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1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농부들은 누구나 일년 내내 땀을 흘리며 추수할 날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경매시장에서는 농부의 수고보다는 품질의 차이로 가격이 정해지기 때문에 상품가치가 있도록 키워내야 합니다.
그래서 농부는 땀 흘린 보상을 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자기가 키운 열매의 가치를 인정받기 원하는 농부의 간절한 마음을 사도바울은 9장에 목회자의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은 자유인이고 사도이지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 모든 자유를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우상의 제물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믿음이 있고 복음도 마음대로 전하면서 살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포기 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 거듭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은 어떤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도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영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의든 강권적인 역사이든 자기가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절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저는 사도바울이 한 이 말을 여러 번 읽으면서 이 말 속에 사도바울이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알기에 마음이 찡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은 몰라줘도 고린도교인들만은 자신이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과 영혼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아줄 것을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고린도교회를 세웠으며, 그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해 헌신했습니다.
그 어떤 어려움과 핍박을 당해도 고린도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자유를 포기했으며, 그들이 그리스도를 만나 자유 할 수 있도록 일했습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한 만큼 고린도교인들이 충만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그가 이런 믿음으로 헌신한 덕분에 그의 충성은 고린도교인들의 불충성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생명을 바쳐 복음을 전한 교회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충만한 은혜 가운데 성장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헌데 고린도교인들은 세상 사람과 다름없이 폭풍에 떨어진 열매처럼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너무나 쉽게 버렸고, 사도바울처럼 진실한 복음을 전하는 사도를 조롱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다른 지역에 가서 선교하는데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고린도교인들이 말씀으로 성실히 살아서 바울의 자랑이 되어야만 합니다.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을 보여줘야만 바울이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너희들도 고린도교회처럼 구원받아야 한다고 힘 있게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세상의 편안함을 다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인들이 타락하자 크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참된 복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비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지었고 신성한 결혼을 음란한 삶으로 깨어버렸으며, 세상의 잘못된 거짓복음과 권세와 물질을 교회로 들여와 진리를 희석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도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면서 그의 연약한 육체를 비웃었습니다.
그렇게 악한 교인들에게 바울은 또 한번의 회개를 촉구하며 돌이킬 기회를 준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인정받도록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바로 고린도교회 성도이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 없음을 더 안타까워하며 책망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제가 하나님께 목사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물줄기교회 성도들의 믿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가르쳐서 하나님을 온전히 만난 성도들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저를 목사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아끼는 성도들이 썩어가고, 도리어 바울을 공격하는 이 상황이 어쩌면 바울에게는 무엇보다 더 아픈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에서 종살이를 하며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던 고린도교인에게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왕처럼 섬기며 조금씩 받는 돈으로 연명하던 그들에게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복음을 영접한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단했을 때 사도바울은 영혼구원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생명과 같았던 그들이 변질된 것입니다.
죄인 줄도 모르고 자기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사도바울을 판단하고 비판하며, 육체의 연약함을 조롱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아볼로와 베드로와 바울을 비교해 가면서 바울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리고, 사도권까지 의심하는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고린도교인은 왜 이런 죄를 짓고 있는 것일까요?
인간이 어떤 노력을 해도 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토록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 바울을 왜 버리는 것일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작은 선물은 평생 간직하면서 영원한 천국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을 전해준 사람은 너무 쉽게 버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왕이며, 창조주와 구세주와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을 진실로 믿지 않아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세상을 버리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마음에서 버려야만 비로소 영원한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린도교인들은 마음에서 세상을 버리기는커녕 그 어두운 마음에 사도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죄까지 더한 것입니다.
물론 목회자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이 죄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진리를 전하지 않고 인간적인 삶을 위해 교회를 이용하는 목회자는 마땅히 성도들이 판단해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것입니다.
목사가 전하는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판단할 능력이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올바른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도바울과 같은 목회자가 더 활발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반드시 도와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았다면, 구원받은 자로서 사도바울이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들의 사명일 것입니다.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1절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목회자는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쉽고 바르게 성도들에게 가르쳐주고,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배우며 더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그런데 요즘 목회자들이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걸기보다는 목회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세상의 욕심에 집착하므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자기의 생활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고, 성도들은 목회자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목회자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만 그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이 권위가 있습니다.
성도들 역시 자신에게 말씀을 전해주는 목사를 존경하지 못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아주 불행한 일입니다.
요즘 목회자들이 영적으로 타락하여 성도들에게 진리의 길을 가르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많지만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외쳐야 하는 성령 충만을 이단이 사용하고 있고, 목회자들이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 헌금을 잘못 사용하자 성도들은 헌금을 당연히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기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드려 헌신해야 하는데도 세상의 복과 믿음을 흥정하도록 가르쳤기 때문에 세상의 성공이 보장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목회자들이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에 도리어 거짓복음이 성도들을 교회에서 이끌어 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목회자들은 지금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에베소로 찾아온 문제 중 한 가지는 목회자가 받는 생계비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을 비롯해 아볼로와 베드로는 세상의 삶을 포기하고, 교회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 받는 생계비를 가지고 몇몇 교인들이 불평하자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하심을 통해 가정과 건강과 재물을 지켜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는 법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소의 헌금입니다.
