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명을 사랑으로 감당하라 — 고린도전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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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고린도전서 11장 1절 말씀

1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그 누군가의 본이 되기 위한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항상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나 부모와 스승은 앞선 자이기 때문에 본을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늘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뒤를 따르는 성도와 자녀와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앞서서 가고 있는 사람들의 단점은 자신에게 후하기 때문에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 때마다 분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한 이유는 자동차로 말하면 그 사람들이 운전대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는 운전자의 의지대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운전을 잘 못하거나 길을 잘 모르거나 또 혈기가 많은 사람이 운전을 하면, 그 차는 안전하지 않고 그 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 또한 모두 안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인격을 잘 갖춘 사람이라 할지라도 운전에 미숙하거나 길을 모르면, 그 차에 동승한 사람들은 운전자 때문에 모두 길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운전에 능숙하고 길을 잘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혈기가 많은 사람이 운전을 하게 되면, 계속 분을 내고 혈기를 내는 모습을 봐야 하기 때문에 동승한 사람들이 불안할 것입니다.

이것처럼 목회자가 말씀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잘 몰라서 진리를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성도들은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목적지를 모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늘 불안하고, 영적으로 방황할 것입니다.

부모가 혈기가 많고 고집이 세서 자기의 뜻대로 이끌어가는 가정은 자녀들이 더 큰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부모만큼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작은 그릇이 될 것입니다.

교회와 가정을 이끌어가는 운전자에 따라서 교회와 가정이 준비된 그리스도의 길로 쉽게 갈 수 있는가 하면, 계속하여 좌우로 흔들리며 불안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이 인생의 목적지를 확실하게 아는 여부에 따라 그들을 따르고 있는 성도와 자녀들의 인생은 현저하게 달라질 것입니다.

앞선 자의 인격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만 함께 가는 사람들이 평안한 삶을 살 수 있고,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으로 앞선 자와 부모는 본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먼저 자신을 쳐서 복종하며, 겸손하게 낮아지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준비가 잘 되어 있다면 여러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로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도니까 또 부모니까 완벽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하실 것이므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여러분을 인정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과 인생을 책임진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영혼구원은 바로 영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쟁터에서 여러분의 지시대로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신뢰하지 못해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그 전쟁은 싸워보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신뢰는 한 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한번 잘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성도, 부모,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이미 사탄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과 같습니다.

앞서서 가는 성도가 모든 면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산다면 더 많은 그리스도의 용사들이 배출될 것이므로 사탄은 앞선 자가 평안히 가도록 가만 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혈기를 내도록 만들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쏟게 할 것이며 미워하는 마음을 주어서 예수님의 일을 망치도록 할 것입니다. 결국 운전자를 흔들어 그리스도의 길로 가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탄의 계략에도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만큼 성숙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건물에 간판을 달았다고 해서 목사가 아니고, 결혼식을 올리고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부모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성도가 아니고, 제자를 가르친다고 해서 스승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아 계십니까?

그들이 여러분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신뢰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하신 분의 능력을 덧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와 사람만 보지 말고, 이 문제 때문에 내 마음이 지금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살피기 바랍니다.

사탄이 나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만든 이 문제가 혹시 내가 사탄에게 어떤 빌미를 준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만약 혈기가 난다면 기도하고,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들면 회개해야만 성숙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고난을 막아주시지 않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그릇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시기 위함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혈기와 미련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면 그는 사탄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을 돌아보면서 내 믿음이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 사람을 세우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는 노력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성도,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희생하고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도리어 여러분을 더 높이 세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덕을 베풀고, 양보하며, 용서하고, 품어주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본이 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하루 이틀, 한 달, 일 년을 노력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이라는 목적지만 바라보고 달려갈 때, 하나님께서 십 년 혹은 전 인생을 믿음으로 노력한 여러분을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는 자리에 앉혀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의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버려야 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깎아야 합니다.

헌데 성도들이 사탄의 존재를 잊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을 가질 수 없고, ‘하나님께서 내 소원대로 아니 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만 하며 그분이 하신 말씀만 전하는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어 자기처럼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목적이 뚜렷합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어둠과 사망에서 건지기 위해서는 진정한 빛이시고,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인도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와 부모는 자기의 생각을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내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대로 행동할 때, 성도와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게 되며 본을 보이는 목회자와 부모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와 자녀에게 본을 보인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비위를 맞춘다거나 그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감정을 읽어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그들이 살아내기를 원하는 믿음의 본을 보이는 것이 먼저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는 영적으로 자유 할 수 있는 신앙을 가졌지만,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늘 조심했습니다.

자기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 것을 염려하여 자중했고, 무엇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계획, 품성,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를 가릴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은 가리고, 오직 그리스도만 드러내어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본받기를 원했습니다.

