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계단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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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여덞번째 계단 — 절망의 계단

마태복음 8장 1절

~4절 1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등산하던 사람이 길을 잃고 고립되면 두려움이 엄습하겠지만, 사람들이 구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견딜 수 있습니다. 엇나가는 자녀가 언젠가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으면 부모는 그 희망 때문에 살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꾸준히 진리를 전하면 언젠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 한 목회자는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희망이 있으면 인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그러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희망은 사라질 것이고 절망이 그 자리를 차지하므로 관계는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사람의 본질이 같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사람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끝까지 사랑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돼지가 아름다운 진주를 밟아버리는 것처럼 그 위대한 사랑을 버리고 세상을 택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자 크게 진노하시며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노아 때에 타락한 세상을 죽음의 물로 덮어 버리신 것입니다. 그 후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주셨지만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때가 그립다며 불평하자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변화시켜 보시려고 열 가지 재앙까지 주시며 노력하셨지만 절망이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연단하시며 일세대가 모두 죽을 때까지 가나안에 들여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죄가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처럼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을 내리시는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세상은 노아의 때처럼 하나님을 대적하고 유전자를 조작하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징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계획은 예정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성경 말씀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조롱하며 세상을 붙들고 산 사람들은 천사의 나팔소리가 울릴 때 구원의 기회는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복음을 들을 기회를 주실 때 돌이켜야 합니다. 마지막 심판이 임한다면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수 없고, 죽고 싶어도 사망이 피해가기 때문에 죽을 수 없으므로 죄가 강성한 세상을 보시며 성령께서 탄식하시는 지금이 기회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길로 가도록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상처 또한 받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처럼 사무엘도 사울 왕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그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했을 때 깊이 좌절하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사울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웠고 그를 위해 많은 기도를 했기 때문에 사울이 하나님을 버렸을 때 사무엘은 회복하기 힘든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사울을 세우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세상의 권력을 자기를 위해서 사용했고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악한 인간의 본성이지만 사무엘은 끝까지 사울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돌이키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제 사울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없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아무리 기도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겠다는 말씀처럼 두려운 말씀도 없습니다. 사무엘처럼 능력 있는 선지자가 기도를 드려도 응답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에게 절망감을 주지 않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어쩌면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지막 사람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새로 산 물건이라도 저보다 다른 사람이 더 필요한 것 같으면 아끼지 않고 주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물건은 필요한 사람에게 쉽게 줄 수 있지만 사랑으로 품고 기도했던 사람은 마음에서 버리는 것이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사람을 마음에서 놓았을 때 하나님께 죄송하거나 후회가 남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군가의 신앙을 도와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가 상대가 세상을 품는 것을 보면 놓아야 하는 그 아픈 마음이 바로 절망입니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낄 때가 더 많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착하고 좋은 인격을 갖추었지만,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이지만,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 것을 보면 절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사람을 보는 것이 안타까운데 하나님께서 악으로 강성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나는 일을 행하는 여호와이며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라고 자신을 소개하시며,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연약한 예레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은 강한 자가 권세를 차지하는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종하는 성도에게 방패와 울타리가 되어 주시며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전능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세상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홍해 앞에서 두려워했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보라는 모세의 믿음이 굽이쳐 흐르는 홍해를 갈랐습니다. 여호수아가 태양을 향해,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물고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라고 했을 때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히스기야가 믿음으로 간구했을 때 해시계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가는 기적 또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간구할 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놀라운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모세도 히스기야도 모두 여러분처럼 평범한 사람이지만, 성령의 충만함이 있었기에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은 응답은, 유다가 갈대아에게 항복하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죄를 짓고도 돌이키지 않았고 끊임없이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을 갈대아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간곡하게 갈대아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말씀을 전했지만, 그들은 도리어 예레미야를 웅덩이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레미야가 유다를 향해 갈대아에게 항복하라고 했지만, 유다는 예레미야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도리어 핍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갈대아에게 항복하라고 하셨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야 하는데, 유다는 스스로 살 길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항복했다면 잠시 고난은 당하겠지만 생명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다며 바벨론과 전쟁을 준비했다가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고 70년의 포로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인간의 뜻을 붙든 유다는 사망에 빠졌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절망에 빠졌을 때 그들의 죄를 위해서 끝까지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예레미야만이 그들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처럼 부르짖는 여러분이 있기에 나라와 민족이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그 누군가의 희망이 되었을 것이며, 나라와 민족을 위한 등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2~3절

2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부르짖는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치료하신 이 사건은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붙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 사람 역시 어떤 노력을 해도 병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므로 삶 자체가 절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유능한 의원을 만나면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를 치료해 줄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무서운 절망이 그를 덮어 버린 것입니다. 병이 깊어지자 사람을 의지하고 싶어도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고, 가족들이 던지는 위로의 말조차 그에게는 절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삶을 포기한 그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들려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오셨으며 말씀으로 병을 치료하신다는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나병 환자는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기만 기다렸는데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많은 무리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 병을 낫게 하실 것을 믿는다고 부르짖었습니다. 세상 모든 방법을 사용해도 치료하지 못한 이 병자의 고백이 얼마나 간절했을지 여러분은 듣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이 고백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나병 환자는 어쩌면 예수님이 자기를 고쳐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보다는 고쳐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은 정도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소원은 축복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당시에 성 밖에 있던 나병 환자는 이 사람 말고도 많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환자들이 있었지만 예수님께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옷을 만지기 위해서 노력했던 혈우병 여인의 마음을 아신 것처럼 이 환자의 마음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을 받은 순간 이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죽음의 시간이 생명의 시간이 되었고, 좌절과 절망이 희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축복받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께 반응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겪었던 절망에서 해방될 것이며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을 것입니다.

