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계단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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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다섯번째 계단 —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의 신앙을 가진 성도

에스겔 47장 1~5절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여 무리들에게 양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리가 흩어지기도 전에 서둘러서 제자들을 강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제자들이 자기의 본분을 잊고 기적만 바라보는 신앙을 가질까 봐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던 제자들은 풍랑으로 인해 배가 크게 요동하자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공포는 한층 더 가중되었습니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풍랑 속에서 제자들은 뱃길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없이 어둠의 바다를 건너는 제자들은 지금까지 들었던 말씀도, 오병이어의 기적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눈앞에 넘실대는 파도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을 뿐입니다. 여러분도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게 되면, 앞이 캄캄해지면서 지금까지 배웠던 말씀도 믿음도 다 잊어버리고 오직 해결할 수 없는 문제만 크게 보일 것입니다.

사탄이 성도들에게 근심을 주는 것은 믿음을 흔들기 위해서입니다. 두려움에 휩싸여 믿음을 붙들지 못하는 성도를 보면서 하나님을 마음껏 조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선악과와 꽃뱀처럼 아름다운 유혹과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거친 파도는 사탄이 성도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만든 한시적인 계략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의 시험은,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성도들이 이 사실을 믿어야만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말씀을 삶에 적용한 제자는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높은 파도를 보자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도, 예수님께서 절대로 자신을 버리지 않는 구세주라는 확신도 다 잊고 말았습니다.

간단한 예로, 운동선수는 실전과 똑같은 훈련을 반복해야만 몸에 익힌 대로 시합에서 능숙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도 어떤 문제이든 기도와 말씀으로 이겨내는 훈련을 해야만 사탄의 공격을 쉽게 막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항해 경험이 많은 선장은 바다의 변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바람의 방향만 봐도 알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사탄의 움직임과 사람들의 행동만 봐도 일어날 일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신앙과 인생을 따로 놓고 산다면, 문제를 만날 때마다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주신 것은 교회에 들고 다니라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생명의 말씀대로 믿음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야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인생은 성도에게나 불신자에게나 다 똑같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성도에게는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신 진정한 왕이 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 성도들은 험한 세상을 어떻게 하면 헤쳐 나갈 것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열심히 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신앙이 풍랑으로 인해 길을 잃게 될까봐 뱃머리를 뭍으로 계속 돌려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풍랑이 그치기를 기도하면서 선한 삶을 살면 될 것입니다. 험한 파도만 보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거친 바다를 밟고 오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고통만 들여다보느라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일하시는 예수님과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면서도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두려움에 싸이게 되면 세상의 파도를 밟고 오시는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며 고난에 굴복하고 맙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불신앙을 보시면서도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가 우주만물을 만드신 창조주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파도가 잠잠해진 이후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했지만, 그 고백은 기적을 본 후에 드린 것이므로 정직한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 당하는 고난은 결국 지나 갈 것을 믿는 성숙한 믿음입니까? 아니면 고난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도와줄 사람과 방법만 찾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타고 있는 신앙의 배는 풍랑에 안전합니까?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데 여러분은 목적지까지 갈 믿음과 지혜가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거친 파도가 몰려와도 싸울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연약한 믿음을 가지면 예수님을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로만 생각합니다. 이런 성도는 좋은 일이 있거나 응답을 받을 때만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신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이 섬기는 우상과 같은 허상이 아닙니다. 해가 뜨면 없어지는 무지개가 아니라 태양이 뜨거울 때나 비가 쏟아질 때나 여러분이 홀로 망망대해에 떠 있을 때에도 곁에 계시는 보호자입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오아시스로 인도하시고 폭우 속에서 피할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을 당장 가려 달라고 떼를 쓰고, 폭우를 당장 멈춰 달라는 어리석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하실 것을 믿고 잠잠히 기다리며 인내하는 성도는 숨겨진 칠천인의 성도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4~6절

