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계단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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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네번째 계단 —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의 신앙을 가진 성도

에스겔 47장 1~5절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네 번째 믿음의 계단에 올라서면, 높은 산과 같은 영적 충만함과 깊은 골짜기처럼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고통스러운 영적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말씀을 통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충만한 믿음이 인간의 본능과 부딪힐 때마다 괴로울 것입니다. 충만할 때는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헌신하지만,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한 순간에 추락하는 나약함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충만했던 성도가 실족하면 더 회복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도 인간의 의와 믿음이 충돌할 때는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며 죽기를 간구한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어려움 없이 성장했습니다. 그는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는 율법주의자였기 때문에, 율법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믿음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를 핍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보면서도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고 제자들을 위협했으며 성도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빛이 그를 둘러싸면서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는 엄한 음성이 들리자 그는 놀라며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인데 너는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네가 앞으로 행할 일을 네게 이를 자를 만나게 해 주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울 외에는 예수님의 음성을 아무도 듣지 못했고 강한 빛 역시 사울만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사울을 택하여 부르셨기 때문에 사울만 듣고 볼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강한 빛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그는 그리스도인을 죽이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예수님의 강렬한 빛으로 인해 눈이 멀고 만 것입니다.

바울은 이 순간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만나고 계신 그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성령께서 성에 있는 아나니아에게 찾아가셔서 ‘너는 일어나 직가로 가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아 안수해주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과 아나니아에게 동시에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울에겐 빛과 음성으로, 아나니아에게는 성령으로 역사하시며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함께 일하고 계셨습니다.

아나니아는 그리스도인의 원수인 사울의 눈을 치료하라는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사울에게 안수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적 없이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성도들은 믿어야 합니다. 고난을 주시면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있고, 사명을 주시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그리스도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을 죽여도 죄의식이 없었고 오히려 그들은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가 죽였던 사람들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죽이면서까지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자기의 신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즉시 유대인의 신앙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바울처럼 복음을 깨닫는 즉시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그는 실천한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2~23절

22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인간의 지혜가 발달할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무지의 세계가 넓어집니다. 지식을 원에 비유하면, 그 원이 커짐에 따라 원주가 접하는 원주 밖의 세계도 비례적으로 넓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3천 가지의 잠언을 썼던 솔로몬 왕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혜와 지식을 가졌지만, 지혜가 많을수록 번뇌도 많았고 지식이 더할수록 근심도 커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그의 노년에 기록한 전도서를 보면 인생은 헛되고 헛되다고 진심으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재물과 권력이 헛된 것을 알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자신보다 훨씬 성숙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하며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백은 결국 세상은 사람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쌓일수록 그 지식보다 더 높이 쌓여 있는 우리들의 영적 무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갈수록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섬긴다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율법을 지킬 때에는 행위로 하나님을 믿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보니까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의를 버려야만 지켜낼 수 있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것이 너무 힘겨워 심한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서 두 마음이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도 육을 가진 인간이기에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인간적인 생각과 혈기가 부딪히며 영적으로 갈등했을 것입니다. 이런 두 마음이 늘 갈등하고 있지만 그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붙들어주고 계시기 때문에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높은 산봉우리를 믿음이 충만한 자리라고 한다면, 낮은 곳은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유혹으로 갈등하는 자리일 것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은 높은 산처럼 충만한 때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연약한 육신 때문에 눈물로 간구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영적으로 충만할 때는 어떤 문제를 만나도 두렵지 않았지만, 충만하지 못했을 때는 세상과 사람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누구나 산 위에 서 있는 담대한 신앙과 골짜기에 떨어진 것처럼 연약한 신앙을 가질 때가 있기 때문에, 충만할 때는 교만하지 말아야하고, 낙심할 때는 망설이지 말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사도 바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가졌던 인간적인 생각과 습관을 버리고 뼛속까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 말씀으로 무장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영접한 뒤 영혼구원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모든 열정을 전도하는데 쏟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39대씩 5번의 매를 맞았고, 3번의 태장을 맞았으며,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적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배가 3번 파선하였고, 옥에 갇혀 굶고 목마른 것이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었으며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일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율법주의자였던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 바로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도 놀랍지만, 그가 당한 핍박은 성령 충만한 성도라고 할지라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고난이었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서 자기의 인생을 바친 바울은 높은 산 위에 우뚝 선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가문에서 태어나 최고의 학문을 배웠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누릴 수 있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귀족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갖기를 소망하는 세상의 조건들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남은 인생을 오직 말씀대로 산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복음을 위해서 여러분이 가진 소유는 물론 가족까지 버리라고 한다면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세상을 버리면 더 큰 세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보이는 세상보다 더 큰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기꺼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 역시 육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다짐을 해보지만 골짜기에 떨어진 것처럼 낙심하며 주저앉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럴 때는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지해야만 실족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았지만, 눈물로 세운 교회들이 유대인의 핍박을 이겨내고 우뚝 서기를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는 복음이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에 세운 모든 교회들이 부흥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높은 산 위에 서서 믿음을 지키고 있는 성도에게 말씀을 맡기시고 영혼을 살릴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도 영혼을 품을 수 있도록 큰 그릇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8절

