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사는 나라 · 조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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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에스더

에스더 4장 8절~5장 2절

4:8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4:9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4:10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4:11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4:12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4:13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4:14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4:15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4:16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4:17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5:1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5:2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펑펑 내리는 함박눈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해줍니다. 밤새 눈이 내린 날 밖으로 나가보면, 세상의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것이 자기의 의무인 것처럼 온 세상이 하얗습니다. 세상을 포근히 덮어주면서 마치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연약함을 덮어주고 또 덮어주면서 감싸주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함박눈처럼 만족할 만큼 사랑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도들은 그 사랑을 본받아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지혜를 배워야 하며 믿음의 형제들의 연약함을 덮어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민족의 연약함을 덮어주기 위해서 기꺼이 희생한 사람이 바로 에스더입니다. 에스더의 사건은 B.C. 538년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이루어진 1차 포로귀환과 B.C. 458년 에스라의 지도하에 이루어진 2차 포로귀환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에스더의 남편인 메대 왕 아하수에로 왕은 지금의 파키스탄에서부터 에티오피아에 해당하는 넓은 지역을 다스린 막강한 힘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에스더는 왕후가 되어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수산 궁에 거주하는 유다인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고레스가 포로들은 귀환하라는 허가 조서를 내렸는데도 이방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방인의 땅에서 긴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많은 재물을 소유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권력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 2의 고향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백성들도 보호하셨지만, 이방 땅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생명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돌아갈 곳은 바로 예루살렘이지만, 이방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백성들도 동일하게 보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 어느 곳에 살든지 악한 자들이 해치지 못하도록 그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세하게 알려준 것이 바로 에스더 사건입니다. 유다인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탄의 계획을 미리 아시고 그들의 악한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한 놀라운 섭리였습니다. 에스더의 이름은 ‘별’이란 뜻의 바사 이름이며, 히브리식 이름은 하닷사입니다.

에스더에게는 부모와 다름없는 사촌오빠 모르드개가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사울 왕과 같은 베냐민 지파이며 그의 이름은 특이하게도 바벨론의 신 무로닥의 숭배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신앙을 가졌으며,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고아가 된 에스더를 딸처럼 사랑하며 키웠습니다.

에스더 3장 1~2절

1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2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을 총애했기 때문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절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만에게 절한다는 것은 다신교 국가인 메대와 바사에서 그를 신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므로 하만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그에게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아각 사람인데, 아각은 사울과의 전쟁에서 패한 아말렉 왕이었습니다. 아각이 포로로 잡혀 왔지만, 사울 왕이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자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책망을 하며 아각을 죽였습니다. 그 아각의 후손이었던 하만은 그래서 유다 민족을 향한 적개심이 있었으며 항상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말렉은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을 대적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멸하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입니다. 그런 하만에게 모르드개는 무릎을 꿇지 않았고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하만은 절하지 않는 유다인 모르드개가 괘씸해서 그 한 명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유다 민족 전체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게 된 것입니다. 하만이 유다 민족을 죽이는 대가로 은 일만 달란트를 내겠다고 하자, 아하수에로 왕은 조서에 직인을 찍고 말았습니다.

