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여성은 직분을 받을 수 없는가?
2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첫 번째 설교에서는 신약성경을 번역한 제롬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남성들의 시각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얼마나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을 받았으며 또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말씀 드렸습니다.
두 번째는 사도바울이 여성들은 교회에서 잠잠하고, 남성을 가르치지 말며, 직분을 받을 수 없다고 한 성경구절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제자를 비롯한 120여 명의 사람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성령께서 임재하시며 그들을 충만하게 하시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방언과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요엘 선지자가 예언했던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라고 한 그 말씀이 오순절에 성취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하나님께서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으셨고, 모두를 지체로 삼아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A.D. 37년에 사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을 때, 남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재판을 받았고 매를 맞았으며 순교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순교했다는 것은 사탄의 적은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와 사도바울은 믿음 안에서 모두 한 형제라고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말씀 드린 것처럼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남성들이 여성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생각이 그대로 기독교로 들어왔기 때문에 말씀 자체가 왜곡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에 관해 잘못된 관점을 가진 제롬이 사도바울의 서신서를 자기의 생각 안에서 오역한 것입니다.
지금 저는 여성의 믿음을 인정해 달라, 여성을 평등하게 대해 달라, 아니면 여성도 목회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여성들이 믿음에 따라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는데도, 남성들의 편협함이 막고 있었던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여성들이 스스로 더 위축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폭력을 당한 아내나 강압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을 보면, 그 틀을 벗어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 안에 안주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더 잘해서 매를 맞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에서도 남성에게 핍박을 받을수록 여성들은 자신들이 교회에서 잠잠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직분을 받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성별에 연연하지 말고 천국을 침노하는 자로 살아야 하며, 마지막 나팔소리를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믿음의 자녀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남녀 성별을 가지고 논쟁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할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시간이 모자라서 어쩌면 아까운 영혼들을 지옥으로 보낼지도 모릅니다.
만약 여성이 목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면 예수님께서 남자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셨을 것이고, 사도바울 역시 브리스길라에게 목회자인 아볼로를 가르치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조금만 더 깨어 있다면 이런 헛된 문제를 가지고 시간을 버리지 않을 것이고, 누가 전하든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29절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예수님의 희생으로, 예수 안으로 들어와, 예수님과 하나가 된 사람들이 굳이 남성과 여성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지체를 분리시키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과거와 상관없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믿음의 형제들이 왜 목사를 세울 때만 그리고 장로나 안수집사 직분을 줄 때만 남성만 세울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세상의 관점이 교회로 그대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A.D. 49~52년에 사도바울은 제 2차 선교여행 중에 실라와 함께 빌립보로 갔습니다.
빌립보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유대인들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곳은 서구 전체에서 가장 극심한 남성 우월주의자들의 집합소이기 때문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더욱 힘든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디든지 복음이 전해지도록 문을 열어 주십니다.
빌립보에는 루디아라는 여성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 여인은 바울이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강권하여 자기 집에서 거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자기의 물질과 시간으로 헌신하였습니다.
남성들이 여성을 무시하고 시장에도 못 가게 하는 그런 시대였지만, 빌립보에 사는 루디아는 자색 옷감 장사를 하면서 많은 재산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그 재물로 바울을 도왔고 복음을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복음을 위한 여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방에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여인들의 헌신을 찾아내야만 하는 이 자체가 너무 안타깝습니다. 누가 충성했든 상관없이 그리스도만 전해지면 되는 것인데, 시간을 들여 증명해야 하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절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바울은 이 말을 하기 전에 분명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한 바울이 서신서를 보면, 여성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계속 일관성 없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린도가 어떤 도시인지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린도는 문화와 인종이 혼합된 도시였습니다.
