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명을 사랑으로 감당하라 — 고린도전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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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순종하는 자가 받는 생명의 면류관

고린도전서 9장 20~27절 말씀

20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저는 몇 년 전에 우연히 이승훈 선수가 출전하고 있는 10,000m 스피드 스케이팅 결승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주자로 나섰던 네덜란드 스벤크라머 선수의 역주가 인상적이었고, 이승훈 선수보다 4초나 빨리 결승점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은메달을 받겠구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경기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네덜란드 선수가 규칙을 어겼다는 방송이 나오면서 우승을 확신했던 네덜란드 선수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쓰고 있던 고글을 집어 던지는 모습이 생중계 되었습니다.

스벤크라머 선수가 실격된 이유는 인코스를 2회 연속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10,000m 대회는 400m의 경기장을 25바퀴 돌아야 합니다.

한 번은 아웃코스로, 그 다음에는 인코스로 진입하며 25바퀴를 돌아야 하는데 그만 인코스를 2회 연속 진입하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승훈 선수는 우승자의 실격으로 금메달을 따게 되었습니다.

스벤크라먼 선수는 세계 신기록 보유자이기 때문에 그를 이길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실수로 금메달을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네덜란드 선수는 이 경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훈련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 실수로 인해 세계신기록을 달성하고도 우승자의 자리에 서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고생을 하면서 훈련을 하고,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해도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순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마음이 얼마나 허망했을지 이해가 됩니다.

물론 그 선수에게는 다음 경기가 있기 때문에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경기이든 법을 지키지 않으면 일등을 해도 우승자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이승훈 선수가 4초를 늦게 들어왔지만 그는 법대로 경기를 했기 때문에 앞선 자가 무너지자 그에게 기회가 왔고 금메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주는 메달도 이렇게 법을 지켜야만 받을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금면류관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대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그 선수는 다음 시합에서 우승을 하면 되지만, 우리는 인생이 끝나고 나면 기회가 없기 때문에 지금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이 끝나고 나면 돌이킬 기회가 없으므로, 지금 가난하든 병이 있든 부유하든 건강하든 그에 상관없이 살아있을 때 기회가 있는 것으로 알고 믿음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바울의 믿음은 제사의 음식도 먹을 수 있고, 하나님의 법 안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진리 안에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신앙을 가졌지만, 믿음이 연약하거나 아직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인내하고 자제하며 본을 보이는 삶을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성도의 자세입니다.

교회 일을 감당하고 있는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대로 헌신하지 않고 내 생각과 계획대로 일하게 되면, 사람들이 볼 때는 충만해 보이고 많은 일을 감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는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선수처럼 경기규칙을 어기게 되면 앞서서 결승점에 들어왔을지라도 금메달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영혼구원을 위해서 정하신 법을 어기고, 인간의 의를 앞세우게 되면 인생의 마지막 날 하나님을 만났을 때 상급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시합에서 우승한 선수들은 많은 상금과 명예를 얻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적인 상급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도마가 믿지 못하자 그에게 말씀하시길 못박힌 내 손을 봐라, 그리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한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이지만 구원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별 의미가 없겠지만 천국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 생명입니다.

꼭 예수님의 못박힌 손을 봐야 믿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창자국을 만져봐야 믿는다면 결국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상급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봐야만 믿겠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못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구세주라는 것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며, 지금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보는 것처럼 믿어야 하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살아내는 것이 믿음이고 올바른 신앙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이 있어야만 볼 수 있고, 우리가 육체를 벗어야만 볼 수 있는 영원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육신을 벗고 난 후에는 돌이킬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래서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법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영적인 상급을 받기 위해서는 더 인내하고 절제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만 그리스도를 만나는 날 자기의 상급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다녀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이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권세나 명예보다 천국에서 받는 상급이 귀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27절에 말하길, 자기도 이 상급을 받기 위해서 자기의 몸을 쳐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도 자기는 도리어 버림을 받을까 봐 두렵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짓는 죄는 큰 죄와 작은 죄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는 큰 죄와 작은 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죄입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실제로 그의 삶이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말과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성도를 품어주시기 때문에 이런 양면성을 가진 심령에게는 상급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영혼구원만 걱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러분이 늘 혈기를 부리고 분노하며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벗어난 감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께 책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씀 밖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으면서도 교회만 다니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방주에 8명만 탄 것을 보면 말씀을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사는 것, 즉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천국은 어떤 사람들이 가는지, 그리고 지옥은 어떤 사람들이 가는지 성경을 통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몇 천 명의 영혼을 향해 말씀을 선포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예수님을 잘 전한다면 여러분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그들은 구원을 받겠지만, 정작 복음을 전한 여러분이 세상 사람처럼 산다면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몇 천 명을 구원하는 것보다 자신의 구원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의 영혼구원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더 노력하고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2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과 함께 죄를 지을 우리의 육신이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죄를 짓고 싶어도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거룩한 성도입니다.

사탄이 아무리 세상의 권력과 명예와 음란으로 유혹한다고 해도 여러분은 성도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유혹을 받아들일 육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더불어 죄를 짓는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지 않아서, 죄를 지을 몸이 있는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할 거룩한 영혼이 없는 자입니다.

