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노래 — 아가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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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만족의 주머니

아가 5장 1~9절

1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2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3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4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5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6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7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8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9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자신감이 없어지기 때문에 더 큰 두려움이 쌓이고, 그로 인한 고통 역시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세운 목표는 오직 돈입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고 모든 고민이 한순간에 날아갈 것 같은 초조한 마음에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베데스다 연못 같은 세상 한가운데로 자신의 몸을 던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하면 주저하지 않고 자기의 생명을 끊어버리고, 돈을 벌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나 세상 안에 자신을 묻어버리고 있습니다. 결론은 돈을 좇아가는 인생은 어떤 선택을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집에 살 때는 어렵더라도 온 가족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감싸주었기 때문에 행복했고, 열심히 살자고 서로를 다독거렸습니다. 그러나 큰 집으로 옮기자, 가족은 각자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서로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은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어느 지역으로 가야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까 이런 욕심이 그를 분주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이들이 건강한 것에 감사하고, 온 가족이 한 지붕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에 감사하던 그 작은 행복이 사라지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질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지옥에 가지 않아도 이미 지옥입니다. 만족이 없는 삶은 그 자체로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때문에 노예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 때문에 만나로 살았으며, 하나님 때문에 이방인들의 공격 속에서도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던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바알을 섬기면서 잘사는 이방인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무능해 보이고 죽은 신 같아서 바알을 섬긴 것입니다. 누가 진정으로 자신들을 사랑하는지 잊고만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감사를 잊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던 그 행복은 어쩌면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만족을 아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복이며, 자족할 줄 아는 자가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사는 성도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간절히 원하던 돈을 많이 소유한 갑부들은 왜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도 이 세상은 결코 만족의 주머니를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족의 주머니는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욕심을 가진 사람은 채워지지 않아서 지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감사를 잊고 사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죽음뿐입니다.

술람미도 어렵게 살 때는 솔로몬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그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에 감격했습니다. 솔로몬이 자기를 찾아올 때는 뛸 듯이 기뻤고, 언제나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정말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이제 그녀의 소원대로 솔로몬과 결혼했기에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솔로몬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첫날밤을 지낸 다음 날 그녀는 친구들을 불러서 크게 잔치를 벌였습니다. 날마다 넘치는 음식에, 사람까지 거느리며 편히 살게 되자 술람미의 마음에는 교만이 싹트고 감사가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게달의 장막처럼 햇볕에 그을리도록 일했던 시간도, 오빠들의 구박을 받으며 포도원에서 일했던 고통도 모두 잊고 말았습니다. 하루하루 편안한 것이 당연했고, 솔로몬의 사랑도 당연히 자기가 받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아가 5장 2절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술람미를 향한 솔로몬의 사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술람미를 완전한 자로 만들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만해진 술람미는 밖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남편이 애타게 불러도 잠자리에서 빨리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옷을 입는 것도, 또다시 발을 씻는 것도 귀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술람미는 자고 있지만 마음은 깨어 있다는 것으로 보아, 지금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밤이슬을 맞고 있는 남편을 벌떡 일어나 맞이해야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도 솔로몬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냥 누워 있었습니다. 이런 게으름과 교만함이 두 사람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계속 누리다 보면 꿀 송이 같은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귀하던 말씀이 소중하지 않고, 지금 일어나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귀찮고 하찮다는 생각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듣고, 충성과 헌신을 할 수 있는 때와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때가 따로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기회가 지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첫사랑을 잊은 자는 헌신의 옷을 벗어 버렸기 때문에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둠에 점령당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무시해 버립니다. 지금 내게는 그 누구도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직분이 있고, 대충 말씀도 알고, 적당히 헌신도 하기 때문에 눈과 귀를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악함은 결국 그리스도와 멀어지는 위험한 죄입니다. 뜨겁던 열정을 다 버리고 나면 두려움도 죄의식도 사라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무리 마음의 문을 두드려도 귀찮은 마음이 더 커져 버렸습니다. 결국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내가 원하면 만날 수 있고, 부르면 대답할 것이라는 술람미의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영적인 믿음의 옷을 입어야 하고, 날마다 죄가 묻은 발을 씻는 자기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무조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면 모든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병을 고쳐주시며, 가난 속에서 건져주십니다. 그러나 응답받고 원하는 것을 갖게 된 사람은 이제 예수님이 필요 없기 때문에 밤이슬을 맞으며 문을 두드리는 예수님을 모셔 들이지 않았습니다. 교회 일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보다는 세상이 훨씬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에 믿음의 옷을 입고 죄의 발을 씻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아가 5장 4절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사랑하는 여인을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자 솔로몬은 손을 문틈으로 넣어서 문을 열려고 애를 써 보았습니다. 그제야 술람미는 솔로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일어났지만, 그때는 이미 솔로몬이 돌아가고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인생 전체를 변화시켜준 사람입니다. 그런 남편에게 소홀했던 술람미는 어쩌면 그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은혜를 받았다면, 절대로 귀찮아하거나 손해를 끼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도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하실 때, 세상을 향한 마음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망설일 것입니다. 문틈으로 손을 들이미는 것처럼 성도들의 마음을 고난이나 연단으로 강하게 흔드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지만 쉽게 돌이키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세상의 일은 내 생각과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지만, 하나님의 일은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에 의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힘겨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부른다고 오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회개를 촉구하실 때 돌이키지 않으면 남는 것은 후회뿐입니다. 사람이 결정해서 돌이킬 때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 필요한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술람미는 솔로몬에게 엄청나게 많은 아내가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술람미가 조금 더 지혜를 갖고, 변하지 않는 솔로몬의 사랑에 감사하며 잘 섬겼다면 이 부부는 아주 행복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꼭 그리스도에게 필요한 것처럼 내가 필요할 때만 주님을 찾는다면, 주님께는 이미 목숨을 다해 충성하는 많은 성도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믿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성도와 하나님의 일을 찾아서 열심히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성도는 인간의 의와 정욕과 교만을 버리고 새 부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아가 5장 7절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자리에서 일어난 술람미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솔로몬을 찾아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주는 핀잔과 고통이었습니다. 조금 부지런히 일어나 웃는 얼굴로 솔로몬을 환대했다면, 밤중에 이런 고생을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있을 때 아끼고, 잘해줄 때 잘하라는 것입니다. 이해타산적인 사랑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서 생명을 주신 예수님과 진심으로 사랑을 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잘하기 바랍니다. 상대가 잘해줄 때는 자기가 잘나서 그러는 줄 알고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다가 기회가 지나가고 나면 꼭 후회를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마음이 상할 때까지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다가 관계를 해치고 나서야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한다면, 시간과 수고가 몇 배로 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게으름, 나태, 교만, 무관심, 허영, 불만족이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는 데 반드시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단호하게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단호하게 버리지 못하면 늘 후회하는 인생을 살 것이고,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 때문에 낙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은 반드시 길에서 행순하는 자들에게 매를 맞고, 옷을 빼앗기는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깜깜한 밤에 솔로몬 없이 혼자 있는 술람미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술람미는 솔로몬이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을 것입니다. 솔로몬 없이 홀로 있는 술람미는 어미 잃은 아기 새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잃고 깜깜한 세상에 혼자 있는 성도는 사탄이 볼 때 어미 잃은 아기 새와 같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실 때 더 잘하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높여드리고, 더 사랑해 드리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방해하고 거룩한 삶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주님을 높여드리는 데 방해가 되는 인간적인 노력과 계획과 의는 모두 사탄이 주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세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고 합시다.

