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
2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3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4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5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6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으니 쌍태를 가졌으며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 7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8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9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10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11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12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13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늘 외롭고 춥게 살아가던 고슴도치에 관한 동화가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마음을 줄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기처럼 외로움으로 아파하는 한 고슴도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둘은 같은 외로움을 갖고 있었기에, 서로를 위로해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함께 살기로 약속했습니다. 고슴도치 부부는 서로 마음을 나누며, 추위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안아주려고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사랑하고픈 마음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고슴도치 몸에 난 가시가 서로에게 상처만 주었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가시에 찔리면 반사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상처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고슴도치 둘은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습니다. 마침내 부부는 너무 바짝 붙어 있으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랑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섬기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은 상대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소유욕이 생깁니다. 상대가 내 가시에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줄도 모르고, 자기 소유인 것처럼 마음대로 행동하니까 결국 상처 입은 상대방은 내 곁을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격이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행동이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에게 맞추어 자신의 나쁜 습관과 행동을 순화하기보다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사랑하는데 가장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합니까? 몸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부부라고 해도 성숙한 인격으로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섬길 때, 두 사람의 사랑은 더 오래 깊이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이고, 모든 관계에 적용될 것입니다. 친하면 친할수록 서로 조심해야 하고, 적당한 선을 두어야만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습니까? 나의 모난 성격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내 상처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인간은 절대로 일방적인 행동으로 상대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사랑도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스토커가 있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내가 준 사랑 역시 반드시 상대를 이롭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품어야 하는 남편이 자기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작은 그릇일 때 가정을 파탄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한 가정의 가장은 큰 그릇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물론 남편 혼자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고 남편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으면, 아무리 남편이 노력해도 그 가정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도들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관계와 달리 예수님은 성도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주십니다. 인류를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달려야 할 십자가에 대신 달려서 못이 박혀도 괜찮다고 하시고, 대신 맞은 채찍으로 온몸이 찢겨도 괜찮다고 하시며, 가시면류관으로 피가 흘러도 괜찮다고 말씀하시며 구원만 받으라고 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아픔과 조롱과 고통을 다 감당하시는 주님 앞에서 물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불평하며, 불만을 터뜨리는 우리를 향해 사랑의 말씀으로 안아주시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보호자입니다.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 누리지 못하면, 여러분이 사는 세상은 언제나 암흑이며 불안하고 두려울 것입니다. 남편이 잘할 때 아내는 더 잘해야 하고, 예수님께서 베푸실 때 그 은혜에 감사해야만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절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미 값을 다 지불하신 주님께서, 너희가 할 일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것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불의한 자는 인간의 생각과 의를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구원의 길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죄인을 감싸 안을 수 있는 것은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 같이, 주님의 생각이 어리석은 인간의 생각보다 높으시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솔로몬은 술람미보다 훨씬 높은 생각과 넓은 마음과 인생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술람미가 서운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회개하고 자기를 찾아오자 아내를 기꺼이 맞아 주었습니다. 이것이 연약한 아내를 안아주는 든든한 남편의 모습이며, 탕자와 같은 성도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사탄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아가 6장 3절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술람미는 많은 양 떼가 남편에게 속해 있는 것처럼 자기 역시 남편에게 속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들이 솔로몬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고 순종하는 것처럼, 자신 역시 남편과 하나가 되어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솔로몬과 술람미가 하나인 것처럼,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도들이 하나입니다. 죄인이었던 성도들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를 감당한 그리스도의 희생이 없었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를 찾아 먼 길을 온 술람미의 간절한 눈을 보자, 솔로몬은 여인이 진심으로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심령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물론 성도들도 세상의 열심과 욕심과 계획을 버리지 못해서, 하나님을 서운하게 해 드리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만큼 귀한 믿음도 없는 것입니다.
