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버리지 못한 사람들
17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두 번에 걸쳐서 여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직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을 번역한 제롬이 자기의 사상을 번역본에 집어넣음으로써 지금까지 여성들이 많은 불이익을 당했다는 것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울은 여성에 관해 불평하는 남성들의 질문에 모든 결정은 여성들이 할 수 있다고 하였고, 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나는 이런 특정한 사건은 다른 교회에서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이 교회에서 하고 있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성만찬에 대한 설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세상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몰라서 행하는 잘못된 행동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무엇인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깨우쳐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처럼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시면서 제자들이 갖기를 원하셨던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그들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한 지체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형제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않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세상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죄의식조차 없었습니다.
고린도는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반면 부유한 사람을 섬기는 종의 신분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부유한 사람들은 돈을 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이런 주종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신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믿음의 형제라 할지라도 복종할 수밖에 없었지만, 교회에 오면 달랐습니다.
교회는 믿음으로 판단을 받는 곳이기 때문에 세상의 겉옷을 모두 벗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지체를 서로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들의 관점까지 바뀐 것은 아닙니다.
바울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세상의 힘을 배설물로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의 행동은 교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대접받던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습관 그대로 교회에서 행했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어쩌면 교회가 흔들리고 시끄러운 것은 이렇게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자기 자랑과 욕심과 정욕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재벌로, 권세자로, 좋은 학벌로 대접받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높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에서는 세상의 겉옷을 벗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로서 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버려야만,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아무리 세상에서 출세하고 높은 직함을 가졌다고 해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높은 지위로 구원의 조건을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벌이 좋고 혹은 한 분야만 연구해 능통한 박사라 해도 그것은 세상의 지식일 뿐, 영적인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자기를 인정해 달라는 교만을 드러내거나 자신을 높여달라는 어리석은 자들은 교회를 시끄럽게 할 뿐이며, 하나님과 바울에게 크게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나라에 선거가 있을 때 후보자를 강대상 앞에 세워서 연설을 하게 하거나, 목회자가 정치에 관여하여 특정한 사람을 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세상의 일을 전하는 곳이 아니므로 오직 말씀만 선포해야 하며, 성도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문제를 교회로 가지고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구약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선인과 악인을 왕으로 세우는 분은 하나님이고, 그들을 통해 백성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세상의 왕을 사용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한 백성이 노력했다고 해서 세상의 왕과 권세자를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선한 통치자가 설 것이고, 성도가 죄의 길로 갈 때 악한 통치자가 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만 있으면 교회가 세상의 정치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이 진리를 깨달았거든 성도들은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 몇몇 사람들이 세상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가볍게 행동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들과 화합하여 하나가 되려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결국 교회를 어지럽혔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희생을 드러내지 못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죄를 지은 인간이 지혜로우면 얼마나 지혜롭겠습니까?
사람이 가진 소유는 모두 하나님의 것이므로 교만할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도구라는 믿음을 갖지 않으면 결국 세상에 안주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2절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바울은 부유한 사람들이 한 행동을 보고, 그런 행동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행동이라고 책망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교회에서 음식을 만들어 성도들을 대접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각자 자기 집에서 음식을 가져와 나누어 먹었습니다.
잘 사는 사람은 여유 있게 가지고 왔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가지고 오지 못할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은 넓은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음식을 더 많이 가져오든지 아니면 함께 먹기 위해서 기다리는 배려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습관을 버리지 않고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시간적으로도 여유롭기 때문에 일찍 교회에 와서 음식을 다 먹어버렸고,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취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종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의 일을 다 하고 나서야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왔지만 믿음의 형제들이 가져온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즐거움도 상당히 컸을 것입니다.
주인과 종이 한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세상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큰 축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교회는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생겼고, 성도간의 사랑이 메말라 예수님을 떠나는 성도가 늘어갔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자 교회를 아끼는 누군가가 바울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제지하지 못하고 바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보면 치리 하던 직분자가 가난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자기를 섬기던 가난한 자가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주인인 자신에게 감히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세상의 소유와 상관없이 성도로서 치리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세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을 책망하면 직분에 상관없이 자존심 상해하며, 도리어 대적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다스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만약 세상의 권세자가 교회에 왔을 때 교리를 잘 모르거나 하나님의 뜻에 반한 행동을 한다면 직분자들은 그를 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부유한 사람이 교회를 떠나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염려하여 책망하지 못한다면, 그 영혼도 구원받을 수 없고 교회 역시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담대하게 그들을 향해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고 책망하였고, 너희들이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행동은 곧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악한 행동이며, 믿음의 형제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책망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언제나 집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가난한 형제들은 그들이 믿음으로 가져온 것을 나누어 줄 때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처럼 부유한 자들이 어려운 형제에게 나누는 것을 기뻐하는 믿음을 갖는다면 교회는 언제나 섬기고 나누는 화목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을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기의 재산을 팔아 나누는 일, 즉 바나바가 했던 헌신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믿음입니다.
