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계단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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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첫번째 계단 — 꽃밭 신앙을 가진 성도

에스겔 47장 1~5절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세상에 태어나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인도하셨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처음부터 말하고 걸어 다닐 수 없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처음부터 믿음을 가질 수 없기에 성숙한 성도로 성장하기 위해서 믿음의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믿음 생활을 시작하면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인지 의심하게 되고, 복을 받는 조건의 신앙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삶을 살면서 신앙은 점점 성장할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왔던 세상의 삶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로 살 것인지 아니면 믿음으로 살 것인지 고민하면서 모난 부분이 깎여지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며 서서히 성도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믿음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자신도 겪었을 방황의 시간을 생각지 않고 다른 사람의 믿음을 정죄하는 그 자체가 바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다른 성도와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조건 없이 감사했을 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이 진정한 성도의 믿음입니다.

사람마다 그의 성격과 노력에 따라 신앙의 그릇이 다릅니다. 책망을 받고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말씀을 듣고도 인간의 의를 버리지 못해서 사망의 길로 가는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신앙의 그릇이 다르기 때문에, 성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을 이해시키려 노력하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충만한 믿음을 가진 자도 있고 어린아이처럼 연약한 믿음을 가진 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아주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사탄과의 전쟁이기 때문에 성숙한 성도나 연약한 성도나 그들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탄은 공중 권세를 가지고 세상 사람은 물론 성도들까지 사망으로 이끌기 위해서 끊임없이 믿음을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만 의지한다면, 성도들은 사탄이 쉬지 않고 공격해도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각 지체가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천사를 통해 일하실 것이며 성령 충만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죄를 유발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도가 선악과를 먹지 않기 위해서 죄와 싸우지 않는다면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유의지로 죄와 싸우지 않는다면 성도의 믿음은 성장하지 않으므로, 성도들은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성장과정은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비판하거나 낙심하기 보다는 하나님과 일치되는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할 때 교만한 자도, 실족하는 자도 없을 것입니다.

에스겔 47장 3절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 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에스겔의 이름은 ‘하나님이여 강하게 하소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스겔서를 기록한 연대는 B.C 565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제2차 침공 때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에서 5년 되던 해에 선지자로 소명을 받았고, 22년 동안 예언을 하며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갖도록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는데,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았고 이스라엘의 회복과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죽음의 상징인 사해까지 흘러가면서 모든 생물을 소성케 하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끝내고 회복할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을 새롭게 회복시키시고, 훗날 이방인에게 거룩한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는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은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처음에는 발목에 그 다음에는 무릎과 허리까지 차오르는 것을 보았고, 마지막에는 사람이 감히 건너지 못할 창일한 강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물이 차오르는 순서를 보면서, 연약한 믿음에서 성숙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성도의 모습이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이 한 계단씩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성도가 차원 높은 신앙으로 성장하는 단계로 본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입술로 고백하지만,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성도들의 변함없는 믿음입니다. 입술로만 고백하고 행함이 없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믿음을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내 뜻을 버리고 고차원적인 하나님의 세계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성경을 읽지 않으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역과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야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영적인 세계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만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으며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리를 알면 그 사랑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계단은 꽃밭신앙의 계단을 시작으로 걸림돌신앙, 뾰족하고 낮은 산,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세상의 파도를 이기는 신앙, 창공을 나는 독수리의 신앙의 계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봐야만 볼 수 있는 마지막 신앙인 절망의 계단이 있습니다.

