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
32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마른 가지에는 새순이 돋아나고 얼었던 땅에서는 새싹이 돋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새싹이 돋을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아마도 자연의 섭리는 우리의 믿음을 한 번도 저 버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정하신 순리대로 순환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하나님의 법칙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준 것입니다.
사람이 자연처럼 하나님께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부모와 자녀, 목사와 성도, 이웃과 이웃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늘 한결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가볍게 행동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아도 큰 죄의식이 없는 사람은 결국 신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약속을 지키자 도리어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변덕스럽고 감정의 변화가 심한 사람을 상대할 때는 긴장하고 조심합니다. 하지만 늘 변함없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처음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대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함부로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므로 미래가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늘 동일한 인격으로 대하시자 사람들은 감사를 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라 하늘에 갇혀 계신 하나님으로 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함께 들으시고 느끼시며 돕고 계시는 분입니다. 만약 자신이 원할 때만 돕는 분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세상 사람들이 믿고 있는 우상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람들이 보기를 원하자, 보이는 하나님으로 만드는 노력을 교회와 목회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가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씀을 전하고, 목표를 갖고 열심히 달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꿈과 비전을 이루어 주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니까 모두들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드리는 말씀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 밝은 쪽에서 보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꿈과 비전을 갖고 계획을 세우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소원이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마지막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올바로 보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야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고 꿈대로 이루어졌으니까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은 먼저 죽는 자리에 앉았고, 그가 감옥에서 당한 고통을 먼저 감수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다고 해도 그것이 믿음을 위한 것이 아니면 그저 성품이 좋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뿐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꿈과 비전은 모두 쓰레기와 같습니다. 내 꿈과 비전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일할 때 그의 믿음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내 삶에 관심을 갖게 해 드려야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고, 어떤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은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나 만나는 하나님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생겼을 때 찾는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고민하는 분으로 하나님을 모셔야만 삶이 풍요로워지고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하늘의 보좌에서 꼼짝 못하고 여러분이 불러야만 오시는 분입니까? 아니면 신음소리까지 들으시며 관심을 갖고 도우시는 아버지입니까?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시기 때문에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자녀를 빼앗을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무도’의 뜻은 세상의 권세와 물질과 사망과 사탄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인 나사로를 사망에 가두려고 했지만 생명의 예수님께서 그를 사망 가운데서 건져내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15절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일부러 요단 강가에서 이틀을 더 지체하시며 나사로가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하신 후 에야 베다니로 향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신 것은 나사로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사망을 벗을 수 없는 죽은 자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완전히 죽은 나사로를 살림으로써 생명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이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마다 하인처럼 도와주는 하나님을 원한다면, 베데스다 연못에 있던 병자처럼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연못에 들어가겠다는 고집을 피울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말고 생명의 주인으로 믿고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자신이 생명의 주인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이 생명의 주인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사로처럼 죽을 때까지 기다리실 것입니다.
저도 신앙으로 훈련을 받을 때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도와줄 사람을 보내 달라고 밤을 새워 기도했고 물질을 달라고 금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인간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고난을 겪어보니까, 물질을 달라는 기도와 사람을 보내 달라는 기도가 얼마나 사치이고 어리석은 기도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모든 문제의 중심에 내가 서서, 하나님께 명령하며 그저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의나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무조건 하나님께 내 명령대로 움직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도와 달라고 기도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내가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는지 먼저 그 뜻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내 계획대로 응답해 달라고 고집을 부리며,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만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코 크고 광대한 주님의 계획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하느라, 앞서 가시는 주님을 놓치는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내 계획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놀라운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만약 자녀가 부모님이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하신다고 인정한다면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옳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고난을 만날지라도 낙심하거나 배신하거나 욕심 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고난의 중심에 서 보면, 문제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크게 보이기 때문에 의심과 불안이 사라지면서 훨씬 지혜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분명히 네 오라비가 다시 산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마르다는 지금이 아니라 훗날 부활할 것을 믿는다는 자기 신앙을 버리지 못하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상과 인간의 한계에 갇혀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앞에 두고도 그 분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살리겠다고 하는데도, 나사로가 마지막 날 부활할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마르다의 생각을 깨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혹시 이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에는 분명 그 물건이 세모처럼 생겼다고 쓰여 있는데도, 내가 지금까지 본 물건은 항상 네모였다면 세모라는 글씨를 보면서도 끝까지 네모로 읽는 것입니다. 세상의 상식과 지식에 매여서 진리를 들으면, 그 말씀이 아무리 옳아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으므로 결국 진리가 마음에서 겉돌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고, 기적을 눈으로 보았지만 자신들이 정해 놓은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늦게 오셔서 불만이 가득했기 때문에 말씀을 거부한 것입니다. 