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사는 나라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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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요나

요나 3장 3절~4장 4절

3:3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3:4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3:5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3:6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3:7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3:8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3:9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3:10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4:1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4:2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4:3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인 순종을 보였던 선지자입니다. 그런 그가 심판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가는 불순종을 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선민사상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계획은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멀리 떠난 탕자와 그 탕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진 큰 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큰아들을 요나로, 탕자를 니느웨 사람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했던 큰아들과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재산을 자기 것처럼 마음대로 사용하는 둘째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아버지께 자기의 몫을 미리 달라고 졸랐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세상에서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말렸지만, 아버지는 둘째에게 그의 몫을 주셨습니다. 큰아들의 염려대로 동생에게서 들려오는 소식은 하나같이 창기들과 어울리면서 아버지의 재물을 탕진하고 있다는 소식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둘째 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비웃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물과 건강 그리고 지혜를 내 것처럼 마음대로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둘째 아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동생이 타락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결같이 동생의 안위를 염려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큰아들은 서운한 마음이 커져만 갔습니다. 둘째 아들이 재물을 탕진하는데도 왜 책망하지 않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큰아들을 불렀습니다. 동생이 돈이 다 떨어져서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은데, 네가 가서 집으로 데려오면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상황은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는 니느웨를 구원하고 싶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원수 같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도 모자라서, 요나에게 그들에게 가서 이제는 돌아오라고 전하라는 말씀에 반감이 생긴 것입니다.

큰 아들은 크게 화를 내며 나가버렸습니다. 큰 아들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이 다시는 부탁할 수 없는 곳으로 도망가기 위해서 배를 탔던 요나의 행동과 같은 것입니다. 요나는 탕자와 같은 니느웨를 미워만 했을 뿐, 그런 사람들조차 끌어안아야만 자신이 큰 그릇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죄로 가득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품에 안았다면 아버지의 큰 사랑이 보였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이 원수까지 포용할 줄 아는 큰 그릇이 되어야, 그를 믿고 전 재산을 맡길 수 있기 때문에 동생을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동생을 품으라는 것은 결국 큰아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이 아니더라도 둘째 아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형이 동생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돕는 것과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데려오는 것은, 아버지가 얻는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큰 아들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다시스로 도망가는 요나와 탕자의 비유는 같은 맥락입니다.

요나는 스불론 땅 갓헤벨 사람 아밋대의 아들입니다. 그는 B.C 793~753년 당시 활동했으며,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의 영토를 회복하고 북쪽으로 하맛에서부터 남쪽으로 아라바에 이르는 땅을 정복할 것이라고 예언하여 왕의 신뢰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원수인 앗수르의 도성 니느웨에 가서 너희들의 죄악이 하나님께 상달되었으니 회개해야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나가 원수의 나라인 앗수르에 가서 심판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십이만 명이 넘는 니느웨 사람들을 심판하실 수 없었기 때문에 요나를 통해 말씀을 전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요나는, 선민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고 앗수르에 대한 민족 감정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관계가 좋지 않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킨 것을 보고 분통을 터뜨린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큰아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는 언제나 아버지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은 아버지의 재물을 흥청망청 사용하는 죄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동생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두 아들 모두 다 사랑하는 자녀일 뿐입니다.

요나는 원수들이 자기가 전한 복음을 듣고 돌이키면 영생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거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과 관계가 아주 나쁜 원수에게 여러분이 복음을 전해서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복을 받는다면 무엇인가 손해 보는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악한 본성입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이며 그는 늘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완전한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기에 ‘완전하다’는 말은 ‘정직하다’ 혹은 ‘신실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거짓, 가식, 허영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는 정직하게 살아야 하며, 거짓말하고 가식적인 행동을 하거나 허영되고 교만한 삶을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세상이 받을 심판에 대하여 거듭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들을 때 악인은 바로처럼 더욱 강퍅해지지만, 의인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번민하며 아파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았다면 노아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언약은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과, 한편으로는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처럼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나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명령을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믿어야만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순종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성도들이 갖는 이런 두려움을 경외심 혹은 경건이라고 합니다. 요나는 자신이 니느웨 사람들과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하심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언제나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말씀이 두려운 것이고 세상이 헛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악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도 할 것이며 구원을 위해서 더욱 헌신할 것입니다. 노아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믿음으로 순종했지만, 요나는 영적으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요나처럼 원수의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에게 북한에 가서 사십일 후에 하나님께서 북한을 심판하실 것이니 회개하라는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셨다면 순종하겠습니까? 혹시 전하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주저할 것입니다. 물론, 요나가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한 것은 니느웨에 가서 심판을 전하다 당할 후환이 두려워서 피한 것만은 아닙니다. 요나는 자기가 가서 굳이 심판을 전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구원하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기 싫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는데, 갑자기 풍랑을 만나서 배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사공들은 큰 파도를 보며 각자 자기가 믿고 있는 신을 불렀고,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물건을 모두 바다로 던졌습니다. 그런데도 바다가 잔잔해 지지 않자 과연 누구의 죄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제비뽑기를 했고 배 밑에서 자고 있던 요나가 뽑힌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곁에 있는 사람들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요나서 1장 1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이미 요나가 바다에 던져질 것을 아시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안전하게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나를 바다에 던지면 저 풍랑이 잔잔해질 것이라는 요나의 말 대로 사공들이 그를 바다에 던지자 풍랑이 잔잔해 지면서 고요해졌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삼일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어야 하는 극한 상황에 처해졌습니다.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는 자신의 판단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에 삼일 동안 있으면서 어두움을 통해 그는 죽음을 경험하였고, 자기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판단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넣으셨고 그의 불순종을 일거에 무력화시켰습니다. 물고기 뱃속은 그 자체로 요나에게는 죽음입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오기 전까지 요나는 자기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계획할 수 있었지만 물고기 뱃속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자기에게 있는 줄 알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기 때문에 사람이 판단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한 생각과 판단을 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지켜주셨기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요나처럼 내 마음대로 불순종의 길을 걷지는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가다 보면, 어쩌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난과 기적을 통해 요나의 생각을 바꾸시며, 목적지인 니느웨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도착한 그에게 두 번째 명령을 내리셨는데, 큰 성 니느웨를 삼일 동안 돌면서 심판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성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지 하루 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마치 요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왕부터 백성까지 죄를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기적은 요나가 전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니느웨가 회개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 때 앗수르 왕은 아슈르단 3세인데, 그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한 것은 세 차례에 걸친 국가의 큰 재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B.C 765년에 돌림병이 있었고, B.C 763년에는 일식과 돌림병으로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왕과 백성들은 요나의 메시지를 듣자 하나님께서 회복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4장 1~2절에, 요나가 심히 화를 내며 내가 고국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애가 크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는 하나님인줄 알았기 때문에 굳이 내가 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느냐고 불평하였습니다. 자기가 전한 말씀을 듣고 그들이 회개했다면 기뻐해야 하는데, 그는 도리어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전하라는 것은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결단이므로, 자기가 전한 말씀과 상관없이 니느웨가 회개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계획하고 결심하면 성취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을 물고기 뱃속에 넣어가며 데리고 온 것이 속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나 장소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면 당장 멸망시킬 것처럼 하지만, 죄인이 말씀을 듣고 돌이키면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요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입장에서 보면 심판을 전했을 때, 그들이 말씀을 듣고 두려워 회개하면 자기가 전한 예언이 틀리기 때문에 부끄러울 것입니다. 심판을 전하면 심판이 임해야 하고, 축복을 전하면 축복이 임해야 예언자로서 부끄럽지 않은데, 그들이 돌이켜 복을 받게 되면 예언이 틀린 것이 되므로 요나는 그것이 싫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심판의 예언은 반드시 틀려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도 있고, 선지자의 예언이 틀린 사건도 많습니다.

