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계단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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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여섯번째 계단 — 창공을 나는 독수리와 같은 성도

에스겔 47장 1~5절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하늘의 왕이라 불리는 독수리는 보통 70년 정도 살 수 있습니다. 40년 동안 사냥을 하다가 부리와 발톱이 무디어지면 더는 사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독수리들이 없는 돌산을 향해 날아갑니다. 돌산에 도착하면 지금까지 사용했던 낡은 부리와 발톱을 돌에 비벼서 다 떼어냅니다. 부리와 발톱이 없는 독수리는 한동안 먹지도 날지도 못하지만, 새로운 부리와 발톱이 나올 것을 알기에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제 발톱과 부리와 깃털이 새로 나면 또 다시 높은 창공을 힘차게 날아오를 것이며 하늘의 왕으로 30년의 시간을 더 살 것입니다. 새로운 부리와 깃털이 날 때까지 인내했기 때문에 더 높은 창공을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내하는 모습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성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거짓과 위선, 나쁜 습관과 감정을 주저 없이 버릴 줄 아는 지혜와 결단이 있어야만 독수리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장점은 굳이 칭찬을 받지 않아도 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점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권면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칭찬 듣기를 원하므로, 믿음의 형제들이 해 주는 권면과 책망을 듣기 싫어하는데 그런 마음도 교만입니다. 자신이 잘한다는 생각 때문에 믿음의 형제들의 권면을 듣지 않는 것이며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새끼가 스스로 날 때까지 어미가 높은 둥지에서 새끼를 땅으로 떨어뜨리고 받는 훈련을 거듭했기 때문입니다. 새끼가 비행하지 못하면 그 자체로 죽는 것이므로 어미는 필사적으로 훈련을 시킵니다. 어미가 높은 곳에서 어린 새끼를 던지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새끼를 살리는 방법이므로 훈련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새끼는 어미가 둥지에서 밀어내는 그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떨어지면서 공포가 극에 달할 때 어미가 쏜살같이 날아와 받아주고 또 떨어뜨리는 것을 반복하자 그제야 자신을 밀어내는 어미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새끼도 어미가 되었을 때, 어미가 했던 그대로 사랑하는 새끼를 땅으로 떨어뜨리고 먼저 내려가서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런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높은 창공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독수리는 분명 승리자입니다.

우리도 창공을 나는 독수리의 신앙을 가지면 세상의 파도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독수리처럼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고난에 던지고 받기를 반복하고 계신 하나님의 수고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을 위해서 사용했던 부리와 발톱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부리와 발톱을 갖게 된 성도들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병기로 삼아 사탄과 담대하게 싸우는 거듭난 신앙을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독수리는 새로운 부리와 발톱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명처럼 아끼던 몸의 일부를 스스로 떼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겠지만, 쓸모없는 부리와 발톱을 떼어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입니다.

성도들이 인간의 본능을 이겨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알고 있지만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방법은 오직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교만과 인간의 의를 이겨낸다면 하나님께 큰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두려움을 이겨낸 자만이 높이 날 수 있으며,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창공을 힘차게 나는 독수리 신앙을 갖기 바랍니다. 독수리처럼 지혜로운 신앙을 가진 성도가 하나님의 기업을 축복으로 받을 수 있으며 구원을 위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5~16절

1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지도자로 모세를 택하셨습니다. 모세를 강한 지도자로 훈련시키기 위해 애굽 공주에게 맡기셨고, 왕자로 살게 하시면서 애굽의 문화와 사상을 자세하게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도망친 모세가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을 치는 목동으로 살게 하심으로 생명의 귀중함과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왕자로 40년을 살았고, 광야에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모세가 왕자와 목동으로 살면서 지도자로 성장하기까지 80년을 보내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서 모세를 바로 왕 앞에 세울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하셨습니다. 그는 목동으로 살면서 과거에 자기가 가졌던 권세가 얼마나 가치 없는 것인지,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갈대상자를 애굽 공주 앞으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자기가 왕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자,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헛된 영화였다는 것을 안 지금 하나님께 교만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어리석었던 그 시간들을 회개했습니다.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자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를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애굽에서 일으킨 기적과 담대한 믿음의 행위를 보면, 광야에서 훈련 받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과정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가 성숙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단이 필요합니다. 훈련을 받는 것이 고통스러워도 그런 시간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볼 수 있으며 참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인생이나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믿음을 보여드림으로 하나님의 인정과 신뢰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행복과 불행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반복되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성숙시키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성도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목회하기 전에 구역장으로 봉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구역은 모두 맞벌이 부부였기 때문에 모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구역장인데도 자기 가정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속사정을 전혀 알 수 없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목사님께서 그 구역을 맡아달라고 하셨을 때, 저는 그분들을 만나기 전에 먼저 그들의 마음이 열리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직장으로 인해 한 자리에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씩 각 가정을 찾아다니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분들은 말씀을 배우면서 성도로 성장했고 말씀을 깨닫자 스스로 전도하며 예배에 충실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구역이 일곱 가정으로 성장하자 제 열심을 스스로 칭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큰일이나 한 것처럼 우쭐한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작은 환상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하늘에 높이 떠 있는 일곱 개의 풍선이 보였고, 제가 손에 풍선 끈을 잡고는 너무 좋아서 활짝 웃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강한 힘이 제 팔꿈치를 탁 치니까 그 충격에 손에 쥐고 있던 풍선이 모두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날아가는 풍선을 보면서 내가 참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것인데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이런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수고했구나. 그런데 네가 힘써서 일했기 때문에 풍선을 얻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맡긴 영혼들이란다. 지금 너는 날아가는 풍선만 아까워하고 있지만 그 풍선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네 팔에 누가 힘을 주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앞으로는 언제든지 날아갈 수 있는 풍선을 보고 즐거워하지 말고 그 풍선을 네 손에 맡긴 나를 기억해라”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고,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풍선을 보고 좋아했던 제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풍선만 보는 저의 신앙과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모세의 신앙이 얼마나 다른지 비교가 되셨을 것입니다. 모세와 저는 똑같이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저도 시간과 물질로 헌신하며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의보다 인간의 의가 앞서자, 저의 헌신이 커 보이는 부끄러운 신앙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여러분을 독수리처럼 높여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창공을 날 수 있도록 바람을 조절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며,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믿음의 사람들처럼 살아온 인생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겨 놓고 갈 것입니다. 과연 어떤 그림을 세상에 남겨 놓고 싶으십니까? 만일 자녀들이 여러분의 인생 그림을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것보다 잘 산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께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인생 그림을 남긴다면, 그것보다 아름다운 그림은 없을 것이며 최고의 축복을 받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9~20절

