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계단 — 뾰족하고 낮은 산 신앙을 가진 성도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좌우로 흔들리거나 낙심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고 시작했다가 무엇인가 조금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 무렵 뾰족하고 낮은 산이 있는 세 번째 계단을 만나게 됩니다. 이 계단은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교만한 모습을 보일 수 있으므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기만 하면 천국은 당연히 간다고 생각했는데 말씀을 배울수록 그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회의도 들고, 자유롭게 살았던 그때가 그리워 고민하는 단계가 바로 세 번째 계단입니다. 이 세 번째 계단을 만났을 때 천국을 소망하며 스스로 이겨내는 사람과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으로 나뉘기 때문에 성도들은 성경 말씀을 확실하게 배워야 합니다.
신앙이 성장하거나 멈추는 것은 여기서 결정되는데 세 번째 계단을 뛰어넘지 못하면 몇 년씩 교회를 다녀도 고인 물처럼 성장할 수 없습니다. 반면, 세 번째 계단을 뛰어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며 천국에 대한 소망과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갖게 될 것입니다. 뾰족하고 낮은 산의 신앙은 적당히 말씀도 알고 직분도 받아서 봉사를 시작하는 단계이므로,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인가 잘 알고 있다는 우쭐한 마음과 교만이 생길 수 있는 위험한 계단입니다.
사람의 인격에 따라 앞선 자의 권면을 듣고 훌쩍 성장하는 성도도 있지만, 자신이 성장했다는 교만한 마음에 실족하기도 합니다. 이 때 다른 성도의 신앙을 비판하는 실수를 가장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세 번째 계단에 있는 성도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말씀으로 세워줘야 하며, 겸손한 신앙을 갖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죽도록 헌신하면서도 자기가 일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겸손한 신앙이므로 하나님께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순교하는 믿음을 가진 사도 바울이 자기는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믿음으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성도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7장 6~7절
6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훗날 이스라엘을 구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한 사람이지만, 믿음이 성숙하지 못했을 때는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든 부족한 부분을 깎고 다듬어서 사용하십니다. 이 때 누가 하나님의 뜻을 빨리 깨닫고 인간의 의를 버리고 순종하느냐에 따라서 연단이 빨리 끝날 수도 있고 고난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꿈을 꾸게 하신 이유를 깨닫기보다는 가족들이 모두 자기에게 절을 했다고 자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온 가족을 구원하는 계시를 보여주신 것이지만, 요셉은 영적으로 어렸기 때문에 미처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평소 야곱은 요셉을 편애했으므로 형들이 그를 미워했지만, 요셉은 형들의 이런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요셉처럼 영적으로 연약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큰 뜻을 알려 주셔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랑하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요셉이 성숙했다면 좀 더 지혜롭게 처신했을 것이고,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고난의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앞으로 있을 7년의 가뭄을 대비하여 온 가족을 살릴 수 있도록 피할 길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계기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400년의 종살이를 통해 이스라엘을 만드시고 그들을 출애굽 시킬 계획이었습니다. 그토록 크신 역사를 어린 요셉이 깨닫고 사명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릇이 작았기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이용하셔서 그를 애굽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요셉의 작은 그릇에 이스라엘 백성을 담기 위해서는 요셉을 먼저 큰 그릇으로 만드는 연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가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처럼 요셉이 성장할 때까지 더 많은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편안하게 살아온 요셉에게는 그 연단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계획대로 그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다행히 요셉은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믿음의 삶을 살아냈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왜 좁은 길로 인도하셨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넘긴 형들조차 하나님의 계획에 사용된 도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순종하지 않았다면 출애굽의 역사는 다른 사람을 통해 이루어졌을 것이며 그는 극심한 가뭄으로부터 가족을 구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요셉의 고난을 보면서 어떤 고난이든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합한 그릇이 되기 위한 고난이 있는가 하면, 자기의 죄로 받는 고난도 있으므로 늘 정결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계단에서는 지금까지 말씀을 가르쳐준 목회자나 믿음으로 앞선 성도에게 감사하기 보다는 자기도 말씀을 안다는 