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신 이 세상은 전혀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하나의 걸작품입니다. 발전된 과학으로도 그 비밀을 찾아낼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창조하신 세계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분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고, 지은 것이 하나도 그 분 없이는 된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흉내낼 수 없는 완벽한 작품이 말씀으로 전 우주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는 귀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지 못하자,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사탄의 계략에 속아 교만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자 사탄의 말을 믿고 따르게 되었고 자신을 중심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신 이 세상이 빛을 잃자 사탄이 어둠으로 다스리게 되었고 죄로 인해 사람과 자연은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큰 성 바벨론이 죄로 인해 심판 받는 날이 가까워지므로 살아남는 길은 오직 방주에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노아가 만든 방주만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방주는 교회 건물과 교회 다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방주가 피난처인 것처럼, 방주를 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은 세상과 사탄과 분리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은 방주에 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세상의 권력을 가지면 안전하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힘은 가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므로 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6장 8~13절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만큼 세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내리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홍수의 심판이 있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사람들의 구원이 계획되어 있었으므로 하나님은 노아를 부르셨습니다. 노아는 아담과 에녹 그리고 므두셀라를 통해 하나님은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기 때문에 천국과 심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담이 사탄의 계략에 빠진 이후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모두 무익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은 노아를 부르셨고, 그에게 곧 심판이 있을 것이니 너는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노아는 므두셀라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자 마음이 아득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명령을 받은 노아는 방주를 짓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결심하셨다면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노아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세상을 좇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심판을 불러왔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어쩌면 방주가 완성되면 그들이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훗날 노아가 그의 가족들을 모두 구원하는 것을 보면,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방주를 짓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는데 방주를 짓고 있는 노아를 보며 사람들은 비웃고 조롱했지만, 그는 언제인지 모를 심판의 날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노아를 조롱하는 사람들 중에는 친한 친구와 형제도 있었고, 방주에 타야만 살 수 있다고 간청하는 노아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면 노아의 말에 힘이 실렸겠지만, 노아의 안타까운 마음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짓는 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의 생각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는 방주가 완성되어 갈수록 기쁨보다는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이 방주에 태울 수 있을까, 하물며 동물도 타는데 저 아까운 생명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노아의 마음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강퍅한 그들은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들 눈에 보이지 않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심판이 임한다는 것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믿게 하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조롱하든 핍박하든, 또는 심판이 없는 것처럼 시집가고 장가를 가든, 방주는 지어져 갔고 세상이 물에 잠길 시간은 다가왔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며, 자기가 믿지 않는다고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며,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은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그 약속을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노아처럼 세상에 심판이 임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은 죄가 관영하기 때문이므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충분히 타락했고 하나님의 심판은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을 드려 방주를 짓는 노아처럼, 핍박을 받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를 타야만 살 수 있다고 전해야 합니다. 세상의 역사가 성경의 기록대로 성취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핍박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담대하게 말씀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7장 15~17절