19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20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모세와 여호수아의 신앙은 기적을 봐야만 순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신앙의 수준이 달랐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절대적인 순종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순종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만, 매 순간마다 자신의 의를 죽이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심을 다해 순종하면서도 늘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충성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광야에 머물 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계시는 것을 모세는 보았습니다. 그는 지금 애굽 군사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앞뒤에서 지켜주시는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을 본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거짓 없는 사랑을 보았기에 모세는 자기의 생명을 드리는 귀한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 왕의 끝없는 방해를 지금까지 받았고, 앞으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큰 어려움을 만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고난과 연단을 통해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인생 중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신 적인 있습니까? 안개처럼 의미 없는 세상과 악한 자들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시는 아버지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떤 환경이든 불평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한다면 모세처럼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장을 위한 훈련은 외롭고 고단하지만, 훈련을 마치면 협력하여 선을 이룰 동역자를 보내주시고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주실 것입니다.

독수리가 인내했기 때문에 새들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영적인 인내의 시간을 통과했기 때문에 영을 분별하면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지도자로 40년을 하나님만 바라보며 외롭게 보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축복의 근원이 되기 위한 연단의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는 방법은 다양했지만 세상에서 고립되고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은 동일했습니다. 비록 세상을 버려야 하는 고된 훈련을 받았지만, 결국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보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철저하게 세상과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혼자가 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살리기 위해 증인이 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증인도 없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깊은 뜻을 깨닫는 자만이 좁고 협착한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넓은 길이 아니기 때문에 외롭겠지만, 그 길로 가는 성도들이 인내하며 순종한다면 하나님 안에서 독수리처럼 창공을 나는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이삭은 자기 목숨처럼 아끼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더니 목숨보다 귀한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절대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번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크신 역사 가운데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으니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성도들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삭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모리아 산으로 가면서 궁금했을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불과 장작은 있는데 하나님께 바칠 제물은 어디에 있느냐고 여쭈어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했지만 그 마음은 괴로웠을 것입니다.

저는 두 사람의 질문과 대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이 잔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이삭의 질문을 받은 아브라함과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삭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직접 죽여야만 하는 그 고통을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영원한 생명과 그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찌르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시며, “네가 네 아들 독자를 아끼지 않았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이 부활 신앙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정말로 모르고 계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과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드러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믿음을 순종의 행위로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참 된 믿음을 행위로 보여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택으로 구원받은 여러분의 믿음을 온전히 보여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지막 결정을 하였을 때 그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인정하시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렸기 때문에 이삭은 죽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이미 죽은 아들입니다. 이제 이삭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평범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 아들이 된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보여드린 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을 통해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축복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를 통해 더 빛이 난 것입니다.

솔직히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생각으로 전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순종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지식과 욕심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한 조각과 같으며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와 같습니다. 한 조각의 구름이 넓은 하늘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으며, 작은 배 한 척이 그 넓은 바다를 어떻게 다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천 년이 하루 같으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아주 현명한 선택입니다. 생명을 주신 주인께 생명을 맡기고,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에게 인생을 맡기는 것은 성도들이 진실한 믿음을 가졌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에게 소중한 열매는 무엇입니까? 육신의 정욕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그것이 만약 세상이라면 썩어질 세상을 아낌없이 버리기 바랍니다. 만약 자녀라면 내 품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옮겨 놓고 하나님의 자녀로 보면서 욕심 없이 기도하며 키우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보고 인격적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를 책임지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기에 이삭은 아버지의 믿음으로 평생 하나님 안에서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이 어미 독수리의 믿음이든, 새끼 독수리의 믿음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높은 뜻에 따라 살아가는 독수리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눈동자처럼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며 주님의 택함 받은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성도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동행하고 계시며,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고 계십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말씀대로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크신 은혜와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며 주어진 현실에 충실한 성도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독수리처럼 힘차게 날아오르면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와 악한 영을 막아 주실 것이므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성숙한 성도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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