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 빌립보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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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4장 1~9절

1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이 인자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라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적 성품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읽어보면, 성 육신 하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영적인 부분을 깊이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연대는 A.D 80~90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기 전에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자라고 소개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 직면하자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죄의 대속하심과 부활을 전하셨을 때 막연하게 믿기는 했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사랑하셨던 그가 만약 끝까지 예수님을 의뢰했다면 그에게 피할 길을 주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매를 맞고 비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고 사도 요한은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자기가 따라다니던 초라했던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신 것을 보자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했을 것입니다. 죄는 시간이 지난다고 잊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믿음이 성장하거나,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 자신이 지은 죄가 더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더 커지므로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보자 용기가 사라졌습니다. 재정을 담당하면서 헌신했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기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잡아가라고 의연하게 말하기에는 영적으로 너무 어렸습니다. 가룟 유다를 보면 앞선 자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곁에서 많은 일을 감당했던 가룟 유다의 행동은 다른 제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성화되기 위해서는 들은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면서 자신의 믿음을 만들어야 하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것에만 급급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때만 해도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했고 호흡이 끊어지는 즉시 흙으로 돌아갈 육신이 죽는 것이 두려울 때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고 나서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만나자, 처음부터 고난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비참하게 운명하셨던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만왕의 왕으로, 심판 주로 계신 것을 보면서 믿음으로 결단하지 못했던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1~12절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볼 때 메시아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영적으로 깊이 실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자 자기들의 구원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알게 되었고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핍박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생명책과 사람들의 삶이 기록되어 있는 책들이 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과 행동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말씀대로 살지 않은 삶이 죄이기 때문에 그들의 죄가 기록된 책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선한 말과 행동을 한 사람들의 상급이 기록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 모든 책들을 보자, 예수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내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라던 말씀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모두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을 때는 생명책이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알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삶이 보좌 앞에 펼쳐져 있는 책에 낱낱이 기록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삶의 모습이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보좌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도, 생명책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성령께서 보고 들은 것처럼 알려주고 계십니다.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를 만났고, 생명책도 보았고, 말씀을 직접 들었으므로 우리는 믿음의 형제가 경험한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깨달은 지혜를 우리가 본 것처럼 믿는다면,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이며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많은 사도들은 고난을 당하며 직접 보고 들은 것과, 깨달은 하늘의 비밀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사도들이 천국에서 직접 본 것을 모두 사실대로 기록했는데도, 성경을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교회에서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혜를 갖지 못하면 정직할 수 없고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에게 그의 언약을 지켜주시기 위해서 기업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참 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이 만난 하나님을 만난다면 성도들을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모진 고난을 당해도 사도 바울처럼 성도들이 자신의 기쁨이며 면류관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악을 미워하므로 교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렇게 선한 사람은 힘을 가질수록 감사하며 구제하는 것과 형제를 높이는 것을 좋아하므로 교회가 윤택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베푸는 것에 인색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배신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하며 정직하게 순종하는 사람들과 일하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2절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교회 일을 하면서 각자 다른 판단을 내렸고, 자존심을 내세우며 다투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 사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판단하고 계시는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지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시면 지체는 그 뜻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명령과 이 두 사람의 생각이 같다면 이들은 다투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투기 전에 어떤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교회를 위해서 일한다는 이런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은 결국 교회를 분열시키고 말 것입니다. 이들은 일하는 방법이 달라서 의견 충돌이 일어난 것이므로 조금씩 양보해야만 합니다. 두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고집했을 것입니다. 물론 교회 일을 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부딪히기도 하고, 자기의 생각과 방법이 옳은 것 같아서 상대를 판단하고 대립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목회자의 입장에서 권면한다면, 이 일이 누구를 위한 일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문제가 아니므로 양보하고 관용을 보인다면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자존심을 세우는 곳이 아니며, 지식과 소유를 뽐내거나 자기 생각과 방법을 주장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의 방법과 지식으로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곳이므로, 겸손하게 믿음으로 앞선 자들의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다툴 시간에 복음에 힘쓰고 있는 글레멘드와 헌신하는 성도들을 도와주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의 다툼은 잘못된 믿음에서 생긴 일이므로 묵묵히 헌신하는 다른 성도들을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잘못 행동하면, 그것을 보고 있는 다른 영혼이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아주 중대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자신의 의는 반드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기에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분쟁으로 교회가 분열될 것 같아지자, 급기야 사도 바울은 두 사람을 향해 생명책을 운운하며 관용을 베풀고 화합하라는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보다 인간적인 생각이 더 크기 때문에 감정적인 다툼으로 번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지는 것 같아서 자존심을 세우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하다가 급기야 죄를 짓습니다. 