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계단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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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일곱번째 계단 — 사다리가 되어 주신 그리스도

에스겔 47장 1~5절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여러분은 지금까지 믿음의 계단에 관한 설교를 들으면서 성도들의 신앙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았을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 모두 믿음이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성도들은 이렇게 자기 그릇만큼 다양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결단하는 신앙을 가져야만 성숙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믿음의 계단을 보면 꽃밭신앙부터 걸림돌 신앙, 뾰족하고 낮은 산, 높은 산과 골짜기, 세상의 파도를 이기는 신앙과 창공을 나는 독수리 신앙과 절망의 계단까지 단계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믿음의 계단에 머물고 있습니까? 아직도 이끌어줘야만 교회에 나오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회와 성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신앙입니까?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상과 구별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지만 세상에 살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꽃밭신앙부터 절망을 아는 신앙까지 한 계단도 빠짐없이 모든 성도의 곁을 묵묵히 지키고 서 있는 사다리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분이 바로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사야 66장 1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고, 이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을 올려놓기 위해서 나무로 만든 상자를 발등상이라고 합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면서 땅을 발등상으로 사용하고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모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굳이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되는 존귀한 분이지만 그분의 사랑이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 놀라운 빛의 사랑을 어둠에 있는 인간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탄의 유혹에 빠져 사망의 굴로 들어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그의 생명으로 사망의 굴을 막아버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성도들의 곁에서 지켜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세상을 판단할 때 모든 기준이 구원에 맞춰져 있어야 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을 구해주기 위해서 내 아들을 희생시켰는데 그 사람이 감사하기는커녕 더 많은 재물을 요구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날마다 찾아와서 당신의 아들이 희생한 대가로 내가 살아났으니까 이제 나를 더 편하게 살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한다면 아마도 분노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들을 위해서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께, 세상에서 더 잘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악한 인간들을 사망에 가둘 수 없어서 회개하라고 권면하시고 성화되도록 기회를 주시며 사랑으로 인내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모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잘게 자르고 못을 박아 사다리로 만드셨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끝까지 보호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 모두는 천국에 큰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 사랑은 사탄과 인간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런 처절한 사랑과 희생으로 세워진 사다리 앞에서, 세상의 권세와 명예를 갖고 싶으니 나를 더 높여 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가리고 있는 세상의 욕심을 마음에서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다고 하시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과 흥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보다 영혼을 위해서 살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영혼보다는 육의 편안함을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두 아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한 영혼이라도 실족할까 봐 늘 곁에서 동행하시며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돕고 계십니다.

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성도들에게 “이곳은 너희들이 머물 곳이 아니니 이제 그만 세상을 놓고 나를 밟고 올라가라”고 격려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도와주시는데도 눈과 귀를 닫고 어떻게 해서든 사다리 없이 내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세상에 동조한다면 세상은 미로와 같으므로 결국 사망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야 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인생 마지막에 한 말이,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은 헛되고 헛되다는 것이었습니다.

열왕기상 9장 4~5절

4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네가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해 주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겼고 거룩한 삶을 버렸습니다. 그 대가로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먼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말씀을 들은 솔로몬이 법도와 율례를 지켰다면 그 약속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다윗처럼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에 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명령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에 세상의 쾌락과 음란을 분별하지 못하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가 독이 가득한 사망의 실제의 물체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도 두려움 없이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과실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을 때 그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과실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았다면, 사탄이 유혹했을 때 아담과 하와는 담대하게 거절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탄이 권하는 선악과를 분별할 줄 알아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으며 담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서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 안다면, 성도는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으며 더욱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있습니다.

독수리 신앙을 가진 성숙한 성도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다리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죄에 붙들며 실족하고 말 것입니다. 이 육을 벗는 그 순간까지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숙한 인격을 갖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선악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사탄의 공격은 강력할 것이므로 빛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주는 대로 선악과를 먹는다면 선악과를 먹은 사람들은 그대로 두어도 썩을 것을 알기 때문에 사탄은 또 다른 성도를 찾아 헤맬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탄의 공격을 과감하게 막아야만 연약한 영혼들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베드로는 죽음이 두려워서 어린 여종에게 거짓말을 했고,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채찍을 맞는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당하는 것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나자 닭이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 그제야 생각났기에 통곡하며 울고 말았습니다.

그가 배신할 것을 미리 알려주셨지만 베드로는 자기만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깊이 새겨듣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님을 부인한 것도 괴로웠지만, 죄를 짓지 말라고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을 잊고 있었던 자신이 너무 한스러웠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영적인 충만을 몰랐거나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과 천국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이토록 괴롭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베드로는 회개했고, 진심을 다해 사명을 감당한 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순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다리가 되어 매 순간 모든 성도를 도와주시는 것은 성도들보다 못해서 그 자리에 계신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에 갇혀 있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탄의 계획을 무산시키며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천사들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날 사다리는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때는 오직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과 성도들을 핍박한 세상을 향해 진노하시는 심판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자신을 기꺼이 내어준 그리스도이신 사다리를 붙들고 올라가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5~26절

