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사는 나라 · 조춘숙
나가기
2장

욥기 7장 11~21절

11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12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13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14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15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16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17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19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20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21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도 세상을 사는 동안 고난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욥의 인생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욥이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을 지켰지만 그 믿음은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귀영화를 누린 욥은 자칫 교만할 수도 있었지만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있었기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욥은 인품이 좋았고 구제하기를 좋아했으므로, 나그네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늘 베풀어 주는 사랑을 본 사람들은 욥을 존경했습니다. 그는 자녀들이 모여서 잔치를 하는 날이면 혹시 하나님께 지은 죄가 있을까 염려되어 자녀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는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욥은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언제나 하나님의 법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욥을 사랑하셔서 늘 보호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기보다는 세상의 권력과 재물을 많이 소유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모든 기준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욥기에 기록된 천상 회의를 보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거룩한 성도는 욥처럼 인간의 의를 버린 성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천사들이 서 있었는데 그 자리에 사탄이 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네가 어디에 갔다 왔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우는 사자처럼 실족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던 사탄은 세상 여기저기 돌아다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렇게 사탄은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어떤 사람을 실족시킬 것인지 찾아다니기 때문에 성도들은 방심하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려고 다짐해도 자꾸 마음이 해이해지고 낙심되는 것은 바로 사탄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내 종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인데 네가 보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내 종’이라는 표현은 존경과 명예의 칭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에게 존경을 표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며, 하나님이 얼마나 귀한 인격을 가지고 계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만 보시며, 성도를 높이고 영화롭게 해주시는 분이 바로 사랑이 많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자 영혼을 실족시키는 것이 목적인 사탄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물질적인 축복과 영적 축복을 주셨기 때문에 경외하는 것이지 만약 받은 것이 없다면 섬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의 말은 곧, 하나님께서 욥이 가지고 있는 세상의 소유를 빼앗는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욕하고 떠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난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사탄의 생각입니다.

욥기 1장 9~11절

9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만약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은 살아가는데 물론 필요하지만,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샤머니즘 같은 기복 신앙이므로 성전을 청소하시던 예수님처럼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합니다. 이런 사탄의 악한 생각을 아시면서도 굳이 욥을 자랑하신 것은 그의 절대적인 신앙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그가 가진 것을 빼앗는다면 분명 하나님을 떠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저는 사탄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욥과 그런 욥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관계를 사탄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이기도 하고, 아무리 진흙에 굴러도 그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절대로 끊을 수 없는 사랑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시기심으로 이간시켜도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탄이 절대로 알 수 없는 이 사랑을 예화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웃집에 잎사귀가 무성하고 열매가 많이 달린 나무를 보면서 심술이 난 사람은 잎사귀만 떼어내면 나무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주인에게 당신의 나무가 얼마나 연약한지 시험하자고 했습니다. 열심히 잎사귀를 다 떼어내자 열매가 도리어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열매가 달린 가지를 잘라내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지를 자르자 잘 보이지 않았던 굵은 아름드리나무가 우뚝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잎사귀와 가지를 자를수록 나무가 잘 자란 것이 보이자 화가 난 사람은 나무의 밑동을 베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무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그는 이제 나무가 죽었다고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는 다시 싹이 나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된 것입니다. 나무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잎사귀나 열매가 달린 가지 때문이 아닙니다. 옥토에 깊이 내린 뿌리가 물가에 닿아 있었기 때문에 굵은 아름드리로 성장할 수 있었고, 열매와 잎사귀를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깊이 뿌리를 내린 성도에게 생명의 물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에 성숙할 수 있었고 많은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예화처럼 욥은 많은 재물과 자녀와 짐승과 종이 있지만, 그것 때문에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 먼저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사탄은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욥이 가지고 있는 짐승을 빼앗고, 자녀를 죽이면 욥의 신앙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입니다. 잎사귀와 열매를 잃었다고 하나님을 욕하는 수준이라면 하나님께서 욥이 악에서 떠난 정직한 자라고 칭찬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실한 믿음은 당면한 현실에 따라 신앙이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재물이 줄거나 병이 들거나 자녀가 원하는 만큼 성공하지 않아도 의연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어떤 고난을 만날지라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담대하게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탄이 아무리 고난을 주어도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며, 사생자라면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으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을 초월한 신앙을 가진 성도를 사탄은 두려워합니다. 지금 욥은 하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욥기 1장 21절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은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므로 지금 가진 소유는 하나님께 빌려 쓰고 있다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모두 죽고 재산을 잃는 슬픔 속에서 욥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악한 말을 내지 않았고, 겉옷을 찢으며 자기로 하여금 지금까지 모든 것을 누리게 하셨던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자녀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자녀를 거두신다고 해도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기를 원한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재산과 자식을 잃고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지금 욥이 당한 이 고난은 모두 하루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욥기 1장 16절에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왔다고 했고, 17절에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왔고, 18절에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작은 문제만 만나도 어떻게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고 불평하며 고통스러워 할 것입니다.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불평하면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모두 잊어버릴 것입니다.

