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야
14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15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또는 말랴 그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16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몇 번이나 네게 맹세하게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말하겠느냐 17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18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19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20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1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22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9장 39절에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믿음을 갖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 죄의 자리에서 일어나 심판을 받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못해서 강퍅한 마음으로 죄의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축복의 말씀은 그대로 임해야 하고, 심판과 책망의 말씀은 틀려야 하는 것입니다. 미가야처럼 선지자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는데 성취되지 않는다면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언이 성취되지 않았다는 것은, 선지자의 말씀을 들은 백성이 회개했다는 증거가 되므로 심판의 예언은 반드시 틀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미가야 선지자가 전하는 심판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다가 그 예언대로 죽는 사건이 열왕기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 왕 여호사밧은 사돈지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을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리시킨 것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분열되었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이 충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어리석은 정치를 하자 하나님께서 여로보함에게 열 지파를 주셨으므로 유다와 이스라엘이 분열되었습니다.
르호보암에게는 유다뿐 아니라 베냐민 지파도 주셨는데 베냐민 지파의 수가 적기 때문에 유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수가 적은 이유는 레위 사람이 집으로 가는 길에 베냐민 지역에 묵게 되었는데,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가 능욕을 당하고 죽었습니다. 그러자 억울했던 레위 사람은 아내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잘라서 각 지파에게 보내며 베냐민의 악함을 전했습니다. 베냐민의 악행을 들은 각 지파들은 함께 베냐민 지파를 공격했고, 이 때 살아남은 수가 극히 적어서 베냐민 지파를 유다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 왕 아합이 남쪽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말하길, 우리가 과거 전투에서 시리아 왕에게[아람, 수리아]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은 우리의 땅이니 남북이 연합군을 결성해서 탈환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전쟁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왕 아합은 선지자 사백 명을 불러서 전쟁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사백 명은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이 자기가 숭배하는 바알 신을 선교할 목적으로 고용한 예언자들입니다. 이들은 여호와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학살하는 이세벨을 보았으므로 그녀가 듣기 좋은 말만 해 주고 있었습니다. 사백 명의 선지자들은 올라가서 싸우면 하나님께서 길르앗 라못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어서 올라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거짓 영이 입에 넣어주는 대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사백 명의 선지자의 예언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바르게 전하는 미가야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은, 다른 선지자들이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말했으니까 당신도 같은 예언을 해야만 살 수 있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미가야는 열왕기상 22장 14절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 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겠다는 아주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미가야는 이미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향해 죽은 자로 서 있었던 것입니다. 상대가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전할 뿐, 자신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세상의 부귀영화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이런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비록 거짓 선지자라 할지라도 사백 명이 두 왕 앞에서 승리를 예언한 상태인데, 왕에게 당신이 전쟁에 나가면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미가야는 아합 왕에게 전쟁에 나가게 되면 당신이 죽을 것이므로 지도자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흩어질 것이라고 사실대로 예언했습니다. 미가야는 죽을 결심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대로 전한 것입니다.
자기가 죽는다는 예언을 들은 아합은 크게 화를 내며 저 사람은 언제나 나에게 저주만 한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을 듣고 기분이 상했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라면 들어야 합니다. 부족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듣기 좋은 말만 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불쾌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과 말씀을 전한 사람을 멀리합니다.
하지만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책망하는 사람의 진심을 저버리고 믿음에서 멀어집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상대방이 나를 위해서 해 주는 충고인지 조롱하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는 사람은 대부분 권면을 듣고 성장의 기회로 삼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입니다.
제가 성도의 신앙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해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기를, 성도의 믿음을 알고 싶으면 칭찬과 책망을 해 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칭찬만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고, 책망을 듣고 자신을 돌이키려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이므로 그런 성도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면 순종하는 마음으로 사명을 잘 감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해 보니까 분명하게 성도들의 믿음이 보였습니다. 잠언에 보면, 지혜로운 자를 책망하면 그는 책망하는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미워서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멀리 돌아가지 않고 빠른 길로 가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책망을 하고 나면 저를 멀리하거나, 반박하기 위해서 오는 성도들을 보면서 많은 갈등을 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되는데 굳이 권면하다가 상처를 받고 있나 고민도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책망을 받고 교회를 멀리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한번이라도 더 듣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을 하지 못하고 넘길 때도 있었습니다.
책망과 칭찬을 해 보면 성도마다 그릇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책망받는 즉시 바로 돌이키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돌이키는 것이고, 마음을 닫는 사람은 인간인 저를 보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책망하는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를 보지 말고 제 말을 듣는다면 여러분의 인생에 유익할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뿐이고, 목사라는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잘하는 것은 칭찬하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지만 잘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 신뢰를 받기 위해서 먼저 세상을 마음에서 놓아야 합니다.
