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계단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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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두번째 계단 — 걸림돌 신앙을 가진 성도

에스겔 47장 1~5절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꽃밭 신앙일 때는 세상의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믿음의 문을 자주 닫게 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꽃밭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과 단절되어 공허하고 혼돈된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계단’ 두 번째는 신앙생활을 할 때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골라내야 하는 신앙입니다. 과연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일까 찾아보던 중, 저자는 알 수 없었지만 실패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나쁜 습관에 대해서 기록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기만, 즉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으로 양심에 벗어나는 일을 무의식 중에 행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강행하는 사람입니다.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강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일이므로 반드시 돌이켜야 합니다. 좁은 길을 가야하는 성도들은 사탄이 놓은 걸림돌을 보는 즉시 치워야 하는데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습관 두 번째는, 비생산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입니다. 즉,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아까운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입니다.

잠언 24장 33~34절

33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니 34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니라

선한 방법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돌이켜야 남은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며, 부지런해야 빈궁이 강도처럼, 곤핍이 군사처럼 몰려오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음란하고 난잡한 행실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는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이므로 영의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율법에 음행하는 자를 돌로 쳐 죽이도록 규정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음행이 하나님의 역사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기 때문에 어두운 세상에서 보면 성도들의 삶이 아주 잘 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곁에 있는 제자들을 사람들이 보고 질책하기도 하고 존경하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은 선하게 살지 않으면서도,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으니까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술을 권유하면서도 먹지 않기를 바라고, 하나님을 조롱하면서도 성도들만은 선한 양심을 지켜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들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걸림돌이 되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을 위해서 버려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부지런한 사람들이 잘하는데, 게으르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기 때문에 신앙도 성장하지 않습니다. 부지런하면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며 끊임없이 자기 훈련을 통해서 자신을 세워 나가기 때문에 성공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갈 때는 힘들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부지런한 노력이 있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성도들이 게으르다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진리를 위해 걸림돌을 치우면서 겸손하고 지혜롭게 산다면 믿음의 계단을 성큼성큼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예의 없이 행동하며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고 만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인간관계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지켜야할 선이 있습니다. 예의 없는 사람들은 거의 부정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집과 아집은 자신을 퇴보시키므로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좋은 인격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예의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어리니까 좀 더 있다가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때를 놓치는 원인이 됩니다. 부모의 행동과 판단과 결정을 보고 성장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며, 부부가 같은 생각과 동일한 말을 해야만 아이가 혼란스러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늘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과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본다면, 성도들이 어느 곳에서 하나님을 불러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응답하시며 선한 방법으로 인도하시므로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쓸데없는 논쟁과 문제를 만드는 사람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일에 있어서 어떤 것이 우선인지 알지 못하면 문제를 만날 때마다 올바로 판단할 능력이 없어서 논쟁을 만드는 답답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지혜가 있으면 아무리 문제가 산적해도 일의 우선순위를 알기 때문에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합니다. 그러나 미련하면 다른 사람들이 지혜롭게 처리하는 일조차 이해하지 못해서 문제를 다시 만드는 것입니다. 미련하고 게으르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며 시간을 낭비하므로 결국 그런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도 이렇게 악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 실패하는데, 하물며 성도가 이런 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성숙한 신앙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걸림돌은 인간의 의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의 판단을 믿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정과 혈기로 모두 버리고 성장을 멈추므로 결국 실패하는 인생을 살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모를 때에는 믿음으로 앞선 자들의 신앙을 따라 하거나 순종하기만 해도 비슷한 단계에 오를 수 있습니다. 자존심과 고집과 인간의 의를 버리고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걸림돌을 버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므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서야만 자기의 죄와 연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통해 인생이 얼마나 헛되고 헛된 것인지 깨달아야만 겸손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걸림돌을 피해 갈 수 있는 말씀의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않는다고 하였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여러분 자신을 살피는 지혜를 갖기 바랍니다.

