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2)
16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24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바울은 지금까지 랍비에게 배웠던 율법이 진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그 시간들을 회개라도 하듯이, 그는 많은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세가 담겨 있었으므로, 어둠에 갇혀 있던 영혼들이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는 회개 기도가 찬양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손을 대는 자마다 병마가 물러갔고,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믿음의 자녀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 입장에서 보면, 바울이 얼마나 대단하고 겸손한 사람인지 부러움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사도 바울 역시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인데,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난 후 어떻게 이토록 완벽하게 돌아설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한번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죽도록 충성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개념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는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거가 내 뒤에 있으므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아도 그것은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미래는 내 앞에 있으므로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과거가 앞에 있고 미래가 뒤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늘 출애굽 사건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고난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낸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고 보호받는 인생이 되므로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더 큰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현재는 곧바로 과거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놀라운 은혜는 결국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할 과거입니다. 과거가 앞에 있어야만 은혜 받은 그 때를 기억하고 배신하지 않을 것이며, 죄로 인해 당한 고난일지라도 그것을 거울삼아 하나님께 선한 믿음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인생의 경험을 늘 앞에 두고 감사하고 헌신하며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으며,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과거의 자신과 현재 거듭난 자신을 보면서, 그리스도를 만난 즉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서, 아라비아로 가서 삼 년을 머물며 기도한 후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는 삼 년 동안 기도에 전념하면서 빛과 음성으로 만난 그리스도를 성령 안에서 온전히 만나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조차 성화되기 위한 노력을 한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세상적인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말씀으로 채운다면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고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방법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영적으로 승리한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항상 자신을 깎고 다듬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고립은, 세상과 아주 단절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훈련이 끝나면 다시 세상으로 나가 영혼구원을 위해서 헌신하는 그릇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율법에 능통했던 바울은 율법이 그리스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자세히 깨닫게 되자,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으므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요즘은 진리보다 거짓 복음이 더 힘을 얻고 있습니다. 성도들까지도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거짓복음은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 세상의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쳐야만 성도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진리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여러분 한 사람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바울 한 사람이 회개하므로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처럼, 여러분 한 명이 변화하면 이 나라와 교회와 가정이 변화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셋째 하늘에 다녀왔다고 간증했는데, 이 간증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의 자격이 없다고 핍박하던 그들에게 낙원을 간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래야만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낙원에 가서 하늘의 비밀을 듣고 보는 축복을 받았고 다른 사람의 병을 다 고치는 능력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의 병은 치료받지 못했습니다. 아마 바울은 하나님의 이런 공의로움 때문에 더욱 확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평한 은혜와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 자기가 행하는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뱀이 물어도 죽지 않는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면 그는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네 은혜가 족하다는 응답을 하셨습니다. 이런 응답을 받을 때마다 자신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아니면 신앙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도 바울이라면 ‘하나님께서 이 병만 고쳐 주시면 제가 건강한 몸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계속되는 거절에 바울은 실망과 낙심도 했겠지만, 오히려 더 깊은 영적인 세계를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약해질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지고, 자신이 부족할수록 그리스도의 능력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뜻을 깨닫고 인내하기까지 바울이 겪었을 마음의 고통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병들고, 가난하고, 연약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드립니까? 정말 나는 부족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믿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입니다.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바쁜데도 불구하고, 잘 사는데도 불구하고,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환경이 나쁜데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충만한 것, 그것이 진리를 깨달은 성도입니다.
만약 바울이 개종하면서 곧바로 몸이 더 건강해지고, 돈도 더 많이 벌었다면 사람들은 세상에서 성공한 그를 보고 예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세상 방법을 사용해서 천국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오기를 원하시므로, 성도들이 진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알고 행하는 자녀들로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기꺼이 해결해 주시지만, 먼저 믿음을 갖는 것이 우선이므로 믿음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기도한다면 더 큰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병에 대해서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부족하고 초라한 모습 그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바울, 무엇 하나 세상에 내세울 것 없는 바울이 오직 복음 하나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멋진 하나님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기쁘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전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데 아직도 미래가 두렵습니까?
예수님은 구원을 위해서 이 세상의 힘을 갖지 않았지만, 전하시는 모든 말씀이 바로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었습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자라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죄를 대속하신 것이 변하지 않는 한 복음과 진리는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가 변하지 않는 한, 구원받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할 것이란 약속 또한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며칠 후면 왕궁에 들어가 왕후가 될 사람이 초가삼간을 두고 가는 것이 아까워 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찌그러진 그릇을 이웃에게 주기 아까워서 전전 긍긍하고, 먹다 남은 쌀을 지키기 위해서 다투지 않을 것입니다. 아낌없이 다 나누어 주면서도 왕과 함께 궁전에서 살 생각을 하며 기뻐하는 것이 왕후가 될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셋째 하늘로 올라가서 인간의 눈으로 절대로 볼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을 보고 들었습니다. 물론 영과 육은 분리되었고, 사도 요한처럼 하나님을 만나서 영광의 세계를 경험한 것입니다. 바울이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보고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뵙고 말씀을 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볼 때, 그 역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듣고 보았을 것입니다. 자기가 받은 계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교만하지 않도록 몸에 가시를 두셨다는 그의 고백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계시 중의 하나로 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십사만 사천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울은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의 성도가 어린양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성도들의 입에는 거짓말도 없고, 흠도 없는 거룩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시온 산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서 어떤 고난이나 사탄의 유혹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간 성도들이, 정말 하나님께 아름다운 찬양을 드리는 것을 바울이 직접 본 것입니다.
