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 빌립보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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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장 12~21절

12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9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사람들은 악한 목적이든 선한 목적이든 목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선한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관심이 세상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현상만 보면서 비판하고, 불평하고, 기뻐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한 목표와 목적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예의 주시하며 휩쓸리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세상을 초월해서 하나님과 동일한 선한 목표를 설정하였고, 삶의 방향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강하고, 담대하고, 평안하고, 지혜로워야 하는데 그 이유는 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한 다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적이 없는 세상의 권세는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선한 목적을 중심에 두고 신앙생활을 해야만 바울의 신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해서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 사건을 통해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므로 기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빌립보는 의미 있는 곳이며 많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곳입니다. 교회를 세운 루디아를 만났고, 점치는 소녀를 고쳐주었으며, 옥에 갇혀 고난을 받는 순간에도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지하 감옥에 갇혀 찬양하고 있을 때 지진이 나면서 옥문이 열렸습니다. 죄인을 지키던 간수는 죄수가 도망을 치면 그 사람 대신 자기 목숨을 내 놓아야 하므로, 죄인들이 당연히 도주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결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바울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하자 간수는 당연히 도주했어야 하는 죄수들이 자신을 부르자 너무 놀라서 바울과 실라에게 달려갔습니다.

세상의 상식을 벗어난 이 상황을 보면서 그는 바울에게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복음의 핵심적인 말씀을 알려주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환경을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고 사람들을 구원했습니다. 그가 걷는 십자가의 길은 죽음을 각오한 길이었습니다.

복음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기꺼이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세상은 완벽한 어둠이므로 진리의 환한 빛을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면 핍박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랑하는 영혼들을 어둠에 둘 수 없어서 죽을 각오를 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빛을 더 밝게 하므로 어둠에 있는 영혼들에게는 천국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바울의 고난을 통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복음을 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자, 바울은 자기가 당하는 고통이 도리어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빌립보서 1장 15절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욥이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다고 고백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 즉, 악인과 의인은 모두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위이며,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선택했고, 혹은 선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보혈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시므로 선택을 받고 받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진리를 전할 것이고,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리가 믿어지거든 택함 받은 줄 믿고 열심히 성도의 삶을 살아내면서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바울의 능력을 투기하여 방해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자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앞선 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인간의 의가 중심에 서기 때문에 바울처럼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을 시기하며 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른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전하고도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상은 결과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늘 조심해야 합니다. 결과를 위해서 세상적인 방법을 쓴다면 하나님께 책망을 받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고난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한 사도 바울을 칭찬하시는 하나님이므로 다른 성도들의 헌신을 시기하거나 핍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자기의 고난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자신이 받은 연단의 경험을 이용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복음을 위한 노력이지만 전할 때마다 자기는 살아온 세월을 생각해야 하므로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단을 통해 신앙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의심하는 사람에게 충고도 해 줄 수 있고, 악한 길로 가지 않도록 막는 노력도 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그만큼 성장했으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성장한 성도가 그 고통의 시간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 지혜를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전에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했을 때 성도들은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바울은 회심했지만, 그 누구도 바울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바나바는 바울이 회심했다는 것을 믿었고, 그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기꺼이 그의 동역자가 되어 준 것입니다. 그 때 바나바는 모든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바울을 앞세워 주었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인정했으며 바울로 하여금 진리를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난 바나바는 복음이 왜 땅 끝까지 전해져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를 드러내지 않은 것입니다.

바나바는 자기가 아니더라도 바울처럼 성령 충만한 사람이 복음을 전하면 된다는 선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도록 한 이런 겸손이 진정한 성도의 자세이며 성숙한 인격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17~18절