하루 동안에 연이어 사고가 일어나면서 재산과 자녀들을 한꺼번에 잃었는데도,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라고 고백한 욥의 신앙은 참으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이 정도의 신앙을 가져야만 하나님께서 순전하고 정직한 믿음을 가졌다고 칭찬하시는데,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상급을 받겠다는 말을 아주 쉽게 하고 있습니다. 봉사하고 헌금과 기도를 드리면 당연히 세상 것으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작은 어려움이 오면 쉽게 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은 욥처럼 세상의 모든 소유를 잃을지라도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감사하고 경배하는 신앙입니다. 이 모든 사고가 욥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깊이 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사는 동안 어려움이 계속해서 이어질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려움이 계속 오거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이 문제를 주셨는지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느냐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빨리 돌이켜서 순종해야만 고난의 바람이 그칠 것입니다. 성도 중에는 한 번의 고난으로 깨닫고 돌이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년 아니 평생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성도가 먼 길을 돌아가지 않도록 말씀으로 권면하지만, 대부분 자기의 생각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먼 길을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모난 부분이 깎일 때까지 훈련을 받기 때문에 자기가 만든 습관과 의의 틀을 빨리 부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욥처럼 잠시 고난을 받아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변치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았던 욥이 훗날 잃었던 재물과 자녀를 모두 돌려받는 것을 보면 욥은 믿음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성도가 만난 고난은 신실한 믿음을 드러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있기에, 고난은 지나가는 바람이며 인생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고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높은 고개를 넘기가 힘겹더라도 은혜의 바람이 뒤에서 밀어준다면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성숙한 신앙을 보여드린 욥은 빼앗기지 않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욥기 3장 1~3절

1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차라리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욥의 탄식이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는 욥의 탄식을 들어보면, 지금 당하고 있는 힘든 현실을 불평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욥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욥이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일어난 이 일을 죄송스러워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지금 믿음을 반석 위에 세운 욥이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며 탄식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욥은 평생을 믿음으로 살았지만 모든 것을 잃은 지금, 예전처럼 말씀을 온전히 전할 수 없는 현실이 하나님께 너무 죄송해서 자기의 출생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조롱을 당하는 것은 감수할 수 있지만,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 같아서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자기가 더 잘했다면 하나님께 누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통스러워하는 욥의 이런 마음을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부족해서 하나님을 담대하게 전하지 못하는 그 고통은, 물질과 자녀가 없어서 당하는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기회와 시간을 주실 때 더 믿음으로 잘 살아내지 못하고,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이 자리까지 왔는지 너무 한심스러웠던 것입니다.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남편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자 욥의 아내는, ‘이렇게 엄청난 일을 당했는데도 한심스럽게 하나님을 믿고 있느냐?’며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믿음을 달아보는 저울일 수도 있고, 모난 부분을 빨리 깎기 위해 동원된 선한 도구일 수도 있습니다. 욥의 아내 역시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었기 때문에 그 여인의 아픔은 이해가 되지만, 남편의 잘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과 남편을 저주하는 것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난 일을 책임지지 않고 격한 감정을 쏟아내며 하나님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재물이 많아서 편하게 살 때는 잃어버린 모든 것이 그 여인의 자랑거리였지만, 그 모든 것이 사라지자 도리어 하나님과 남편을 원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령의 가르침대로 훈련을 해야 하며, 자신의 감정보다는 문제를 말씀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욥기 4장 6~7절

