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 빌립보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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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서 1장 1~11절

1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바울의 4대 옥 중 서신이며 A.D 63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 때 빌립보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교회를 세울 때 헌신했던 성도들의 사랑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기록한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바울은 A.D 61년경에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연금되자, 지금까지 자신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헌신했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더욱 생각났습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자체가 감사했습니다. 복음으로 하나가 된 믿음의 형제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바울에게 큰 힘이 된 것입니다.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 왕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지방 최대의 도시입니다. 이런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유럽을 복음화 시키기 위한 전진기지로 빌립보를 사용하셨기 때문에 최초로 유럽에서 그리스도교가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루디아의 헌신이 있었지만, 사도 바울의 진실한 믿음이 있었기에 성령께서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금광으로 인해 풍요로운 삶을 살던 빌립보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고 초라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까지 우상을 숭배했던 그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상숭배로 인해 얻은 모든 영화를 버려야 하는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소유를 마음에서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얼마큼 힘든가 하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두 고국으로 귀환하라고 했을 때 망설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스룹바벨과 함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였고, 수많은 노력으로 백성들을 귀환시켰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건물이나 성전이 파괴되어 황폐하였고 성벽조차 없었습니다. 남의 나라이지만 바벨론에서 편하게 살던 삶을 버리고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한 희생을 감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를 읽어보면 유다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적들의 공격을 받았는지, 밤낮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폐허 가운데 제단을 세웠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일궈낸 편안함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단을 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빌립보에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을 때 자기 마음대로 살던 생활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했으며 동역자를 위해서 자기의 소유를 나눠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누렸던 인간적인 삶을 버리고 복음을 통해 거듭나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을 깨닫고 성도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했기에 환난을 받을 때마다 인내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서 밤낮 최선의 삶을 살아낸 것처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헌신해야 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을 돕기 위해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7절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사도 바울은 7절에,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 것은 너희가 내 마음에 있고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환난을 당해도 그리스도의 새로운 몸으로 하나가 된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헌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거듭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의 깊으신 사랑을 깨달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영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바울이 고난을 당할 때나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변함없이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런 사랑은 유럽을 복음화 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에는 루디아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여인은 자주색 옷감과 염료를 팔거나 염색을 하는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우연히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서 선교 활동을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바울이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성도들과 함께 끊임없이 물질로 도와주었습니다. 성령께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진실한 믿음을 사용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아름답게 세우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귀한 믿음의 형제들이 큰 복을 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얼마나 그들을 향한 감사가 깊었으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 되신다고 했겠습니까.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처럼, 자기도 생명을 주는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진심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생명을 주는 사랑으로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자,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이 강건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며, 그들의 관계를 돕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헌신으로 잘 성장하고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구원의 열매를 보는 것처럼 기뻤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일하는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그를 돕기 위해서 각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은 자신이 전한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말씀대로 충만하게 사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세상의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고, 복음을 통해 받는 고난은 세상에서 누리던 편안함과 비교할 수 없이 감사한 것입니다. 하지만 전도자가 구원받을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면 택함 받은 사람은 말씀에 반응할 것이고 거부하는 자는 전도자를 핍박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듣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복음을 듣기 위해서 곧장 달려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도자는 그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하는 사도 바울을 돕는 신앙이 바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거룩한 신앙입니다. 이런 성도들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핍박을 받을 때나, 옥중에 있을 때도 용기를 얻었고 고난 가운데서도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이 고난은 혼자 당하는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함께 감당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과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헌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명령을 받은 것처럼 바울을 도와주었고, 진리의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흔들리지 않았으며,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변함없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굳건한 반석 위에 서 있는 그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변함없는 믿음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큰 보람을 느꼈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는 것처럼 동역자를 진심으로 섬겼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을 받도록 기도했고, 악한 자와 악한 영이 그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육적으로 연약한 바울을 통해 복음이 선포되도록 도와주었던 그 성도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라는 인간도 사랑했지만 그의 사명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처음에 빌립보에 갔을 때,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복음을 영접한 루디아가 기꺼이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교회를 세워주었습니다. 여인의 몸으로 이런 결단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무엇인지 깨달았고,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알았으며, 빌립보에 왜 교회가 필요한지 알았기 때문에 아낌없이 헌신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4절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십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교회를 이끌어가는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아무리 성도들이 자신의 힘으로 헌신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루디아처럼 마음을 열고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리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열고 올바로 청종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많이 들어도, 자기의 생각과 고집과 자존심과 지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은 상태로 열심히 헌신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자기의 생각대로 헛된 충성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인도하는 진리의 길로 가면서 말씀을 잘 청종하면서 순종해야 하는데, 말씀을 자기의 의와 생각에 접목해서 인간적인 기준으로 일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도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루디아로 하여금 마음을 열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옥토와 같은 그 여인의 심령에 말씀의 씨앗을 떨어뜨렸고,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그녀가 자신의 집을 복음처로 개방하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자신의 집을 교회로 드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로 하여금 지혜와 총명으로 말씀을 깨닫게 하셨고, 어떤 삶이 귀한 것인지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 주셨기 때문에 루디아는 기꺼이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모두 한결 같은 마음으로 헌신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얼마나 잘 깨닫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온전히 받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이런 믿음의 형제를 만나는 것처럼 큰 축복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영접하는 것은 세상 일이 아니며, 또 복음을 전하고 영접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바울을 도와주었다고 해서 바울이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바울을 도와준 것 같지만 바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선하게 도와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면 사랑이 넘치게 되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아는 지식과 총명함이 점점 풍성하게 됩니다. 그래야만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선한 것을 분별하는 성도는 절대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거나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서로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어떤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께 충성하겠다는 믿음이 있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그런 바울의 선교를 돕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여러분 곁에는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와 여러분의 믿음을 도와주는 동역자가 있습니까? 그 동역자가 목회자이든 성도이든 상관없이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거짓복음과 거짓전도자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거짓이 난무하는 가운데, 참된 진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보면서 이토록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그들이 온전한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는데 육을 벗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전한 말씀을 듣고 구원받는 영혼이 있었기 때문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믿음을 가진 성도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여러분을 만난 것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위해서 기도해주는 그런 성도인지 묻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만난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곁에 있는 믿음의 형제에게 그런 신뢰를 받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아끼고 사랑하실 것이며 더 많은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받는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낮춰야만 인정받을 수 있으며, 오랜 세월을 믿음으로 살아내야만 무너지지 않는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쌓은 신뢰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배신하지 않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단단하게 맺어진 형제의 사랑입니다. 이처럼 복음으로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기를 희생하는 노력이 없다면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것보다 성도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성도를 사랑할 준비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조금만 헌신하면 부끄럽지 않도록 높여 주시고 채워 주십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삶으로 살아내야 하므로 성도에게 신뢰를 받는다면 하나님께서도 그 성도를 인정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모든 힘을 버리고 스스로 연약해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세상의 소유가 없는 사도 바울을 보지 않고 영적인 충만함을 보았기 때문에 끝까지 섬길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영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은혜로 살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마음으로 살 것인지 믿음에 따라 결정하겠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처럼 엄청난 차이가 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을 말씀으로 잘 분별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성도는 그 은혜를 영원토록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9-10절