그 모든 계단들을 이어주고 있는 사다리가 있는데, 그 사다리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서 영혼을 향한 깊으신 사랑을 깨닫게 된다면 절망의 계단에 올라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절망의 계단에 서서 세상과 영혼들이 만든 죄의 흔적들을 보게 된다면, 영혼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아픔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꽃밭 신앙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출발했지만, 절망의 계단까지 성장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있으며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꽃밭 신앙을 만나게 됩니다. 꽃밭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신앙이 좋지 않다거나 독수리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영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독수리 신앙이 꽃밭 신앙보다는 매 순간 인내할 힘이 있고, 고난을 만났을 때 뛰어 넘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 독수리와 같은 신앙을 가지면, 영적인 지혜로 분별하는 눈이 생기기 때문에 사탄의 움직임을 쉽게 판단할 수 있으므로 속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람에 잘 흔들리는 꽃밭 신앙보다는 믿음과 말씀으로 인내할 수 있는 독수리 신앙을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예쁜 꽃밭을 좋아합니다. 활짝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을 무겁게 했던 세상의 근심과 사람이 주는 걱정들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꽃과 함께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이 있다면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며 행복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더 화려하고 자랑할 만한 큰 꽃밭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넓은 꽃밭은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에 출세와 성공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갖 정성을 들여 가꾸었을지라도 예상치 못하게 밤새 서리가 내린다면 한순간에 볼품없게 되는 것이 세상의 꽃밭입니다. 서리는 인간이 막을 수 없기에 꽃들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습니다. 생명을 잃으면 그것이 사람이든 식물과 동물이든 절대로 살려낼 수 없습니다. 피조물의 주인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에게 재물의 욕심과 시기와 질투와 혈기를 부어주며 성공을 위해 달려가도록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바벨탑이 높아질수록 성공했다는 기쁨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높아져가는 바벨탑을 기뻐할 새도 없이, 그것을 빼앗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강퍅한 마음으로 높은 죄의 담을 쌓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있으며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줄 수 없는 사탄에게 굴복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차가운 입김에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밭을 가져본 사람은 누구라 할지라도 꽃의 화려함과 향기가 주는 매력을 쉽게 잊지 못하므로 그 주위를 맴돌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쉽게 버리는 사람은 사탄의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도, 사탄에게도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꽃밭 신앙에 머물게 되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을 크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알고 굳센 믿음으로 산다면 꽃밭 신앙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이기에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자랑인 꽃밭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본성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믿음이 곧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를 갖는 것입니다. 이 새 부대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인간의 능력으로 볼 수 없는 영원한 시간과 세계와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될 것입니다. 새 부대가 없는 사람은 자기 꽃밭에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기만 사랑하신다는 차원 낮은 신앙을 보입니다. 내가 기도했더니 물질로 채워 주셨고, 내가 충성했더니 내 자녀가 복을 받았다고 간증하는 사람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꽃밭이 잘 되는 것을 보면 곧바로 왜 더 큰 복을 주지 않느냐고 불평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세상 사람이 나보다 앞서는 것 같으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진 종교가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고, 성공한 사람 앞에 서면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을 받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은 때를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족하지 못하면 더 넓은 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권력을 갖기 위해서 화려한 꽃밭을 찾아 세상으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흐드러지게 핀 꽃들로 밭을 채워도 하나님께서 찬 입김을 한 번 부시면 모두 얼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욕심껏 살아도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면, 육을 벗는 순간 그 소유는 모두 다른 사람의 것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에게 가난하게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 어떤 것이 우선인지 알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유가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선 순위를 알면 바다처럼 넓은 하늘의 세계를 알고 있으므로 찰랑거리는 한 컵의 물에 연연하지 않고 절대로 교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바벨탑을 쌓는 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가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바벨탑을 쌓기만 하면 자기의 이름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평생 쌓은 바벨탑을 저 세상에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부인 것처럼 소중히 여기던 우리의 육체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곳이 천국입니다. 인간이 노력해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탄이 노력해도 생명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잠깐 흔드시자 하나의 말을 사용하며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졌습니다. 지금 나라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바벨탑 사건이 사실이라는 증거이며 죄의 결과입니다. 