17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사도 바울은 어떻게 이런 신앙을 가질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 때문에, 도리어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이 도리어 기쁘다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격은 바로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했던 바울이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이런 모습은 구속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이고 싶은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높이고 자신이 낮아지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하게 되면 자기의 의를 세우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혀 있는 고통을 당하더라도 이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다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육적인 고난이 심했지만, 간절히 기도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이 있기에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를 높여 드리기 위해서 목숨을 다해 충성하는 바울이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진 성도를 향한 사랑도, 그리스도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드린 믿음도, 육신을 벗고 나면 천국에 간다는 확신도 성령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런 확신이 있기에 그는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만 전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 사도바울과 빌립보교회 성도들처럼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기독교는 변질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울은 복음 때문에 수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핍박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고난의 삶을 살면서 기쁘다고 말하는 바울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세상의 권세와 화려한 겉옷을 하나님 앞에 벗어 놓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넓은 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좁은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세상의 행복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택했기에 사람들이 조롱하고 핍박해도 모든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목적을 가지고 헌신하는 것은 충성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의를 올바로 깨닫는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모두 헌신하는 것이 아니며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쌀에 티가 섞여 있는 것처럼 악한 자도 있지만, 선한 성도의 헌신이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가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지만, 이 땅에서 고난을 받는다고 하여도 복음을 위해서 순종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자기는 오직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 속에 사도 바울의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이 너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살아서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니 축복이고, 살면 더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 할 수 있으니 축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죽도록 고난을 당하면서도 자신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충만하게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겸손함을 보여드린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사도 바울은 돌에 맞아 죽을 정도로 핍박을 당했는데, 그 때 그의 영혼이 천국인 셋째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바울의 영혼은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신비한 말을 들었고, 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직접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놀라운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는 천국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어둡고 혼란스러우며 가치가 없는 곳인지 알게 되었으므로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만약 바울이 천국에서 본 것과 들은 계시를 자랑했다면 이런 고난을 당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것은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의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육을 벗고 천국에 가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만을 위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 천국에 가는 것보다 지금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석방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죽음이 두려워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성도들은 더럽고 추한 세상에서 거짓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죄를 짓고, 살인하며, 거짓말하고 도둑질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두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 말씀은, 바울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죽는 것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방법이므로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의 백성을 구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의 백성을 구별 하는 기준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편에 있는지 왼편에 있는지 보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만이 부활할 수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살아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에서는 성령의 도움을 받고 살다가, 육신을 벗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므로 사나 죽으나 복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믿어져야만 세상의 것을 욕심내지 않고,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 두렵지 않은 성도로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하나님의 일을 해서 좋고, 또한 죽는다고 해도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사나 죽으나 모두 유익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도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지금 죽어도 하나님께 가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므로 기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바울과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삶을 산다면, 성령께서는 세상의 거센 물살에 휩쓸리지 않도록 지켜주실 것입니다. 세상은 죄가 흘러가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세상에 살고 있는 그 자체가 고난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더욱 믿음의 울타리를 세워야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많기에 전도하기 위해서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 마음이 갈등하고 있었지만, 이 두 마음은 모두 그리스도를 위한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의 믿음은 정말 충만했습니다. 솔직히 자신은 당장 죽는 것이 좋은데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두고 죽는다면, 그들이 실족할까 봐 자신이 조금 더 살아 있는 것도 그들에게 유익하겠다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입니다. 살고 죽는 것은 육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육이 죽더라도 그의 영혼은 영원히 산다는 것을 알기에, 유한한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면 더 살아서 영혼들을 구원하는데 자신을 희생할 수 있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영접하기 전 옛사람을 버리고 성숙한 새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던 자들의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너희들에게 유익하다고 말하는 사도 바울의 담대한 믿음을 우리들이 닮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는 성도답게 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성도답게 사는 것은 말씀으로 인내하며, 희생하며, 겸손하게 살아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늘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답게 살아야만 사도 바울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으며 그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세상의 조롱을 받을 만한 죄를 짓는다면, 여러분은 세상을 향해 절대로 복음을 전할 수 없고 하나님께 간구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복음을 전하겠다는 믿음으로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말씀을 거부한 세상이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삶은 구원의 증거가 될 것이며, 세상의 법을 어기지 않는 성도의 삶은 진리를 전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복음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성도에게는 안식이지만, 세상에게는 심판이기 때문에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 복음을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복음을 막기 위해서 성도들을 괴롭힌다면 그것이 더 큰 심판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은 핍박을 받을지라도 두려워 도망치기 보다는 사도 바울처럼 당당하게 믿음으로 맞서서 영적 전쟁을 해야만 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절대적인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잠시 왔다가 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형제들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어둠에 가둔 우리의 형제들을 절대로 내어주지 않을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사탄을 대적하는 과정에서 핍박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훼방하기 위한 이교도의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에바브로디도에게 편지를 보내며,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이교도의 훼방과 핍박을 이겨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바울의 시대처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복음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십자가를 조롱하며,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도록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도들이 믿음과 타협, 둘 중의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그것은 온전히 성도들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사탄은 목회자와 직분자라는 가면을 쓰고 교회에 들어와 성범죄를 저지르고, 세상의 방법으로 교회를 이끌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지만 성도들은 분별하지 못하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속이는 사람이나 속는 사람들은 모두 사탄의 동조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보인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탄에게 동조하며 그리스도의 희생을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은 절대로 같지도, 비슷하지도 않습니다. 방법도 다르고, 판단도 다르며,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며, 법도 다르기 때문에, 세상에서 통하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교회에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이,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이 구분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식은 세상의 지식과 다르며, 칭찬하시는 이유도 다르고, 책망하시는 이유도 다르기 때문에 성도들이 영 분별을 하지 않으면 교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버리라는 하나님과 세상을 가지라는 사탄이 어떻게 같겠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와 영혼구원을 위해서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성령의 마음을 안다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그리스도를 위해서 정직하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울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 것처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헌신하는 여러분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헌신한다면, 인간의 노력으로 하는 것처럼 힘들거나 두렵거나 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도록 충성하여 하나님께 축복을 넘치게 받아, 연약한 성도를 돕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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