하만은 왕의 직인이 찍힌 조서를 페르시아 제국 127도에 보내어 십이월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 유다인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재산과 생명을 모두 빼앗아도 좋다는 전문을 보냈습니다. 이제 그 날이 되면 유다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이 사건은 겉으로 보면 모르드개가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이 사건을 보면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을 말살하려는 것이며, 역사적으로는 아말렉의 후손이 하나님의 백성을 말살하려는 계획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고 꾸미는 계략입니다. 사탄의 이런 계략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계략을 막기 위해서 미리 왕후의 자리에 에스더를 앉히심으로 그 계획 자체를 막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르드개의 지혜와 에스더의 순종을 통해 유다인의 생명을 구하셨습니다. 에스더의 아름다움과 모르드개의 믿음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면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재능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 곁에 지혜를 가진 모르드개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해진 날짜에 유다인을 모두 죽이라는 하만의 조서가 각 도에 전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이제 그 날이 되면 유다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그 영문도 모른 채, 다만 세상의 왕이 유다인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바벨론 왕 벨사살을 물리치고 바사 제국을 창건한 고레스 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기회를 주었음에도, 돌아가지 않은 유다인들은 하만으로 인해 큰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롯의 아내처럼 세상에 쌓아 놓은 소유를 버리고 돌아갈 수 없어서 이방나라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세워 포로생활을 끝내도록 하셨으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마음껏 누리고 살다가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시면 모두 놓고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죄를 짓는다면 영원한 사망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사탄의 꾀임에 빠진 아담은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 사망에서 건져줄 의인이 없다면 모든 인간은 지옥불에 들어가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이 땅에는 의인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의인이 한 명도 없는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죄를 대속해 주신 구세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망에 빠지지 않도록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사망을 이기게 된 것입니다. 죄사함을 위해서 예수님이 죽은 것처럼,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유다 민족을 위해서 그 누군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영혼구원을 위해서 세상과 인간의 본성과 육의 정욕을 향해 죽는 자가 있어야만 성령께서 그 믿음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드렸기에 구원의 역사가 완성될 수 있었고, 에스더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 헌신했기에 유다 민족이 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울 수 있도록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을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도구로 일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책망하시려고 해도 여러분이 그들과 똑같이 살고 있다면 선한 도구가 없기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실 수 있는 선한 도구를 드려야만,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에스더 4장 16절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왕을 시해하려는 모의를 모르드개가 우연히 들을 정도로 왕에게는 많은 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왕의 허락 없이 왕의 뜰에 오는 사람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비록 왕후라 할지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에스더는 왕에게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유다인이 모두 죽을 지경에 처해 있는데도 에스더가 왕에게 나가지 않자, 모르드개는 유다인들이 모두 죽는 상황에서 네가 왕궁에 있다고 너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에스더를 책망하였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이 죽는데도 네가 잠잠하면 백성들은 또 다른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지만,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렵다고 일하지 않는 너는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책망한 것입니다. 네가 유다인으로서 왕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오늘과 같이 유다인들이 위험에 처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유다인을 살리기 위해서 그 자리에 너를 세웠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르드개가 했던 말처럼 영원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탄의 계획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단하지 못해서 영원히 심판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그는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 때,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말렸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권세를 잃고 싶지 않아서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해 지금까지 본디오 빌라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지고 있고, 본디오 빌라도 뿐 아니라 세상의 영화와 지식만을 탐하던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전할 기회와 선을 행할 힘이 있음에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인들이 모두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는데도 에스더가 두려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유다인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구하시겠지만 에스더는 하나님과 모르드개와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삼십일 동안 에스더를 부르지 않았으므로, 에스더가 왕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는데 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모르드개와 동족에게 자신을 위해서 삼일 금식을 함께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한 가운데 자신을 던져 죄인을 구원하신 것처럼, 에스더는 용기를 내어 자신을 죽음 한 가운데 던지자 비로소 하나님 백성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사탄은 최대한 에스더가 금식에 실패하도록 두려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가졌기에 십자가를 지기 전에 이 잔을 피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 또한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두려움도 느꼈습니다. 만약 그 두려움으로 인해서 십자가를 거부했다면, 사람들은 영원한 사망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 인류를 구원해야 하므로 기꺼이 십자가를 진 것처럼 자기 민족을 구원해야 하는 에스더는 금식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포로로 끌려와 몇 십 년 동안 이방인의 나라에서 사느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관심도 멀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하나님의 백성은 결국 이방인과 섞여 살 수 없으며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보석과 돌이 오랫동안 섞여 있어도 결국 보석과 돌로 나뉘는 것처럼, 택함 받은 백성은 절대로 세상 사람과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다인 중에는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인처럼 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메대와 바사 왕국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유다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유다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므로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봐야 그 노력이 헛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만이 유다인을 죽이려고 했을 때, 아무리 아하수에로 왕에게 협조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유다인이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가치가 없어지면 인정사정없이 버리는 곳입니다.