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은 하늘에 직접 올라가 낙원을 보는 축복도 받았고 손수건만 덮어도 병을 치료하는 능력도 가졌지만 그의 육신은 연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유대인은 바울을 괴롭히기 위해서 따라다니며 그가 다른 사람은 치료하면서 자신은 병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서 조롱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병도, 가난도, 원수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병으로 고생하는 바울을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평하신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은혜는,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께서 고쳐주시지 않으면 치료받을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고, 원수를 통해 자신도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신앙은 산처럼 높았지만, 그에게도 인간적인 연약함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앞에 눈이 짓물러서 눈곱이 끼고 잘 보지 못하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남들 치료할 생각 말고 네 병이나 먼저 고치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그런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받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다고 하면서 가난하거나 건강하지 못하면 부끄러워서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가난한 자리를 택하고,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영적인 축복을 부러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알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에 방해가 되는 육체의 병과 교회를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쫓아달라고 간절히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영혼구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바울의 기도는 처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네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네 몸의 가시가 없다면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응답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그것을 조절하는 장치를 특별히 만드셨는데, 그것이 바로 육신의 연약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너무 괴롭고 힘들었지만 그것 또한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비록 골짜기에 떨어진 인간의 연약함을 갖고 있을지라도 하늘에 소망을 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의 신앙을 가진 성도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의 영혼까지 인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매사에 신중해야 하며 지혜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가다가 길이 아니면 돌아서면 되지만, 구원은 믿음이 없는 자를 따라가게 되면 결국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길은 영을 분별해야만 인생의 끝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잘못 선출하면 임기가 끝나길 기다리면 되지만, 목회자는 진리를 전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사탄의 도구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대한 일입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나는 목회자를 잘못 만나 말씀을 배우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거나,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기 때문에 나도 따라서 갔을 뿐이라고 변명을 해도 절대로 용서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고, 성령께서 동행하고 계시기 때문에 목회자를 잘못 만났고 환경이 좋지 않았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말씀을 직접 들었지만 마귀의 유혹에 속아 선악과를 먹은 책임을 영원한 죽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과연 어떤 말씀을 듣고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경 말씀을 모른다면 지금 제가 비 진리를 전한다고 해도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지식을 쌓는다고 말씀을 깨달은 것이 아니므로 말씀이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깨닫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 28장 12절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사탄은 전에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많았으며 온전히 아름다웠지만 하나님의 곁을 떠난 지금은 어둠뿐입니다. 하나님께 쫓겨난 사탄은 자신이 완전한 신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고 있지만, 절대로 그리스도와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독버섯은 색과 모양이 화려하지만 먹으면 죽는 것처럼, 사탄에게 속아서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즉시 그의 영이 죽기 때문에 영을 분별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사탄은 인간이 세상의 복을 원하고 하나님처럼 높아지기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람들이 쉽게 속는 다른 복음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단 교리는 성경을 이용해서 그 끝을 바꾸는 것으로 비슷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짓 영을 잘 판단하기 위해서는 성령께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영안이 밝아지기 때문에, 타락한 천사가 그리스도의 흉내를 낼지라도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를 버려야만 하나님의 의를 높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거짓목회자와 교주는 인간의 의를 높일 때 하나님처럼 높아질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입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가장 미련한 방법으로 전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의 말로 영혼이 죽을 수도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올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세상에 살아있을 때만 기회가 있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나 성도는 자기의 생각을 진리의 말씀에 섞지 말고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스스로 갈 길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을 택할 것인지, 좁고 협착하지만 진리의 길을 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며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훗날 모든 사람은 심판대 앞에서 자신이 살면서 행했던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 것입니다. 심판주께 세상에서 자기가 한 일을 직접 자기의 혀로 고백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심판대 앞에서 하는 말을 듣고 판결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많은 기회를 받았는데도 진리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과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불평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을 믿음으로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 자신이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직접 고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거짓말을 하고 싶어도 우리의 혀는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기 때문에 그 자리가 너무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지금 숨을 쉬고 있을 때만 기회가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이 끝나면 하나님께 용서받을 기회도 사라집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것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또 한 번 주신다고 생각한다면 은혜가 될 것입니다.

예수 이름 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이고 사망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은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높은 산 위에 서는 신앙을 가졌다면 더욱 자세를 낮추는 겸손함을 보이고, 깊은 골짜기에 떨어지는 고난을 만났다면 하나님께 부르짖는 지혜를 갖기 바랍니다. 세상의 영화는 하나님께서 거두시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는 소망과 기쁨과 감사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오직 여러분의 믿음만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꺼지지 않는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는 거룩한 신부로 살기 바랍니다. 하나님처럼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성령님처럼 단호하게 악을 물리치는 성도의 삶을 산다면 놀라운 하늘의 축복을 받아 누릴 것입니다.

언제나 정직한 믿음으로 신실한 삶을 살아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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