출애굽기 3장 8절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라고 하셨다면,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야만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도 백성들도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애굽에서 그들을 구해내어 가나안에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인데도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7~9절

7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려고 하셨지만, 이 사람들은 마음이 완악하고 완고하여 마음대로 살면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처음부터 애굽도, 애굽을 나온 그 사람들도 아닌 가나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에 누가 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인데, 광야를 건너는 과정을 끝까지 믿음으로 지켜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받은 율법이 아니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를 깨닫지 못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보기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를 지은 백성에게 경고하시며 기회를 주셨습니다. 경고 없이 심판하신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경고를 받으면 반드시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믿음의 자리로 옮겨 앉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을 그대로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리를 옮기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명령은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심판이 있을 것이니 회개하라고 전하는 요나와 같은 사람이 없다면 아마도 니느웨는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의 죄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니느웨는 요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있는 니느웨는 요나가 전한 경고를 사람의 말로 받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길을 돌이키는 그들을 보시고, 니느웨를 향한 심판을 거두시고 은혜를 내리신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요나처럼 전도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죄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듣고 보고 돌이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기가 전한 심판이 성취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굳이 니느웨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대로 성취되지 않는다면, 스스로 자존감도 낮아질 것이고 복음을 전하는 것도 두려울 것입니다.

니느웨가 회개하는 것을 보면서 요나는 크게 화를 내며,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기 때문에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내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나의 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생명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요나가 얼마나 귀한 사명을 감당했는지 알려 주시기 위해서 멋진 이벤트를 준비하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그늘 아래 초막을 짓고 앉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요나를 위해서 박 넝쿨을 준비하셨습니다. 박넝쿨이 자라서 그늘을 만들자 요나는 정말 기뻐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얼마나 재미있는 분인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박넝쿨로 인해 기뻐하는 요나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벌레를 준비하여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니까 곧 시들고 말았습니다. 박넝쿨이 시들자 강한 햇빛이 머리에 내리 쪼였고, 요나는 더위를 참지 못하고 하나님께 화를 내며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박넝쿨로 인해 화를 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고 하시자, 요나는 내가 화를 내다 죽더라도 내가 옳다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수고도 하지 않았고 재배도 하지 않은 박넝쿨은 하루도 못 가서 죽는 것도 네가 이렇게 아끼는데, 하물며 십이만 명의 생명과 가축이 모두 죽게 되었는데 내가 이런 니느웨를 아끼는 것이 어찌 잘못된 일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죽음보다 내 손톱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것입니다. 십이만 명의 생명보다 자기를 시원하게 해 주는 박넝쿨이 요나에게는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 아시겠습니까?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을 자녀로 부르신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을 아는 것 같아도 자기가 중심에 있기 때문에 불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요나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과 니느웨의 구원을 통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비록 죄를 짓더라도 그들의 생명을 살리고 싶은 내 마음을 이해하고 복음을 전하라고 요나와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요나와 동일한 사명을 받은 여러분이 만약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면 빨리 배에서 내려 곧장 니느웨로 향하기 바랍니다. 만약 고집을 피우고 배에서 내리지 않는다면 풍랑을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며, 큰 물고기 뱃속과 같은 고난을 만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한다면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내 것이 모두 너의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믿음으로 순종해서 고맙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여러분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처럼 즉시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영혼을 부탁한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요나처럼 미리 판단하지 말고, 큰아들처럼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헌신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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