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명을 사랑으로 감당하라 — 고린도전서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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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

고린도전서 10장 14~22절 말씀

14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8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부모를 비롯한 모든 기성세대가 그 자녀들이 공부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보도록 키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해야만 미래에 소망을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전혀 양보하지 않고 모든 기준을 어른에 맞추어 이끌어가기 때문에 그 속에서 청소년들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부모들의 온전하지 못한 인격에 고집이 더해져서 자녀들의 생각을 쉽게 꺾어버리고, 청소년들이 멀리 바라볼 수 있도록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어른들의 말만 듣고 움직이도록 로봇처럼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성도들은 자녀들의 성공도 중요하겠지만 영적인 전쟁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 자녀를 성공시키는데 마음을 빼앗겨 자녀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세력들에게 세뇌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이므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역사에 대해서 알려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먼저 자녀들이 어리다는 생각을 버리고 선악에 대해서 확실한 기준을 세워 설명해줘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만 성공한 후에도 영혼을 빼앗기는 후회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성적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있고,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가운데 있습니다.

성적인 부분을 대중매체에서는 심하게 노출하거나 부각시켜서 판단력이 흐린 청소년으로 하여금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도록 아이들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모든 방송들이 사람들의 선행보다는 악행을 자세히 보도하고 불륜과 살인, 자살, 사기 등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거름망 없이 모든 악한 방법들이 그대로 흡수되고 있습니다.

악한 세력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이자 사람들은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웬만한 사건쯤은 놀라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열심히 일한 결과입니다.

이제는 성도들조차 세상이 그러니까, 모두들 그렇게 사니까 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신앙을 양보하고 있고, 교회를 멀리하는 자녀들의 신앙에 대해서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이 변하고 성도조차 변질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악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져서 그 정도의 죄는 괜찮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는 거룩하므로 내가 정한 법대로 살지 않으면 죄를 품은 자를 구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린도교인들은 세상의 방식대로 살다가 복음을 듣고 교회로 들어왔지만 쉽게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던 세상의 법과 너무 다른 하나님의 법대로 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배운 그대로 교회 안에서 행했으며, 그것이 죄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절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변질되고 있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른 이유에 대해서 처음부터 말해주었습니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타락했든, 세상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든,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이든 그들은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해 고린도교인들의 중심에 하나님을 세워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거듭나지 못하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왜 그들을 부르셨고,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셨는지 출애굽사건을 통해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지금까지는 교인들을 부를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10장에 와서 처음으로 형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부름을 받은 지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지 않고, 타락한 세상이 심어준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결코 용서 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절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백성을 400년 만에 출애굽 시키기 위해서 모세를 80년 동안 고난으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모세를 80년 동안 훈련시키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신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왕과 열 가지 재앙을 내리는 목숨을 건 싸움을 하여, 이스라엘백성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데리고 출애굽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출애굽 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그 약속 안에서 성취된 것이지만, 그 약속을 세상에 드러낼 사람 즉 모세의 순종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모세는 처음에는 하나님께 사명을 받고도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자기의 생명을 드리는 순종을 하였습니다.

물론 모세가 거절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론이나 또 다른 사람을 세워서 이스라엘백성을 이끌어 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은 모세에게 주고 싶은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를 부르시고 성도들의 믿음의 크기대로 사명을 주시는 것은 그 성도가 받아야 할 상급이 있기 때문이므로 반드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면서 이스라엘백성이 바다 속을 건넌 사건을 보고 바울은 그들이 모두 세례를 받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6장 3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한 것처럼 이스라엘백성은 생명을 걸고 홍해를 건넜으므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한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옆에서는 금방이라도 덮칠 것처럼 바다가 넘실거리고, 뒤에서는 애굽 군사들이 추격해 오고 있는 가운데 어린 아이들과 짐승을 몰고 질척거리는 바다 속을 걷는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홍해를 건넌 후 바다가 애굽 군사를 덮치는 것을 보면서 모세와 이스라엘자손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 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홍해 앞에서 이 찬송을 모세와 이스라엘이 불렀지만 지금 홍해와 같은 세상에서 질척거리는 세상길을 걷고 있는 우리도 불러야 하는 찬양입니다.

