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명을 사랑으로 감당하라 — 고린도전서 · 조춘숙
나가기
10장

하나님만이 사랑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13절 말씀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여러분은 신랑이 기다리고 있는 집을 향해 가마를 타고 가고 있는 신부의 행렬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마를 탄 신부는 신랑을 만날 생각에 설렐 것이고, 신부의 마음은 신랑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앞에 선 가마꾼은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는 길이 비록 멀고 험해도 신부와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선 가마꾼은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앞에서 기쁨의 소망을 가진 가마꾼이 신부를 신랑의 집으로 데리고 갈 것을 믿으며 묵묵히 가고 있습니다.

신부는 이렇게 축복하는 마음으로 소망과 믿음을 가진 가마꾼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신랑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기다리고 계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달려가면서도, 멀고 험한 인생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는 신랑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이 변질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천국을 향한 소망과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신랑을 만날 때까지 인내하는 믿음이 있어야만 사탄의 유혹을 담대하게 물릴 칠 수 있으며, 온유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만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된 사랑은 그 중심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예를 들어 컴퍼스로 원을 그릴 때 중심에 뾰족한 부분을 찍어 놓고, 그 찍는 점에서 컴퍼스를 돌리면 원이 만들어집니다.

컴퍼스로 찍은 중심 부분을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반지름이 같은 그 원 안에 있는 모든 부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울타리로 보시면 됩니다. 그 원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들이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원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모두 성령의 보호하심으로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원 밖에서 아무리 인간의 선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영혼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적인 사랑일 뿐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만이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거북할 수도 있고, 억지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가 신랑을 만나는 것이 가마를 타고 있는 목적이라면 지금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고 있는지 여러분은 이해할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이유가 영혼구원을 위함이고, 죽음이 영혼구원의 완성이라고 볼 때 그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삶이 영혼구원을 위해서 계획되어야만 그것이 사랑이고, 온전한 헌신이며, 완벽한 성도의 삶입니다.

물론 세상을 살면서 착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사랑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나누며 자신을 희생하는 선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세상이 이나마 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마음이 변하면 멈출 것이고, 재물이 없으면 나눠줄 수 없는 한계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착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그려 놓으신 원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선을 행할지라도 상대에게 사후에 천국에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없고, 그 역시 어둠에서 더듬으며 돕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선행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선함은 구원과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자신도 인생이 무엇인지, 인간이 왜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육체를 벗고 난 후 영혼은 어디로 가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는 위로만 할 뿐입니다.

만약 임종을 앞에 둔 사람을 간호하게 되었을 때 영혼이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목적과 방향을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다면 간호하는 사람이나 환자는 죽음이 크게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마지막 목적지가 천국이고, 그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길 되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고 바르게 알려준다면 사후에 자신이 갈 곳이 어디인지 확실하게 알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선한 일을 계획하고 있다면 반드시 영혼구원을 목적으로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억지로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확실한 믿음이 없는 사랑은 양은냄비처럼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식을 수 있기 때문에 받는 사람이 도리어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하려거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그 빛을 비춰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녹슬지 않고 영원하기 때문에 마음껏 나누어 주어도 되는 것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베푸는 사랑은 결국 어둠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 사람이 영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주어야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천국의 소망만 가지고도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은사는 사람이 받고 싶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은사를 주시는 것이므로 믿음의 그릇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그릇이 없이 은사를 받은 사람이 방언과 예언을 해도 그 말씀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은사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꽹과리는 그 악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치면 듣기 싫은 소음인 것처럼 하나님께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받아 놓고도 말씀을 깨닫지 못해서 성도의 삶을 살지 못하면 방언과 예언은 영혼을 살리지 못하는 쓰레기와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아이에게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을 때 아이가 당당하게 나는 수학시간에는 수학책을 꺼내고, 국어시간에는 국어책을 꺼내서 수업에 방해를 하지 않고 있으니 걱정하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책만 꺼내기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시며, 책을 꺼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또 자신 있게 나는 수학공식은 몰라도 수학문제를 하나도 빼지 않고 다 풀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답답한 어머니는 공식을 모르고 문제를 풀면 틀린 답을 쓸 수밖에 없으니까 공식을 외우고 원리를 이해해야만 맞는 답을 쓸 수 있다고 했지만 이미 눈과 귀를 닫은 아이는 모든 문제를 자기 마음대로 풀었습니다. 아이가 푸는 모든 문제는 다 틀렸을 것입니다.