교만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천사를 동원하시기도 하지만 사람과 환경을 통해서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믿음의 형제가 신앙에 도움을 주었다면 그를 아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사람이 세상으로 이끌고 있다면 그들을 단호하게 자르는 믿음의 결단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자기를 돕는 믿음의 사람인지, 믿음을 방해하는 사람인지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 요셉을 애굽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죽을 만큼 힘든 고난을 통과하자 그에게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물질을 주시며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은 언제나 믿음으로 사는 것이 먼저이며 믿음을 보여 드릴 때 생각지 못한 놀라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0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을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결국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고 능력의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하는 것처럼 귀하게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귀한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상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며 그 죄로 인해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를 핍박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핍박하는 것이므로 누구든지 교회를 대적하는 것을 삼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주었으며, 목마를 때 마시게 해 주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니 너희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하신 나라를 상속 받으라는 놀라운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놀라면서 우리가 언제 주님을 위해서 헌신했느냐고 여쭈어보자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도와주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영원한 상급으로 대신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어려움을 당하는 형제가 여러분 곁에 있는 것은 여러분에게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가난한 사람에게 네가 죄를 지어서 복을 받지 못했다고 조롱할 것이고, 병든 사람에게 기도하지 않아서 병이 들었다고 가슴 아픈 말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세 번째 계단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입니다. 신앙을 올바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연약한 신앙을 비판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는 내가 헌신하지 않을 때 그 누군가 봉사를 했으므로 교회가 성장한 것이고,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때에 그 누군가 충성했기 때문에 내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헌신했다는 생각에 붙들리면 다른 성도들이 충성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교만해집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본다면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4~15절
14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사람들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수준과 인격이 다릅니다. 말씀을 듣고도 세상의 길을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진리의 좁은 길을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의 신앙을 돕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뜻을 가르쳐 주는 것은 할 수 있지만,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은 본인의 의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 것을 남의 탓을 하며 불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배웠다면 믿음이 성장하지 못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교만함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생명 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자들이므로, 자신들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을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바리새인처럼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말씀으로 권면하는 것까지 듣기 싫어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형제가 권면할 때 그 의도를 잘 파악해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겸손으로 보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뾰족하고 낮은 산에서 믿음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도 힘들게 봉사도 해 보았고, 힘에 지나도록 헌금도 해 보았으며, 기도와 금식도 열심히 했고 지혜도 있다는 말을 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그 헌신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구를 위한 충성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아서 사망에 빠진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맡겨주신 물질로 헌신한 것을 하나님께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신앙을 지켰을 뿐인데 그것을 자랑한다면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자일 것입니다.