창세기 19장 25~26절

25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세상을 마음에서 버리지 못하여 죽은 대표적인 사람이 롯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천사들에게 소돔성이 멸망할 것이니 빨리 나가라는 구원의 말씀도 들었고 천사들에 의해 심판의 자리에서 벗어난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진노를 받아 심판 받게 될 것이라고 미리 알려 주셨으므로, 미래를 알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롯의 아내와 같은 선택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롯의 아내는 천사에 의해서 억지로 구원의 길로 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아직 소돔성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멸망 받을 성에 남겨둔 재물, 보석, 인간관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알면서도 소유욕의 걸림돌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심판을 뒤로 하고 앞으로 달려 나가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는 결국 뒤를 돌아보는 죄를 짓고 소금 기둥이 되고 만 것입니다.

지금 롯의 아내가 당한 심판을 보면, 신앙은 억지로 이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믿고 따라줘야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정직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겠지만 진실하지 못한 신앙은 심판 받는 이 땅에 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식적인 행위보다 진실한 믿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전하는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자신의 계획을 3년 동안 계속 말씀하셨으므로 그 말씀을 진심으로 들었다면 형제들의 말을 믿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제자들과 여러 사람이 말하는데도 그 말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평상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늘 부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도마는 손의 못 자국을 봐야 믿겠다고 하였고 자신의 손가락을 못 자국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매우 정확하고 합리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확신으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도마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신뢰하지 못해서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도마를 보시며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는 인간들의 상식과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믿음은 인간의 상식과 지식과 이해로 갖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영적으로 믿어지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활하신 주님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믿고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에 믿는 것이고, 성령께서 믿게 하셨기 때문에 믿고 있으며, 전도자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인간의 의를 철저하게 버리지 않고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만이 순종하는 길이며, 말씀을 신뢰하는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모든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롯의 아내는 에덴처럼 아름다운 소돔성에 들어갈 때는 남편이 신앙이 좋기 때문에 세상의 복을 받았다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이 여인처럼 살기 편할 때만 감사하는 신앙은 인생의 고난을 만나게 되면 이길 힘이 없어서 쉽게 넘어집니다. 소돔성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들은 롯의 아내는 솔직히 바벨론처럼 큰 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천사가 알려주었을 때 의심 없이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소유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뒤를 돌아보고 말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욕심을 버리고 세상을 위해서 살지 말라고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은 생각이 많아질 것입니다. 세상을 위해서 살아온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롯의 아내는 끝까지 의심했기에, 소돔이 멸망하는 소리를 직접 들었고 자기의 소유가 다 타버리는 것을 직접 보았음에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롯의 아내의 설교를 듣는 것은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눈으로 본 다음 돌이키겠다는 것은 롯의 아내처럼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기복신앙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잘 사는 도구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신앙은 참 믿음이 아니므로 마음에서 모두 버려야만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잘 믿었기 때문에 자녀들이 성공하고 출세했다는 생각 자체가 바로 우상을 숭배하는 마음이며 롯의 아내와 동일한 신앙입니다. 물론 가난보다 부유한 것이 낫고 실패보다 성공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성공은 실패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우선순위인지 알고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롯의 아내가 재산을 두고 온 소돔성을 돌아본 것과, 지금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어주는 대가로 세상의 성공을 원하는 마음은 같은 것입니다. 롯의 아내처럼 세상을 놓지 못해서 멸망의 걸림돌에 넘어지게 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나팔소리를 들으며 공중으로 올려가는 성도들은 순수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공중으로 들림을 받고 천국 백성으로 사는 것이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정직한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부활도 영생도 없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참 된 진리를 갖는 것이 바로 구원 받는 길입니다.

