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동하라
10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영광을 받는 전능하신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래 참고, 일하고 계십니다.
구원받을 영혼들이 피조물인데도 무례히 행하지 않으시며, 언제나 온유한 마음으로 겸손과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겸손과 순종 그리고 인내와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으로, 삶을 통해 그 사랑을 보여줘야 할 차례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의 사랑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주신 신령한 은사가 필요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는 믿음인데, 성도들이 그 믿음을 지키며, 품위 있게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인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교회의 덕을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시는 것이므로, 은사를 받은 성도는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하며 정직한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열왕기상 22장 18절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왕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사람들은 항상 칭찬과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칭찬받기를 원하고 있으며, 복을 주시겠다는 말을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영혼구원 외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영혼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칭찬하실 것이고, 심판과 책망도 망설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확실히 알고 신앙을 가져야만 가장 빠른 길로 갈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도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만약 세상과 전혀 구분 없이 살면서 복 받기만을 원한다면 구원과 전혀 상관없는 힘든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아합왕은 길르앗을 회복하기 위해서 유다 여호사밧왕과 동맹을 맺고 아람을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왕은 이 전쟁이 정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전쟁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아합왕을 섬기는 선지자 사백여 명은, 올라가서 싸우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길르앗을 왕에게 넘겨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미가야의 말을 듣고 싶어하자 아합은 그는 항상 길한 예언은 하지 않고, 흉한 예언만 말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미워한다며 미가야를 만나는 것을 막았습니다.
우리가 아합의 삶을 봐서 알지만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악을 행했습니다. 아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으로 세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으며, 많은 우상을 들여와 그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불길한 예상대로 미가야는 그 전쟁을 나가게 되면 당신은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예언을 들은 아합은 화를 내며 그를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미가야의 예언을 듣고도 아합과 여호사밧은 아람과의 전쟁을 위해서 떠났고, 예언대로 아합은 죽고 말았습니다.
제가 미가야의 예언과 아합의 죽음을 말씀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인이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일의 순서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서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가야가 아합에게 흉한 예언을 했지만 만약 아합이 사백 명의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거절하고 미가야의 말을 들었다면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믿고, 돌이킬 기회가 또 주어졌을 것입니다.
아합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다면 말입니다.
선지자들의 예언은 오직 죄의 길을 돌이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잘하고 있는 것은 굳이 칭찬을 하지 않아도 잘할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듣기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굳이 잘못을 말하는 이유는 그것만 고치면 되기 때문에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잘못하고 있는 것 그 하나만 고치면 얼마든지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축복은 아무리 많이 받아도 그 한가운데 더러운 것이 있으면 전부 더러운 물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라고 말해주는 것이 예언입니다.
하지만 예언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숨기고 싶은 부분이나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알려주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검으로 찌르는 것처럼 기분이 상하기 때문에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경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칭찬보다는 권면과 책망을 하시는 분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세밀한 부분까지 감찰하고 계신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늘 관심을 갖고 관찰하시기 때문에 책망하실 수 있는 것이고, 칭찬하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망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성도는 큰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책망하셨다고 해서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책망 받은 부분을 돌이킨다면 더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망을 들었을 때 돌이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부강하도록 도와주셨고, 큰 권세로 열방을 다스리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지만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거나, 이방여인과 혼인을 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살았을 때는 이방나라를 들어 철저하게 고통 받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돌이키라고 경고하셨다면 그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뿐 아니라 생명 그리고 사후에 갈 천국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8절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만약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말씀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도 모르고 전하기 때문에 전하면서도 확신이 없고, 듣는 사람들은 분명한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김홍식집사님이 피아노 조율 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조은희집사님이 반주할 때 집사님이 원하는 소리를 분명하게 내도록 하기 위해서 조율 하는 것입니다.
조율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정확한 음을 집사님이 알아야만 확실하게 조율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김홍식집사님이 청음을 하지 못한다면 피아노 조율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조율을 해도 그 피아노를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은사도 마찬가지인데 성도들이 먼저 시간을 드려 기도하고, 더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분명한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 언제나 정확한 진리를 전해야만 사단을 대적할 수 있고, 잘못 된 길을 가는 성도들에게 경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전하는 자도 듣는 자도 모두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어야만 나팔소리를 듣고 그 나팔이 전쟁을 준비하라는 나팔인지, 아니면 이미 적이 공격했다는 나팔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탁구경기에는 단식도 있지만 복식도 있습니다.
단식은 자기 실력대로 하면 되지만 복식은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경기가 그렇겠지만 복식을 할 때 두 사람은 서로 서브를 짧게 혹은 길게, 회전이나 스트레이트로 넣겠다고 손가락으로 사인을 만듭니다.
자기 동료가 서브를 어떻게 넣겠다는 사인을 보내면 다른 한 사람은 그 사인대로 상대가 리시브하는 것을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복식은 두 선수 중에 상대의 장단점을 잘 아는 선수가 리드하는 대로 절대적으로 순종해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 팀이 되어 복식을 뛰는 두 선수는 많은 훈련을 함께 해야만 한 몸처럼 움직이며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결성된 복식조라면 미리 약속된 사인 뿐 아니라 동료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사인을 보냈는데도 자존심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그 시합은 패할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배려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 그리고 성도와 성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인을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책망하시는 것은 사탄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영적으로 연약한 성도가 구원에서 떨어질까 봐 예언의 은사를 가진 성도나 목회자를 통해 계속해서 사인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사탄의 계략을 먼저 아시고 사인을 보내신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는다면 사탄에게 결국 패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훈련을 하는 것처럼 사탄도 열심히 훈련을 합니다.
