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춤추는 성도
1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숙련공의 손이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2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3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4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5머리는 갈멜 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6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 7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8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9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하느니라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가꾸는 방법으로 성형수술을 택하고 있습니다.
수술에 따르는 고통과 부작용을 말로 다 할 수 없는데도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들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얼굴이나 몸매로 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인간의 의술로 재창조하는 심정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하다 보니, 성형에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얼굴이 기형이나 변형이 된 사람들에게 성형은 정말 필요한 의술이겠지만, 연예인이나 성형 중독자들의 얼굴이 볼 때마다 달라지는 것을 보면 씁쓸한 마음마저 들고는 합니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수술을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외모를 강조하다 보니까 용모는 개인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인격이나 품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풍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행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자신의 외모를 비관해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쁜 얼굴과 몸매로 고쳐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면 좋겠지만, 외모 때문에 목숨을 버리거나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개인과 사회에 아주 불행한 일입니다.
저는 첫 손자가 태어나던 해 미국에 처음 갔습니다. 그때 애틀랜타 공항에 내렸는데, 가장 놀란 것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뚱뚱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걷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람도 잠시, 부러웠던 것은 외모와 상관없이 그들이 모두 밝은 얼굴로 충실하게 자기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외모 때문에 위축된 사람 없이 모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보기 좋았던 것은 우리나라처럼 살이 많이 찌면 일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아니라 외모와 상관없이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분야나 개인의 차는 있겠지만, 외모와 상관없이 일자리가 있다는 것 한 가지만 보더라도 사람들의 생각이 열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외모 때문에 일 할 곳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악하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달란트대로, 능력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인형을 찍어낸 듯 보기에 좋은 외모만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것도 문제가 되지만,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자신감이 없어졌기 때문에 사회가 병들어 가는 것입니다. 가난하거나, 병이 들거나, 외모에 자신이 없다고 해서 자신은 물론 자녀들까지 동반하여 자살하는 것 역시 사라져야 합니다.
인생은 골짜기처럼 밑으로 내리닫는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정상에 선 것처럼 세상을 내려다보는 때도 있습니다. 지금 걸어가는 인생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믿음을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고난을 신발로 삼아 더 빨리 달리게 하실 것입니다.
술람미는 포도원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그을린 얼굴과 곱지 않은 손을 가졌습니다. 그런 자신의 초라한 외모를 사랑으로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그녀는 솔로몬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궁에서 왕후와 후궁과 시녀들이 곱게 단장한 것에 비하면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안경은 사랑하는 사람의 외모가 아무리 초라할지라도 많은 사람 중에 제일 돋보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솔로몬에게는 술람미의 외모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술람미가 포도원에서 힘들게 일하다가 그을린 얼굴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초라했지만, 솔로몬이 볼 때는 강인해 보였고, 오빠들의 구박을 받으며 자신감을 잃은 모습은 보호 본능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에게 술람미는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답게 보였고, 그녀가 자기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뻤습니다.
아가 6장 10절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춤을 추는 술람미가 너무 아름답게 보여서, 당신은 어떻게 그리도 맑은 날씨처럼 화창하고 예쁘냐고 감격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술람미가 춤을 추는 몸짓 하나하나가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서 그녀를 향한 사랑이 흘러넘쳤습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춤을 추는 술람미가 ‘마하나임’같이 눈이 부시도록 멋지고 당당한 천사의 군대처럼 보인 것입니다.
아가 6장 13절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아가 7장 1절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숙련공의 손이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한발한발,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술람미의 춤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가 신을 신고 있는 발도 아름답게 보였고,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식으로 만든 구슬 꿰미 같이 보였습니다. 술람미가 신을 신고 있는 발이 아름다운 것처럼 복음을 들고 달려가는 성도들의 발은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성도들의 발은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습니다.
에베소서 6장 15절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었다는 말씀처럼, 복음을 증거하는 그 자체는 사망에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어 평안의 춤을 추게 하는 것입니다.
춤을 추고 있는 술람미는 자신을 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금과 은과 보석들로 꾸민 장식을 허리에 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장식들은 춤을 추는 술람미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를 돋보이게 하였습니다. 허리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허리가 건강해야만 평범한 일상생활도 할 수 있고 춤도 출 수 있는 것처럼, 신앙도 진리의 말씀이 중심에 서 있어야만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바로 서 있을 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가 보석으로 만든 구술 꿰미처럼 성도의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는 은사, 능력, 달란트, 재능, 세상의 권세, 재물, 장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진리의 말씀을 중심에 세웠을 때 빛이 나는 것이며, 진리의 길로 가지 않으면 도리어 저주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데, 만약 그 사람이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이용하여 세상의 복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축복은 도리어 무거운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가 7장 2절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2절에 배꼽이 섞은 포도주를 가득 부은 둥근 잔 같다는 것은, 술람미는 향료를 타서 제맛을 내게 한 포도주를 부어놓은 둥근 잔처럼 풍족하게 보이고, 이런 술람미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을 흥겹게 해 주고, 밀단은 추수 후에 타작마당에 쌓아놓은 곡식단처럼 농부의 땀의 결실로 풍성한 수확을 얻은 기쁨을 느끼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를 포도주가 넘치는 잔과 밀단으로 비유한 것은 그녀가 복이 많은 여인으로서, 많은 열매 즉 자기의 자녀들을 많이 생산할 축복 받은 여인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여인들에게 자식은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성령님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늘 영육 간의 많은 복을 받는 풍족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성령 충만해야만 어두운 세상에 불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밀단과 같이 풍성한 열매를 거두어야만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가 7장 3절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두 유방이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다는 것은 큰 축복을 받아 태안에 두 마리의 새끼가 들어 있는 것처럼 풍성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암사슴이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 것도 큰 축복인데, 두 마리를 한꺼번에 낳는다면 그것보다 큰 축복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새끼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엄마의 젖처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생명을 살리는 두 유방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출산한 새끼들에게 바로 물려야 하는 유방이 없다면, 새끼들은 살지 못하고 죽고 말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도 생명의 양식인 진리의 말씀과 성령님께서 주시는 충만함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을 영혼을 낳았다고 해도 유방이 없기 때문에 귀한 영혼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먼저 최선을 다해 영의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의 바다로 출항하기 전에 기름을 채우고 양식과 물을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처럼 성도들에게는 성령의 충만과 말씀과 믿음은 곧 생명입니다
아가 7장 4절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술람미의 목이 상아 망대와 같다는 것은 머리와 몸을 연결해주는 목이 상아로 만든 망대처럼 우아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상아로 만든 물건은 우아하고 가치가 높습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리스도를 닮았기 때문에 상아처럼 우아하고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귀한 성도를 공격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이 상하지 않도록 든든한 울타리로 보호하실 것입니다.