15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17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지금부터 여러분은 방주의 문을 중간에 놓고 방주 안에 서 있는 노아와 방주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마주보고 있는 장면을 그려 보기 바랍니다. 그들은 노아가 사랑했던 사람들이었고 또 노아를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지만 방주를 타야만 살 수 있다는 노아의 말은 믿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방주를 실제로 짓고 있는 것을 보았고 돕기도 했지만, 비로 인해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는 말을 믿을 수 없기에 방주에 탈 생각은 없었습니다. 비로 인해 세상이 잠긴다는 말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판단을 믿고 방주에 타지 않았습니다. 문이 닫히는 순간 노아의 마음이 어땠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문이 닫히기 전까지 방주에 타야 한다고 끊임없이 이름을 불러보지만, 들어오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노아는 가슴이 저리도록 울었을 것입니다. 밖에서 손을 흔들며 웃고 있는 그들이 조금 후면 모두 죽을 것을 알기에 노아는 간절하게 방주에 타라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고 있으며, 온 우주를 6일 만에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살아있는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는 이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진화론으로 이 진실을 막고 있지만 진리는 결코 덮을 수 없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1장 1절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공룡이 사람들과 같이 살았다는 말을 듣고 크게 비웃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두려운 것은 그들의 믿음과 상관없이 세상의 심판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심판받는 사람을 보면서 자기의 구원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심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노아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애통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성을 보며 우셨던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유대인들이 엄청난 핍박을 받을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말씀해 주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은 실제로 로마에 의해 큰 고난을 받음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는 영적인 눈이 없고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귀가 없으면 진리는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받아야 하지만, 듣고 배우고 아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여러분의 믿음도 필요한 것입니다. 아직 방주의 문이 열려 있고 노아가 들어오라고 목이 터지도록 외칠 때 방주 안으로 들어가야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기회가 있으므로, 믿음으로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노아는 최선을 다해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자녀들이 방주를 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도록 자녀들을 위해서 시간과 정성을 들였고 그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 정직한 아버지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노아에게 자기의 삶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노아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인생을 사는데 왜 나만 힘들게 살아야 하느냐고 불만을 가졌다면 방주는 지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노아는 세상의 종말을 보는 것처럼 믿었기 때문에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보는 하나님은 영존하시며 무한히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창조하신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쾌락을 즐기며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세상 위에 떠다니는 방주가 곧 생명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되자 방주의 문은 서서히 닫혔고, 노아와 마주 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 또한 조금씩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완전히 닫히자 노아는 영혼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아마도 크게 통곡했을 것입니다. 방주에서 통곡하는 노아와 달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노아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시간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방주 안에 계신 분입니까? 아니면 방주 밖에서 구경하고 계신 분입니까?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과 여러분 자신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노아를 조롱하는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동안 잠시라도 생각할 여유가 있었을 것이며, 방주의 문을 세차게 두드릴 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적처럼 재림하시기 때문에 나팔소리와 동시에 성도들을 공중으로 채 올려가므로 땅에 남는 사람들은 생각할 여유도 돌이킬 기회도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재림의 소식을 듣게 하시며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실 때 돌이켜야 합니다.
창세기 7장 11~12절
11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양으로는 세상이 잠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땅 속의 깊은 샘들이 터져서 엄청난 물이 땅 위로 솟구쳤을 것이고, 하늘에서도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을 것입니다. 노아가 나올 것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멈춰버렸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며 즐거워하던 소리도, 땅을 사고 재산이 불었다고 자랑하는 소리도, 내 자식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위대한 용사 네피림이라고 자랑하던 소리도 모두 멈춰버린 것입니다. 세상이 있을 때 자랑도 있는 것이고 권세와 물질도 필요한 것입니다. 물이 차오르는 데도 금은보화를 챙기려고 물속으로 뛰어 드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명소리만 들리는 방주 안에서 과연 노아는 무엇을 했을 것 같습니까?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우리 여덟 식구만 살았다고 기뻐했겠습니까? 아마도 죽어가는 생명을 건지지 못한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며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방주를 지으면서 ‘설마 이 세상이 잠길 수 있을까? 설마 우리 식구들만 방주에 탈까?’ 생각을 했겠지만, 막상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여덟 명만 살아남자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그제야 깨달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분인지 잊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드리고 싶으면 드리고, 예배를 드릴 마음이 없으면 마음대로 해도 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 세상을 한 순간에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노아처럼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방주는 드디어 땅에서 떠올랐고, 백오십 일 동안 물 위를 떠다니게 되자 아내와 아들들과 자부들과 동물들이 타고 있는 방주가 노아에게는 세상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어디에도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주던 형제와 친구와 친척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노아의 외로움을 이해해 보기 위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 섞일 수 없었던 외로움과,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고 방주를 지어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노아가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인간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 안에서 홀로 결정하고 판단하고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힘들고 외로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관심 없는 사람들과 늘 동떨어진 말만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고립되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목이 쉬도록 방주에 타라고 전해도 귀를 닫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답답하기 보다는 도리어 그들의 마지막을 알기에 두려웠을 것입니다. 