이럴 때, 누군가 말씀으로 중심을 잡고 중재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람들 곁에는 더 분별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편을 가르기 때문에 결국 교회가 분열되고 맙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면 양보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감정싸움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도 덕이 되지 않지만, 자신의 신앙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잠잠히 인내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정말 억울하다고, 내 의견이 옳다고 말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보할 수 없다는 그 생각이 정말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뜻을 굽히기 싫어서 고집부리는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무조건 들어야 합니다.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고 멍에를 매야 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숙한 성도로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면서 관용을 베풀라고 한 말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죄를 짓는데도 무조건 용서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무조건 참고, 근심이 있는데도 웃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성령께 맡기고 인내하며 얻는 지혜를 경험하면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산다면, 세상의 근심은 결국 성도들의 것이 아니므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성숙한 성도는 교회를 분쟁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며, 성도들의 화합을 깨면서까지 고집을 피우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몸이 된 성도들은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일을 하다가 멈출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욕심 때문에 멈춰야 할 시점에 멈추지 못하면 선을 넘게 되므로, 다른 성도에게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손이 발에게 나만 있으면 되니 너는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눈이 손에게 내가 보고 판단하면 되니 너는 필요없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지체가 모두 서로 화합할 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과 지혜와 관용은 교회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도 선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고 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법을 어기고 관계를 해치면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속이는데도 가만히 있거나, 일방적으로 당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갖추고 상대를 온전히 판단하는 명철을 가져야만 세상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야 하며, 세상에서 행하는 착한 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 모두 정직하게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심령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복음을 위한 선한 행위만이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21장 3절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해서 제사를 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공의는 선과 악을 분별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완전하고 의로운 법을 기준으로 잘못된 것이나 잘된 것을 가감 없이 판단하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공의를 기준으로 성도들을 판단하시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선행을 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동작 하나만 봐도 그 아이가 품행이 청결하고 정직한 아이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사는 모습만 보셔도 그의 믿음이 정직한 것인지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겉으로 드러내는 행위는,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와 같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결 같은 신앙을 갖지 못하면 감정에 따라 어떤 때는 성도들이 본받을 만한 믿음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울창한 가시나무처럼 날카롭고 위험한 모습을 드러내어 성도들의 마음을 다치게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있으면 교회가 안정되지 못하고, 성도들의 심령이 상하기 때문에 늘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칭찬받는 성도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며 언제나 바른 삶을 살기 때문에 그 성도가 교회에 있는 자체로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고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습니다. 가인이 곡식을 드렸기 때문에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며, 아벨이 양을 드렸기 때문에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늘 한결같이 선한 삶을 살아낸 아벨과 그가 드린 제물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삶을 인정하셨기 때문에 그가 드린 제사와 제물이 정결하므로 받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고 하면서 주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아주 두려운 말을 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사람이 누리는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서로에게 너그럽게 대하며 영적으로 인내하라고 말 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을 보신 것처럼 이들의 삶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 때문에 다투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행동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 일을 삶의 연장으로 보시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개인이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영적으로 인내하며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본성을 이겨내고 믿음을 지켜내는 성도들은 미련한 자들이 다툼을 일으킬 때 선한 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비록 다투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분명히 선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 마음에 숨겨져 있는 믿음과 선한 마음을 꺼내어 그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만난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는 뜻이므로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이런 작은 다툼으로 그 모든 귀한 것을 망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면서, 인간적인 판단과 욕심으로 조급해하지 말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양보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두 사람이 서로 관용을 보인다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세상 모든 것이 다 끝이 나는데 생명책에 기록 된 성도들이 영적으로 흔들린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미련한 것이므로, 두 사람이 말씀으로 돌아간다면 화해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언제나 참 되고 정직하며, 경건한 본을 보여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옳고 공정하고 흠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정결하고 깨끗하며 순결한 삶을 살면서 즐겁고 유쾌하며,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칭찬받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분명한 판단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행동을 할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이런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의심하는 마음을 도구로 삼아,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을 쉽게 하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령께 의지하며 혈기 내지 말고 마음과 생각을 지켜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났을 때 양보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조금씩 양보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함께 공유한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낮은 자리에서 서로 겸손함을 보인다면 고난을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동역자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결국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런 귀한 성도가 사탄의 조종을 받아서 교회를 흔든다면 그 죄를 어떻게 용서받겠습니까? 서로 용서하고 품어주며 세워준다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하늘의 능력을 덧입혀 주신 것처럼, 여러분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며,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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