자기의 물건을 아끼지 않고 믿음의 형제들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그 형제의 어려움이 해소되는 것을 보면서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은 초대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이런 믿음을 본 세상 사람들은 크게 놀랐고, 세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들이 그리스도로 인해 일어났다는 것에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자신보다 지체인 형제들을 생각하고, 자신보다 교회를 위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상에서, 세상의 법으로, 세상처럼 살던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거룩함을 보인 것입니다.
빈부귀천 없이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이들의 믿음은 셀 수 없이 많은 영혼을 구원했습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해 믿음의 본을 보였고,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며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자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목회자는 올바른 진리를 전하고 성도들은 삶 속에서 믿음의 본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와 성도를 더 축복하시고 많은 영혼들이 말씀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책망하는 것은, 이런 선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것을 믿었고,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만 높였으며, 그 시대에 일어날 수 없는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런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 포기하는 용기를 보였고, 영원한 천국의 시민으로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을 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을 붙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돕고 싶어도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겸손한 자리에서 그 은혜를 사모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세상의 강력한 방해를 물리치시고 오직 여러분 한 사람을 위해서 세상의 법도 바꾸시고 사람도 잘 만나게 하셔서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14절의 말씀처럼 세상적으로 넉넉한 성도는 영적으로 충만한 성도를 육적으로 돕고, 영적으로 충만한 성도는 영적으로 갈급한 성도를 세워주면서 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절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성찬을 영원히 기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내 살이라고 하셨고, 포도주를 주시며 이것은 내 피라고 하시며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대속과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찢긴 자신의 몸을 통해 원죄를 사함 받게 하셨고, 피를 다 쏟으며 자신의 생명을 주시므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시는 깊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찢긴 몸과 피에는 인간들의 철저한 배신과 함께 영혼구원을 위해서 끝까지 죄인들을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구원을 위한 대속이지만 인간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배반했고, 그 사랑을 버리는 인간들을 보시는 주님은 마지막까지 용서를 구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6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식을 하는 목적은 떡과 잔을 대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는지 깨닫는 것이며, 그 깨달음을 통해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재림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하심과 재림을 전하기 위해서 성도들은 자신의 정욕을 버리고 오직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구별되지 않은 삶을 산다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없을 뿐더러 세상이 받는 심판을 함께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먹는 것을 가지고 형제를 무시하는 것은 성만찬의 가치와 의미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며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를 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받은 성도가 자기를 버리지 못한 것은 바로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성찬식은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셨다고 해서 거룩한 예식에 참여한 것이 아니며, 예수님의 희생을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성찬식에 참여하는 성도가 진실로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만 온전히 성찬식에 참여한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 해도 교회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그의 신앙이 거짓인지 참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겉으로 보이는 믿음과 실제로 그가 갖고 있는 믿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거짓믿음은 지혜가 없고 어리석기 때문에 사탄의 조종을 받기 쉬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사탄의 속성을 닮은 거짓믿음은 교활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영의 분별을 하지 못하면 속을 수 있으므로 온전히 성령께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9절에 교회는 파당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파당은 교회를 분열시키기 위해서 당을 짓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과 세상적인 사고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갈라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과 아직 거듭나지 못해서 세상적인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편당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성도들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바울처럼 책망하는 것은 훗날 그들이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않도록 돕는 일입니다. 물론 책망을 받을 때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도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구원받기 위해서는 책망을 기쁨으로 받고 돌이켜야만 할 것입니다.
사람들을 책망해보면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잘 믿고 싶고, 신앙을 붙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서운해 하거나 혈기를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눈과 귀를 닫은 사람을 책망하면 동일한 사랑을 가지고 권면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책망이 성도가 영육간의 받은 축복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분별이 생기면 성도는 그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교인들에게 육적으로 도움을 받기 위해서 권면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책망하고 있기 때문에, 고린도교인들이 사도바울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행동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성도를 책망하는 것은 그의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목회자의 책망이 사랑인 것을 알고 돌이키기만 한다면, 자신의 약하고 병들고 잠자는 영적인 부분이 깨어나서 하나님께 크게 사용 받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책망이 없는 자는 사생자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3절
그런 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바울은 형제를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자신이 음식을 가지고 왔더라도 지체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가지고 온 것이므로 모두가 모였을 때 동일하게 나누어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지위의 높고 낮음과 소유가 많고 적음에 따라 교회에서 교만하게 행동하기도 하고, 충분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위축되어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구원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부유한 자는 겸손하게, 연약한 자는 믿음으로 주님께 무릎 꿇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기념하라고 하신 그 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크게 그리고 넓게 보는 성도는 독생자를 죽이시면서까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과,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며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대속하심이 헛되지 않도록 지금도 일하시는 성령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 안에서 만나게 된 믿음의 형제들이 얼마나 귀한 영혼인지 아는 자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먹을 것이 있는지 없는지 상관하지 않고, 자기와 자기 가족만 챙기는 그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찬식의 의미를 절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은혜를 입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조금 희생하더라도 내가 좀 덜 갖더라도, 교회를 위해서 믿음의 형제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보다 조금 부족한 형제가 곁에 있거든, 여러분이 가진 것을 나누어 영육 간에 균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재산을 내어 놓으라는 인간의 말로 듣지 마시고, 나그네 인생길에서 만난 형제의 연약함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 바랍니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버리는 성도로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