에스더는 충분히 모르드개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유다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왕후가 되었기 때문에, 유다 사람들이 죽는다고 해도 목숨은 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선택은 하나님을 버리고, 택함 받은 백성들의 생명을 버리는 악한 결정이므로 에스더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에스더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어떤 선택 하느냐에 따라서 에스더는 죽을 수도 있고, 민족을 배반하더라도 혼자 살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갈림길에 서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얼굴도 모르는 유다인을 위해서 여러분의 생명을 기꺼이 버리겠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금까지 쌓아 놓은 부귀와 영화를 지키기 위해서 왕후의 자리를 지키겠습니까? 세상은 이렇게 끊임없이 믿음과 불신앙의 길을 열어놓고 여러분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성도들의 이런 결단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9~40절

39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40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는 자가 바로 산 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동조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핍박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천국을 소망해야만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정하신 법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위해서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에스더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렸습니다. 왕이 금 규를 내밀지 않는다면 에스더는 죽은 목숨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삼일 밤낮을 금식한 후에 왕께 나아갔습니다. 에스더의 용기는 바로 죽음을 뛰어 넘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며, 온 유다인들이 함께 금식으로 도왔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심혈을 기울여 세운 엄청난 계획이 실패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금식은 역사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결단입니다. 절박하고 간절한 소원을 아뢰는 방법이므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자세가 옳은 금식입니다.

에스더 5장 2절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에스더가 비록 겉모습은 왕후의 예복을 입고 향품과 몰약으로 몸단장을 했을지라도,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으로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애통한 마음으로 금식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환하게 빛이 났을 것입니다.

왕은 에스더의 생명이 자기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미 에스더가 자기를 향해 죽은 자로 서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에스더는 왕의 결정에 따라 죽을 수도 있지만, 그녀는 이미 하나님 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왕은 에스더가 허락없이 자기 앞에 서 있었지만, 에스더가 너무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어떤 소원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향해 서는 모습이 바로 에스더와 같아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아가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당장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라는 생각을 가져야만 겸손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에스더가 생명을 내어 놓고 결단하자, 왕의 사랑도 되찾게 되었고 위기가 도리어 하만이 심판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림절 사건인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교회는 핍박의 대상입니다. 이럴 때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왕 앞에 당당하게 선 것처럼 성도들도 믿음으로 반석 위에 서야 합니다.

에스더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아하수에로 왕(아스티아게스)이 에스더의 아름다움에 반해 소원을 들어준 것처럼, 성도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내야만 세상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죽음의 자리에서 자기 민족을 구한 것처럼 성도들이 믿음으로 바로 서야만 귀한 영혼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만이 한 날을 정해서 유다인을 몰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을 실패하게 하셨고 도리어 유다인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재미있는 방법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에스더가 물론 왕비로서 위엄도 갖추었지만, 금식으로 인해 육적인 연약함을 갖춘 여인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인을 살리는 방법으로 사랑의 마음을 사용하셨습니다. 에스더를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가 바로 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왕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백성을 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위해서는 에스더의 금식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에스더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도 선한 도구를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유다인들을 살리는데 사용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도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돕고 싶어도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도울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에 도와주실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내 자녀가 다른 아이와 다투었을 때, 내 자녀가 평상시 선하게 살았다면 내 자녀를 믿기 때문에 얼마든지 변명해주고 일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내 아이의 선한 행동이 바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에스더가 자신을 버렸을 때 민족을 살릴 수 있었고, 유다인들이 하나님께 회개했을 때 모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자기 민족들을 살렸고 유다 민족은 매년 부림절을 지켰습니다.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믿음으로 결단하면 성령께서 그 믿음을 도구로 삼아 도와주실 것입니다.

죽어야만 사는 나라의 백성들이 세상을 향해 욕심을 갖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므로 성도는 주어진 환경에서 믿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성도들이 먼저 변해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성도들이 먼저 거듭나야 하나님께서 세상의 축복을 기꺼이 주실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는다면,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를 성직으로 사용한 것처럼 성도들이 가진 세상의 자리와 권세가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이며 성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에스더처럼 세상의 영화도 누리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헌신하기도 하며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죽어야만 사는 나라 · 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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