9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말씀과 성령 충만으로 점점 더 풍성한 믿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기를 늘 기도하였습니다. 말씀과 지혜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믿음을 세워야만, 10절의 말씀처럼 선함과 악함을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으며 그 지혜가 믿음을 온전하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어둠에 있는 죄인이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성도가 영적으로 선한 선택을 하지 못하면,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날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구원의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을 사용하여 회개하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오직 구원을 위해서 성도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금 사람의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을 사용하고 계신다면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깎고 다듬는 은혜를 베풀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지혜가 여러분을 분명히 살릴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오직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이런 신앙은 구원을 받는 것은 물론 상급을 받는 믿음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바울을 돕는 신앙은 이미 세상에서 부활한 자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를 읽다 보면 다른 서신서와는 달리, 바울 자신을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사도라고 강조하기 보다는 예수의 종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 도전하지 않았다는 것과 바울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바울이 전하는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인정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도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사도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사도라는 신뢰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신뢰받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미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인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이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사도라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알아듣고 헌신하는 그 성도들에게, 바울은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어서 깊고 풍성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부족한 자신을 사도로 인정하고 전하는 말씀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깊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11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지혜롭게 선과 악을 잘 판단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마지막 날 흠 없는 모습으로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 비록 감옥에 갇혀 있는 몸이지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시는 많은 의의 열매를 맺어 축복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지금 감옥에 있는 바울이 자신을 돕고 있는 성도들을 축복하며 위하여 기도하는 모습은 어쩌면 주제 넘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영이 영을 다스리는 영적인 세계의 질서입니다. 축복은 감옥에 갇힌 바울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감옥에서 드리는 바울의 기도는 응답될 것이며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중보기도는 자신의 처지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보다 세상적으로 부족해도 상대방이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기도하는 것이 중보기도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죄인이 구원받고 형제들이 회복되는 능력의 기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만 해도 감사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는 귀한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말하지 않아도, 자랑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계시므로 넘치는 사랑을 받습니다. 목숨을 다해 말씀을 전하는 사도 바울과 그를 돕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서로 귀한 동역자를 만난 축복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할 때, 이렇게 귀한 동역자를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이며 상급입니다.

여러분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헌신하며 더 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충성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성도들을 도와주시는 성령께서 충만한 은혜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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