애굽 군사들을 덮는 홍해를 보면서 승리의 찬양을 한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가 덮여가는 어두운 세상을 보면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가까워졌음을 깨달은 성도들은 소리 높여 찬양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이런 찬양을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시간과 환경이 자기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고, 주신 것이라는 감사의 찬양을 원했던 것입니다.

바다를 건넌 백성들은 양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맛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양식이 없어서 백성들이 굶지 않도록 하늘에서 내려 주신 것입니다.

또 마실 물이 없는 백성에게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시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물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반석을 깨어 마실 물을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26장 4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하나님께서는 반석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자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신령한 반석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변함이 없는, 그리고 성도들에게 가장 안전한 반석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어떤 사고를 당해서 사막에 떨어졌는데, 양식도 물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를 드렸다고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사면이 사막인 그곳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기도를 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양식이 내릴 것이고, 바위에서 물이 나올 것이라는 기적을 믿고 계십니까?

아니면 기도하면서도 설마 그런 일이 사막에서 일어날까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십니까?

사람들은 아마도 사막을 둘러보면서 양식과 물이 주어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보단 그저 습관대로 기도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이므로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일을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출애굽을 약속하셨고, 그리스도와 구원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시는 과정에서 맛나도 반석의 물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은 물론 지금 우리까지도 사탄으로부터 갖은 악재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과 우리는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을 만났으면서도 이방민족이 가진 세상의 힘과 쾌락과 우상을 보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율법을 받는 날 금을 부어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여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는 하나님의 진노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백성들이 불뱀에 물리는 고통도 당했습니다.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모세를 80년 동안 훈련시키시고, 열 가지 재앙과 많은 기적을 통해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그들을 심판하실 때 그 마음이 어떠셨을까 생각해 보면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1절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바울의 이 말은 지금 우리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타락했다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타락과 배신을 보면서 우리들은 그 길을 걷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 하늘에서 맛나가 내리는 것을 보며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직접 본 이스라엘백성들이 타락할 수 있다면, 연약하기 그지없는 우리들의 신앙이 무너지는 것은 더욱 쉬울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는 동안 많은 은혜와 기적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절대로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해결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는 확신을 가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할 때는 하나님께 의지하다가도,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 된 것 같고,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하나님께 마음을 닫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은 누구나 행과 불행이 반복해서 찾아오기 때문에 한번 응답을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어야만 감당할 만한 시험을 만났을 때는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정말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만났을 때는 그 시험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녀들이 피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고도 그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보시면 크게 기뻐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해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이스라엘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처럼 고린도교인들이 이방제단에 참석하여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했다면 사망에 던져져 영원한 지옥에 빠질 뻔한 고린도교인들이 은혜를 입고 나서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마음이 분하여 바울은 그들을 크게 책망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미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실 텐데, 그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배신한 고린도 교인들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수많은 기적을 보고도 우상을 숭배하던 이스라엘백성들과 이방제단에 참석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 하던 고린도교인들은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수많은 은혜와 기적을 보여주시며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어떤 믿음을 보여드리고 있으며, 무너져가는 이 세상에서 사망을 붙들고 있는 영혼들을 향해 어떤 본을 보이고 있습니까?

돌과 나무 그리고 세상의 신에게 엎드린 것만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는 우리의 마음이 우상숭배이며, 세상의 성공을 바라보고 자녀들을 채찍질하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받은 성도입니다.

총명한 지혜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지켜가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법에 순종하고 있는지, 그리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쳐서 복종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백성에게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길 것이니 너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너희가 섬길 자를 선택하라고 명령하면서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우상숭배하지 말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사도바울까지 이들의 한결같은 믿음을 말씀 드리는 것은 그 영적인 믿음의 흐름이 여러분에게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이스라엘백성처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인처럼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리에도 앉으신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설교를 듣게 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을 본보기로 삼고 돌이키라는 바울의 간곡한 부탁처럼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선 줄로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겸손한 자리로 내려와 회개하시고,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만난 분이 계신다면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성도는 은혜를 충만이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성도에게는 항상 피할 길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성도는 반석이신 그리스도께서 흔들리지 않도록 그 믿음을 붙들어 주실 것이며, 높고 영화로운 자리에 앉혀 주셔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약속을 드리시고, 말씀에 순종하시는 성도가 되셔서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명을 사랑으로 감당하라 ·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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