, 바다가 아무리 넓어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내 발 아래 있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산이 아무리 높아도 넘지 못할 산이 없고, 바다가 아무리 넓어도 건너지 못할 바다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산과 바다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면, 산과 바다는 하나님의 발등상일 뿐이고, 하나님의 품에 있는 성도들은 만물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과 바다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더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의 품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자녀들이 세상의 문제와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버린다면 어디로 떨어지겠습니까? 사탄이 장악하고 있는 세상으로 떨어져서 그들과 함께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어리석은 판단을 막아주시기 위해서 고난도 주시고 책망도 하시며 바른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께 기도드리지 않는다면 결국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결정인지 기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고민하기 보다는 든든한 남편이 있고, 건장한 아들이 둘씩이나 있으며, 동족들은 가뭄으로 고통을 당하는데 자기들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베들레헴을 떠난 것입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풍요로운 모압으로 가기 때문에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결정을 내린 남편이 어쩌면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녀는 온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날 때, 기근으로 폐허로 변해가는 베들레헴에 남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세상과 믿음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련할 정도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서 좀 더 즐기지 못하는 그들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세상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인생을 볼 때,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머물고 있는 성도들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향을 떠날 때, 나오미는 이제는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들떠있었고, 많은 사람의 부러움과 축복을 받으며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남편과 두 아들이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믿는 인간의 판단이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 나오미는 직접 경험한 것입니다. 사람이 일 년 계획을 세우든 십 년 계획을 세우든 하나님께서 그 계획이 성취될 수 있도록 역사하시지 않으면, 인간의 계획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세상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운이 좋아서 언제나 내가 세운 계획은 이루어졌는데, 그러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기적과 축복은 영혼구원을 위해서 일어난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상 일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롱하기 위해서 성도에게 하는 말을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하면 믿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인생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셨는지 먼저 판단해야 합니다. ‘저 사람들은 신앙이 없어도 잘 사는데 하나님을 믿는 나는 왜 어려움을 당할까?’ 의심하거나 ‘혹시 나는 믿음이 적어서 고난을 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자체가 바로 신앙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나오미가 믿은 것은 남편과 아들 그리고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손에서 모래처럼 빠져나가자 그녀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과 남편을 잃고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며느리 둘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 결단해야 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너무 초라하게 변했지만, 이 모습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모압에서 이방신을 섬기며 모압 사람들과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고민 끝에 나오미는 자신이 지금까지 올바른 믿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베들레헴을 버렸지만, 또다시 잘못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고향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큰 며느리 오르바는 모압에 남기로 하고, 작은 며느리 룻이 동행하겠다고 하여 룻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온 동네 사람은 나오미를 구경하기 위해서 모여들었고 수군거렸습니다. 고향을 떠날 때 그토록 당당했던 나오미는 간 곳이 없고, 10년 만에 너무나 초라하게 변해버린 여인이 되어 돌아왔기에 그들은 놀라면서, 그때 사랑스러웠던 나오미가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룻기 1장 20절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하면서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기 때문에 내가 풍족하게 나갔다가 이렇게 모두 잃고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마라’는 ‘괴롭다’, ‘쓰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23절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이 ‘마라’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고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을 행하였지만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고 부른 그 샘의 이름입니다. 그 곳의 물이 너무 짜서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라고 합니다. 아랍 사람들은 이 물이 모든 지역에서 가장 나쁜 물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사람이 마실 수 없는 물이었다고 합니다.