6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7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욥의 세 친구들이 와서 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을 늘 경외하고 말씀대로 산다고 했지만 지금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재산도 자녀들도 잃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욥에게 친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친구들이 욥에게 하는 말을 성도들도 자주하는 것을 봅니다. 고난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보다는 고난을 당했다는 자체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악한 자는 고통을 당하고 선한 자는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소망일뿐입니다. 열심히 뿌려도 거둘 수 없고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악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산을 가질 수 있고 영적으로 열심히 살아도 가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믿음의 형제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자신의 판단과 경험 그리고 윤리와 도덕과 말씀을 잣대로 더 고통스럽게 만든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욥이 원치 않게 고난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욥의 신앙을 알면서도 세상의 잣대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욥이 그동안 재산이 많았을 때는 감히 말하지 못하다가 힘을 잃었다고 생각하자 함부로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도 모르면서 믿음의 성도를 판단하는 것은 도리어 자기의 믿음에 해가 되며 영적으로 어두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친구들이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한 것이라고 몰아붙이자 욥은 자기가 믿음을 어떻게 지켰는지 자세하게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온 자신의 신앙을 친구들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자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올 것’이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욥처럼 믿음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살아도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있으면 고난의 터널을 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마다 깎고 다듬어야 하는 부분을 다 아시기 때문에 그를 영적인 군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강하게 연단하시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욥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연단받는 사람들을 조롱한다면 정작 자신이 고난을 당할 때 무엇이라고 변명하겠습니까? 남의 고통을 판단하고 조롱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맡겨주신 평안한 시간과 환경에 감사하면서 연단받는 형제에게 큰 위로를 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보석과 같은 욥기를 한 편의 설교로 전한다는 것은 분명히 무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산 자로, 세상을 향해 죽은 자로 살면서, 끝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은 욥의 믿음을 중심에 놓고 욥기를 읽는다면 하나님께서 왜 욥을 사랑하셨는지 자세하게 보일 것입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욥에게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욥이 친구들을 설득하는 부분에서 잘 살고 못사는 것이 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기의 믿음의 행위를 자꾸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 그의 모습이 교만하게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말로 들렸기 때문에 친구들은 더욱 죄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욥이 자기의 행함을 자랑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설명하기 위해서 자꾸 반복하니까 자신의 의를 드러낸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욥은 친구들을 설득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하나님을 높였다면 친구들과 대화하기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신앙을 지켜도 인생은 우여곡절을 겪기 때문에 기쁜 날도 슬픈 날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안개처럼 사라지고 마는 인생 중에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들을 귀가 없는 친구들을 보면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런 욥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친구들이 가진 인과응보적인 형벌관을 깨기 위해서 창조의 역사를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우주적인 초월성과 절대 주권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하나님과 온전한 신앙을 가진 욥의 믿음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창조의 말씀을 듣고 난 욥은 자기가 지금까지 믿음을 지킨 것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을 뿐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욥이 말씀을 지킨 것은 훗날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지, 하나님의 역사에 큰 도움을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말씀대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광대한 말씀을 듣자 인생이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것인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먼지와 같은 것인지 깨닫게 되자 그는 부끄러운 마음에 진심으로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종교적 전통이나 조상들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을 섬겼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가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도 성경 지식으로 만난 하나님을, 이제는 영적으로 직접 만나서 깊이 깨닫는 것이 아주 필요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여러분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고난의 터널을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욥은 비록 고난은 받았지만 고난 전에 가졌던 믿음보다 훨씬 성숙한 믿음을 갖게 되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난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욥의 정직한 신앙을 기뻐하셨지만, 믿음으로 성숙한 욥은 이제 하나님께 보석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누구나 인생 중에 고난의 터널을 지날 수 있으므로 어쩌면 인생 자체가 고난인지도 모릅니다. 터널이 생각보다 길 수도 있고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지만, 터널 밖으로 나오면 지나온 인생의 길을 하나님과 계산을 해야 하므로 터널을 지날 때 신앙을 굳게 세워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통과해야 하는 고난의 터널이라면 욥처럼 내가 의롭다고 해도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것이 있으며, 위대한 하나님께서 나에게 받으실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겸손하기 바랍니다.

욥이 자신을 조롱하며 가르치려고 했던 친구들의 죄를 위해 번제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욥의 믿음을 받으셨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죄를 이기기 위해 항상 노력했던 욥의 신앙이 그들을 살린 것입니다. 고난을 만날 때마다 사랑과 믿음의 열매를 남긴 욥은 잃었던 자녀와 재산을 그대로 돌려받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욥이 다시 받은 세상의 축복과 영적인 축복은 이제는 사탄이 어떤 계략을 세워도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축복입니다.

직접 창조하시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창조의 역사를 자세하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욥처럼 믿어드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의심하지 않는 욥의 신앙을 닮아 욥처럼 큰 은혜를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죽어야만 사는 나라 · 욥
17% · 2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