세상이 물로 덮였을 때 노아는 방주가 희망이었고, 남자아기를 모두 죽일 때 모세는 갈대 상자가 희망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부르짖던 그 기도가 유다의 희망이었고, 나병 환자가 예수님 앞에 엎드린 믿음이 희망이었습니다.

인간만이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데, 믿음에 중간이 없는 것처럼 희망과 절망 사이에는 중간이 없습니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하나님께 믿음과 불신앙, 희망과 절망 중 어떤 면을 보여드릴 것인지 여러분이 선택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세상에 절망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는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이 될 것입니다. 끝까지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의 깊은 사랑은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성도에게는 희망으로 세상에게는 절망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 손을 놓고 싶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영혼을 구원하고자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견뎠는데, 이제는 그 손을 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때 낙심하고 좌절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희망을 품는 그 자체가 절망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심판 받을 세상과 본질이 똑같은 사람에게 희망을 품고, 그 사람이 어떤 기쁨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성도들도 복음을 전하다가 혹은 사랑을 베풀다가 마음에 크게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죽도록 헌신해도 사람들은 다시 세상을 붙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흔들림 없이 정직한 진리를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므로 그 영혼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사명을 감당한다면 더 많은 영혼을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도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고 있을 것입니다. 상대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면 잠시 희망을 품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밀려오는 절망감을 이겨내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야만 이겨낼 수 있습니다. 더구나 목회자나 직분 자는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자기가 수고했다는 생각에 인간의 의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상대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노력했던 시간까지 버려지는 것 같으므로 그 허탈함을 이기지 못해서 여러분의 신앙까지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문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을 전한 것이므로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 열매를 직접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희망과 절망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마지막으로 정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절망의 계단입니다.

여러분도 인생을 돌아보면 옳다고 믿고 열심히 매달렸던 일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절망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감은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인생이었다는 것을 느낄 때 절망스러울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사랑을 주었는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마음은 처음부터 절망을 희망으로 잘못 본 자신 때문에 생긴 일이므로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처음부터 세상을 절망으로 봐야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했을 때 믿음으로 영접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상대가 세상을 선택한다면 마음에서 큰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 무너지는 고통이 바로 절망입니다. 그 절망이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복음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성숙한 믿음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통해 거듭나지 않는다면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벌거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상대가 지혜로워서 옷을 잘 입고 다닌다면 그것으로 감사하면 되고, 벗고 다니는 것이 편하다고 가르쳐준 대로 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말씀을 전했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마지막 관문인 절망의 계단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절망의 계단은 빨리 만날수록 여러분의 인생의 방향이나 믿음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절망의 계단에 서면 인생이 헛되다는 것과 인간은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내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다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만 구원자이시며 삶의 지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변하지 않는 사람과 환경 때문에 절망한 적이 있습니까? 아직도 그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파하고 있습니까? 그 절망은 여러분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을 의지해야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둠은 빛으로 밝혀야 하고 죄는 보혈로 씻어야 하는 것처럼, 절망은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져야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끝까지 인내하며 말씀으로 살아낼 때 하나님께서는 절망하는 마음을 아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알려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계단 하나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절망의 계단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저는 그 환상이 너무 궁금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희미하게 보이는 저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말씀하시길

“저기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진실한 믿음으로 살아낸 성도들이 서는 절망의 계단이란다.”

“절망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성숙한 믿음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절망의 계단이 독수리 신앙의 계단보다 더 위에 있는 것입니까?”

“그렇단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깨닫는 자만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리스도와 일치된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성도들이 이런 신앙을 갖기를 원하고 있단다.”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은 곳이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탄과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노력은 결국 절망하게 될 것이란다.

너는 성령만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본다면 절망의 마음이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부족한 제가 절망이 축복이라는 말씀을 당장 이해할 수 없지만 저 역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알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복음을 선포하겠습니다.”

“사람에게 희망을 품지 않는다는 말을 처음 들을 때는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이 많은 영혼을 품는 큰 그릇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배신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끝까지 그들을 품는 것이 큰 사랑임을 알게 될 것이란다.

“절망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봐야만 복음을 전하다 낙심하지 않는단다. 그리스도를 전할 때 너는 세상이 절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만 그럴수록 어둠 가운데 빛나는 그리스도가 희망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리라. 그 깨달음이 네 믿음을 더욱 성숙시킬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할 것이니라.”

이 대화가 기도 중에 들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닫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절망하는 마음이 들겠지만, 세상은 결국 절망할 수밖에 없는 어둠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실망하고 절망하기보다는 그 세상에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능력입니다. 절망의 계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며, 그 계단을 정복했을 때 여러분의 신앙은 단단한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헛된 세상과 사람에게 마음을 두지 말고 유일한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드리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내야만 절망의 계단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절망의 계단을 향해 달리기 바랍니다. 절망의 계단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만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욕심을 갖지 않으며,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이 어떤 공격을 해도 이미 세상이 절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하며 성령께 피할 수 있습니다.

훗날 절망의 계단에 올라섰을 때 이 계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헛된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고 환하게 웃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면 절망의 계단 옆에 있는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생명이 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절망인 세상에서 살아야 하지만, 성령께서 함께 계시는 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을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이며 많은 동역자들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도록 먼저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믿음의 계단에 서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다가 절망스러운 마음이 들더라도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더 헌신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이제 믿음의 계단 설교를 모두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믿음의 계단을 올라가 성도들의 믿음을 도와주시기 위해서 변함없이 사다리의 역할을 감당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찬양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믿음의 계단 · 여덞번째 계단 — 절망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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