나오미는 지금 자신을 이렇게 쓸모없는 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그 어떤 곳에서도 쓸 수 없는 하찮은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나오미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이해가 됩니다. 지금 자신이 이렇게 쓸모없는 마라처럼 된 것은, 바로 전능자이신 하나님께 지은 죄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홍해를 건너 마라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가 지금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에게 원망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나오미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선택이었고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처럼 나오미도 자신을 구할 수 있는 ‘한 나무’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고난과 연단을 당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죄로 물든 자신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를 던져야만 살 수 있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으므로,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제 나오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와 룻을 살릴 수 있는 ‘나무’로 지혜로운 보아스를 지목하셨고, 보아스를 통해 나오미와 룻의 갈증을 영원히 해소시켜 주신 것입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그래도 고향이기 때문에 먹고 살 수는 있지 않을까,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혹시나 하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돌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돌아가겠다는 그녀의 결단을 보시고, 나오미가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축복을 보아스를 통해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복을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믿음을 먼저 보여드리는 것이 큰 복을 받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나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많은 재물을 모두 탕진한 탕자가 있습니다. 그 탕자가 돌아오는 모습이 바로 나오미의 모습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탕자처럼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모압으로 가서 성도의 삶도 다 버리고, 쾌락을 즐기다 아버지가 주신 물질을 모두 탕진한 것입니다. 그래서 탕자가 돈을 모두 잃고 거지가 된 것처럼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고 의지할 데가 없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탕자와 나오미는 육의 열매를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성도가 성도의 삶을 버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고, 봉사를 하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등, 보이는 것을 충실히 하지 않을 때 성도의 삶을 버렸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도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할 때, 기도를 응답하셨지만 영적으로 어두워 깨닫지 못할 때, 하루하루를 사는 것 자체가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늘 불평할 때,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사고가 강할 때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 그래도 내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 상대보다 내가 더 낫다는 생각, 내가 지금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커지는 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잊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늘 자기변명을 하고, 자기 신앙의 수준에서 마음대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가 재산을 모두 탕진하자 세상 사람들은 가진 것 없는 그를 돼지우리로 보내어 일을 시켰습니다. 성도들이 자기를 중심에 세우고 마음대로 살아가며,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돼지를 치는 것과 같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를 먹어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서 그는 늘 허기졌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나오미 역시 모압 사람들과 어울려 잘 살아 보려고 했지만, 쥐엄 열매를 먹는 것처럼 늘 허기졌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고통스러웠습니다. 나오미는 어쩌면 고향을 떠났을 때부터 허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며, 자신이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남편과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있고 차고 넘치는 재물과 양식이 있는데, 왜 혼자인 것처럼 허전한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영적 양식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늘 허기지고 허전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으로 채워보려고 하지만, 결국 말씀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쥐엄 열매이기 때문에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탕자는 이미 재물을 모두 탕진했지만, 아버지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초라한 행색으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께서 책망을 하시든 형에게 혼이 나든, 무조건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품에 안긴 것입니다. 나오미는 남편도 아들들도 모두 죽고 혼자 남아 비록 초라한 몰골이지만,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어도, 아니 반기지 않아도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베들레헴으로 간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많은 고민을 하겠지만, 죄의 자리를 떠나 아버지의 품에 안기면 모든 고통이 끝나는 것입니다. 죄의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성도들은 곧바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이 궁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도 잘 섬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세상에 발을 내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세상과 인생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품에 있어야만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모든 문제를 응답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2절~24절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탕자가 돌아오자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었고 가락지를 끼워주었으며, 좋은 신을 신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이며 기뻐해 주신 것입니다. 나오미가 돌아오자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위한 축복의 잔치를 시작하시며 풍작인 보리추수로 필요한 모든 양식을 채워주셨고, 영육 간의 잘 준비된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으며, 룻을 통해 믿음의 조상이 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돌아갈 때는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가는 길이 세상을 향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버지께 빨리 돌이키는 것이 지혜이고,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품에 안긴다면 우리보다 더 크고 강하신 하나님께서 모두 다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나오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비록 육의 열매는 모두 잃었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에게 조롱은 받겠지만, 하나님께 용서만 받을 수 있다면 그 모든 고통을 감당할 수 있다는 그녀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나오미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넘치는 축복을 받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본향으로 가는 발걸음 · 돌아온 탕자 나오미
29% · 2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