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 빌립보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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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푯대를 향하여

빌립보서 3장 4~16절

4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여러분은 사도 바울의 신앙을 보면서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체를 신뢰한다는 것은 율법적인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세가 받은 율법을 지켜내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신앙을 가진 바리새인들에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속지 않도록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받는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진리를 모르는 신앙의 행위는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도 바울이 전한 말씀과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한 뜻을 잘 이해하기 바랍니다. 구원의 방법이 은혜에서 행위로 바뀐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도 바울의 말과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야고보의 말은 같은 뜻이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성도들이 자신의 일상을 보혈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충만한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아름다운 그림이며 이것을 믿음의 행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이 보혈의 그림이 없다면, 그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증거이므로 죽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은, 성도들이 믿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영접하면 보혈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그 보혈을 가진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에 들어갔을 때, 라합은 정탐꾼들과 약속한 대로 집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았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해 이스라엘 군사들은 라합의 집 창문에 달려있는 붉은 줄을 보고 그 집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살려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영생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며, 붉은 줄을 내리는 라합의 행동이 바로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5~6절

5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개인 사생활에 대해서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그를 무시하며 복음을 방해하자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학벌과 가문과 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준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이스라엘 족속이며,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 받은 진정한 유대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로 순수한 히브리인이며, 가말리엘 밑에서 철저하게 율법도 배웠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다해 충성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봤을 때, 바울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모범생이었으며, 부모는 상당한 권력가이며 재력가입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교육받은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섰지만, 그리스도인을 체포하기 위해서 다메섹 도상을 지날 때 하늘에서 홀연히 빛이 비추며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늘에서 비추는 빛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그는 눈이 멀었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나니아 선지자의 기도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즉시, 자기가 핍박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자 그는 자랑이었던 세상의 소유를 복음을 전하는 데 해로 여겼습니다. 율법이 곧 신앙이라고 생각했던 가족들의 핍박을 피해서 선교의 길을 떠났으며,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학벌과 권력을 모두 버렸습니다. 그 당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은 그 자체로 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주고 시민권을 샀지만, 사도 바울은 부모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바울이 버린 세상의 권력을 갖기 위해서 죄를 짓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지만, 바울은 그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가문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바울의 말을 듣고 있던 바리새인들은 그 좋은 가문과 학벌을 왜 버리고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지 바울이 더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세상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라는 확신이 있었고, 복음이 진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버릴 수 있었다고 강력하게 선포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이 부러워하는 혈통, 재산, 학벌을 가지고 있다면,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위해서 모두 버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선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보혈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을 보면 아주 특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죽을 수도 있는 바울의 집안에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하는 여리고 성에서 라합을 부르시고, 그 여인을 통해 정탐꾼을 살리시며, 그 여인과 집안에 있던 가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아주 멋진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도 아주 특별하게 부르셨을 것입니다. 사탄이 지키고 있는 세상에서 오직 여러분, 한 분을 불러내기 위해 사탄과 큰 전쟁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이기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의 역사를 성취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천사에게 명령하시며 여러분의 영혼을 어둠에서 구하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을 찾아다니며 핍박하고 있는 바울을 전도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할 것이라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난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갖게 되므로, 어둠이 빛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영육간의 탁월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았기에 세상의 권세나 학문보다는 하나님의 지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바울이 개종했다는 소식은 바리새인과 유대인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율법을 버린 것은 선민사상에 대한 배신이며,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라고 생각한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전도하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즉시, 새 사람이 된 바울입니다. 이런 바울이 전하는 진리를 듣고도 사람들은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의 기회를 받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듣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는 바울처럼 고난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입으로만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향해 평생 가야 하기 때문에 고난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바울은 선교여행을 떠났을 때 많은 고난을 받았는데,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았으며, 강도를 만났고 파선하여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매를 맞았다는 것은 지금처럼 편하게 설교하거나 전도지를 나눠주는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믿음으로 전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바울을 심문하는 로마 행정관 곁에는 양쪽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도끼를 들고 있는 수행원이 동행했습니다. 그를 릭토르라고 불렀으며 사람들을 고문하는 매질 전문가였습니다. 행정관이 치라고 명령을 내리면, 릭토르는 다발 중에서 가장 강한 매를 골라서 바울의 등을 39대를 때리는 것입니다. 건장한 릭토르가 때리면 사람들은 거의 실신했다고 합니다. 매를 맞다가 실신한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갖다 버릴 정도로 그들의 핍박은 대단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도 사람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가 되라는 사명을 주셨을 때 바울은 주저 없이 고난의 길로 뛰어 들었습니다. 배가 파선되어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닷물에 빠졌을 때, 지옥이 이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지옥으로 사람들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여러 번 죽을 뻔 해도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탄이 강도보다 더 두려운 존재이기에 사람들이 지옥에 가지 못하도록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굶고 춥고 헐벗은 날이 많아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불쌍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죽을힘을 다해 인내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과 안일을 버렸다는 말씀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곤고한 사람이라며 하나님께 절규하듯 고백했습니다.

