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노래 — 아가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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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주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

아가 1장 5~8절

5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6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7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8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여러분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을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줄거리는 대강 이러합니다.

대기업의 중역인 웨스 킹슬리는 어느 날 바다의 포식자인 범고래가 작은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묘기를 부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고래가 묘기를 부릴 수 있을까?’라는 강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질문을 받은 조련사는 고래가 잘했을 때는 과도하게 칭찬을 해주면서 잘한 행동을 잊지 않도록 반복시키고, 반대로 부정적인 행동은 외면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잘못한 행동에 주목하면 그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빨리 다른 행동으로 전환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조련사가 알려준 방법을 직장과 가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했습니다. 그러자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 것처럼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됐습니다.

저는 칭찬이 직장과 가정까지 변화를 시키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칭찬’이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했을 것이고, 인정을 받는 ‘바른 판단’이 그들로 하여금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는 아이는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환경에 놓이더라도 자신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만큼 부모와 유대 관계가 잘 형성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남녀 사이도 서로 인정하고 칭찬할 때 사랑은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남자를 인정해주고 믿어줄 때 그는 더욱 당당해지며 자신 있게 자기의 몫을 해낼 것입니다. 믿어주고 칭찬해주는 여인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남자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상대방을 사랑할 때 하기 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이 자기의 생각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칭찬만으로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칭찬으로 자신감을 느끼게 해 준 다음에는 반드시 권면을 통해서 그의 숨은 능력을 끌어내 주고, 그가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그를 더욱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칭찬은, 칭찬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노력을 해야만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가 인생 전부가 될 수도 있고, 그리하여 그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내가 힘겹고 두렵고 아픈 것을 알아준다면, 자기의 목숨이라도 내놓는 것이 바로 여자의 마음입니다. 가난하고 육신이 연약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보호하고 사랑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면, 여자는 어떤 처지에 있든 행복한 마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 있는 여자와 남자가 믿음으로 하나가 된다면, 어떤 어려운 상황도 두렵지 않으며 그 어떤 방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위대한 것이며,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를 남편, 성도를 아내로 보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성도를 보호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성도는 세상의 어떤 공격도 능히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 1장 5절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술람미는 자기의 처지나 외모에 연연하지 않고 솔로몬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자, 내가 검지만 아름답고 비록 게달의 장막 같지만 솔로몬의 휘장 같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술람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자기의 외모는 비록 초라하지만, 솔로몬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게달의 장막은 유목민들의 장막입니다. 검은 털로 덮였기 때문에 검고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포도원에서 일했기에 검게 그을린 자신의 겉모습을 게달의 장막 같다고 말하면서도, 자신 있게 솔로몬의 휘장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초라한 술람미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겉모습이 초라하지만,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을 알아주는 솔로몬으로 인해서 귀한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게달의 장막’처럼 세상에서는 볼품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겉모습은 초라할지라도 성령의 충만함이 넘치는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만은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아가 1장 6절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술람미는 오빠들의 학대를 받으며 온종일 포도원에서 일하느라 너무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여인의 몸으로 자기 포도원을 지키기도 힘겨울 텐데, 오빠들의 포도원까지 돌봐야 하는 술람미의 고통과 외로움은 컸을 것입니다. 오빠들의 학대는 술람미의 힘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었습니다. 자기 포도원을 돌봐야 하는데, 오빠들이 두려워서 자기 포도원에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만약 오빠들의 포도원을 열심히 돌봐서 열매가 많이 열렸다면, 오빠들은 술람미에게 감사하기보다는 일을 잘하는 술람미를 더 부려먹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술람미에게 소출의 조금도 나누어주지 않으면서, 도리어 네 포도원은 왜 열매가 없이 황폐하냐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오빠들의 포도원처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세상의 것이며, 성도들의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세상은 더 흥하겠지만, 노력의 대가는 미비할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성도들의 몫으로 받은 영적인 포도원은 더욱 황폐해질 것입니다.