이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모른 채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리며 봉사하는 것은 수업시간마다 단순히 책을 꺼내는 것과 같습니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 세상의 복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모든 예배와 십일조, 봉사를 하는 것은 공식을 모르면서 문제를 푸는 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서 일을 해도 그 중심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에 늘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원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삶으로 살아내는 성도만이 공식을 알고 푸는 아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며, 그 상급으로 구원을 받기도 하고 세상에서 응답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원리를 알고 문제를 푸는 아이는 문제를 내는 사람의 생각 그 자체를 이해하기 때문에 정답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리를 모르는 아이는 어떤 문제이든 자기의 마음대로 풀기 때문에 모두 틀린 답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깨닫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심을 벗어난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며, 원 밖에 있는 교인은 이미 성도가 아닙니다.

꽹과리가 악기임에는 틀림없지만 잘못 사용하면 소음이 되는 것처럼, 교회를 다니고 있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면 그의 모든 삶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에게 믿음이 먼저라고 충고하자, 자기는 날마다 큐티를 하고 있고, 부서에서 봉사를 하고 있으며, 일 년에 성경을 한 독씩 하고 있으니 자기의 믿음을 인정하라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 자체로 그의 행위는 이미 믿음이 아니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큐티를 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이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두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봉사를 하더라도 더 힘써 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성경을 한 독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지 못하는 자신이 죄송해서 성경을 읽는다고 말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 자체가 이미 원밖에 있는 교만입니다.

쉽게 말해서 어떤 사람이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나무 몇 그루를 날라주었다고 해서 자기가 방주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방주의 마지막 문을 노아와 함께 만들었을지라도 방주를 만든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있는 성도라면, 홍수가 올 것을 믿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고, 헌금하고, 봉사한 것 즉 나무를 몇 그루 날라주고, 방주 짓는 것을 구경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라면 예배, 헌금, 봉사는 당연한 것입니다.

방주에 타야만 홍수를 피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나무를 나르지 않겠으며, 석청을 칠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신앙을 지켜야 하는데, 그 과정 중에 예배를 드리고 헌금과 봉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2절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사무엘상을 보면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과 함께 사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윗과 사무엘이 라마나욧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사울이 분하여, 다윗을 잡기 위해서 전령들을 그곳에 보냈습니다.

그때 마침 선지자 무리가 사무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예언하고 있었는데 전령들이 다윗을 잡기 위해서 그 곳에 도착하자 하나님의 영이 전령들도 예언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전령들이 예언하느라 다윗을 잡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은 사울은 어이없어 하며 다른 전령들을 보냈는데 그들도 동일하게 예언했고, 세 번 째 보낸 전령들조차 예언의 영을 받았습니다.

전령들이 다윗을 잡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함께 예언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사울이 직접 다윗을 잡기 위해서 나욧에 도착하자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임하셔서 그도 사무엘 앞에서 벗은 채로 하루 밤낮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해하지 못하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사건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울과 전령들이 예언의 영을 받고 하루 종일 예언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언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서도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다시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악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하고, 하늘의 비밀을 지식적으로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잠시 보였을지라도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의미한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하던 사람이 한 순간에 믿음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그런 사람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컴퍼스로 그린 원, 즉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드린 충성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것은 오직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구원 때문이라는 온전한 이해가 없으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 삶은 원리를 모르고 수학문제를 푼 것과 같이 모두 자기 생각대로 산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믿음이라고 우겨도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사랑의 원을 벗어난 인간의 노력은 헛된 것입니다.

아무리 생명을 주는 사랑을 했다고 하여도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쉴새없이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그 사랑은 인간의 감정이 변하면 깨어져 버리는 사랑이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4~5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이런 마음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성도들도 이런 사랑을 삶에서 보여줘야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참으셨습니까?

그리고 사랑의 열매를 위해서 얼마나 기다리셨습니까?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얼만큼 감사하셨습니까?