고무줄을 가지고 예를 들어 보면, 고무줄을 막대에 묶어 놓고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막대 뒤로 고무줄이 튕겨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막대를 세상으로, 고무줄을 성도의 믿음이라고 본다면, 세상의 줄을 끊지 않고 앞으로 계속해서 달리면 당장 보기에는 믿음이 성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환경 때문에, 사람 때문에 믿음을 마음에서 놓는 순간, 팽팽했던 고무줄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곳보다 더 뒤로 튕겨 나가기 때문에 영적으로 회복하기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 줄을 끊고 달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줄을 끊는다는 것은 분명히 아픔이 있지만, 그래야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 죽음을 이긴 자로, 부활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을 놓을 수 있는 방법은, 세상이 헛되고 헛된 곳이며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자라는 것을 믿거든 좁은 길이라 할지라도 확신을 갖고 달려가기 바랍니다.
열왕기상 22장 19절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미가야는 지금 하늘에 펼쳐진 환상을 보면서 그대로 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누가 아합을 꾀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죽게 하겠느냐고 물으시자 사탄은 ‘내가 거짓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로 하여금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거짓말을 하도록 하겠다’라고 하였습니다. 미가야는 천상 회의를 본 그대로 사탄이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 전쟁터로 이끌고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아합은 도리어 진실을 말해주는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전쟁터로 떠나버렸습니다. 지금 아합이 전쟁터로 가는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선택한 것처럼 자기 중심적인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들은 미가야는 올바로 전해주었지만, 아합이 자기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니까 듣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어떻게 미가야와 같이 능력 있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느냐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도 자기의 생각에 매이면, 미가야가 지금 이 자리에 와서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해 준다고 해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해 주는 말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순종해야 살 수 있습니다.
아합은 그래도 미가야의 말이 두려웠던지 변장을 하고 갔습니다. 이런 행동은 순종이 아니라 자기의 안위를 위해서 절충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절충하는 것은 듣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아합은 아람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미가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아합이 지혜로웠다면 사백 명이라는 사람의 숫자를 보기 보다는 자기의 죽음을 예언하며 책망하는 미가야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를 고집하며 욕심대로 살아온 아합은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미가야를 감옥에 넣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아합이 죽었다는 소식을 감옥에서 들은 미가야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것 보라고, 내가 예언한 것이 맞지 않았느냐고 기뻐했을까, 아니면 그렇게 돌이키라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었는데 욕심을 버리지 않아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을까? 아마도 미가야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진심으로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만약 아합이 돌이켰다면 비록 자신이 전한 예언의 말씀은 그대로 임하지 않더라도 한 생명을 살렸기에 기쁘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성숙했기 때문에 책망을 해도 아멘하고 잘 받지만, 처음 책망을 했을 때는 내가 잘한 것은 말하지 않고, 왜 잘못한 것만 말하느냐고 화를 내는 분도 있었습니다. 나도 이만하면 믿음이 좋은 것 아니냐며 권면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칭찬보다는 회개해야 하는 부분을 권면하니까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했다면 회개하고 돌이키면 축복이기 때문에, 책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은 칭찬과 책망을 분명하게 해 주면서 잘못한 것은 따끔하게 책망하고 잘한 것은 크게 칭찬을 해 준다면 더 성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은 이미 딱딱한 것을 먹을 수 있는 지혜가 있으므로 잘하는 것은 스스로 하면 되고, 책망받는 것만 돌이킨다면 성숙한 인격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잘못한 부분 때문에 잘한 부분까지 빛이 나지 않기 때문에 권면하는 것인데 듣기 좋은 말만 원하기 때문에 감정이 상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과 인격은 하나님 안에서 말씀으로 더 성장해야 합니다.
순종하면서 욕심과 정욕의 걸림돌을 치우면 되는데, 불순종하다가 인생을 돌아간다면 너무 안타깝기 때문에 권면하는 것입니다. 아합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지 않아서 좋은 사람을 잃은 것은 물론 생명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미가야는 깊은 진리를 전해줘도 아합이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선지자의 사명이기에 말씀을 전해준 것입니다.
사무엘상 23장 12~13절
12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13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은 쫓겨 다니는 처지였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 백성들을 괴롭히고 타작 마당을 탈취하는 것을 보자 함께 싸워주었습니다. 다윗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위험을 알기에 말렸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었기에 블레셋과 전쟁을 한 것입니다. 이 때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떠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일라 성을 구해주자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서 거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편안함도 잠시, 누군가 사울에게 가서 다윗이 지금 그일라 성에서 지내고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동안 사울은 전쟁에 능한 다윗이 넓은 광야에 있었기 때문에 잡을 수 없었지만, 성 안에 있는 다윗은 군사들을 데리고 가기만 하면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크게 기뻐했습니다.