아름다운 찬양을 들으면서 바울은 자기도 그 곳에서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새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과 함께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 그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로 살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 체포되어 결박당한 상태로 공회로 끌려왔습니다. 그 자리에는 아그립바 왕과 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의 아내인 버니게와 로마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왕 앞에서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 전혀 위축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죄인의 신분으로 결박을 당한 채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쭉 둘러앉아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듣고서 이해가 안 되면 죽이겠다고 하는데,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구원받으라고 전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 있게 전할 수 있는 담대함은 그리스도께서 구세주라는 확신과 자기가 알고 있는 진리가 진짜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을 만난 바울은 세상의 왕이 두렵지 않았고, 신분이 높은 그들이 그저 구원받지 못한 불쌍한 영혼으로 보였습니다. 바울은 당당하게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이방인의 사도가 되라고 하셨고,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소경인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어둠에 갇혀 있는 줄 모르기 때문에, 복음의 빛으로 눈을 뜨게 하여 하나님께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성도입니다.
사도행전 26장 29절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죄인으로 잡혀온 사도 바울은 세상의 왕에게 내가 결박당한 것 외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당신도 갖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의 왕에게 감히 나를 닮기를 원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 보이십니까? 다윗은 왕이었지만 교만하지 않았고, 에스더는 왕후의 자리에서 유다 민족을 살렸으며, 다니엘은 총리의 자리에서 죽을 각오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욥이 갑부인 것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바울처럼 부모와 형제와 재산을 모두 버리고 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 스스로 결박을 당하고, 돌에 맞으며, 옥에 갇히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피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세상의 왕 앞에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면서 그 의심 없는 담대한 믿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그립바 왕은 세상 권세를 가졌으므로 바울처럼 힘이 없는 사람은, 왕의 말 한마디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럽고 초라한 옷을 입고 결박까지 당한 바울이, 세상의 권세자들을 향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전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딱한 노릇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성도와 복음을 듣는 세상은, 아그립바 왕과 바울처럼, 세상은 왕의 자리에, 성도는 초라한 바울의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왕이라면, 포승에 묶인 죄인이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믿어야 살 수 있다고 전한다면 믿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화를 다 가진 왕에게 바울이 어떤 말을 해야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생각을 합니까? 이 고민은 성도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전도하기 위해서 바울처럼 고민해야만 합니다. 바울의 말을 들은 왕은 네가 짧은 시간에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한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죽은 자로 살고 있기 때문에, 왕의 호통도 두렵지 않았고, 결박을 당하고 조롱을 당해도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말씀은 선포하는 것입니다. 믿어 달라고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하는 이 복음을 듣지 않으면 당신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계엄령을 선포할 때 지켜달라고 구걸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법에 따르지 않으면 죽으니까 제발 조심해 달라고 비는 것을 보았습니까? 계엄령이 선포되면 법을 어긴 자는 법대로 심판 받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더러운 옷을 입고, 병들고, 가난해도 왕과 권세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상대방보다 소유가 적다고 스스로 부끄러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이미 성도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며, 권세로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과 똑같은 축복을 받은 여러분은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바울을 보면서 결단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여러분이, 지금 혼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바울과 함께 그 자리에 있다고 한다면 그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할 것 같습니까? 바울처럼 큰 소리로 그리스도를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고 전할 용기가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바울처럼 불이익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 생각해 낸 것이 세상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자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은 바울의 초라한 옷을 벗기고 결박을 풀어서 새 옷을 입히고, 교회건물에 고가의 대리석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값비싼 악기로 예배당을 채우고, 세상의 힘을 가진 사람을 되도록 많이 모으고,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포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진심으로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다윗처럼 각종 악기로 거룩한 주님을 찬양하며, 진실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세상과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게 꾸민 건물에서 목사는 왕이 되고, 장로를 비롯한 직분자들은 귀족이 되어, 이 정도면 세상을 상대해 볼만하다고 생각한 교회는 말씀을 다 버리고 세상의 복만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무엇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다 닦아내고, 허리의 창 자국을 꿰매어 감쪽같이 없애고, 더러워진 옷과 가시 면류관 대신 화려한 옷과 보석이 박힌 면류관을 주님께 씌워 드리고 나서 이제 어떤 예수를 전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죄의 몸이 죽어야만, 사탄의 종노릇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향해 자랑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금칠을 해놓고 이제 어떤 하나님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밟지 못하도록 화려하게 회 칠한 무덤은 곁에 가기만 해도 썩은 냄새가 나는 것처럼, 교회와 성도의 믿음은 겉만 화려하게 회 칠한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경건한 예배를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로 사람들을 모으는 화려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무덤은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그것을 갖고 싶어서 간절히 원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자식이 사랑스러워도 죽으면 안을 수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도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먼저 십자가에서 죄의 몸을 벗어야만, 세상의 왕 앞에서도 사도 바울과 같이 당당하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많은 목회자들이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의 복만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회개와 고난과 헌신과 충성을 전하지 않고,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정해 놓은 도덕과 윤리로 사는 것이 성도들의 본분인 것처럼, 모든 설교를 세상의 기준에 맞춰 놓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도들이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은 가장 낮은 기본입니다. 세상의 법을 지키면서 그 위에서 복음을 전해야만 전도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도덕적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복을 원하다가 죽은 것입니까? 물론, 세상에서 일부러 가난하거나 병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복 때문에 진리를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도의 눈은 누구를 향해 계십니까? 그리스도의 마음과 눈이 머물고 있는 그 자리에, 여러분이 바울과 함께 서 있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과 쾌락을 부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동행할 때 가나안 땅에 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훈련이 끝나고 나면 사도 바울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간 것처럼, 하나님께서 영원한 안식을 주실 것이며, 고통 받던 욥을 회복해 주신 것처럼 영적으로 육적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향해서는 죄를 이긴 성도로 당당하게 서며, 하나님을 향해서는 산 자로 겸손하게 서서 복음을 전하여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