과부의 아들과 회당장의 딸이 살아나는 기적을 보고 아주 기뻐하며 주님을 믿고 의지했던 그 신앙이 내 오빠가 죽는 나의 문제가 되자, 감사가 원망으로 바뀌었고 찬양이 불평과 불만으로 바뀌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그릇의 크기가 얼만 한지 아시겠습니까? 어떤 문제이든 남들이 겪는 것이라면 관대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믿음으로 기도해주고 권면도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문제가 되면 보는 시각부터 달라지는 것입니다. 남의 일일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했던 내가, 똑같은 말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으면 듣기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을 보면서 왜 믿어드리지 못하느냐고 책망했던 그 말을 자신이 들을 때는 판단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고 강퍅한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죄가 가득한 인간의 악한 본질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느냐고 묻는 말씀에, 유대인들은 대답 대신 좀 더 빨리 와서 왜 나사로를 살려주지 않았느냐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었다면 지금이라도 오셨으니 감사하다고 했겠지만, 믿지 않았기 때문에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왔으니 당신은 절대로 살릴 수 없다는 불신앙을 여과 없이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는 죄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유대인과 마리아와 마르다의 행동을 보면서 이들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자기의 생각 안에 가두어 놓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도 절대로 할 수 없고, 내가 이겨낼 수 없는 고난은 하나님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맡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정말 이 우주를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시고,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넣어 주신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그런 믿음이 있다면, 예수님이 절대로 살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곁에서 왜 동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입으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하면서도 죽은 자를 살리시고 죽은 문제를 다시 살려서 응답해 주실 것을 왜 믿지 않습니까? 내 생각과 의와 자존심을 죽이고 왜 하나님께 다가가지 않습니까? 인간의 의가 죽어야만 예수님께서 살려준다는 것을 알면서, 왜 헛되고 헛된 세상에서 발버둥 치고 있습니까? 죽어야만 영원히 살 수 있는 나라가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죽은 지 나흘이라 냄새가 난다고 또 불평하고 있습니다. 마르다의 생각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예수님이라도, 죽은 오빠를 절대로 살리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메시아라고 해도 이미 죽어서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살릴 수 있느냐고 의심하는 큰 죄를 짓고 있습니다. 썩어서 냄새 나고 무덤에 갇혀 있는 나사로가, 바로 마르다의 모습이라는 것을 모르고 불평하는 것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죄사함을 받지 못했으므로 사망에 갇혀 있었고, 온 몸은 죄의 줄로 묶여서 사탄의 명령대로 살았습니다. 나사로가 무덤에 갇혀서 온 몸이 묶여 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숨을 쉬고 있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오빠가 죽기 전에 오지 않았던 예수님이 무덤을 열라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때 자기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순종했다면 나사로가 살아났을 때 그 감격과 기쁨은 배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덤 안에 누워있는 나사로에게서 생명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냄새 나는 죽은 자이지만, 예수님은 그를 살리심으로 구원받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나사로처럼 주님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죽어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만나서 생명을 얻는 것이 우선입니다. 죽은 자들이 아무리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도 듣지 않으실 것이며 아무리 긴 시간을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살아난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산 자들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인 것입니다.
돌을 옮기게 하신 후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며 항상 내 말을 듣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자세히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 말을 지금 뿐만 아니라 항상 듣고 계시므로 감사한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을 때 할 수 있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항상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두려울 것도 낙심할 것도 없으며, 어떤 문제를 만나도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생명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 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은 마지막 날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심판대에 선다는 것을 잊지 않고, 세상의 문제를 바라본다면 불평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될 것입니다. 좁은 길이 힘겹더라도 진리의 길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면 죄를 멀리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4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부활과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사망에 갇혀 있는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부르자, 수족을 베로 동인 채 죽어 있던 나사로가 걸어 나왔습니다. 생명과 사망이 만나는 순간입니다. 무덤에서 나온 나사로가 얼굴을 수건으로 덮고 묶인 채 나온 것처럼,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영적으로 어둡고 냄새 나고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걸어 다니고 말을 하고 세상의 권세와 물질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보시는 인간들은 나사로와 같이 생명이 없이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탕감해 주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나사로처럼 죽은 채로 살았을 것입니다. 죽어서 냄새 나는 인간들이 그 몸에 보석을 달고 화려한 옷을 입고, 하나님께 나와서 찬양을 하고 기도하며 헌금을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덤 밖으로 나온 나사로가 묶인 것을 풀고 자유롭게 다닌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보혈로 죄에 묶인 사망을 풀고 진리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셨고, 그 율법을 통해 인간은 오직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달으라고 주셨는데 미련한 인간들이 이제는 목숨을 걸고 율법을 지키며 그것이 믿음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사망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죄가 드러나므로 그 죄를 해결하지 못해서 사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허우적거리는 죄인들을 위해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율법을 완성하셨고 사망을 이겨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사망을 이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히 나사로와 같이 무덤 속에서 냄새 나는 모습으로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육은 죽고 영은 살아 있는 자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나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려주지 않으면 무덤을 나갈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질 때,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의가 다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사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나사로가 생명의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인간의 정성과 공을 들여서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천국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십자가에서 죄의 몸이 죽기를 바랍니다. 모든 인간의 의와 욕심과 정욕을 버리고 거듭난다면 영원히 죽지 않는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산 자로 살아간다면, 암흑은 물러갈 것이며 성령의 빛 가운데서 영적인 삶이 충만해질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꼭 생각하고 인간의 정욕을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항상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루하루를 회개하며 여러분의 마음을 드릴 때 세상 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성도들을 늘 보호하시며 천군천사로 도와주고 계시며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고 계십니다. 죽어야만 사는 나라에서 나사로처럼 새생명의 축복을 받는 귀한 성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능력으로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랍니다.