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 빌립보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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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빌립보서 4장 10~23절

10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21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시험을 받게 됩니다. 자기 믿음의 문제라면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는 문제도 그 누군가의 믿음까지 생각하고 책임져야 한다면 큰 시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목숨을 다해 헌신하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인생을 버리는 그들의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중에 본이 되는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자기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수없이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데도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여쭈어 보았고,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겠느냐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모세의 이 마음이 무엇인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이며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명령하셔도 사명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그는 거절하였습니다. 지금 자기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이 애굽 왕 바로이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지만 모세의 입장에서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바로 왕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는 어쩌면 바로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순종해야 했고,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시니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강한 설득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그에게는 큰 시험이었습니다. 동족이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백성에게 가야 했고,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바로 왕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모세는 망설였습니다. 성도들 역시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고 감당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지만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에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에게 아론을 동역자로 보내주시며 힘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결단한 성도들에게 믿음의 형제를 주시며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에 의지하여 열 가지 재앙을 내리면서 그 경험으로 인해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재앙을 하나씩 내릴 때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자신을 따르기 시작하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래도 애굽과 바로를 상대로 재앙을 내릴 때 그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혹시 내가 해 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나님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바로가 나를 죽이거나 백성들이 배신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고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는 기적은 모세의 믿음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이었습니다. 그런 기적들이 하나씩 쌓여서 이스라엘은 출애굽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생각지도 못한 시험이 닥쳤습니다. 모세가 목숨을 걸고 얻은 수많은 기적을 곁에서 경험한 백성들은 그 축복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삼았고 또 다른 기적을 바랐습니다. 인간적인 편안함을 원했고 욕심에서 나오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어떻게 애굽에서 도망쳐 나왔으며, 어떻게 얻은 해방인데, 그토록 원하던 것을 하나님과 모세 때문에 받았음에도 그들은 모세를 향해 자신들의 욕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4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난을 받았다면, 목숨을 걸고 자신들을 구해 준 모세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욕심이 더 컸기 때문에 자신들과 성정이 같은 사람인 모세에게 더 큰 기적을 바람으로 그에게 큰 시험을 안겼습니다. 지금도 보좌를 버리고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것을 보면, 백성들이 모세를 향해 불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모세의 입장에 서서 백성들을 보니 감사하지 않는 그들의 욕심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자신의 생명과 인생을 바쳐서 바로를 상대로 싸웠고 백성들을 이끌어 내었는데, 그들은 또 다시 불평하며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이끄는 대로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모두 해결해 주실 터인데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원하는 그들이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모세는 드디어 큰 시험을 만났습니다. 저는 모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다 알면서도 성경을 읽는 동안 마음을 졸였습니다. 물론 모세는 백성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들을 출애굽 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목숨을 다해 헌신했던 모세는 끝없이 자신들만 위하는 그들에게 화를 참지 못했고 절망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그들을 마음에서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봤다면 모세는 그 시험을 이겼을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애굽에서 우리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죽게 하느냐고 불평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모세는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 헌신한 자신을 몰라주는 서운한 감정에 속은 모세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자기가 명령하면 재앙이 내려졌고 바로가 벌벌 떠는 것을 보았기에 어쩌면 자존감이 높아졌을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졌을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 백성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는데 말을 듣지 않고 불만을 토로하는 백성들이 한심하고 답답했기에 모세는 그만 화를 내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위해서 특별히 모세를 보내셨고 바로왕을 이기고 출애굽했으므로 무엇이든 원하면 하나님과 모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큰 은혜를 받고 난 다음이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베푼 기적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시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신 후 반드시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통해 믿음을 흔들어 보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선물을 사주고 정말 감사하는지 물어보는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그 다음 것을 원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을 오래 간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본성이 악한 인간이라는 것을 저와 여러분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큰 시험에 직면한 모세가 너무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수없이 힘든 결정을 했고 믿음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한 모금의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백성들을 바라보는 모세의 마음은 분명 서운한 마음이었습니다. 모세가 화를 낸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리지 못하느냐고 묻는 서운한 마음이 폭발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기는 목숨을 걸고 바로와 싸웠지만 그것을 몰라주는 백성들이 서운했던 것입니다. 서운한 마음이 그를 사로잡자,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감사한 마음까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애굽이라는 채찍에서 벗어났으니까 더 나은 삶을 달라는 그들의 욕심은 분명 모세에게는 큰 시험이었습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파도처럼 밀려오는 많은 시험을 이겨냈지만, 결국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백성들 때문에 지고 말았습니다. 시험에 넘어진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책망은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땅만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는 백성들을 하나님 마음으로 품지 못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지도자들이 조심해야 하는 시험입니다. 백성들을 인도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 모세는 화를 낼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잊지 않는 믿음을 갖기까지는 참 많은 인내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모세를 믿고 홍해를 건넌 그들이 분명 하나님과 자신에게 감사할 것이라고 너무 믿은 탓에 모세는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이 아니라 오직 모세 자신의 문제입니다. 지도자가 좌우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받으면 하나님과 지도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욕심대로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처음부터 절망이라는 것을 알고 그 가운데서 묵묵히 사명을 감당해야만 지도자로서 시험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절대로 자신의 의나 욕심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를 믿어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나도 큰 그릇을 가질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성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없으니 느보산에 올라가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가나안을 보라고 하신 후 그의 영혼을 거두셨습니다. 모세의 마지막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를 품에 안아 주셨기에 위로를 받았겠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대하지 못한 자신이 후회스러웠을 것입니다.