4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천국은 마치 하나님이 아들의 영광을 위해 마련한 혼인잔치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하시고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초청했지만, 그들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얼마나 귀한 자리인지 몰랐기에 모두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의 핑계는 밭을 샀기 때문에 바빠서 갈 수 없고, 소를 돌봐야하기에 갈 수 없으며, 장가를 들었기에 초대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세상의 소유를 지켜야하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적으로 본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혼인잔치는 썩어질 육의 일이 아니라 영생의 일이기 때문에 거절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우선인지 몰랐기에 거절했다가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천국잔치 소식을 전했을 때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댄 것처럼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여러분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여러분이 아끼는 세상을 놓고 구원의 방주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재산도 가족도 모두 세상에 두고 믿음의 길을 떠났기 때문에, 바다 위에 떠 있는 여러분은 그것들을 보살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거센 파도와 싸우며 목적지까지 가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위해 여러분의 마음에서 내려놓은 그 소유를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평안해야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세상의 것이 있어야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요단 동편을 차지했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다른 지파를 위해서 앞장서서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지파들이 땅을 차지할 때까지 전쟁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두고 간 가족들과 짐승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이 누리는 평안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세상에 마음을 묶어 놓은 채 믿음의 길을 떠난다면 세상의 염려로 인해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탄과 성도들의 전쟁은 하늘과 땅에서 함께 벌어지는 치열한 영적전쟁입니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영적 분별을 해야 하고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군함과 같은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나라를 향해 길을 떠날 때 성숙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28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출렁이는 파도로 인해 잔뜩 겁을 먹었던 베드로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자 갑자기 자기도 물 위를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보다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을 때는 거센 파도가 죽음으로 보였지만, 그 파도를 밟고 당당하게 걸어오시는 것을 보자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걷는 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기 때문에 바다뿐 아니라 공중에도 임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바다를 걷고 싶다고 해서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해야만 예수님으로 인해 바다 위에 설 수 있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방금 전까지 파도가 죽음처럼 보였지만 바다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자 갑자기 충만해져서 자기도 걷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인간의 감정에 의해서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결단을 하며 끝없이 노력해야만, 연약한 믿음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입니다. 베드로가 조금만 더 예수님을 의지했다면 그는 예수님과 함께 바다 위를 걷는 최초의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앞에 서 계시는데도 출렁이는 파도를 보자 두려운 마음이 엄습했고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끝까지 믿어드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이 믿음을 보이면 사탄은 더 심하게 세상의 바다를 흔들겠지만, 앞에 서 계신 예수님만 본다면 험한 파도 위라 할지라도 걸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 7절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베드로와 사탄이 예수님에게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머리로만 아는 말씀은 지식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 받은 성도는, 인간의 의를 버리기 위해 노력하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는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는 ‘아무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하고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죄를 지었고, 사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는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을 알아보고 두려워했던 사탄은 영원한 불 못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결국 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의 행위를 드러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위와 함께 일하며, 그 행함을 통해 믿음이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물론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택이며 은혜이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뜻하신 바를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다고 해서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을 온전히 행함으로 드러낼 때 인정받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행함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자기를 쳐서 복종하는 훈련과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야고보는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행위가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라고 하며 성도들이 살아내 주기를 바랐습니다. 로마가 교회를 핍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믿음의 행위를 보이자,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누구나 말로는 믿음이 충만한 것처럼 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는 신뢰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록 성도들은 핍박을 받았지만 목숨을 다해 믿음의 본을 보였고, 그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행위로 드러내는 성도는 하나님을 높이는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가 힘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주시고 그의 생명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만일 배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올 때 물을 퍼내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배가 가라앉을 때 잠든 사람이 죽는 것처럼, 죄의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영적인 잠을 자는 사람은 사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도가 게으르거나 나태하다면 영적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 중에 믿음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응답을 받아도 감사하지 않으며 거룩한 삶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하며 순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세우자 핍박은 사라졌고, 성도들은 서서히 예배를 가볍게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의 소중함을 잊었습니다. 어떻게 쟁취한 승리인데 안주할 수 있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바다가 잔잔해지면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하고, 바다에 빠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배에 태워야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편해질수록 더 게을러지며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들은 물에 빠진 사람을 내 배에 태우면 소유를 나눠줘야 하고, 내 자리가 좁아지기 때문에 그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믿음의 배를 군함처럼 크게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군함은 나누어 줄 양식도 많고, 자리가 좁아질까 봐 갈등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배가 작으면 하나님과 흥정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의 양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테니까 나에게 무엇을 주겠느냐고 흥정하며 강퍅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군함 같은 믿음으로 영의 양식을 가득 싣고서 세상의 바다를 향해 담대하게 항해하기 바랍니다.

얕은 시냇물은 큰 소리를 내면서 흐르지만, 깊은 강물은 조용히 흘러갑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작은 시냇물처럼 교회나 가정에서 늘 부딪히고 불평하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마음을 주지 못합니다. 강렬한 태양과 같은 고난이 오면 마음이 강퍅해져서 조금 가지고 있던 믿음마저 말라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소리 없이 많은 생명을 키워내는 것처럼, 신앙이 성숙한 성도는 말없이 헌신하며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어부는 조용히 흐르는 강물에서 많은 고기를 건져 올립니다. 그리고 더 많은 생명이 살 수 있도록 강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도 치워주고, 더 깊이 파주는 관심을 보여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깊은 강이 되어야만 예수님께서 아끼시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내해야 하고 겸손해야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천국이 목적지라는 것을 알고 있는 여러분이 믿음으로 선을 행하고 성도로서 본을 보인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끝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 위에 서 있으면 하나님의 지혜로 사탄의 계략을 미리 알 수 있으며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거룩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세상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풍성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세상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천국을 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함께 가자고 말씀을 전하며 사랑의 본을 보이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보좌를 유보하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사랑하시고 거룩한 믿음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험한 파도를 이기는 신앙으로 가정과 교회를 믿음의 반석 위에 세우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한다면, 지혜가 생기므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힘과 세상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낸 경험이 있어야만 죄를 짓지 않는 거룩한 성도가 될 수 있으므로 여러분, 힘을 내어 고난을 통과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속에서 밝은 빛을 내는 성도들에게는 더 충만한 은혜를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복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는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언제나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그 손을 놓지 않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믿음의 계단 · 다섯번째 계단 —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의 신앙을 가진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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