노아를 향해 미쳤다고 조롱하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노아의 눈에는 이미 죽은 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으면,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고립을 당할 수도 있고 크게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세상보다 조금 죄를 덜 짓는다고 해서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니라, 방주 안에서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바로 구원받은 성도의 믿음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세상 속에서 그들과 섞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방주까지 지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 가운데 한 생명이라도 더 방주에 태우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의무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창세기 9장 19~21절
19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비가 그치고 백오십 일 동안 방주가 물 위에서 떠다니다가 물이 마르기 시작한지 백오십 일이 더 지나서야 땅이 드러났습니다. 닫힌 문을 열고 나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노아는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두 달이 지나서야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방주의 문을 손수 닫아주셨지만, 밖이 안전한 상태가 되자 노아에게 직접 문을 열고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면 위급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해 주시지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지금처럼 기다려주십니다. 노아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문을 열자 아담이 살던 에덴 동산과 같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물에 잠겼던 더러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무리 둘러봐도 여덟 명 뿐이었습니다. 이제껏 보지 못한 황폐한 세상을 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만약 노아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의 삶을 추구한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그는 정신이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언제나 세상을 향해 죽은 자로 살았고, 믿음 안에 흔들림 없이 서 있었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노아는 평상시 예배의 삶을 살았으므로 그가 세상에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심판을 면한 노아였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허전함과 허탈함 그리움과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친했던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고 오직 자신뿐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도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한 길을 갈 수 없으므로 상처를 입지 않도록 자신을 반석 위에 세우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노아는 심판을 받은 세상에 살아남았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성도들이 맞이하는 혼인잔치는 사람들이 곁에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기쁠 것이므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포도나무를 심었고, 마실 물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포도주를 음료로 사용했는데 노아가 좀 많이 마셨던지 취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성도들도 노아처럼 믿음과 상관없이 잠시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삶 속에서 만나는 고난으로 흔들리기도 하고 낙심하여 울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열심히 믿음을 지키다가 건강을 잃거나 물질로 고통을 받거나 감당하지 못할 세상의 문제에 부딪히면 노아처럼 쓰러지기도 할 것입니다. 노아는 지금 믿음으로 달리다가 잠시 쓰러진 것이므로 괜찮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울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노아를 책망하시기 보다는 다시 회복하고 일어날 때까지 잠을 깨우지 않고 잠잠히 기다려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달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외롭다고 우는 여러분을 달래주고, 아주 넘어지지 않도록 손목을 잡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지쳐있는 노아를 보고 아들 함이 조롱한 것처럼, 세상은 고통스러워하는 성도들을 조롱할 수 있습니다. 잠시 힘들어서 멈춘 노아를 하나님께서도 책망하시지 않는데, 아들 함이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살다가 잠시 멈추고 쉬고 있을 때, 그런 성도를 조롱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감당하지 못할 인간적인 고통으로 아파하는 아버지를 감싸주지 않았던 아들 함은 저주를 받았고 태어나지 않은 그의 아들 가나안까지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잠시 넘어진 것은 하나님께서도 품어 주시며 용서하셨는데, 감히 하나님의 자녀를 세상적인 판단으로 조롱하는 자를 책망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세상의 힘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도록 돕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노아가 구원의 방주를 짓는 일은 힘겨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온 세상이 멸망을 받을 때 방주는 노아의 생명을 지켜주었고 그의 가족을 살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방주가 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셨습니다. 못이 박히고 창에 찔리며 물과 피를 다 쏟으시던 예수님의 사랑은 거저주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기만 하면 구원의 방주에 탈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했기에 가족을 구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노아처럼 여러분은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 방주에 많은 생명을 태우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험한 세상에서 방주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믿는 여러분은 노아처럼 더 크게 복음을 전하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