사울이 그일라 성을 향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며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다윗이 ‘사울이 정말 이곳에 오겠습니까?’ 기도 드리자,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분명히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 사울이 군사를 몰고 이 성으로 와서 저를 내어 놓으면 살려주겠다고 협박한다면 그일라 사람들이 저를 사울에게 내어 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일라 사람들이 너를 내어 줄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다윗은 자기의 사람 육백 명을 데리고 미련없이 그일라 성을 떠났습니다. 그 성은 다윗이 블레셋에게 목숨을 걸고 지켜낸 성입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은혜를 저버리고, 자신들의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 다윗을 배신했다면 화가 나서 어떤 해라도 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생명을 해하지 않고 조용히 성을 떠났습니다. 지금 다윗이 그일라 성을 떠나는 시점은 사울이 온 것도 아니고, 그일라 사람들이 배신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소상하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성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이런 믿음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배신을 당하고 억울해도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네 생명을 보존하라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의 배신에 분노하며 그들을 죽인다면 생명을 해치는 죄를 짓는 것이고, 위해를 가한다면 복수를 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는 말씀은,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너는 그저 선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살라는 은혜입니다. 내가 세상의 모든 법을 만든 것을 믿거든 네가 복수하려는 악한 마음을 버리고 죄의 자리를 떠나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인 것입니다. 원수에게 일부러 져주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네 심령을 악한 마음으로 채우면 너도 나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 너는 선한 마음만 갖고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일라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공격하기 위해서 오던 길을 곧장 돌이켜서 자기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울이 올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다면, 사울은 그일라 성까지 와야만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성취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져야 하는데, 사울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과 다르게 그일라에 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무조건 말씀에 순종했던 다윗의 신앙은, 자신의 생명도 구하고 훗날 통일 왕국을 이룩하는 왕이 되는 기회도 받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일라 사람들이 배신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자기들을 구해준 나를 설마 내어줄까’하거나, 사울이 온다고 해도 내 군사가 있기 때문에 싸워볼 만하다는 생각으로 다윗이 성 안에 남아 있었다면,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분명히 왔을 것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블레셋을 이긴다는 듣기 좋은 말은 순종하고, 사울이 올 것이라는 말은 순종하지 않는다면 다윗은 목숨을 보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즉시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순종을 보여준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너무 바빠서, 피곤해서, 환경이 안 돼서, 혹은 누구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모두 핑계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고 죄의 자리에 그대로 있는 사람을 쉽게 공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하셨다면, 일어나서 자리를 옮기는 순종을 보여야만, 사탄이 볼 때 죄의 자리에 여러분이 없기 때문에 공격하러 오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듣기 좋은 말씀이든 아니면 책망과 진노의 말씀이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믿고 나아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구해 준 사람들의 배신이 서운해도 하나님께서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생각할 것도 없이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자녀들이 순종하느냐 아니면 불순종하느냐에 따라서 불행을 몰고 오기도 하고, 그 계획을 접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찬양을 하고 기도하고 금식을 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볼 때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겠다는 믿음 없이 드리는 예배는 그저 힘이 없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없는 것처럼 사탄도 영이기 때문에 속일 수 없습니다. 입으로만 하는 신앙고백은 하나님도 사탄도 속지 않습니다.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변해야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하실 것이고, 사탄의 역사를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세상과 사람을 보지 말고 말씀에만 순종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 자체가 강한 능력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막이 처진 성도에게 사탄이 접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돌아가는 것은 바로 불순종의 자리에 다윗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옥에 갇혔을지라도 미가야는 세상을 향해 죽은 자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전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순종이 미가야의 순종이며, 죄의 자리를 단호하게 결정했던 다윗의 결단이 미가야의 결단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세상을 향해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미가야는 아합의 영혼까지도 사랑했기에 말씀을 담대하게 전한 것이므로, 아합은 미가야의 말이 당장은 서운하더라도 자신을 돌이켜보는 기회로 삼아야 했습니다. 이것을 깨달아야만 미가야가 왜 기꺼이 죽음을 택했는지 그리고 말씀에 순종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처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 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 고백 위에서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며, 큰 상급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왕과 사백 명의 거짓 선지자처럼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한다고 해도, 여러분이 진리를 알고 있다면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말씀을 버리는 순간 사탄의 종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미가야와 같은 고백과 다윗과 같은 순종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