교회가 성경을 가르치는 목적은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 스스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스스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깨달은 말씀으로 더 많은 영혼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에게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살라는 말을 하면 억지로 헌신했던 것처럼 방종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 한다는 것은 이제 어떤 책임과 의무도 없이 편하게 산다는 말이 아니라, 어른처럼 책임과 의무를 스스로 지면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영적인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교인들은 기복신앙으로 세상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과 흥정하는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잘못된 신앙 때문에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열심히 헌신하면 복을 주시고, 십일조를 드리면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며, 주일에 빠지지 않으면 자녀들이 복을 받고, 교회 일을 열심히 해야만 하나님께 벌을 받지 않는다는 신앙입니다. 이런 이유로 헌금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고 모든 일의 우선순위를 교회에 가는 것으로 정해 놓고 빠지지 않고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아서 넘치도록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생활은 부적을 붙이고 안심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우상을 숭배하는 신앙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헌금을 하고 주일을 지키며 헌신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기복신앙은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것이며 상급이 없다고 말씀을 전하면, 그들은 갑자기 팽팽한 줄에 힘겹게 매여 있던 연이 끊어지는 것처럼 느슨해져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 복과 상관이 없다고 말했을 때, 굳이 헌금을 하지 않아도, 주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사람과 기복신앙을 가진 두 사람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두 사람의 신앙은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마치 가인과 아벨처럼 다를 것이고, 이스마엘과 이삭처럼 다르며, 에서와 야곱처럼 다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과 전능하신 신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을 이용하여 복을 받으려는 사람은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숨을 쉬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이고, 행복한 가정과 일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하나님께서 울타리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는 성도에게 주일을 지키고 헌금을 드리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에게 강제성을 띄우며 등교하도록 가르치고, 학업 태도를 가르치는 것과 같이 교회도 기본적인 법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강제로만 이끌어갈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때 더 잘하는 것처럼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법을 알고 살아야만 영육간의 놀라운 성장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을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신앙을 지키는 사람 중 누가 진정한 성도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지혜롭게 판단하여 삶에 적용하는 성도의 삶이 축복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7~8절
7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을 잘 배워서 선한 행실을 드러낸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성장하는 것이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감당할 만큼 성장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인생의 계획을 세우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교활한 사탄의 공격을 이겨내고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인 훈련을 받지 않으면 사탄의 유혹을 받을 때마다 넘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영혼구원은 물론 자신의 구원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주일을 한 번 참석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 바로 징계를 받거나,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재산을 거두어 가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리셨고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에 구약 시대처럼 법을 어기면 그 자리에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죄를 지을 때마다 구약 시대처럼 심판하신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듣고 나서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죄의식이 없고, 헌금을 드리지 않아도 부담이 없다면 그 정도의 신앙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주일을 범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든지, 십일조를 안 하면 그만큼 재물을 손해 본다는 협박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을 들어야만 두려워서 열심히 주일을 지키고 헌금을 드린다면 그 신앙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어떤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죄다, 법이다, 상급이 없다는 말로 위협할 때는 아무리 많은 액수일지라도 십일조를 드리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상급을 위해서 열심을 내다가 자유하라는 말을 듣자 바로 하나님께 복을 흥정하면서 강퍅해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것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신앙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감사해서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언제나 하나님이 우선 순위였다면 자유이든 법이든 상관없이 주일을 지켰을 것이고, 소중한 물질을 바나바처럼 힘에 지나도록 드렸을 것입니다.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참된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즐겁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1절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두 사람이 매를 가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는 마지막 날 일어날 일은 지금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결정되므로 성령과 진리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인은 종이 성실하게 일해서 정직하게 소출을 드릴 때 그 종을 신뢰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신뢰를 받는 성도는 더 많은 땅을 받을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복된 인생을 살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믿음을 지켰으므로, 지혜를 통해 어두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것입니다. 어떤 교회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따라 전도하고 예배드리고 선교하고 구제하는 것을 동일하게 행하고 있기에 겉모습만 보면 모두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일을 했는데도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한 사람은 데려가시고, 한 사람은 버림을 당하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거나 목회자의 강요에 의해서 일을 하는 것은 그 성도에게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여러분의 신앙을 위해서 헌신하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성도는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고 낮아지기 위해 훈련해야 합니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 말씀대로 살아가며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는 성숙한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갖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상급을 받는 믿음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말씀으로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스스로 낮은 자리로 내려가기 위해서 애쓴다면,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높이 세워주실 것이므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뾰족하고 낮은 산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 신앙의 경험을 토대로 한 계단 더 올라서 보기 바랍니다. 믿음의 계단을 한 계단씩 오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전도하게 될 것입니다.
성숙한 믿음은 소유가 많아야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거룩하고 겸손하게 살아갈 때 인정받는 것입니다.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는 것처럼 지금까지 갖고 있던 헌 부대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새 부대에 상급을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성도는 사탄의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으며 주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를 절대로 쏟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뾰족한 부분을 잘라내며 거룩하고 높은 곳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귀한 성도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