아가 6장 8절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우리가 알고 있는 솔로몬의 후궁이 칠백, 첩이 삼백 인이라는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아마도 솔로몬이 술람미를 만났을 때는 『열왕기상』 11장보다 훨씬 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술람미를 향해 그 누구보다 돋보이는 존재라고 칭찬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는 많은 여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술람미가 단연 돋보이는 존재라고 한 것은, 술람미와 가까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떨어져 보니 아주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함께 있을 때보다는 떨어졌을 때 그 진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곁의 사람에게 더 인격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며, 상대를 존중하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남편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는 성도와 아내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행복한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그 울타리가 얼마나 튼튼하게 자기의 인생을 지켜준 버팀목이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랑을 쉽게 배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남편에게 버림을 받으면, 세상과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고 멸시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제야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따뜻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 때, 그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한 선물로 보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혼 구원을 위해 주신 사랑을 헌신과 충성으로 포장하여 되돌려 드리거나, 남편이 가정을 위해서 일한 노력에 대해서는 자녀를 지혜롭게 키우고 가정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으로 되돌려 준다면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인하여 기뻐하기보다는 죄인 한 명이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목자가 늘 곁에서 지켜주며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물이 흐르는 시냇가로 인도할 때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목자를 잃고 낯선 곳에 홀로 있게 되면, 그동안 목자가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양들은 목자와 헤어질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날이 어두워서 목자가 잘 보이지 않아도, 언제든지 부르기만 하면 목자가 오기 때문에 잠시 한눈을 파는 것쯤은 괜찮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가지 않고 마음대로 꼴을 찾다가 목자와 헤어지게 되면, 낯선 곳에서 아무리 울어도 따뜻한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길을 잃은 양에게는 목자가 없다는 것뿐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넓은 들판에 먹을 수 있는 양식도 있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길을 잃은 양에게는 쉴 곳이 없었습니다. 양에게 목자가 없다는 것은 들짐승이 모여들어도 그들을 쫓아내 줄 보호자가 없는 것이고, 안전하게 들어가 머물 수 있는 피난처가 없는 것입니다. 양은 그제야 세상이 두렵고 무서워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이렇게 한눈을 팔다가 길을 잃어버린 양에게 목자가 찾아 온 것입니다. 목자를 보는 순간 양이 얼마나 기뻤을지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길을 잃은 양들이었습니다. 조금 더 풀을 먹겠다고 욕심을 부리고, 목자가 인도하는 것이 답답하여 자유를 찾아 낯선 길을 떠났던 어리석은 양들이었습니다. 그런 죄인들을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진리의 길을 잃고 헤매던 이 죄인들을 책망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어깨에 둘러메고는 양의 무리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를 찾아온 술람미를 보며 기뻐하던 솔로몬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여러분도 지금 곁에서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사람들과 자기의 생명을 주시며 보호해주시는 예수님께서 계시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사랑해주시던 하나님과 사람이 떠났을 때, 남겨질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아마도 상상할 수 없이 두려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절대로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한걸음 뗄 때마다 진리의 말씀대로 바로 가고 있는지,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맞아주실 것인지 고민하고 또 긴장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일들을 맞이하지만, 그 모든 것 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라는 것을 잊지 않을 때, 목자의 인도하심 따라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드디어 솔로몬을 만난 술람미를 보며 예루살렘 여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가 6장 10절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예루살렘 여자들은 남편을 만난 술람미가 너무 아름답게 보여 놀랐습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만 해도 얼굴에서 빛이 나며, 눈이 부시도록 외모가 아름답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성장하는 성도들은 영적으로 빛이 나기 때문에 외모를 꾸미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게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그의 세상의 삶은 가난하고 병들고 연약해도 그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영적 권위는 술람미처럼 단연 돋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성장하는 성도들은 행동이 먼저 달라집니다. 즐기던 세상의 습관을 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깎고 다듬는 노력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 진리의 길로 가기를 멈추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말씀으로 돌이키셨거든 힘 있게 일어나서 달려가고, 다시는 세상을 돌아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가 6장 13절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창세기』 32장 2절에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위해서 길을 행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들이 진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 천사들을 하나님의 군대, 즉 ‘마하나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창세기 32장 2절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마하나임’을 보여주신 것은 장자권을 빼앗긴 형 에서에게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천사들이 친히 지켜줄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마하나임’은 두 진영 혹은 두 군대를 뜻하는 고유명사입니다. 야곱이 그렇게 부른 것은 두 군대로 형성된 많은 천사들, 즉 만군의 천사가 야곱 일행의 전후 혹은 좌우에서 옹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들이 만약 영안이 열려서 마하나임을 야곱처럼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겠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을 지키고 있는 마하나임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를 통해 성도를 지키시는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야곱이 실제로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지금도 여러분을 지키고 있는 마하나임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천군천사가 여러분 곁에서 지키고 있다면 세상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 곁으로 오자 술람미는 마하나임처럼 아름답고 기품 있어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만 했는데도 여인은 이렇게 변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 이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교회와 성도는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기품이 있고, 위세 당당해야만 세상이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을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곁에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고, 세상의 권세에 위축될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사랑을 주는 신랑의 품에서 행복과 안식과 평안의 빛을 발산하면 되는 것입니다. 술람미가 밤을 새워 남편을 찾아다닐 때는 행순하는 사람들에게 어미 잃은 아기 새처럼 공격을 받았지만, 이제 솔로몬이 곁에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이며,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권세를 가지고 교회와 성도를 넘어뜨리려 해도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군대가 성도를 호위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성도들이 확실하게 믿으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하늘의 보호를 받는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자이고, 복된 자라는 칭송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곁에서 보호받는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