그 친구는 하나님을 모를 뿐이지 마음도 착하고 능력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친구와 친하기를 원하고 도움도 받고 있습니다. 가끔 그 친구가 하나님을 비판하고 철저히 세상적이지만, 유독 그가 여러분을 좋아해서 주일에도 함께 여행 가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결정을 하겠습니까? 그 친구와 함께 있다면 세상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유혹과 믿음의 삶을 방해하기 때문에 잘라야 한다는 두 마음이 갈등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꼭 이렇게 좋은 사람까지 밀어내야 하는가?’ 라는 갈등이 여러분을 괴롭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 시간과 이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받는 데 도움이 되는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혜롭다면 믿음의 반석 위에 설 때까지, 말씀의 능력으로 그 친구를 건져 낼 수 있는 영권을 가질 때까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진리의 길을 빨리 달려야만 그 친구도, 여러분도 살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지만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올바로 알고 있다면,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민할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과 우정과 친분 때문에 믿음으로 결단하지 못하고 끌려 다닌다면, 그 사람도 여러분도 같이 죽고 마는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친구의 피의 값을 여러분에게 찾으실 것이므로 육적인 선택보다는 영적인 선택을 먼저 해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을 방해하는 모든 인간관계는 지혜롭게 처신하고, 여러분은 거룩한 성전 안으로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잠그고 덮고 봉해야 할 것입니다.

아가 5장 9절

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솔로몬을 찾기 위해서 방황하는 술람미에게 예루살렘 여자들은 네 남편이 우리 남편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듣기에 참 이상한 질문이지만, 성도들도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남편이기 때문에 찾아다니는데, 무엇이 잘나서 찾고 있느냐고 세상은 묻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그리스도를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에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살지 않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뒤떨어진다면, 그들은 성도들보다 하나님을 조롱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며 왜 가난하게 사느냐고 우리의 신랑을 조롱할 것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라며 그 병도 치유 받지 못하느냐고 비판할 것입니다. 도덕적인 삶을 버리고, 경우 없는 행동을 하는 기독교인 때문에 지금 그리스도를 세상 바닥으로 끌어내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게달의 장막처럼 더럽고 추한 사망에 떨어진 우리를 자신의 생명을 던져 구해주신 우리의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조롱받게 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 때문 아닙니까? 그들이 감히, ‘우리가 사랑하는 세상보다 예수가 나은 것이 무엇이 있어서 세상을 버렸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행복해 보였던 술람미가 밤거리를 헤매자 여인들은 어쩌면 솔로몬보다 내 남편이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통쾌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성도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조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술람미가 여인들의 조롱을 듣게 된 이유는, 그녀가 교만하고 게을러서 밤이슬을 맞으며 찾아온 솔로몬을 그냥 보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마음껏 조롱하고 싶어서 성도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도록 세상의 능력과 힘과 사람을 보여준 것입니다. 비유로 말씀드린 것처럼 친구를 붙여주고, 권력을 보여주며, 많은 물질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서 성도가 넘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이는 세상보다 사탄의 목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방해하는 사탄의 목적을 안다면 세상이 작아 보일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술람미의 죄를 보여주시며, 내 사랑을 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목소리가 들릴 때 벌떡 일어나 마음 문을 활짝 열기 바랍니다.

솔로몬과 함께 있으면 여인들이 술람미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행순하는 자들이 공격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성도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바로 힘이며, 능력입니다. 그것이 축복이고 사탄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영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지 않도록 늘 준비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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