그의 안에서 두 마음이 싸운다는 말을 들으면서, 그 역시 복음의 길을 가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편히 사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즐거운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말씀 안에서 살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견뎌낸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9절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이 세상의 권력과 가문과 학벌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면, 사람들은 그런 힘을 가진 바울과 친하기 위해서라도 복음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계획과 뜻을 알기 때문에 세상을 힘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새로운 몸이 된 자기가, 세상의 죄를 주렁주렁 달고 있을 수 없어서 단호하게 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감사하여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살았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처럼 죽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성을 다해 율법을 지켜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 죽어 주신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성령의 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상대할 수 없는 악한 영이므로 성령께 의지해야 합니다. 본향으로 가는 도중 잠시 머무는 이 세상과 세상의 법과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가치 없는 선택을 하지 않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7장 3~4절

3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4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유다 사람들은 여호와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성전에 왔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밖에서는 하늘 황후에게 자식을 바치는 악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전을 보면서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이 역겹다고 하시며,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진노하셨습니다. 이렇게 악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전에 와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고백하는 그들의 가증한 모습을 보시며 이 세대를 끊어버리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더럽고 추한 마음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성도들은 늘 정직하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났다면, 바울처럼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마지막 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율법이나 사람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레미야의 간곡한 부탁을 버리지 말고 신앙의 행위를 바르게 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평안과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면 영과 혼과 육이 분리되므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모두 사라집니다. 천국과 지옥을 믿든 믿지 않든지, 죽음을 맞이하면 영혼은 천국과 지옥 둘 중에 한 곳으로 갈 것이며, 육은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10~11절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것과 십자가를 지신 것과 부활하신 것을 사실로 믿는 믿음입니다.

성도들은 삶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경험했을 것이고, 영적인 성장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부활할 것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육체적인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실존한다는 확신과, 사후 세계가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세상을 초월한 믿음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런 온전한 믿음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부활의 기쁨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보면,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면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었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죽은 우리를,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새 생명을 주셨고 새 생명을 받은 자로 살아가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헌 부대를 버리고 새 부대를 가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로마서 6장 5절에, 만일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믿음이 있다면,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이 사실로 믿어지므로, 이 세상에서 부활한 자로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죄의 종노릇 하던 옛사람, 본성대로 살던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는 몸은 이제 없습니다. 욕심과 정욕으로 가득했던 몸이 있을 때는 죄의 종노릇 했지만, 이제 하나님의 의를 덧입게 된 새로운 몸이 되었으므로 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처럼, 새 생명을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한 자로 살아가면 됩니다. 육신의 죽음과 상관없이 영원한 생명을 받는 산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산 자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신 것처럼,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여러분을 산 자로 대하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활한 자로 살아가는 성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믿음의 행위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성도들이 죄를 짓는 것은 그가 의지를 가지고 죄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벗어난 것이므로 사탄의 영역으로 들어간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푯대를 향하여’라는 뜻은, 푯대를 똑바로 쳐다보라는 의미입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결승점 외에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마라톤을 할 때 뒤를 돌아보며 달리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구원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성도는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자기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지금까지 당한 고통을 모두 잊었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서 달려온 길이 고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앞만 보면서 달린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바울은, 죄의 짐을 다시 지지 않기 위해서 천국만 보고 달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구원이라는 작품이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좋은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달렸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성도들이 등불을 높이 들지 않는 한 바뀌지 않습니다. 어둠은 바뀌고 싶어도 어둠으로는 바뀔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그 어둠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줘야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다면, 어둠에서 길을 잃은 사랑하는 영혼들을 향해 빛을 비춰 주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과 라합처럼 스스로 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혀 있던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처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빛으로 세상 사람들을 인도한다면 그들 역시 새 생명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위해서 푯대를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간다면 성령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실 것이며, 잘했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 푯대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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