술람미의 오빠들처럼 힘으로 괴롭히는 세상은 성도들이 자기의 포도원을 돌보지 못하도록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굴복한 성도들에게 영혼의 열매가 없으면 조롱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 힘에 눌려 일만 하다가 하나님께 받은 자신의 포도원으로 돌아왔을 때, 열매가 없는 포도원을 보게 된다면 허무하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술람미가 자기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것을 탄식하는 것처럼 성도들은 믿음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것을 탄식하게 될 것이며, 영적으로 허탈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술람미는 솔로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 성도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지만, 술람미가 시간을 쪼개어 자기의 포도원을 위해서 노력해야만 적은 양이라도 수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모든 시간을 세상을 위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쪼개어 자신의 영혼을 위해 노력해야만 영적인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노력하는 성도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의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관심을 가지면, 세상은 더 이상 성도를 핍박할 수 없습니다. 술람미가 왕인 솔로몬을 만났을 때 오빠들은 이미 두려운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면 세상의 힘은 이미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세상의 힘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지만,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있고, 느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술람미처럼 ‘나는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노예가 갖는 두려움은 진정한 사랑과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면, 성도를 노예로 부리는 이 세상이 받을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술람미는 솔로몬의 사랑을 확신하자 강하고 담대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권세를 알기 때문에 그 사랑을 확신하는 순간,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29절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초라하고 힘없는 여인이 솔로몬 왕과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성도는 더 이상 초라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물질과 힘과 명예와 권력이 없는 사람들을 천하다고 멸시합니다. 능력 있는 특권 계층이 아니라고 함부로 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버린 힘이 없는 자들을 택하셔서 하늘의 지혜로 세워주시고, 멸시받는 자들을 택하셔서 영적으로 부요케 하셨습니다. 사람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기준이 세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솔로몬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술람미가 사랑을 받는 것처럼 게달의 장막과 같이 죄로 더러운 우리를 택하셔서,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자기는 지혜롭고 강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이 없는 술람미는 그저 두려움에 떠는 포도원지기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는 성도들은 그저 세상의 힘에 눌려, 두려움에 떨고 살아가는 힘의 노예일 뿐입니다.

아가 1장 7절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술람미는 현실이 두려울수록 오빠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피난처가 되어줄 솔로몬을 더욱 그리워했습니다. 아무리 초라하고 볼품이 없어도 자기를 인정해주는 그 사람이 그리워서 찾아 나섰습니다. 여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솔로몬을 찾는 술람미에게 그를 찾고 싶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왕자들도 일정 기간 양을 치는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양을 치는 훈련을 해야만 백성들의 고충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들이 얼마나 연약하고, 죄를 짓기 쉬운 존재인지 아시기에 보좌를 유보하시고 세상에 오셨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목자가 된 솔로몬이 술람미를 만날 수 있었고, 둘은 더 깊은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자가 양 떼와 함께 있다는 말은 참 의미 있는 말입니다. 양 떼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목자인 솔로몬은 거기에 있을 것이고, 술람미는 솔로몬을 찾아 방황하지 않아도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은데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다면, 양 떼가 있는 곳으로 가면 그분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진리의 꼴을 먹는 양 떼는 세상의 넓은 대로로 다니지 않고, 풀이 무성한 좁은 길을 통해 목자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넓고 화려한 세상의 길에는 양들이 먹을 수 있는 꼴이 없습니다. 양이 목자를 잃고 길을 찾지 못해서 대로로 나갔다면, 아마 양을 노리는 사람에게 잡혀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시편 23편 1~2절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의 찬양처럼 양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비록 좁고 협착한 길이지만 그곳에 양들과 함께 있는 솔로몬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술람미가 솔로몬이 어디에 있는지 간절히 찾는 것처럼,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예배의 삶으로 찾아야 합니다. 술람미가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솔로몬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던 것처럼, 영적으로 지혜 있는 자들에게 물어서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 그분을 향한 믿음의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찾다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고 마는 것은 아닙니까? 그분이 어디에 계시는지 모르겠거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따르고 있는 양 떼가 있는 곳으로 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양 떼를 거느리고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에 계시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면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그리스도께서 계실 것입니다.

자신을 찾아온 술람미를 보고 솔로몬이 아름답다고 칭찬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찾아온 여러분을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그 칭찬은 여러분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줄 것이며, 힘과 권세를 가지고 다가오는 세상이 두렵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에 찬 사람은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지켜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두려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세상에서 입고 있는 겉옷의 화려함을 보지 않고, 심령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보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름다운 노래 · 주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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