사탄은 자기들이 사망에 가두었던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해방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다시 사망으로 가두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항하던 사탄이 이렇게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는데, 아무런 능력도 없는 성도들이 훈련을 게을리 한다면 결국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씀의 검을 늘 준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9절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방언은 믿는 성도를 위해서 덕을 끼치는 은사가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방언을 통해 영적인 언어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형제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시며, 각 사람이 다른 언어로 말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때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각국에서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자기가 사는 나라의 말을 방언으로 하는 것을 듣고 놀랐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무엇인지 방언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들은 제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십자가를 진 예수가 정말 메시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의심하는 사람들을 향해 제자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 요엘의 예언이 이 자리에서 성취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순절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방언이 표적이 된 것처럼 성도들이 하는 방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표적입니다.
그리고 예언의 은사가 하는 역할은 믿는 형제들을 책망하며, 그 마음에 숨은 일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칭찬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자존심 상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언은 은사를 받은 성도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을 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은사는 성도가 성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은사를 받은 성도는 반드시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이래서 성도들은 일만 마디의 말보다는 말씀을 깊이 깨달은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은 한국말을 아주 잘하지만 외국에 나가기 위해서는 영어나 여행을 하고 싶은 나라의 말을 배우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국말로 아무리 유창하게 말을 해도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해도 여행에 필요한 몇 마디의 말을 할 줄 안다면, 여러분이 보고자 하는 곳을 볼 수 있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면서 여행을 순조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처럼 성경 전체를 자세하게 가르칠 수 없다고 해도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정확하고 분명한 말로 전할 수 있다면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정확하게 설명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2~33절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
어떤 공동체이든 조직에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조직을 이루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혜롭고, 충성스럽고, 화합이 잘 될 때 그 조직은 많은 일을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조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도자가 미련하거나, 결단력이 없거나,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면 아랫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안건을 내 놓아도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발전이 없습니다.
지도자는 항상 자신을 내려놓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황 전체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조직을 이루고 있는 사람보다 지도자의 자질과 역량이 커야만 조직이 무너지지 않으며, 사람들이 충성하면서도 불만이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계획을 세우시고 인도하실 때 순종하기만 하면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무질서한 삶을 살고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큰 문제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행하기만 하면 그 결과까지도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는데, 그것을 믿지 못해서 명령대로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목회자가 지혜롭고 직분자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평화롭고 질서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목회자의 책임입니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며, 말씀대로 사는 본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성도를 이끌어갈 명분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을 배우지 못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세상의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녀들을 키워서 알겠지만 아기들에게 분명하게 옳고 그름을 알려주지 않으면, 아이는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아예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아이의 심령이 무질서하기 때문에 자기의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을 몰라서 지금 자기가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아직 어려서 못 알아들을 것이라는 생각과 내 아이를 야단치는 것이 싫어서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때를 놓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잠시 주저하는 사이에 아이는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듣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를 만날 때마다 흔들리는 것입니다. 아기를 때리거나 감정적으로 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아이에게 눈을 떼지 말고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해결 방법을 알려주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소리가 분명하지 않은 나팔처럼 성도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분명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성도들은 말씀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세상적인 자기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분쟁이 생겼는데 목사님이 설교를 하려고 하면 성가대가 갑자기 일어나서 찬양을 하고, 성가대가 찬양하는 도중에 교인들이 성가대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면서 성도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에서 목사가 강대상에 서 있고, 성가대복을 입고, 교인들이 예배당을 채웠다고 해서 그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소리를 지르고, 목사와 교인들이 서로 양보하지 않는 이 예배당에서 과연 몇 명이나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성도의 자세인지 몰라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잘못이 부모에게 있는 것처럼 성도의 잘못은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고, 화평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지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은사에 서열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내는 앞선 사람이 아직 진리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성도를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은사를 받으면 교만하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목회자가 반드시 잘 가르쳐야 하며, 은사는 책임이 따르므로 성도는 목회자가 가르치는 대로 순종해야만 실수하지 않습니다.
신앙과 믿음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반드시 순종과 겸손을 바탕으로 한 믿음의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서 거듭난 성도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법을 따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자신의 유익보다는 교회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것입니다.
믿음이 충만하고 또 능력이 있는데도 겸손한 성도는 교회의 덕을 세울 것이고, 이렇게 거룩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므로 하나님의 관심이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과 눈이 머무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장년들은 청년이나 중고등부와 유년부 아이들이 믿음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로 이끌어 주시고, 청년과 중고등부 유년부는 어른들을 공경하고 잘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장년이라 할지라도 청년들에게 말씀을 배울 것이 있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묻고 배운다면, 배운 그 진리의 말씀을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으므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먼저 배우기 위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만세 전부터 모든 계획을 세우셨고, 모든 것을 질서 있게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 덕분에 지금 우리가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이므로 여러분도 하나님을 닮은 자녀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