나보다 상대의 구원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도바울처럼 삶 속에서 덕을 베푸는 사람이며, 덕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인격이 출중하고 지혜가 풍부한 사람은 어떤 공동체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삶을 통해서 드러낼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5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는 B.C. 8세기 경, 즉 예수님께서 800년 후에 오실 것을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찔림을 받고 채찍에 맞을 것이며,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실 것이라고 이사야는 확실하게 예언한 것입니다.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고, 예언대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언대로 부활하셔서 모든 말씀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심 없이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인간들을 사망에 버리고 사탄에게 맡기시면 그만이지만,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신 거룩한 사랑 때문에 영화로운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세상에 직접 오셨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화로운 보좌를 버리고, 사탄의 종이 되어버린 인간들을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시는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존재 자체가 죄인인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감사하기는커녕 세상의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성공도 필요합니다.

이 세상은 결국 물질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돕는 것은 결국 주님의 일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존재적 죄인이기 때문에 세상의 영화를 맛보고 나면 주님과 믿음의 형제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축복을 받고 더 나아가 성공한 그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시는데, 인간은 하나님보다 천국보다 화려한 이 세상과 자랑이 먼저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교회를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죄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날을 예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성령을 통해 성경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을까요?

성경 말씀대로 역사는 흐르고, 세상이 성경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지금 우리 눈에 보여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제 성경대로 말세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재림의 나팔소리가 아주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성경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시기 위해서 기록으로 남겨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초림 예수님께서 오셨고, 이제 예수님의 약속대로 다시 재림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보이신 것처럼 거룩한 사랑을 베풀어 영혼구원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짧은 세상의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맞이해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다른 사람들보다 형편이 조금 낫다고 해서, 조금 더 세상을 소유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믿음 밖에 없으므로 믿음의 충만함을 위해서 기도하고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식이 많은들 하나님보다 많을 것이며, 여러분이 소유가 많은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보다 많을 수 있겠습니까?

인생은 이 육을 벗어야만 끝나는 것이므로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이 있는 한 그리스도를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의 형제를 지체로 묶어 주신 것은 절대로 혼자서는 사탄을 대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믿음의 형제를 높이고 아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하는 기도가 참으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를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위해서 중보 한 그 형제의 기도를 듣고 여러분에게 응답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지금 여러분이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 믿음의 형제들의 기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기도가 쌓여야만 응답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이제는 됐다’라는 말이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탄을 무저갱에 가두시기 전까지는 끊임없는 영적 전쟁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을 한 나라의 백성으로 묶어 주셨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 12명을 불러 함께 동역하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물줄기교회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여러분은 한 지체입니다.

그런 지체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성숙한 성도가 아닌 것입니다.

저는 괴롭히는 사람 때문에 회사를 옮기려는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만약 그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다른 회사로 쉽게 옮기면 그 사람보다 더 악하게 괴롭힐 사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인내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옮긴 청년들은,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고 전에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은 차라리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또 그 회사를 그만둬 버리곤 합니다.

사람이 괴롭히는데도 그냥 그 회사를 다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자신이 빌미를 준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믿음이나 실력으로 그 상황을 이기려는 노력을 해야만 하나님께서 편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그네처럼 세상을 지나가면서 믿음으로 인내하고, 기도하며, 형제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성령의 보호하심을 울타리로 삼아 천국까지 흔들림 없이 그냥 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아는 사도바울은 그 거룩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을 전하는데 자신의 생명까지 모두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쉽다면 순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영원한 세계, 하나님께서 성전이 되어 주시고 어둠이 한 점도 없는 빛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축복을 받는 것은, 지금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얼마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인내했느냐에 따라서 정해지는 상급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시고 예수님께서 죄의 담을 허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도와드렸습니까?

어쩌면 그때는 우리가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재림의 나팔소리가 울리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언제 오시겠다는 말씀은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를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지금이 그 마지막 때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나팔소리가 나면 주님께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준비는 재산을 팔아도 할 수 없고, 생명을 드린다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여러분의 심령 안에 계시는 성령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자기를 본받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사도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도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영혼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아파하셨던 주님의 마음처럼 영혼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성도가 신령한 복을 받은 거룩한 성도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목적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판단하실 때 오직 영혼구원에 초점을 맞추셨던 것처럼, 여러분이 인생의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결정의 요인이 무엇인지 한 번만 깊이 생각해본다면 헛된 인생을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 때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될 것이고, 방황 없는 인생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만을 전할 때 크게 쓰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나 12명의 제자들 그리고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왕궁에서 산 것도 아니고 많은 물질을 가지고 세상을 호령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진리의 말씀을 전했고, 하나님께서 만나라는 사람을 만났을 뿐이며,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곳에 갔을 뿐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리를 전하고 영혼을 사랑하며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가기 위해서 자신을 쳐서 복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크게 사용하고 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그릇으로 사용되고 계십니까?

지금 그 누군가 여러분의 삶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 하고 싶어 한다면 더 신중하게 결정하시고, 담대히 유혹을 버리며, 오직 여러분을 통해 그리스도가 드러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그리스도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셔서 주님께서 오실 때 가장 먼저 맞이할 수 있는 귀한 믿음을 갖고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명을 사랑으로 감당하라 ·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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