백성의 연약한 신앙이 모세의 신앙을 방해하는 것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 선포한 이 모든 말씀들이 그의 고통스러운 몸부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들이 성숙한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은혜와 감사 그리고 인내와 믿음과 사랑을 모두 자기 마음의 그릇에 함께 담아야만 사도 바울처럼 성숙한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인생이 힘겹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자신의 죄가 아닌 복음을 위해서 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은 하지만 그도 사람입니다. 그가 선택한 삶이지만 하루하루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뜨거운 여름에 물이 없어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 죽는 인생도 있을 것이고, 세찬 고난의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뿌리 채 뽑히는 인생도 있을 것입니다. 편안한 인생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또한 지도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겨운 일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어떤 것이 먼저인지 우선순위를 안다면 충분히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는데,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배운 일체의 비결은 올바른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지라도, 바울은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복음을 전하는 데 힘을 썼습니다. 풍족할 때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도와주시는 것으로 생각했고,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는 구원받을 영혼들만 생각했으므로 늘 한결 같은 믿음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스스로 힘든 자리를 선택한 것이므로 실족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4~15절

14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빌립보에서 마게도냐로 떠날 때가 선교 여행 초반이었기 때문에, 다른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선교의 길을 떠나는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의 헌신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매를 맞아가며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장막 짓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돈까지 번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은 부자보다는 노예나 서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기 힘든 형편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물질적인 도움을 준 성도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바울은 사명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큰 사랑을 베푼 성도들이 인간의 의를 버리지 못하고, 분쟁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바울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그들에게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권면하면 성도들이 받아들일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충고를 했을 때, 그 사람이 분명히 내 말을 들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것은 목회자로서 보람 있는 일입니다. 다행히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충고를 듣고,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회개하며 화합하였고 온전한 길을 가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순종은 한결 같아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같을 때만 순종하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미련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1~12절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힌 상태이기 때문에 심히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바울의 마음은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아는 입장에서 권면하는 것이니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말씀을 선포할 수 있도록 바울을 도와주던 성도들입니다. 이렇게 중대한 사명을 감당하던 교회가 분쟁하고 있으므로, 분쟁을 그치고 다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이 내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한 말은, 자기가 지금 너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견딜만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에게 고난은 이미 고통이 될 수 없고, 그 고통마저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받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나에게 주어진 사명은 내가 감당할 수 있으니까 성도들은 성도의 자리에서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려준 것입니다. 욕심이 전혀 없는 그의 말은 그 자체로 사랑이었습니다.

바울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인내했고, 견뎌냈으며, 자기의 목숨조차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바울을 도와주었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과 헌신은 하나님께 상급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급하게 편지를 보냈고, 바울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받은 성도들은 회개하며 다시 협력하기로 다짐하였습니다. 성도들이 회개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울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분쟁을 그치고 협력만 한다면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성도들이기 때문에 자기의 말을 듣고 돌이킨 성도들에게 감사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7절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바울이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면 목회는 참 어려운 자리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 칭찬받고 복을 받는 것은 그들인데도 그것조차 바울이 칭찬을 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말한 것은 분쟁이 그쳐야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는 성도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면을 성도들이 오해할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에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바울의 권면이 아니더라도 분쟁을 그치고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가 권면과 책망을 하는 것은 결국 성도들을 위해서 해 주는 말인데, 혹여 잘못 알아들을까 봐 조심하는 바울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책임이 참으로 무겁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이 선교를 하다가 물질적인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방법으로 바울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려운 가운데 헌신하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기를 원했기에 그 마음이 더 간절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을 떠나면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삶의 과정에서 어떤 믿음을 보여드렸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어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고, 어떤 이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믿음에 따라서 육을 벗는 순간 극명하게 갈라질 것이므로 후회해도 다시는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을 갖고 있습니까? 바울과 모세처럼 나를 돕는 것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룩한 믿음을 갖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권면하면, 상대가 듣는 즉시 돌이킵니까? 제가 목회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성도에게 권면하는 일이었습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분명 응답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권면하지만,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기 때문에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수없이 경험하고도 그 은혜를 버리고 모세까지 시험 들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도 바울을 돕고도 작은 일을 양보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쏟아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받는 은혜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의 신앙에 따라 드러나는 모습이 다른 것이며 받을 상급도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떤 삶의 모습으로 보여드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겸손한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큰 능력을 주실 것이며 그 마음에 평강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헌신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주실 것이며 악한 자와 악한 영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막아 주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형제들을 서로 도와주면서, 양보하고 인내하며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권면도 하고 필요에 따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기꺼이 나누어 준다면 하나님께서 더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빌립보서> 9번의 강해를 통해 바울의 간절한 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이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빌립보 교회가 신앙을 회복한 것처럼, 강해를 통해 여러분의 믿음이 주 안에서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는 믿음으로 충성하는 성도를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본이 되기 위해서 헌신하는 성도에게 관심을 갖고 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자족할 줄 아는 믿음을 보여드리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충만함을 통해 지혜와 명철로 지켜주실 것이며, 여러분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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