25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 나왔을 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놀라며 유대인은 사마리아 인과 상종하지 않는데 어떻게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대화중에 여인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가 오실 것을 믿고 있는데, 그분이 오시면 하나님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에 관해서 알려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체적으로 깨닫지 못하면 그리스도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해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며, 사탄이 비 진리로 유혹해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인은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신 예수님이 눈앞에 계시는데도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도들도 말씀을 알고 있다면 이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이 지금 성경의 기록된 예언의 어디쯤 서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이는 것만 믿으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징조가 무엇인지 알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이 달콤한 말로 유혹하면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선악과가 탐스럽게 보이는 것만 믿는다면 그것을 먹은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꼭 기억하여 진리 안에서 믿음을 지키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사랑을 받은 성도가 믿음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흔들리고 인간의 의를 드러낸다면, 예수님께서 사다리가 되어 주셔도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문제를 만날 때마다 감정에 따라서 하나님 일을 잠시 쉬겠다며 자기 생각에 빠지면, 결코 성도로 살 수 없으며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으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9절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 맡긴 영혼들을 모두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꺼이 자기의 생명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기 위해서 사탄과 계략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자기가 죽는 것이 택함 받은 영혼을 살리는 길이므로 막지 않으셨고, 다만 가룟 유다를 잃지 않기 위해서 몇 번이나 그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인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 하지만 나를 파는 사람은 큰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나지 않았다면 좋을 뻔했다는 안타까운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 무지에 사로잡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무지한 자는 복음을 듣지 못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도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볼 수 없는 무지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시고 감람산으로 가셨을 때 가룟 유다와 그 일당이 검과 몽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예수님은 베드로를 도리어 책망하시며 내가 열두 영 되는 천사들을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천사를 부를 능력이 있어서 가룟 유다를 비롯해 악인들을 심판했다면 그것을 본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를 텐데 왜 하지 않았을까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인간의 생각이 다르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고난을 만나면 돈과 사람을 총동원해서 상대를 제압하거나 고난을 끝내야만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분을 내지 마라, 원수를 사랑해라, 인내해라,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당장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참는 것은 어리석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심판하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영혼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배신과 조롱을 당하면서도 인내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은 예수님과 동일한 목적을 가져야 하므로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사는 동안 검과 몽치를 들고 있는 악인을 만날 수 있으며, 광야 같은 세상을 채우고 있는 불 뱀과 목마름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고난을 만났을 때 내가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느냐고 분내지 말고,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여유를 가지고 대처하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7장 22절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

스데반은 유대인에게 모세는 애굽의 모든 것에 능한 사람이라고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서 왕자로 키우시고, 광야에서 목동으로 훈련하신 이유는 결국 출애굽을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서 애굽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는 백성들이 나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여쭈어보았습니다. 스데반은 모세가 애굽의 말과 문화에 능하다고 했는데, 하나님 앞에 선 모세는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거절한 것입니다. 물론 광야생활이 길어지니까 자신감도 잃고 자기에 대한 확신도 없어져서 왕자 때 가졌던 용기를 잃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지금까지 모세를 도와주셨던 하나님께서 그의 곁을 떠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핍박을 받을 때에도 변함없이 여러분 곁에 계시는 보호자입니다. 만약 모세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영접했다면 지팡이가 뱀이 되고, 손에 문둥병이 생기고 또 그것이 치유되는 기적을 보여 주셨을 때 바로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뱀과 문둥병의 기적을 보여주신 것은 모세의 불신앙을 믿음으로 바꾸시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방법으로 문둥병을 주신 것처럼, 어쩌면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은 내가 살아있으며 너를 돕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출애굽은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계획이므로 모세는 믿기만 하면 되지만,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한 채 결단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렸다고 해서 모세가 믿음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그 누구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왕자 때부터 목동으로 살아온 시간까지 모두 지도자가 되기 위한 훈련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모세가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계획이 바로 실행될 수 없으며, 애굽 왕의 악함은 더 극에 달할 것이므로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 두 번 생각하면 늦습니다.

성경을 보면, 바로를 상대로 싸운 사람은 아론이 아니라 모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세워주셨지만, 결국 택함 받은 모세가 감당해야 할 일이므로 명령을 받는 즉시 순종하는 것이 축복을 받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말씀과 세상을 계속 저울질 한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든지, 또 다른 훈련을 받게 되든지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 중에 만나는 세상의 사건을 말씀으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돌을 던지며 예수님이 죽을 때까지 괴롭혔지만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는 순간 하늘과 땅이 함께 징조를 보이며 그가 진짜 왕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하늘 보좌에 올라 더럽고 초라한 인간의 옷을 벗고, 감히 바라볼 수 없는 광채가 나는 빛을 입으셨습니다. 채찍에 맞고 창에 찔린 상처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았던 죄인들이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문이 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믿음만이 살 길이라고 전하시던 말씀은 심판의 기준이 되어 좌우에 날선 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두려운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이 상세하게 증거 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다리가 되어 주신 예수님을 함부로 대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기 때문에 모든 말씀이 사실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보좌 우편에서 심판주로, 대제사장으로, 그리고 왕으로 계신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한 둘째 사망의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권능의 하나님으로 영원히 계실 것이며, 그를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조롱하고 성도를 핍박했던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나면 구원의 기회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들이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광야 같은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좁은 길을 걸었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것입니다.

빛의 자녀가 된 여러분을 어둠이 절대로 덮을 수 없으며 사탄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영원한 불 못에 떨어질 것입니다. 고난의 시간을 함께 견딘 믿음의 형제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축복하며 천사들과 함께 보좌를 향해 찬양하며 기쁨을 나눌 것입니다. 세상에 머물지 않고 사다리를 열심히 올라온 성도에게는 이렇게 아름다운 내생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한 우리들이지만 그리스도께서 몸소 만들어주신 사다리를 잘 밟고 올라가기만 해도 하나님께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쉬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사랑의 고백을 드리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느 믿음의 계단에 서 있든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도만이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형제를 서로 이끌어주고 의지하면서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면 성숙한 교회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굳센 믿음을 가지면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평안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예수님께서 곁에 계시니 염려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선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더욱 평안과 안식을 누릴 것을 믿습니다.

믿음의 계단 · 일곱번째 계단 — 사다리가 되어 주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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