이들처럼 소유가 많으면 하나님처럼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걸작품인 인간을 망가뜨리려는 사탄의 계략에 속은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사탄을 아비로 삼고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흘린 거짓말에 죄 된 마음으로 동참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초림 예수님께서 대속하신 것을 믿는 성도들이 사탄의 공격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품고 있는 성도들은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므로,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자녀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영육간의 복을 주시는 방법이므로 영혼이 먼저 강건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범사가 잘 되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창세기 19장 11절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천사들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들어왔을 때, 그 성 사람들은 천사들과 더불어 음란한 죄를 짓기 위해 문을 두드렸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감히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행동을 그들은 무리를 지어 왔기에 아주 당당하게 “끌어내라! 우리가 죄 짓자!”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미 죄가 관영했고 더 큰 쾌락을 원했던 사람들로 인해 동성애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죄에 무디어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들도 처음에는 죄가 된다는 생각에 망설였지만, 같은 행위를 반복하자 두려움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음란한 생각이 그들을 어둡게 하였고, 동성애자의 수가 많아지자 화인 맞은 심령으로 변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웠다면 천사가 눈을 어둡게 했을 때, 지금 왜 눈이 보이지 않는지 혹시 하나님께 심판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지칠 때까지 문을 찾았으며,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까지 쾌락과 음란의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소돔 성이 멸망하는 사건을 보면 사탄은 많은 시간을 갖고 인간의 성품을 서서히 변화시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때까지 사탄은 끝까지 인내하며 사람들을 서서히 세뇌시켜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탄의 노력으로 그들은 동성애를 죄로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지자 성을 바꾸어 즐기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천사를 보면서도 사탄이 조종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악한 습관과 더러운 환경에 물들어가면서 광대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버린 사람들까지 관심을 가지고 심판하러 오신 것을 보면 헌신하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는 하나님께 영생을 값없이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어주는 것처럼 하면서 믿어준 대가로 세상의 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보혈로 사망에 갇혀 있는 죄인들을 아무 조건 없이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다는 생각보다는 노아의 홍수 때 죽어가던 사람들처럼 자신들이 홍수를 피하지 못해서 죽는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모든 사람이 진흙탕에서 구르면 자기의 모습이 더러워져도 알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성도들은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경책을 갖고 있어도 읽지 않으며, 시간이 있어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소돔 사람들처럼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기복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말씀을 알려고 노력하는 성도에게 목회자가 되려고 극성을 떠느냐고 묻는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자리 잡자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진리의 말씀보다는 목회자의 학벌과 직분과 건물 크기를 자기의 믿음과 동일시하며 외적인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마지막 날에 있을 종말과 심판보다는 허상을 좇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이런 타락은 결국 거룩한 곳에 멸망할 가증한 것이 설 수 있도록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이렇게 타락한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기에 온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가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이 동성애를 인정하자 사람들은 거부감이 줄었고, 종교 다원주의가 힘을 얻자 유일신을 믿는 것이 편협한 신앙인 것처럼 핍박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모든 종교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기독교가 너무 사랑이 없는 것 아닌가?” 라고 혼란스러워 하면서 세상에서 소외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연약한 꽃밭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갖는 마음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성도들이 이런 신앙으로 흔들리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돌과 나무를 깎아 우상을 만들고 그곳에 절을 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죽어 있는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참된 그리스도의 진리를 찾아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사탄이 만든 꽃밭처럼 보이는 허상을 좇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기에 물질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위한 물질과 권력은 선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욕심으로 가진 것은 쓸모없는 쓰레기일 뿐입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는 밝은 곳에서 살아야만 세상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들을 귀와 보는 눈을 가지고 지혜롭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영적 열매를 보고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좀 더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높여 드리시기 바랍니다. 씨앗을 심으면 반드시 땅을 뚫고 싹을 틔우는 것처럼, 하나님께 믿음의 씨를 심으면 새들이 깃드는 나무로 성장할 것입니다. 모래 위에 아무리 웅장한 집을 지어도 오랜 시간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여린 신앙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썩고 맙니다. 인내하며 성장한 거목과 같이 성숙한 신앙은 어떤 비바람에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실 수 있도록 한 자리에 우뚝 서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서리가 내리면 한 번에 모두 잃고 마는 꽃밭보다는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거목이 되기 바랍니다.

믿음의 계단 · 첫번째 계단 — 꽃밭 신앙을 가진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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