망대는 적이 쳐들어오는지 살펴보는 아주 귀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망대가 되어, 악한 영과 악한 자들이 숨어들지 못하도록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망대에서 졸면 교회와 가정과 심령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7장 4절에서 솔로몬은 술람미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이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술람미의 눈이 비둘기 같다고 했지만, 이제는 헤스본에 있는 유명한 양어 연못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그 못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헤스본은 ‘현명하다’는 뜻이 있고, 바드랍빔은 ‘큰 무리 가운데 한 여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술람미가 ‘많은 여인들 가운데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인’이라는 칭찬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어 연못에는 많은 물고기가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평안과 안식을 주는 것처럼 지혜 있는 여인은 모든 사람에게 평안과 안식을 공급합니다. 이런 칭찬은 남편이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일 것입니다.
한 가정의 아내가 지혜롭고 현명한 것은 축복입니다.
잠언 14장 1절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여자도 마찬가지겠지만, 남자가 지혜로운 여인을 아내로 얻는 것은 자기의 인생 전체를 거는 모험이므로 신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지혜로운지 어리석은지는 살아봐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아내를 얻기 위해서는 영적인 지혜를 볼 수 있는 지혜를 자기가 먼저 갖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성도들은 지혜롭고 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은혜와 은사와 능력을 부어주셔도 지혜롭고 현명하지 않다면 그 모든 은혜를 쓰레기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그릇에 담겼느냐에 따라서 은혜로써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또 썩어버리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성도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고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영혼을 구원할 수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 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가 7장 5절
머리는 갈멜 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갈멜 산은 엘리야 혼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논전한 곳입니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엘리야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논전이었지만, 엘리야는 중간에서 머뭇거리는 백성들을 향해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정하라고 위엄 있고 권세 있는 영권을 가지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혼자서 많은 우상 숭배자들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엘리야가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의심 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싸우는 엘리야가 우상 숭배자나 백성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이런 믿음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아무리 상대가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엘리야처럼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환경이나 문제 앞에서도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을 간직하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중간에서 머뭇거리면, 세상과 사탄은 여러분의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더욱 악한 방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야처럼 담대한 믿음을 갖고 대결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여러분의 믿음을 도구로 사용해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머리털을 4장 1절에서는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이 검다고 했지만, 7장 5절에서는 자주 빛이 있다고 말합니다.
아가 4장 1절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아가 7장 5절
머리는 갈멜 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솔로몬을 만나기 전의 술람미는 염소무리처럼 검은 머리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을 만난 후 그녀는 자주 빛을 띠게 됐습니다.
자주색은 왕들이 입는 옷의 색입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말한 것은 왕의 아내가 된 술람미가 왕처럼 존귀한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술람미가 자주 빛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성도들 역시 왕 되신 그리스도와 혼인하여 만왕의 왕의 신부가 될 것입니다. 검은 머리털처럼 죄로 물들어 있던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왕의 신부가 되어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자격은 이 세상의 삶으로 결정합니다. 그리스도와 혼인 잔치를 하기 위해서 성도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을 것인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행한 옳은 행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대로 순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며 사는 성도의 삶이 바로 옳은 행실입니다. 그 믿음의 삶을 보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세마포를 입고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마포를 입은 성도를 그리스도께서는 더 빛이 나도록 높이 세워 주실 것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 신부들을 높이 세워주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성도들의 믿음을 돕고 계십니다. 솔로몬은 왕이었지만, 사람들 앞에서나 단둘이 있을 때나 술람미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언제나 남편으로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의 인격은 그 자체로 존경받을만했고, 술람미에게는 그 무엇보다 든든한 울타리였던 것입니다. 성도들도 언제나 말을 조심해야 하며 내가 무심코 던진 말로 다른 영혼이 실족하고 낙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죄인을 성도로 만들기 위해서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을 주고받은 관계입니다. 그 자체로 기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원해도 받을 수 없던 하늘의 사랑을 받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감사의 춤을 추기 바랍니다. 술람미가 당당하게 자기의 행복을 발산한 것처럼, 세상을 향해 하늘의 축복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 것인지 마음껏 믿음의 춤을 추기 바랍니다.
성도가 추는 기쁨의 춤이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안에서 춤을 추는 여러분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성도가 너무나 감사해서 추는 춤은 세상도 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도 보고 계십니다. 성도들이 허리에 진리 아닌 세상을 달고 춤을 춘다면 세상은 기뻐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춤을 추는 성도에게는 하늘의 복과 이 땅의 복을 함께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보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않는 성도가 기적을 이루며, 세상에서도 복을 누리고 사는 축복받은 자입니다.
여러분은 늘 충만한 삶 속에서 성령의 춤을 추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