이제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이 심판을 받는지 확실하게 아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성자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거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6장 12~13절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바울은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죄가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오직 육신뿐이므로 바울처럼 자신의 몸을 쳐서 말씀에 복종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몸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 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죄를 지을 때는 사탄이 사용하는 불의의 무기가 되는 것이며 성령께 붙들릴 때는 하나님께 사용되는 의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불의의 무기가 될지 아니면 의의 무기가 될지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죄를 멀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말씀으로 자신의 혈기와 세상을 향한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불의의 무기가 되면 사탄이 여러분을 주장하기 때문에 아무리 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져야 하고, 오직 거듭난 성도로서 의의의 병기가 될 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죄는 큰 죄와 작은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살인을 한 사람이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무시하고 자기의 생각과 감정대로 말과 행동을 한 사람이나 똑같은 죄인입니다.

두 사람이 모두 성령을 탄식하게 하였고 아프게 해 드렸기 때문에 살인한 자의 죄가 더 크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두려워한다면 죄가 여러분을 주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세상과 불의한 법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사탄이 여러분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구약에서는 백성이 죄를 지었을 때 속죄할 수 있는 짐승을 성막으로 데리고 와서 죄를 전가하는 안수를 한 후에 죽여서 그 피를 뿌렸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몇 번이고 짐승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고 난 후에는 성막에서 짐승으로 속죄하는 제사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자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드렸기 때문에 짐승을 드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예수님의 희생으로 속죄함 받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범죄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짓는 것이므로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천국을 만드셨고, 사탄과 귀신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지옥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 인간의 생각대로 살아가다가 사탄이 들어가는 지옥에 함께 떨어지는 불행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회를 주시며, 말씀으로, 사람을 통해, 영으로 계속 돌이키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복음을 들을 기회를 많이 주시기 때문에 훗날 주님을 만났을 때 나는 듣지 못했다고 변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10절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바울이 죽을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몇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원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전할 수 있다면 그곳이 공회라 할지라도 거절하지 않았고, 어쩌면 죽는 자리라 할지라도 기꺼이 그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시아에서는 고난이 너무 힘에 겨워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굶기도 했고, 옥에 갇혀서 매도 맞았으며, 배가 파선하여 죽을 뻔 했고, 조롱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가문과 좋은 학벌을 가졌던 바울이 다메섹에서 만난 그리스도로 인해 편안한 인생을 버리고 힘겹고 두려운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재산이 없어서 궁핍한 것도 아니고, 로마시민권이 없어서 핍박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최고의 학벌과 최고의 가문과 그 당시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로마시민권을 가졌고, 유대인에게 인정을 받는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갖기를 원하는 권세와 재물과 학벌을 모두 버리고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최고의 학벌과 가문과 율법과 재물보다 더 분명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천국을 본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세상의 모든 것이 썩어질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만이 썩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이라는 것을 깨닫자 자신의 생명마저 기쁨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이 세상에서 몇 백 년을 살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사후에 갈 곳을 알고 사는 사람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영혼을 천국에 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을 버리셨습니까?

교만한 마음과 혈기와 인간적인 지혜와 세상을 향한 욕심 중에 그리스도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버렸노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분명히 예수님께 자복하는 날이 올 것이므로 생각해 두셔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1절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행동을 하였으며,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행동을 했는데 그것은 단 몇 명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오해해서 내가 술 먹는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같이 술을 먹었으며, 주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놀러 다니는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같이 놀러 갔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그리스도께 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죄 된 행동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술을 먹고 교회에 안가는 삶은 이미 본이 되지 않습니다. 불신자에게 예수님을 전했다고 해도 이미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자체로 복음을 희석시키고, 예수님을 조롱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이끌어 줄 만한 영적 권세가 있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접근했습니다.

그는 성숙한 사람이었기에 몸이 연약한 사람을 대할 때는 그 연약함을 이해하는 자세로, 믿음이 약한 자들을 대할 때는 그 약함까지 감싸 안아 주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율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율법주의자들에게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를 가장 쉽고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오직 복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연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

처음에 10,000m 결승 경기에 대해서 말씀 드린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경기는 우승자 한 명을 가리기 위해서 VTR 판독을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경기에서 상을 받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한 명만 상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라인에서 법대로 달린 사람은 모두 그 라인을 끝까지 달린 상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성도들은 어떤 라인에서 뛰었든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에게 면류관을 씌워주시며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하거나 몸이 약해서 난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스스로 상급을 포기하는 잘못된 선택입니다. 주어진 환경이 남들보다 좋지 않더라도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세상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경기를 하지만 영적인 경기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기 때문에 모든 성도가 동일한 조건에서 달리지 않더라도 모두 우승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얼마나 인내하고 절제하고 계십니까?

정말 영원한 생명을 원하고는 계십니까?

복음을 전하는 성도의 본을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혈기를 참고 있으며 자신을 다스리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도 아무런 감동이 없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기쁨이 없다면, 지금 충만한 믿음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금방 시들고 썩어버리는 세상의 것보다 영원히 썩지 않는 하늘의 것으로 축복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나서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을 때 그 나뭇잎이 금방 시들어버리자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들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히시며 부끄러움을 가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금방 시들어버리는 월계수잎으로 화환을 만들어 우승자에게 씌워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빛나는 생명의 면류관으로 축복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은 믿음을 가진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유한한 이 세상은 무한한 세상에서 살기 위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과정으로 사용되므로 말씀에 순종한다면 분명 놀라운 축복의 날이 올 것입니다.

육체를 벗고 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날까지 절대로 그리스도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힘들면 힘들수록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기도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성령께서 모두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드린 순종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날 여러분 앞에 셀 수 없이 많은 상급이 되어 쌓여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그날을 기대하며 힘차게 앞만 보고 달려가시는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명을 사랑으로 감당하라 · 순종하는 자가 받는 생명의 면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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