동쪽에는 동양인들이 살고 있었고, 도시의 서쪽에는 이탈리아인과 로마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그리스인이 살고 있었으므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동양인과 이탈리아인, 그리고 그리스인과 유대인이 섞여서 함께 예배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인과 혈기가 많은 이탈리아인, 그리고 속을 드러내지 않는 동양인과 철저한 유대인들이 한 교회에서 자기의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교회에서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여성은 어떤 일에도 참견할 자격이 없고, 집밖에 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혼한 여성은 머리에 무언가 써야 했고, 미혼여성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에 쓰지 않은 여인은 미혼이었습니다. 또 동양인들은 여성들이 언제나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로마여성들은 브리스길라처럼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상업과 무역을 하면서 땅도 소유하고 있었고, 활발히 사업도 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여성이 머리를 가릴 때는 오로지 이교도 신전에서 종교의식을 거행할 때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문화가 달랐기 때문에 교회가 늘 시끄러웠고, 이 문제를 바울에게 상의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 중에 누가 바울에게 질문을 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바울이 질문마다 최선을 다해 그 상황에 맞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16절에, 너희가 나에게 상의한 이런 여성에 관한 문제는 다른 교회에서는 한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고 오직 너희 교회에서만 일어난 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 민족이 다양한 풍습을 가지고 있는 고린도교회에서만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바울은 너희들이 교회에 들어와 있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풍습과 문화가 다른 너희들이 모여서 사람의 생각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0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위에 둘지니라
여기에서 ‘표’라는 단어는 원문에 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제롬이 ‘권세’라고 번역한 ‘엑수시아’라는 헬라어는 ‘권리가 있는’, ‘특권을 가진’, ‘지배권을 가진’, ‘권한이 있는’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롬이 가진 남성 우월사상을 빼고 다시 10절을 읽어본다면, ‘그러므로 여성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그 머리 위에 특권과 지배권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해야만 바울의 글을 올바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것은 머리에 무엇을 쓰든 아니면 벗든 그 모든 선택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롬이 넣은 극히 개인적인 사상이 가톨릭에서 완벽하게 인정을 받는 바람에 지금까지 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쓴 서신서를 그의 믿음 안으로 자세히 본다면, 8~9절은 고린도교인들의 질문을 다시 한번 반복하여 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을 그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으로 본다면,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고 너희들이 질문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결정은 여성들이 해야 한다고 결론을 지은 것입니다.
10절의 오역을 뒷받침 하는 것은, 11절에 그러나 주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고 하면서 12절에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고,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하면서 10절이 잘못 오역되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8~9절이 질문이고, 10절이 대답이 확실한 이유는 하나님께 모두 났다고 하면서 바로 13절에 상반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3절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그리고 바로 16절에, 너희들의 그런 논쟁은 다른 교회에서는 없다고 또 전혀 다른 뜻의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바울은 그들의 질문과 자신의 대답을 이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서신의 원문에는 띄어쓰기, 쉼표, 물음표 같은 부호가 전혀 없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보는 책과는 전혀 다른 문장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모든 글자를 붙여서 썼기 때문에 질문과 대답을 확실하게 구분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의 피조물이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여성들은 남성을 가르치지도 말고, 머리에 수건을 꼭 써야 하며, 잠잠하라는 일관성 없는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과 하나님의 뜻과 구원하심, 마지막 심판까지 한자리에 놓고 읽어본다면 너무나 쉽게 여성을 비하하는 이 글이 바울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사도바울은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말하기 바로 전에,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히 예언을 하려고 노력하고, 만일 방언이나 통변을 할 때는 차례를 따라서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되고, 은사를 받아 방언하고, 예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방적인 선물이기 때문에 사람이 선택해서 받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당시 빌립의 네 딸도 모두 예언을 하는 여성이었고, 또 많은 여성들이 은사를 받아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바울이 이번에 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말하며, 덧붙여 하는 말이 만일 무엇을 배우고 싶으면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방언과 예언을 사모하라는 것은 무엇이며,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니까 교회의 모든 일을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으라는 것은 또 어떤 뜻으로 한 말입니까?
이것 역시 제롬의 생각을 통해 읽어야만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잠잠하라고 한 그 말의 뜻은 가르치거나 선언이나 강연이나 연설이 아니라 단순히 말하는 것을 금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수다나 잡담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지금처럼 예배당에 나와서 순서에 의해 예배를 드리는 형식이 아니라 성도 중 한 사람이 개방한 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남녀와 주종관계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라는 이름으로 좁은 집에 서로 섞여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형태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 사도바울이 교회를 세웠지만 이방교회들은 체계가 잡히지 않았고, 장로가 없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상의할 사람이 없어서 자기들이 받은 은사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9~40절에,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다시 부탁하는 것을 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궁금하더라도 질서 있고 품위 있게 서로 나누라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한 여성이 은사를 받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바울이 은사에 대해서 말하다가 갑자기 이 말을 끼워 넣은 것을 보면 이 여인이 다른 사람들이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생각을 혼자 주장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번역본에서는 ‘복종하라’는 단어가 이탤릭체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제롬이 성경을 번역하면서 원문에는 없는 이 단어를 끼워 넣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성도로 표현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뜻으로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제롬은 ‘복종’이라는 단어를 삽입함으로써 아내의 지위가 남편 아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문장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 당시 교회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남편이 권위로 아내의 복종을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롬은 여성이 남성과 함께 동등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거북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기를 자기의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한 것처럼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신부를 위해서 방패가 되어주시고, 낮은 자리에서 섬기시며, 구원에 이르기까지 보호하셨던 것처럼 남편의 사명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것인데 제롬은 이런 바울의 마음을 버리고 여성을 비하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11~15절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 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편지에 기록된 글 중에 바울이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난 특정한 사건처럼 소아시아의 어느 한 교회에서 성격이 강한 여성이 어떤 한 남성을 지배하는 것을 보고 멈추라고 한 것입니다.