사랑은 상대를 높여줄 때 빛이 나는 것이며, 기다려주고 참아줄 때 그 열매가 아름답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와 형제의 사랑, 이웃의 사랑까지 많은 사랑이 있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처럼 조건 없이 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이 자녀가 성장한 후에 키운 대가를 받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세상에서 자기의 몫을 잘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이 믿음으로 세상을 잘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시는 것만으로 기뻐하고 계십니다.

무례히 행하는 사람은 그릇이 작은 사람인데 그들의 공통점은 사람의 칭찬을 받기를 원하고,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면 무례히 행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은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순종하는 척 하다가 원하는 것을 다 얻은 것 같으면 교만해지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이용당하는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자기의 유익만 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사울처럼 비참하게 끝이 날 것입니다.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칭찬은 그 순간뿐이지만, 하나님의 칭찬은 영원하고 하늘의 상급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6~7절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성도들은 자신이 이 세상의 시민이 아니라 천국의 시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을 더 갖기 위해서 악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절대로 교만하지 않고, 천국과 지옥을 알기 때문에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썩어질 세상을 갖기 위해서 자기의 유익만을 어리석게 고집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방해하고, 성령님을 공격하는 사단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직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진리 되신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와 영원한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여러분이 가진 사랑은 고난을 인내하는 믿음이고,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며, 영생을 바라보며 이겨낼 수 있는 큰 사랑입니다.

이 큰 사랑이 마지막 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할 것입니다.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은 인간의 말로 감히 형언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절히 받기를 소원했던 방언과 예언과 지식이 폐해질지라도 상관치 않고 소리 높여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수십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할 때 천국의 소망을 버리지 못해 굶주린 사자에게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주었고, 돌에 맞아 죽었으며 화형에 처해지면서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살폭탄테러를 하는 사람들이나 분에 못 이겨 분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사명감이나 자존심 때문에 죽는다고 하지만, 죽었을 때 어둠뿐인 지옥을 보면서 그가 느끼는 허무함이 얼마나 두려울지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힘들다고, 부끄럽다고, 부족하다고, 견딜 수 없다고 자신의 생명을 끊는 사람들을 보면 죽음이야 누구에게나 한번은 있는 것이지만 사후에 가는 곳이 세상보다 더 힘들고 두렵고 무서운 지옥이기 때문에 함부로 생명을 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지금 성도들이 받은 은사들은 모두 부분적인 것입니다.

볼 수 없는 영원한 세계를 부분적으로나마 알려주기 위해서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듣고 깨달아도 영원한 세계를 보여주고 믿게 해 주는 그 성령의 은사가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 천사들의 나팔소리가 나면 그리스도께 말씀을 직접 들을 것이기 때문에 방언도 필요 없고, 더구나 예언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순교를 각오하며 지켜온 믿음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화로만 통화한 것처럼 부분적으로 듣고 알던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볼 것이고,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손과 발을 직접 볼 수 있으며, 수많은 순교자들과 천사들 그리고 황금 길이 있는 천국을 직접 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는 이렇게 놀라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기적과 같은 사실을 믿고 있는 성도들이 어떻게 인내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떻게 온유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국을 소유한 성도는, 썩어질 이 세상을 더 많이 소유하지 못해서 분을 내고 시기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욕심을 가지고 무례히 행하는 것도, 유익을 구하는 것도, 성내는 것도, 악한 생각을 하는 것도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세상 때문에 천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천국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믿음은 분명 산을 옮기는 기적을 보일 수 있을 것이며, 그 믿음을 통해 지옥에 떨어질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려주신 사랑의 원 안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원 밖에서 아무리 사탄이 유혹한다고 해도 그곳은 영원한 사망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므로 믿음을 지키셔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을 잘 간직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보좌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어둠의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여러분과 같이 있을 것이므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부를 신랑에게 데려다 준 가마꾼처럼 소망과 믿음은 성도가 일할 수 있도록 늘 울타리가 되어 줄 것이며, 여러분이 품고 있는 사랑은 어린양이 베푸는 혼인잔치까지 같이 갈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 그리스도의 신부인지 아시겠습니까?

신랑을 만날 그날을 위해 여러분은 신부로서 자신을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늘 소중하게 간직하시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모든 사명을 사랑으로 감당하라 · 하나님만이 사랑이십니다
77% · 10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