성도들은 헌금을 잘하면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신다는 말씀을 계속 들었기 때문에 복을 받기 위해 열심히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보상심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의 책임인 것처럼 불평하며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건져 주신 예수님의 희생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얻을 이익을 위해서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하며,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믿음으로 흥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상처럼 사람의 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정성을 드렸다고 해서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의 신을 구분하지 못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과 상관없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수아 6장 18절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영적인 세계와 하나님의 뜻은 깊이 숨겨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간처럼 악을 행하지 않아도 구하고 두드리고 찾으면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것을 취하는 죄를 짓는다면, 이스라엘 전체가 잘못한 것으로 간주하고 화를 당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 한 사람이 지은 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했을 때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전쟁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마음대로 전리품을 갖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아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인간의 욕심을 이기지 못해서 외투 한 벌과 은과 금을 자기 장막에 숨기고 말았습니다. 그는 명령을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욕심의 걸림돌을 넘지 못한 것입니다. 아간이 생각하기를 비록 하나님께서 이기신 전쟁이지만 내가 여리고 성을 돌았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고, 내가 죽을힘을 다해 싸웠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니까 여호수아만 속이면 된다는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서 아간은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만 속이면 가질 수 있기에 포기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간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온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간이 사람인 여호수아는 속일 수 있지만, 여호수아와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성도는 죄의 짐을 지고 세상에 왔다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에 들어가는 거룩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육체를 벗고 오라고 부르시면, 아무리 소유가 많은 사람도 롯의 아내처럼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곳이 천국입니다. 여러분의 재물은 물론, 능력까지도 여러분의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역사의 한 점과 같은 시간을 잠깐 빌려 쓰다가 제자리에 놔두고 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인생 중에 예수님을 영접해야만 천국에서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사무엘하 11장 4절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탄이 목회자와 성도에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는 영을 분별하지 못하도록 지혜를 막는 것이며 음란과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심을 주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매이면 지혜롭던 사람도 미련한 판단을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다윗 역시 이스라엘이 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으므로 긴장을 풀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10장에 보면, 다윗은 아람 병거 칠백 대와 마병 사만 명을 죽이고 대승을 거둔 후부터는 전쟁에 출전하지 않고 궁궐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다윗이 죄를 짓는 것을 보면 차라리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훨씬 좋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적을 몰아내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시자 세상의 쾌락에 빠지게 되었고 부정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가장 악한 죄를 지은 때는 바로 근심 없이 편안하게 살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신 것은 걸림돌이 없을 때 더 성숙하라고 시간을 주신 것인데 큰 문제가 사라지자 세상을 기웃거리고 만 것입니다. 다윗은 왕궁 지붕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그녀를 보자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분별력과 자기 통제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언제나 지혜로운 판단으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던 다윗이 잠깐 방심하자 자기와의 영적 싸움에서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사탄과의 전쟁은 곧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힘들어도 사탄의 생각과 정욕을 이기는 것이 사탄에게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밧세바를 취한 다음, 나라와 왕에게 충직했던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살해하는 죄까지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극찬을 들었던 다윗이 사탄이 놓은 성적 걸림돌을 치우지 못하고 음란죄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이 사건이 다윗의 생애를 통해서 가장 악한 죄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멈추어야 할 때 멈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과 강간을 저지른 다윗에게 무서운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아비의 죄로 죽었고, 여러 명의 아내에게서 출생한 자녀들이 서로 겁탈하고 복수하고 살인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했습니다. 셋째 아들인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쫓아낸 것도 모자라,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는 패륜도 저질렀습니다. 다윗의 죄가 후손들의 불행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아람과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후에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경건한 신앙인도 다윗처럼 전쟁에서 얻은 승리가 마치 자기의 능력인 것처럼 교만하면 사탄이 놓은 걸림돌에 여지없이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패배와 연단만이 실패가 아니라, 기쁨도 위기가 되고 승리와 성공도 고통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편안할 때 찾아오는 성적 유혹과 쾌락과 잘못된 습관과 교만의 걸림돌을 치우지 못하면 우리도 다윗처럼 넘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을 것입니다. 꽃밭 신앙에서 보이지 않았던 걸림돌이 지금 보인다면, 말씀이 드디어 여러분의 인간적인 본성과 부딪히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그만큼 성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걸림돌이 보일 때마다 반드시 그 돌을 치우고 가야만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걸림돌을 치우면서 가다 보면 다른 사람보다 늦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있는 물질의 욕심과 성적인 욕망과 명예욕과 교만과 우상을 향한 걸림돌을 보여주시는 것은 그것을 치워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신앙생활 중에 가장 넘어지기 쉬운 계단이 걸림돌 신앙입니다. 화려한 꽃밭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믿음으로 살겠다는 결단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걸림돌을 치우지 못해서 세상과 타협을 하는 죄를 짓기 쉬운 시기이며 사탄의 유혹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입니다. 물론 어떤 계단이든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의를 부인하고 포기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자기의 연약함을 내어놓고 기도한다면, 신앙의 성장을 막는 걸림돌이 사라지는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항상 믿음으로 살고자 애쓰는 성도를 축복하시므로 담대하게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계단 · 두번째 계단 — 걸림돌 신앙을 가진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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