그 여성에게 말한 ‘아우텐테오’는 ‘지배하다’ 혹은 ‘제압하다’라는 뜻인데, 직무나 지위에 대해 논한 것이 아니라 그 여성의 행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여성들에게 절대로 남성을 가르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여성에게 어떤 한 남성을 지배하지 말라고 일회적으로 지시한 것입니다.
그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로 봤을 때 남성들이 여성을 온전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남성을 지배하고 있는 여성을 향한 불만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 남성들의 질문에 답한 것이 바로 바울의 서신이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소소한 문제도 있었지만 이 문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여성들이 이렇게 강퍅한 사회 안에서도 스스로 교회와 세상에서 수동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여성들이 예수님을 돕고, 바울과 제자들과 함께 사명을 감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남성들의 사상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한 것입니다.
조금만 살펴보면 제롬의 번역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지금도 여성목사 임직을 불허하는 교단이 있습니다.
남성과 함께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목사임직을 주지 않고 있으며, 여성은 교회에서 심방전도사로 봉사하면서 남성목사를 돕는 일만 하도록 법을 정해 놓고 있습니다.
물론 시대가 시대인 만큼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여성들이 남성들만큼 활발하게 일할 수 없었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남성들보다 훨씬 좁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믿음을 지켰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성보다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13절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린 자일지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책망할 것이 없는 한 아내의 남편이라는 이 구절이 여성은 절대로 한 아내의 남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목사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말을 잘 들어보면 감독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하며, 새로 입교한 사람을 세워서도 안 되고, 선한 증거를 받은 자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집사들도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를 세우고, 반드시 그를 시험해 보고 책망할 것이 없을 때 집사 직분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또 11절에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안수집사로 세워졌음을 말하고 있지만, 지금 교단들은 여성을 안수집사로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감독의 조건 중에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은 그 당시 축첩을 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행실을 책망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11절에 여자들도 집사로서 충성된 자를 세우라고 말한 다음, 12절에서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록한 것은 남자만 세우라는 말이 아니라 본이 되는 사람을 세우라는 뜻으로 한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구절을 가지고 여성임직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감독부터 시작하여 안수집사의 자격까지 바울은 한 문장처럼 이어서 기록했고, 9절에 이와 같이 집사들도 감독처럼 올바른 사람,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즉 그리스도를 품은 자가 직분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여성들도 직분을 받을 때 남성과 마찬가지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제롬이 말씀을 오역한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잘못된 편견이 이 오역을 고치려는 노력보다는 그대로 수용한 것입니다.
동아신학연구원 임태우 교수는 ‘여성 목사 안수에 관한 연구’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연구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총회인 통합측 여성목사 안수 과정이 써 있는데, 여성에게 안수를 주지 않기 위해서 1955년에 안수 없는 권사제도를 신설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분명 여성을 안수집사로 세우라고 했는데도, 여성을 안수집사나 장로로 세우는 것을 원치 않아서 권사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권사를 받기 위해서 여성들이 교회에 돈을 내고 그 직분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여성의 생각이 여성의 지위를 더 낮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목회자를 배출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안건이 거론도 되지 않고 부결되었으며, 1995년에 와서야 여성안수가 통과되어 여성목회자가 배출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 이천 년 가까이 돼서야 여성이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목회자를 세우지 않는 교단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말씀을 올바로 지키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에 남성만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성이 꼭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교회에서 남성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뜻과 사랑을 잘 깨닫고 있다면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마지막 날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면서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는 날이 오는데 그날을 대비해야 하는 성도들이 사람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믿음의 형제들끼리 남성과 여성을 갈라 다투기 보다는 서로를 믿음으로 세워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남성과 여성을 갈라 다투고 있으며, 여교역자가 사역하면 이단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태도는 자신이 성경을 전혀 모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앞으로 여성에게 직분을 줘야 한다거나 혹은 주면 안 된다는 헛된 문제를 가지고 설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말세의 징조를 계속하여 드러내고 있고, 이스라엘에 복음이 들어가서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하고, 복음을 활발히 전하며 사명을 감당해야 할 뿐입니다.
여러분이 진리를 들을 수 있다면 목회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고 말씀을 올바로 전하고 영혼들이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면 남성만 안수를 받는다고 해도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지체가 싸워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도끼리 싸우며 복음을 막는 것을 사탄만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러분은 헛된 시간을 보내지 말고, 진리를 위해 사탄과 싸우는 성도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