목회자에게 생활비를 주기 위해서 헌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목회자는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여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의 삶도 중요하지만 교회에서 목회자를 통해 영적인 말씀을 듣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출세한다고 해도 구원을 받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져서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은 목회자가 생계비를 받는 것을 자기가 힘써 벌어온 것을 거저 갖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짧은 인생이 끝나고 나면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에 따라 자기의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신앙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설교 중에 잠시 조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데 졸고 있는 행동 자체가 이미 사단에게 점령당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과거에 평신도로 교회에 다닐 때 설교시간에 졸고 있는 사람을 목사님이 책망하지 않기 때문에 저렇게 자도 되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졸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관심이 없기 때문이며, 또 그런 사람을 책망하지 않는 목사 또한 마찬가지이기에 그런 행동을 묵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를 하다 보니 예배 중에 조는 그 자체가 얼마나 하나님께 죄인지 알게 되었고, 말씀이 자기 심령에 새겨지지 못하도록 막는 악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일한 말씀을 들어도 마음 밭이 옥토가 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주어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진리를 전해도 성도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진리를 듣고도 실족하는 심령을 보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돌짝밭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으로 가면서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위해서 기도할 때 이런 말씀을 받았습니다.
지금 예배드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내 앞에 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복장이나 태도나 마음가짐을 똑바로 하라고 말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하나님을 만났을 때, 지금 네가 입고 있는 옷이 예배드리는데 합당한 복장이냐고 물으실 것이며, 왜 예배를 드리면서 딴 생각에 빠졌으며 왜 졸고 있었느냐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무척 두려운 말씀입니다.
예배시간에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사탄이 일하고 있다는 것은 진리가 그만큼 소중하다는 증거입니다. 훗날 맡겨주신 영혼에 관해 하나님과 계산을 해야 하는 목회자들은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영적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자녀들의 영혼이 여러분의 잘못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신다면 목회자의 심정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이런 목회자가 말씀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공급하는 생계비를 가지고 불평한다는 것은 결국 영혼구원에 관심이 없는 행동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9절
모세는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소에게 망을 씌우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소가 하는 일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회자를 소에 비유하는 것은 그렇지만 목회자의 생계를 성도들이 책임지는 것은 바로 목회자가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에 집념하여 얻은 영적인 은혜를 성도들이 더 많이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영적인 깊은 은혜를 나누어 주는 목회자의 생계를 교회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목회자는 하나님께 생활비를 받아 교회를 위해서 서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운 자로서 베드로나 아볼로보다 물질적인 권리를 더 요구할 권한이 있지만 당연한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선교를 위해서 사용해야 되는 헌금은 당당하게 미리 준비하라고 부탁했지만, 자기를 위해서 사용할 때는 부담스러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14절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사는 자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한 것입니다.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서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보살핌을 더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복을 빌미로 헌금을 강요하거나 목회자를 대접해야 복을 받는다고 하면 교인들은 불만이 있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헌금하고 헌신합니다.
하지만 강요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스스로 헌금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헌금할 상황이 되면 목회자들이 변질되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우는 아기에게 젖을 더 주는 그런 식의 헌금, 즉 목회자의 강요에 의해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도들의 헌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가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목사님이 미국에서 귀국할 때 저의 처음 계획은 교회가 재정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부목사님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서 살도록 하는 것 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하는 중에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목회에 집중하지 않으면 성도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먹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부목사님은 충분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너무 많은 시간을 세상에 빼앗기게 될 것이고, 성경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목회자가 성경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기도의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목회자가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 영적인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불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세상일을 못하게 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다른 목회자들이 생활비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에서 생계비를 받지 않고 천막을 짓는 일을 한 것은 존경하고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일한 행적을 보면 동역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처럼 말이 많은 교회에서 그는 생활비를 받지 않고 오직 복음을 전했지만, 그 선한 일이 그들로 하여금 바울을 하찮게 여기도록 만드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헌신한 바울을 더 섬기는 배려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2~15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하여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으러 강가에 나갔을 때 여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그 중에 루디아라는 여인이 복음을 듣고 바울에게 자기의 집에서 유하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 집에 머물면서 그 집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루디아의 전적인 도움을 받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자색옷감은 왕족만 입는 옷이기 때문에 루디아가 자색옷감을 판다는 것으로 보아 그 여인은 큰 재물을 가지고 있는 갑부였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회개한 루디아는 사도바울이 사역하면서 필요한 많은 선교헌금을 공급했다고 알려져 있고, 그녀의 집은 빌립보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를 세울 때 사도바울을 돕던 사람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였습니다.
이 부부는 사도바울이 선교지로 삼는 모든 지역으로 먼저 이사 가서 바울이 복음만 전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만들었던 동역자입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을 돕던 동역자들을 말씀 드리는 이유는 목회자는 반드시 생활비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은 동역자 없이 목회자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삼층천에 다녀왔고,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기 때문에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육신을 벗고 나면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왔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던져 복음만 전했습니다.
이런 사도바울을 돕는 동역자들이 없었다면 바울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복음에 전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던 유대인들을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영적으로 육적으로 서로 도와주는 영적인 지체를 그리스도 안에 담아 주신 것입니다.
성도들은 목회자가 말씀만 연구하고 더 깊이 기도할 수 있도록 육적인 것을 도와주고, 목회자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단과의 전쟁을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지체로서 도와야 하는 것인데, 목회자들은 섬김을 받으려 하고 성도들은 헌신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신앙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 알기에 그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의로 기쁨을 가지고 전하든 아니면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복음을 전하든 사명을 받은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만약 자의로 복음을 전했다면 그 헌신은 하나님께 크게 상급을 받는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목회자가 하나님께 드릴 열매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어떤 열매인지 보시고, 그 열매에 따라 목회자가 사명을 잘 감당했는지 아니면 게을렀는지 판단하실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영적인 일을 하는 목회자를 돕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고, 목회자는 성도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성도는 성도로서 사명을 감당할 때 교회는 든든히 서 갈 것이며 많은 영혼이 구원의 방주인 그리스도 안에 가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다 누리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 할 줄 아는 성도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성도가 될 때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축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